너무도 낯선 공포에 모두가 두려운 시간이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이 생소한 질병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었고, 누군가는 누군가를 비난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2020년의 시작과 함께 코로나19는 우리 삶에 들어왔고 우리는 여전히 그 보이지 않는 공포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지금은 그 정체 모를 두려움 또한 일상 생활의 한 부분이 되면서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지고 일상을 꾸역꾸역 끌고 나아가고 있는 우리가 참으로 대견스러울 정도다. 여전히 두렵고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임은 분명하지만 돌아보면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스스로 조금은 놀라운 경험을 했고 소소하지만 다양한 기적을 목격한 듯 하다.
20년 3월 모두가 꼭꼭 숨기에 바빴던 어느 날, 출근길 버스 안에서 동네 병원 앞에 붙여진 임시 휴진 안내문이 화제가 되어 기사화된 글을 본 기억이 있다. 코로나19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스스로 휴진하고 대구로 의료활동을 나간다는 어느 동네 의사 선생님의 진심이 담겨 있던 휴진 안내문이었다. 얼마나 급했는지 포스트잇에 임시 휴업을 알리는 글을 적어 두고 대구로 내려가신 어느 약국의 약사님의 이야기부터 이미 은퇴했지만 자발적으로 다시 간호복과 마스크를 써주신 퇴직 간호사 선생님의 이야기, 마스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에 재봉틀 앞에 다시 앉았다는 우리 어머니들의 이야기, 더 어려운 분을 위해 써달라는 글과 함께 파출소 문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몇 장의 마스크 이야기까지 감동을 담은 사연들이 많이 들려왔다. 스스로는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기에 느껴야 했을 당혹스러움 때문이었던 것인지 혹은 그렇게 스스로 치유하고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절실함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괜스레 눈물이 나고 부끄러웠다.
누구는 낯선 두려움에 숨거나 의심하려 했고 비난과 책망만을 이야기하려 했지만 그 가운데 어떤 이들은 스스로 그 두려움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 의지와 사명이라는 가치를 앞에 두고 희생하고 봉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모두가 언성히어로(Unsung Hero, 보이지 않는 영웅)라 불려져도 절대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직접 칭송 받지는 못하였으나 모두가 알고 있는 숨은 공로자, 그들이 바로 우리 옆에 있었던 우리의 이웃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찬양하고 싶었고 ‘감사’라는 사전적 의미 이상의 고마움과 진심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렇게 KB국민은행의 ‘봄길’ 광고는 제작되었다.
몇 줄의 카피와 한 두 장의 그림 혹은 사진으로 감사의 마음을 오롯이 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있는 그대로의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녹여내고 싶었다. 어떻게 진심을 전해야 할까 고민하던 순간에 스치듯 대구 동산병원 의료진의 보도 사진을 발견했다. 마스크 속 얼굴엔 반창고가 가득 붙어있었지만 지침과 고단함 속에서도 느껴지는 자부심과 희망을 듬뿍 머금고 있는 미소를 보여준 사진 한 장. 그리고 정호승 시인의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라는 한 줄의 시구면 충분했다.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누구보다 먼저 두려움 앞에 당당했던 그들을 찬양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하고 아름다운 카피일 수 밖에 없다고 말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라고 이야기한 시인의 말처럼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희망적이고 아름다운 메시지가 아닐까.
국민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자 시작한 광고가 ‘국민이 선택한 좋은 광고상’, ‘올해의 광고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좋은 광고’라는 의미를 다시금 되뇌이게 한다. 광고는 분명 세일즈와 브랜딩을 위해 기여하고 회자되어야 하지만 어쩌면 그 과정에서 이끌어내야 할 동의와 공감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사진 한 장과 메시지 한 줄이 국민들에게 희망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광고이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 불확실성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 불과 1~2년 전의 일상을 추억하며 코로나19가 없어질 그날을 막연히 기다리고 있는 우리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을 보았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머지 않은 시간이 지나 다시 따뜻한 봄길을 웃으며 함께 걸을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란 사실도 알고 있다. 그렇게 봄길은 희망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시금 헌신적인 희생과 사명으로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자고 노력하고 계신 모든 의료진과 우리 이웃의 영웅들 그리고 광고의 취지와 진심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신 간호사님과 정호승 시인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오리콤 최병학 IMC플래닝본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