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는 다르다’가 아닌 ‘너와 나는 같다’가 어필되는 시대다. 판매자와 소비자라는 딱딱한 관계에서 벗어나, 함께 참여하고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즐거운 상호 작용이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불평불만에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도, 일단 마음으로 통하면 거부감의 장벽은 사르르 녹아내리고 어느새 달콤하고 부드러운 공감의 여운만 남게 된다. 그것이 바로 라포 마케팅의 힘이다.
글 ㅣ 박찬원(로이스컨설팅 대표)
오프라 윈프리. 설명이 필요 없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방송인이다. 그녀가 25년 동안 진행해온 <오프라 윈프리 쇼>가 얼마 전 종방되었다. 무엇이 그녀를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을까? 여러 요인을 꼽을 수 있지만, 시사 주간지 <타임>은 윈프리가 만들어낸 새로운 대중문화 현상으로 ‘있는 일’을 얘기하는 ‘리포트 토크(Report Talk)’와 구별되는 ‘공감 대화’, 즉 ‘라포 토크(Rapport Talk)’를 언급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어릴 적 당한 성적 학대 경험부터 다이어트 고민까지 가감 없이 자신의 치부를 털어놓는 공개 참회를 일컬어 ‘오프라피케이션(Oprahfication: 오프라 되기)’이라 명명했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한 연설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른 엘리트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많은 미국인이 가지고 있는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행복을 좇아 노력하는 사람임을 강조했다. 오프라 윈프리와 버락 오바마의 성공 요인은 은연중에일체감과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능력이며, 이는 설득에 상당히 효과가 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는 연대감을 느끼면 마음이 열린다. 즉 청중과 서로 마음이 통한다는 느낌이 들도록 만든다면 나와 청중은 좀더 가까운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다.
보통 환자들은 의사를 믿지 않는다. 환자 본인이 생각한 대로 진단이 나오지 않으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짓고, 다른 병원에서 재검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경기도 S대 병원 내과 김 모 교수는 10년 이상 관계를 맺고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는 환자들이 많다. 요즘은 카카오톡으로 환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기도 한다.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대화를 하는 의사가 최고의 의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감을 통한 즐거운 상호 작용이 필요한 시대
라포는 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 신뢰 관계를 나타내는 심리학 용어다. 즉, 서로 마음이 통해 어떤 일이라도 터놓고 말할 수 있거나, 서로의 말을 감정적·이성적으로 충분히 이해하는 상호 관계를 말한다. 이는 신뢰와 친근감으로 이루어진 인간관계로, 서로 공감하고 즐거운 상호 작용을 할 때 라포가 형성된다. 주로 상담, 심리 테스트, 교육 분야에서 중요시해온 개념으로, 최근에는 마케팅에서도 부각되고 있다.
라포는 서비스 제공자와 고객 상호 간의 심리적 신뢰를 향상시키는 요인과 동시에 상호 작용의 질을 향상시킨다. 이는 고객의 서비스 만족과 긍정적 구전, 그리고 회사에 대한 충성도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며, 서비스 실패 상황에서도 부정적 구전과 불평 가능성을 감소시켜 재구매 의도를 증가시킨다. 모든 판매의 83%가 고객이 물건을 파는 사람을 좋아하는지 여부에 달렸다는 연구 결과도 이와 일치한다.
라포가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이유는 첫째, ‘개인과 개인’ 또는 ‘다수 대 다수’의 인적 네트워크라는 특성을 지닌 SNS 혁명 덕분에 공감대 형성과 상호 작용이 과거보다 비약적으로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둘째, SNS로 인해 자신을 다수 중의 하나가 아닌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대접받기를 원하는 소비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 개개인을 세심하게 배려하기 위해 소비자와 기업 간의 관계에서 라포의 형성이 더 더욱 필요해졌다.
공감대 형성에 기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
기업들도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스레들리스(Threadless) 티셔츠는 공감의 표현과 획득이 어떤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하는지 보여준다. 먼저 사용자가 제안한 티셔츠 디자인을 선정하는데, 개별 소비자들이 디자인에 대해 선호도를 표시하고, 이것이 최종적으로 생산할 제품의 디자인 선정과 판매 수량결정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 최종적으로 선정된 디자인을 제안한 사람에게 상금이 주어진다. 공감의 표현과 획득을 통해 하나의 비즈니스 생태계를 만드는 공감의 경제학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과 제품에서도 공감대 형성은 혁신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년 전까지 모바일 기기 시장에서는 스펙(Spec: 기기의 성능,재원 등)이 경쟁의 중심에 있었다. 이제는 많은 기업이 UI(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넘어 UX(사용자 경험)를 강조하고, 사용 경험
이 공감대를 얻을 때 성공의 궤도로 진입한다. 애플의 아이패드 개발 컨셉트에는 기기와 사람 간의 공감이 숨어 있다. 〈타임〉에 따르면, 애플의 개발자들은 사용자가 아이패드와 얼마나 감정적(Human and Emotional)인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는지에 집중했다고 한다.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일본 요코하마 외곽에 위치한 그룹 요양 홈 라포(Rapport)는 대기자가 3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설립 직후부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개개인이 개성을 잃지 않고 생활 할 수 있도록 1인실을 기본으로 하되, ‘관계’를 뜻하는 시설 명칭에서 나타나듯 입주자와 직원, 또는 입주자 상호 간의 친밀한 관계 형성도 중요시한다. 중증 장애인이 주로 입주하지만, 입주자들이 방 안에만 웅크려 있지 않고 거실과 식당 등 공동 공간에서 활발히 어울린다.
제품과 서비스 디자인뿐만 아니라,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도 공감대 형성은 매우 중요하다. SNS를 통해 유통되는 정보는 지식 정보와 함께 정서적인 공감대를 바탕에 둔 감성적 정보도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정서적 공감을 목적으로 하는 정보는 정보 제공자와 수용자 간 취향의 유사성이 담보되어야 하므로 소비자와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참여형 마케팅이 신바람을 불러일으킨다
2000년 이후 지난 10년 동안 ‘기술’ ‘포장’ ‘설득’ ‘효율’이 마케팅을 지배하는 키워드였다면, 지금의 소비자 주도형 네트워크 시대에는 ‘감성’ ‘공감’ ‘참여’ ‘확산’이 새로운 마케팅의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즉, 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시대에서 참여형 컨텐츠 시대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형 컨텐츠의 성공 사례는 상당히 많다. 친구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소셜 게임 ‘징가’는 작년 중반 월간 실사용자가 2억 명을 돌파했다. 유사한 전문 분야 종사자끼리 활발한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한 ‘링크드인’은 지난 5월 가입자가 3,340만 명으로 전월 대비 6.7% 늘었다. 댓글을 활용한 커뮤니티 기능을 통해 블로거와 네티즌의 감정적 밀착도를 제고하고, 기사를 작성한 블로거를 팬으로 등록하는 등 블로거와 네티즌이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한 ‘허핑턴포스트’도 그 예라할 수 있다.
소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도 참여형 마케팅이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있다. 흥미로운 사회적 이슈를 기업이 먼저 제기해 참여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기회로 활용하기도 하고, 실험적 캠페인을 통해 활발한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자사 제품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고 브랜드 개성을 강조하고있다. 현대자동차의 댓글 달기 캠페인은 화려한 기법이나 튀는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네티즌의 따뜻한 소통을 유도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모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필립스는 ‘Philips vs.’라는 독특한 대결 구도 캠페인을 통해 소비자가 필립스와의 비교 대상 놀이를 즐기며 어떤 낱말이건 필립스와 연관시키도록 유도했다. 이는 필립스 제품이 세상 그 어떤 것과 견주어도 더 뛰어난 최고의 제품이라는 것을 코믹하게 표현한 재치 있는 바이럴 캠페인이다.
참여형 컨텐츠 시대로 나아가면서 기업은 필립스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첫째, 소비자 중심의 컨텐츠를 제공해 소비자와의 연결을 도모하고, 둘째, 브랜드 경험을 통한 소비자 공감을 촉진하며, 셋째, 주변인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재미 요소나 논쟁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페이싱하고 리딩하라
라포의 정의, 중요성 그리고 사례를 살펴보면, 공감대 형성과 즐거운 상호 작용을 유발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소비자를 내게 맞추고 따라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의 세계관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만나는 행동의 유연성을 발휘하는 일이다. 이를 페이싱(Pacing)이라고 한다. 페이싱은 두 사람 사이에 다리를 만들어준다. 일단 다리가 놓이면 상대방을 또 다른 가능성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당신은 먼저 상대방과 함께 보조를 맞추고 라포를 형성하지 않고서는 그를 리딩(Leading)할 수가 없다. 바로 그 리딩에 저항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페이싱이 먼저이고, 리딩이 뒤따르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다.
결국 기업은 고객과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공감의 맥을 찾고, 이를 제품과 서비스에 녹여 소비자의 자연스러운 공감을 이끌어낼 방법을 찾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그 이후 소비자와의 상호 작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리딩을 해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