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CASE]은밀하게, 상상의 식탁
INNOCEAN Worldwide 기사입력 2014.06.26 03:35 조회 6099

은밀하게, 상상의 식탁
Text. <Life is Orange> Editorial Dept | Photography. Studio 1839

누구나 은밀히 상상하는 식탁이 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 없이 한껏 우아하게, 때론 게걸스럽게 내 맘대로 최고의 포만감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식탁. 지금 당신의 눈앞에, 단 하나의 테이블이 놓인 레스토랑이 있다. 물론 레스토랑의 무드도, 배경으로 깔릴 음악도, 메뉴도 모두 미정이다. 오로지 당신의 상상력에 의존하여 지상 최고의 식탁을 차려주길. 마음속 판타지를 남김없이 털어놓길.


SOUP
ROMANTICA

어릴 적부터 남다른 식탐을 자랑해온 나는
음식 남기는 꼴을 못 본다. 외교관인 아버지 덕에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음식에 대한 편견을 일찌감치 버린 데다, 손님 맞을 일이 유독 많았던 우리 집 식탁은 늘 전 세계 퓨전요리의 향연이었으니. 자연스레 격무에 지친 직장 후배들에게 술을 사주는 대신, 직접 만든 쿠키와 머핀으로 달래는 남자로 성장했다. 오죽하면 날 ‘건자언니’라 부르겠냐고.

나는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이 싫다
누군가 ‘통제광’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요리는 내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다. 와이프와 함께 싱가포르에서 머물 때, 매일 저녁을 준비하던 일이 떠오른다. 일주일의 식단을 짜서 장을 보고, 냉장고를 채우는 과정이 좋았다. 계획대로 흘러 토요일쯤 텅 빈 냉장고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정확하게 계량해서 배합하고, 시간을 재서 익히고…. 이렇게 마음껏 통제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훅 날아간다. 그렇다고 ‘분노의 반죽’ 같은 걸 상상하면 곤란하지만.

이렇게 요리에 빠지면 빠질수록
어머니의 요리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건강한 재료를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다듬어 아낌없이 풀어낸 당신의 요리를 먹으면, 그 정갈한 프로세스가 느껴져 기분이 더 좋아진다. 특히 건강식에 관심이 많은 요즘엔 어머니의 빛깔 고운 수프와 죽이 그립다. 잣이 섞인 노란 호박죽. 밤이 들어간 예쁜 차콜색의 검은깨죽. 감자전분을 베이스로 한 고운 녹빛의 브로콜리 수프.
천장이 높은, 벽과 바닥이 모두 하얀 레스토랑에서 어머니의 죽을 먹고 싶다. 하얀 양털 러그 위에 모던한 소파를 놓고, 역시 하얀 원목테이블에 세 가지 죽과 수프를 세팅한다. 통유리 너머로 눈 내리는 하얀 설원이 배경으로 깔리고, 같이 먹는 사람의 대화에 집중하기 위해 음악도 없앤다. 온통 새하얀 공간에 음식에만 컬러가 살아 있는, 맛에 집중하기에 최고인 공간.
모 일간지 고메 기자인 와이프의 오빠가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최고의 한 끼는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먹느냐이다.”

박건호
Creative Director, INNOCEAN Worldwid

박건호 CD는 이래저리 음식과 계속 엮인 운명이다. 광고회사에서 만난 와이프도 점심메뉴의 취향이 맞아 연애하기 시작했고, 정통 한식에 일가견이 있는 장모님의 음식솜씨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다고. 후배에게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으면, 꼭 어머니의 음식을 먹어보라”고 조언하는 그는 ‘맛’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귀띔했다.


THE LADY FROM
SHANGHAI


굳이 셰프이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먹는 것보다 만드는 것이 확실히 좋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요리를 하는 도중에 조금씩 맛보는 것이 좋다고 해야 하나? 개인적으로 요리에는 반드시 ‘이야기’가 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식재료의 조합이 아닌, 먹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어떤 이야기. 중간에 맛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단계별로 생생히 전달된다.

특별히 선호하는 음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비교적 이탤리언을 즐기는 것 같다. 아마 예전에 이탈리아 사람들과 일했던 경험 때문일지도. 그렇지만 요즘은 딱히 ‘어느 나라 음식’이라고 규정 짓긴 참으로 어렵지 않나. ‘정통’의 의미도 희미해졌고, ‘퓨전’이라는 말도 경계가 허물어진 지 오래니까. 너무 애매해서 애정남이 오더라도 쉽지 않을 거다.
이렇게 유독 옆구리가 시린 겨울밤엔 상하이의 그녀가 그립다. 다이닝 체험차 떠난 상하이 여행에서 만난 그녀는 Frank라는 프렌치 비스트로의 홀 매니저였다. 중국과 프랑스 하프인 것으로 보이는 그녀는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아름다웠다. Toto의 음악을 계속 귀에 꽂고 다녔던 여름날, 이국의 프렌치 비스트로에서 그야말로 예술이었던 삼겹살 요리와 아름다운 홀 매니저….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빼어난 미모로 이미 상하이에서 유명한 인물이라고

그녀와 함께 먹고 싶은 요리를 상상해본다
우선 아뮤즈로 상큼한 라임젤리와 새우, 관자로 만든 세비체, 자두 살사를 대접해야지. 아주 살짝 익힌 포항초에 된장 비네그렛을 뿌려 나물처럼 연출하고, 사과와 고르곤졸라 치즈, 잣을 넣은 달콤하면서도 향긋한 리조토를 먹어야겠다. 메인으로는 겨울에 살이 더욱 쫄깃한 도미나 우럭 필렛을 매실과 올리브유 마리네이드에 재워뒀다 살짝 구워 감귤 처트니를 곁들이고 싶다. 생선으로 끝나면 재미없으니 돼지 삼겹을 통으로 토마토와 함께 푹 꿇여서 산초장아찌와 함께 먹는 거다. 거하게 먹었으니 디저트는 크림이나 밀가루 없이 유자셔벗으로 마무리!
시골의 외딴 오두막집에서 따끈하게 난로를 피워놓으련다. 밖에 조금씩 눈이 온다면 내 요리가 훨씬 따뜻하게 다가가지 않을까. 아아, 이미 내 귀엔 Pat Metheny의 ‘Last Train Home’이 울려 퍼지고 있다. 그녀도 좋아해주겠지?

이승언
Freelance Artist, Chef

이제 서른넷의, 사진도 찍고 기타도 치고 요리도 하는, 하나로 정의하기 아까운 남자. 섬세한 멘탈에 걸쭉한 부산 사투리가 매력인 그는 세상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고백한다. 어린 시절 헤비메탈 밴드에서 리드기타와 보컬을 담당한 그의 ‘터프한’ 요리를 맛보기 위해 내로라하는 스타 셰프들도 종종 방문한다고. 현재 그는, 어쩔 수 없는 ‘조카바보’이기도 하다.


MISSING
ECO BREEZE


레스토랑 컨설턴트인 내게 요리는
단순히 먹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요리와 음식, 메뉴가 레스토랑 컨설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 이제는 요리를 업무의 일부라기보단 풍성한 삶을 만드는 구성 요소로 생각하며 일 자체를 즐기고 있다.

그래서인지 특별히 가리는 음식도 없다
가능한 한 많은, 다양한 음식을 접해야 한다는 직업병도 한 몫했겠지만. 굳이 꼽으라면 식재료의 신선함을 잘 살린 일식과 이탈리아 음식, 그리고 지역 고유의 특징을 반영한 토속적인 메뉴에 항상 매혹된다. 최근에는 중동 음식의 건강함에 푹 빠졌다. 글루텐과 트랜스 지방이 전혀 없는 My Boon의 팔라펠 샌드위치와 100% 제철 생과일 주스로 도시생활에 지친 심신을 달래준다.

결혼을 하니, 비로소 요리에 제대로 눈을 뜬 기분이다
결과만큼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을 누가 했더라? 맛있고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식사가 결과라면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그 식사를 준비하는 노동은 과정이다. 좋은 식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선하고 고급스러운 재료를 씻고 다듬고 끓이고 찌고 삶는 지루한 과정을 빠짐없이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손맛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이니까.

내가 최고로 생각하는 식탁은
몇 년 동안 정성스레 일군 땅에서 길러낸 재료로 차린, 소박하지만 먹는 이의 마음을 치유하는 한 상이다. 어딘가 반드시 남아 있으리라 믿는, 인심 좋고 때묻지 않은 시골 어드메에 산바람 솔솔 드는 대청마루에서 사랑하는 사람 모두 모아놓고 떠들썩하게 먹어보고 싶다. 텃밭에서 직접 유기농으로 기른 새싹과 깻잎, 흙 묻은 당근, 못생긴 오이를 듬성듬성 잘라 들깨기름 조금, 소금 약간으로 간을 한다. 신선하다 못해 풋내 나는 초록 샐러드. 그리고 시골된장 무심하게 풀어 가마솥에 끓인 배춧국을 먹는 거다. 시골밥상에 삼계탕이 빠지면 섭섭하다. 마당에 자유롭게 풀어 기른 토종닭에 정갈히 찹쌀 채우고 인삼, 대추 넣어 푹 고아 만든 삼계탕…. 여기에 직접 담근, 소박한 맛이 매력인 과실주에 밭에서 갓 따온 제철과일로 마무리하면 어떨까?
얼핏 들으면 심심하고 보잘것없는 농부의 한 끼다. 그러나 이 한 상을 만들려면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건강하고 진정성 있는 식재료만 사용한 시골밥상은 나 같은 도시인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최고의 코스요리다. 이렇게 매일, 사람 사는 것처럼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유진
Be My Guest Senior Consultant

국내 레스토랑 컨설팅업계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비마이게스트의 시니어 컨설턴트. 레스토랑 컨설턴트는 레스토랑 오픈부터 운영까지,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클라이언트가 바라는 꿈의 레스토랑을 실체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인천하얏트리젠시와 파크하얏트서울에 몸담았던 경력을 바탕으로 SSG푸드마켓, 파로 그랜드, 오설록 티하우스 등을 설계했다.


Vegetarian
Fiesta



20년도 넘은
오래된 기억 속 풍경이 아직도 꿈처럼 눈앞에 아른거린다. 기분이 조금씩 달아오르는 어느 한가로운 저녁, 필리핀 마닐라의 야시장. 바다가 바로 보이는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수조에서 살아 움직이는 바닷가재를 큰놈으로 사서 레몬버터구이를 부탁했다. 얼비치는 바닷물의 찰랑거림과 시끄러웠지만 귀에 거슬리지 않는 사람들의 말소리, 그동안 먹어왔던 해산물과 차원이 다른 풍미, 자유로이 분위기를 즐기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규모가 큰 파티에 초대받은 손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세월이 흘렀고, 그때 함께했던 남자친구는 내 곁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채식주의자가 되어 채식문화잡지 월간 <Begun>을 발간하고 있다. 마닐라에서의 한 끼는 지금도 아름답게 남아 있지만, 지나간 시간의 무게만큼 나의 식습관도 180도 바뀐 것이다.

채식을 하면
육식을 같이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고려 사항이 생긴다. 먹는 음식이 제한되는 것은 물론이고 특히 우리 비건 식구들처럼 완전채식(vegan)일 경우는 밖에서 밥 사먹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채식을 하면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동물(외연을 넓혀 살아 있는 모든 것들) 생명 존중에 대한 관심이다. ‘덜 사고 덜 쓰고 덜 먹고 덜 버리자’는 소비경향의 대변혁(!)과 함께 물건을 고를 때는 생산이력, 즉 ‘착한상품’을 꼼꼼히 살피게 된다.

이번 호 마감이 끝나거든
고생한 비건 식구들을 위해 팔 걷어붙이고 ‘착한요리’나 한번 만들어볼까? 맑은 채소 콩소메에 곱게 간 참깨와 두유, 약간의 설탕이 들어간 소스로 버무린 로메인 샐러드, 따끈한 바게트에 조청을 곁들이면 상큼한 시작이지 않을까. 메인으로는 코리앤더와 각종 채소를 다진 두부에 들기름 둘러 지진 두부 스테이크! 농부가 정성껏 담근 심심한 조선간장을 뿌리고 쫑쫑 썰어 넣은 쪽파로 장식해야지. 기름 없이 구운 버섯에 구운 소금을 살짝 얹고, 연잎 영양밥 한 덩어리를 곁들인다. 후식으로는 새콤한 유자소스를 뿌린 도라지나 인삼정과, 오미자차가 좋겠다. 아, 생각만 해도 벌써 입에 군침이 돈다. 할 수만 있다면 햇빛 따갑지 않은 초여름, 평창동의 어느 집 잔디밭에서 Rainbow eyes류의 소프트 록을 배경음악으로 깔아놓는 것도 좋을 듯. 비록 내 요리솜씨가 들쭉날쭉한 것이 맹점이겠으나 맛있게 먹어줄 거지, 얘들아?

이향재
Chief Editor of Begun

이제 두 살이 된 채식문화잡지 월간 <Begun> 편집장. 채식에 대한 인식이 아직 많이 확산되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이름처럼 풋풋한 초록향이 나는 책을 만들고 있다. 대기업 홍보실과 광고회사에서 AE로 오랫동안 일해온 그녀는 외형만 큰 옛날보다 적게 벌고, 적게 먹고, 적게 빚지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평창동 아담한 사무실에서 예쁜 고양이 세 마리와 알콩달콩 밀당을 즐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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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다가온 2025년. 새해에 우리는 어떤 변화를 맞게 될까요? 라이프스타일과 비즈니스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대홍기획이 발간한 <2025 D.라이프 시그널 리포트>에서 그 시그널을 확인해보세요. 우리 주변의 흥미로운 현상들, 파편처럼 보이던 이슈를 이어 그 저변을 관통하는 소비와 비즈니스의 맥락을 찾을 수 있답니다!   Q 대홍기획이 발행하는 <D.라이프 시그널 리포트>란 무엇인가요?
AI와 쏨땀
2024 ADFEST를 한 달 남짓 남겨둔 어느 날, OpenAI에서 비디오 생성 AI ‘소라(Sora)’를 발표했다. 지금껏 봐왔던 생성형 AI와는 차원이 다른 결과물에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졌다. 이런 타이밍에 ADFEST 참가자들이 올해 행사에 기대하는 바는 더욱 분명했을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버린 AI 시대, 광고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스포를 하자면, 모든 강연자가 그 우려 섞인 질문에 대해 ‘걱정 없다’는 답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