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를 사서 턴테이블로 음악을 듣고, 을지로 카페에 들러 빈티지한 유리병에 든 우유를 마시고,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를 듣고, 팔구십년대 인기를 끌었던 라면과 과자를 먹고... 요즘 10대와 20대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찍고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 기능이 있는데도 3일이 지나야 인화한 것처럼 사진을 확인할 수 있는 앱을 다운로드하는 그들. 그들은 빠른 속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젊은 층은 ‘뉴트로’가 한창입니다. 뉴트로는 ‘뉴’와 ‘레트로’의 합성어로 중장년층이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향수의 의미와는 다릅니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1020세대, ‘오래된 것’은 그들에겐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것이 됩니다. 그들은 이 ‘오래된 새로움’을 즐깁니다.
생각해 보면 ‘Old’와 ‘New’는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80년대에 혁신적으로 보였던 워크맨은 지금은 카세트테이프와 함께 복고를 상징하는 오래된 물건이 되었지만, 밀레니얼 세대들은 이 아날로그를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신선한 놀이가 됩니다.
세상은 늘 앞으로 가는 듯해도 뒤로 가기도 하고, 뒤로 가는 것이 새로운 앞이 되기도 합니다.
오래된 노래가 전하는 가장 현대적인 메시지
"I'll follow him~"
누구나 몇 번은 들어봤음직한 노래. 영화 ‘시스터 액트’의 ost로 친숙한 노래입니다. 1992년에 제작돼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 ‘시스터 액트’는, 우피 골드버그가 흥을 한껏 높여 부르는 이 노래 때문에 보는 즐거움이 배가됐었죠. 1963년 미국 빌보드에서 몇 주간 1위를 차지했던 오래된 노래입니다. 이 올드한 노래가 2019년 ‘디젤’에 의해 가장 현대적이고 세련된 메시지로 바뀌었습니다.
SNS가 일상이 되자 새로운 셀레브리티로 등장한 인플루언서들. 그들은 새로운 유명인으로 살기 위해 ‘자신만의 순간’을 포기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디젤은 이 점을 유쾌하고 예리하게 풀어냈습니다.
첫 편은 SNS에 올릴 음식 사진을 찍느라 제대로 식사를 즐기지 못하는 유명 인플루언서로 시작됩니다. 무표정한 얼굴과 움직임으로 다양한 각도의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인플루언서. 서빙하러 온 사람도 선뜻 음식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그들을 향해 '인플루언서들은 먹는 것도 참 힘듭니다’라고 꼬집는 디젤. 이내 SNS에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는 모습 없이, 본능적으로 맛을 즐기는 디젤 피플들이 등장합니다. ‘I’ll follow him~‘이라는 가사처럼, 인플루언서가 아니라 행복한 ‘팔로워’가 되겠다고 하죠. 에피소드는 공감과 위트가 넘칩니다.
두 번째는 패셔니스타의 삶을 사느라 늘 세탁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인플루언서입니다. 디젤 피플은 청바지에 뭐가 묻으면 그저 벗어서 빨면 그만이죠. 세 번째는 사진 찍어주느라 지루한 파티장에서 몇 걸음 도망치지 못하는 파티 피플. 네 번째는 수많은 짐 때문에 여행인지 고행인지 모를 모습을 한 패셔니스타, 마지막으론 벗어야 할 옷과 신발들이 많아서 로맨틱한 순간을 쉽게 맞기 힘든 커플의 모습입니다. 이에 반해 디젤 피플들은 덜 세련된 모습이긴 해도 자유분방하고 거침없습니다. 디젤은 자유로운 이들처럼 ‘팔로워’가 되라고 합니다.
모든 광고와 칼럼들이 ‘리더’가 되라고 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반대로 ‘팔로워’가 되라는 디젤. 하지만 광고를 보면 디젤의 주장이 더 멋져 보입니다. 오래된 노래는 디젤의 이야기를 더 위트 있고 근사하게 만들어주죠.
‘I’ll follow him’이라는 오래된 노래를 가장 멋지게 이용한 영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참고로 광고에 등장한 인플루언서들은 실제 인플루언서입니다.
익숙한 달리기를 새롭게 만든 아디다스
스포츠 브랜드는 늘 ‘기록’과 싸웁니다. 자기 자신 안의 위대함을 꺼내 기록을 세우라고 하기도 하고, 누구와도 똑같지 않은 자신만의 싸움을 하라고도 합니다. 이에 아디다스는 좀 더 새로운 이야기를 합니다. ‘새롭게 해석한 달리기(Recode Running)’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영상은 다소 거칠고 빈티지한 느낌으로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개인적인 운동이라고 여겨졌던 달리기. 그들에게는 이제 팀 스포츠가 됩니다. 첫 번째는 폴란드의 익스트림 러닝 클럽인 ‘Swords’와 프랑스 러너들의 만남. 이들은 Swords가 해냈던 극단적인 러닝 코스를 다시 달리려고 합니다. 바르샤바에서 발틱해의 헬(Hel)까지 이어지는 무려 430km의 거리를 쉬지 않고 달리는 겁니다. 36시간을 꼬박 달리는 거죠. 차이가 있다면 서로 릴레이로 교대하며 팀 스포츠로 달리는 겁니다. 힘들 땐 포기하고 싶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제가 되고 에너지가 되어준다고 합니다. ‘팀’으로 움직이기에 해낼 수 있는 달리기라고도 하죠.
중국, 상하이에서 행해진 ‘Recode Running’은 좀 더 새롭습니다. ‘Waste Race’. 말 그대로 쓰레기를 주우며 달리는 겁니다. 달리기 위해 필요한 건 운동화뿐 아니라, 에코백과 집게입니다. 상하이 곳곳을 팀을 이뤄 달리며 쓰레기를 줍는 겁니다. SNS를 통해 모인 이 달리기는 처음엔 외국인 위주였지만 지금은 중국인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환경 오염이 심한 상하이를 달리며 실질적으로 거리를 깨끗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의도도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기 위한 달리기죠. 가방과 집게를 들고 달리기 시작하자 보이지 않던 쓰레기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염되고 있는 환경에 자각하며, 새로운 달리기를 시작하는 거죠.
아디다스는 달리기의 본질적 속성인 ‘변형’에 초점을 두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스포츠를 벗어나 좀 더 많은 영감을 주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개인에겐 새로운 방법이 되는 달리기. 달리기란 어떤 형태로든 새롭게 ‘변형될 수 있는’스포츠라는 걸 얘기하고 싶어합니다. 지금까지 집행된 영상은 두 가지이지만, 3월에 또 다른 이야기를 선보인다고 합니다. 경기장 혹은 헬스 클럽을 벗어나 ‘날 것의 달리기’로 달리고 있는 아디다스. 앞으로 어떤 ‘변형된’ 달리기를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기네스를 마시지 말라고 말하는 기네스
기네스는 흑맥주의 대표 브랜드입니다. 검은 맥주에 갈색 풍부한 거품이 기네스의 상징이죠. 이 브랜드가 2월을 맞아 투명한 기네스로 거듭났습니다. 6주간 이어지는 유럽의 6개국 럭비 토너먼트. 기네스는 이 경기를 기념하기 위해 ‘전통적인 기법’으로 특별히 ‘투명한 기네스’를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기네스로 기억에 오래 남을 밤을 만들라고 하죠. 맥주 애호가라면 충격받을 투명한 기네스. 과연 기네스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뉴 기네스 클리어 광고(출처: 기네스 유럽 유튜브)
이 기네스는 사실 100% H20로 만들어진 물입니다. 관중들은 럭비 경기를 즐길 땐 맥주를 필요로 합니다. 적당히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도를 넘는 사람도 많겠죠. 기네스는 그들을 설득하는 방법으로 ‘위트’를 선택했습니다. 그들의 시선을 끌고, 공감을 얻고 대화를 끌어내기 위해선 가벼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투명한 기네스는 광고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실제 럭비 경기장에서 ‘클리어 기네스’를 나눠주며 건강한 경기 관람을 독려했으니까요. 맥주보다는 물을 주문하라고 권하는 맥주 브랜드.
맥주 브랜드로선 이례적인 캠페인입니다. 스포츠 경기는 항상 주류 브랜드에겐 중요한 세일즈 시즌이기에, 이런 캠페인을 할 수 있는 기네스의 자신감이 대단해 보입니다.
순방향과 역방향
누군가에겐 새로운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올드한 것이 되고, 누군가에겐 거꾸로 가는 것이 누군가에겐 앞으로 가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 해석됩니다.
▲리버 아일랜드 #ThisisFamily 캠페인(출처: 리버 아일랜드 홈페이지)
영국 패션 브랜드 리버 아일랜드는 프린트 캠페인으로 ‘#ThisisFamily’를 시작했습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의류 브랜드의 가족 캠페인. 리버 아일랜드 광고에도 함께 이 제품을 입고 입고 있는 가족들이 등장합니다. 다만 전통적인 가족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가족의 모습으로. 남자 둘과 아이로만 이루어진 가족, 두 여성과 아이로 이루어진 가족, 다운증후군 아이와 함께 있는 밝은 표정의 아이들. 브랜드는 가족의 다양성을 담아내고자 합니다. 혼혈 가족, 입양 가족, 다민족 가족, 동성 부모의 가족, 독신 가족. 리버 아일랜드는 누군가에겐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포용합니다. 가족의 방향을 새롭게 잡았습니다.
▲맥딜리버리 인쇄 광고(출처: 맥도날드 프랑스)
프랑스의 맥도날드는 맥딜리버리를 알리기 위해 인쇄 광고를 집행했습니다. 광고는 나가기 싫은 비 오는 날을 보여줍니다. 맥도날드를 배달 주문하기에 딱 좋은 날이죠. 다만 비 오는 날은 파리에서 시작된 인상파 작품을 보는 듯, 작품으로 그려진 회화입니다. 오래된 파리 건물에 운치 있게 흘러내리는 빗방울. 새로운 맥딜리버리를 광고하기 위해, 오히려 오래된 회화 형식을 빌려 얘기하는 맥도날드. 오래된 방법이 광고를 더 새롭고 세련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래된 건 그만큼 우리에게 잊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시 꺼냈을 땐 새로워 보이고 흥미롭게 보이죠. 파리의 퐁네프는 ‘가장 새로운 다리’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지어진 지 오래된 다리입니다. 이렇듯 ‘새로움’과 ‘오래된 것’은 서로의 자리를 끊임없이 바꿔갑니다. 때론 뒤로 가는 것이 앞으로 가는 것이 되는 것도 같은 이치인 듯합니다. 산토리 위스키의 유명한 카피 한 줄은 그래서 진리입니다.
“Old is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