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현우 대표|이노레드
모든 산업 분야에서 예외 없이 변화의 진폭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십여 년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터널을 거친 광고산업은 전열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이, AI라는 더 거센 파도를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광고산업의 인재 이탈’은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로 거론된다.
광고계는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소중한 광고인재들을 잃었다. 이로 인해 광고라는 업 자체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된 현직 광고인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우리 광고인들이 회의적인 시각에서 한 발 떨어져, 광고라는 업을 다시 들여다보고, 새로운 해석을 갖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필자는 작년 초, 가까운 식품 업계 마케팅 팀장에게 탈 광고 추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낸 적이 있다. 그 분의 다음 반응에 필자 스스로가 얼마나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됐다. “광고업계도 마찬가지군요? 지금 F&B도 난리입니다. 탈 F&B에요.” 며칠 후 단골 헤어샵 원장님과 나눈 대화는 필자에게 탈 광고 현상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지금 탈 미용이야말로 심각합니다. 이제 1∼2년 안팎의 수습 과정도 하려는 사람이 드물어요. 나는 5년 넘게 수습하고 디자이너 됐는데…”
광고계만 무너지고, 광고인들만 이탈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대륙이동설처럼 전 산업 지형이 꿈틀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를 거치며, 분명히 어떤 산업은 인재의 유입을 통해 커다란 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고, 또 어떤 산업은 반대로 쇠퇴해갈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훌륭한 역량을 갖춘 인재들을 유치하고, 유능한 광고인들을 지킬 수 있을까? 창업 후, 17년간 필자가 수백 명의 구성원들을 직접 채용하고, 인재들을 유지하면서 체득했던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살아가며 배우고 있는 회사의 인재 밀도를 높이는 방법을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 광고라는 업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기
‘광고’라는 분야는 매우 넓은데, 오히려 광고인들 스스로가 이를 작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최근 10년을 이끈 대표적인 테크기반 플랫폼 기업들의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모델은 단연 광고다. 그러나 여전히 적지 않은 광고인들은 과거부터 해왔던 방식인 광고를 직접 제작하고 주요 매체를 집행하는 업무 영역만이 진정한 광고회사의 일이라 여기고 그 외의 업무 영역은 정통 광고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디지털 광고가 무섭게 시장을 침투해가던 십여 년 전에도 마치 디지털 기반의 광고는 광고가 아닌 것처럼 폄하하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10여 년이 지난 지금 국내 어떤 광고회사도 디지털 중심이 아닌 회사가 없는데 말이다.
필자의 회사는 제작팀만이 아니라 AE들도 모두 제작에 참여한다. 뿐만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프로덕트팀,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스트, 인플루언서 크리에이션팀, 코크레이션 워크샵팀, 크크크 작전본부, 그로스팀 등 업을 다채롭게 해석한 새로운 업역들이 많이 있다. 업을 입체적으로 해석하다 보면, 넓혀 나갈 수 있는 빈 공간이 많이 보일 것이다. 블록체인, AI와 같은 새로운 변화 속에서도 광고인들의 역할을 충분히 새롭게 개발할 수 있다. 우리의 역할을 스스로 제한하지 말고, 새로운 대륙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깃발을 꽂아 나가야 한다.
둘째, 인재를 기다리지 말고, 찾아 나서기
2022년 3월, 이노레드는 90년대생 광고인 10명을 초대하여 광고업의 미래에 대한 특강 및 자유토론을 진행했다. 이 모임을 통해 5명이 이노레드에 지원했고, 소중한 한 명의 인재를 채용할 수 있었다. 필자는 현재 동국대학교 경영학과에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진행하며 광고업의 매력과 가치를 알리고 동시에 회사의 채용 브랜딩도 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또 다른 대학교의 광고전공 학생 40여 명이 회사에 견학 왔고 특강과 오피스 투어 등 최선을 다해 업과 회사를 소개했다.
이노레드는 독립광고회사이지만 17년간 거의 매년 인턴십을 공개 채용해오고 있다. 인턴십만큼 새로운 세대와 광고업을 연결할 수 있는 좋은 접점은 드물다. 즉시 전력인 경력직만 채용하는 현재의 광고산업의 채용 트렌드는 스스로 업을 단명하게 만들고 회사를 세대로부터 고립시키는, 피해야 할 채용 전략이다. 새로운 세대에게 우리 업을 알릴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접점을 늘려나가야 한다. 가만히 앉아 기다린다면, 인재는 결코 먼저 문을 두드리지 않을 것이다.
셋째, 인재가 머무를 수 있는 문화 만들기
인재들이 오래 머무르고 싶은 문화, 환경을 만드는 일은 어쩌면 채용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이다. 뛰어난 인재 한 명을 지키는 것이, 검증되지 않은 열 명의 채용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지 않은가?
광고회사는 뛰어난 크리에이티브 역량을 자사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에도 투자해야 한다. 실적에 대한 목표만이 아니라, 문화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그것을 매일 실천하고 가꿔 가야 한다. 구성원에게 성장의 기회가 있는 프로젝트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이 일하는 과정을 통해 행복한 성취를 경험하고, 존경할 수 있는 동료들과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교육의 기회로 가득한 환경에서 가치 있는 팀플레이를 펼칠 수 있도록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넷째, 광고로 은퇴하는 광고인들이 더 많아지도록 만들기
필자의 비전 중 하나는 광고인으로 은퇴할 수 있는 광고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여전히 가장 왕성하게 일할 수 있고 경험과 연륜을 갖춘 좋은 나이인 50대 광고인들에게는 아쉽게도 설 자리가 별로 없다. 오래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다 보니, 30, 40대 광고인들이 업을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 트렌드로 시니어 세대의 비중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시니어 광고인들도 곧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수많은 광고인들이 광고 일로 은퇴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 시기를 준비하는 안목을 갖고, 준비해 나가야 한다.
인재는 업이 매력적이면 반드시 찾아온다. 광고업은 매력이 여전히 많고 앞으로의 확장 가능성도 매우 넓은 분야다. 우리 업의 매력을 우리가 스스로 잘 광고할 필요가 있다. 인재 밀도가 업의 미래다. 올해 추진되는 광고산업진흥법이 인재 밀도에 집착하는 광고회사들을 지원하고 힘을 보태주길 바라며, 광고업의 전성기를 다시 불러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