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is so sexy!(독서는 정말 섹시해!)”
올해 초, 미국의 Z세대를 대표하는 인기 모델 카이아 거버(Kaia Gerber)가 인터뷰에서 자신이 만든 독서 클럽을 소개하며 했던 말이 화제다. 틱톡, 쇼츠, 릴스 등 각종 숏폼 콘텐츠에 지배당했던 요즘 사람들이 갑자기 책을 본다니! 지난해부터 시작된 독서 바람이 올해까지 이어지며 꾸준한 인기를 보이고 있다. 배우 케이티 홈즈가 뉴욕 지하철 구석에 앉아 책에 몰두한 모습이 포착되어 SNS를 떠돌기도 하고, 모델 켄달 제너가 해변에서 읽었던 책은 사진이 공개된 지 24시간 만에 아마존에서 매진 행렬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 인기 모델 카이아 거버가 SNS에 올린 독서 이미지 (출처 : 카이아 거버 인스타그램)
이처럼 최근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후반 사이에 태어난 세대)에게 ‘독서’란 힙한 트렌드 그 자체로 여겨진다. 틱톡에서는 1분 내외로 독서 후기를 영상으로 업로드하는 ‘#북톡(#BookTok)’ 콘텐츠가 유행하고, 인스타그램과 X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는 게시물인 ‘왓츠인마이책장’이 인기를 끈다. 이러한 탓에 지난해 영국에서는 약 6억 7000만권가량의 종이책이 팔리며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유명인들로 시작된 독서 열풍이 SNS상에 퍼져 나가며, 최근 1~2년 사이 독서가 패션계의 새로운 지위이자 상징으로 부상하며 트렌디한 취미로 탈바꿈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인 독서 열풍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아이돌 팬덤에서 시작된 트렌드 ‘텍스트힙’이 바로 그것이다. 텍스트힙이란, 글자(text)와 멋지다(hip)를 결합한 말로, 독서가 멋진 유행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뜻하는 신조어다. 심지어 올가을 한강 작가님의 노벨상 수상 이후 독서 열풍이 한층 더 강력해지며 관련 트렌드도 확장되는 추세다. 최근 텍스트힙 트렌드는 Z세대 라이프 스타일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을까?
틱톡에 #Booktok 태그로 올라온 짧은 독서 후기 영상들 (출처 : 틱톡)
Z세대의 독서 사랑은 현재 진행형
지난 6월 열렸던 ‘서울 국제 도서전’에는 예상치 못한 사상 최대의 인파가 등장했다.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도서전에 입장하는 데에만 한두 시간 줄을 서야 했을 정도였다. 놀라운 점은 참가자의 다수가 Z세대였다는 점이다. 이처럼 최근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 있는 공간에는 책이 함께하는 경우가 잦다.
일례로 서울 곳곳에는 술과 독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책바(Bar)’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어두운 내부에 자리마다 조명 스탠드를 배치해 독서에 집중하는 분위기로 공간을 꾸민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책을 큐레이션 하여 간단히 목을 축이면서 살펴볼 수 있다. 심지어 망원동의 한 가게는 책 속에 등장하는 술을 판매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한편 성수동에는 손 편지를 쓰는 컨셉의 가게가 인기를 끈다. 편지지와 봉투 등을 판매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르는 이와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펜팔 서비스도 선보였다. 매장에서 직접 손 편지를 쓰고 카운터에 전달하면, 그 대신 누군가가 써 둔 다른 이의 편지 한 통을 받아 가는 식이다.
익명의 손 편지를 써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 글월 (출처 : 글월 인스타그램)
일상 속에도 책과 활자가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텍스트 열풍의 효과가 돋보인다. 일례로 국내에서는 텍스트 기반의 플랫폼인 메타의 스레드(Threads) 이용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작년 7월 출시된 스레드는 출시 1년 만에 국내 이용자 수를 400만 명 가까이 확보했으며 이는 약 169% 증가한 수치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유튜브 콘텐츠에서도 ‘독서 브이로그’가 뜬다. 독서 브이로그는 단순히 책을 읽는 모습만 담아내지 않고, 어떤 과정에서 이 책을 골랐으며 또 어디에 가서 책을 읽을지 고민하는 등 책을 읽기 전의 준비 과정을 모두 함께 공유한다. 뿐만 아니라, 영상에서는 멋진 독서 경험을 만들어주는 새로운 독서 용품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예컨대 한 손으로 편히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링’이나 필사하는 이들을 위한 ‘북 스토퍼’ 등 다양한 관련 장비가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쇼핑몰 지그재그의 검색데이터에 따르면, 책 표지를 감싸는 ‘북커버’의 검색량이 지난해에 비해 28배나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에 북마크와 책갈피 검색량도 각각 1500%, 396% 증가했다고 한다. 모두 텍스트힙 트렌드의 효과다.
다채로운 디자인으로 제작된 북 커버 (출처 : 지그재그)
심지어는 인간관계에서도 책이 매개체가 되고 있다. 필사 모임이나 시 낭독회 등 책을 매개로 다채로운 경험을 추구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이 새로운 문화로 떠오른 것이다. 이에 많은 동네 책방과 소셜링 플랫폼들에서는 독서모임이나 북토크 등을 개최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심지어는 책 소개팅도 등장했다. 일반 소개팅과는 다르게, 서로 좋아하는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을 알아보는 식이다.
Z세대에게 텍스트가 대세가 된 이유
Z세대가 전통적인 독서문화를 현대적이고 트렌디한 방식으로 재해석하며 텍스트힙 트렌드가 본격화되고 있다. 숏폼 콘텐츠를 찾던 사람들이 갑자기 독서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디지털 피로가 증가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과도한 자극의 숏폼 콘텐츠는 디지털 피로감을 불러일으켰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물리적 경험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종이 책을 직접 만지며 읽는 데서 오는 감각적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다. LP의 인기도 비슷한 맥락이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1년간 LP샵, LP카페, LP바 등 LP 관련 오프라인 매장 이용 건수는 2023년 동기 대비 2024년 약 5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대가 LP관련 취미생활을 활발히 즐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인테리어 소품이나 수집 등 음악 감상 외에 다양한 용도로 LP를 구입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Z세대에게 독서란 디지털 피로 속 아날로그 경험을 제공해주는 하나의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출처 : 셔터스톡)
둘째, 책이 자기성장과 자기표현의 도구로 역할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본인의 내면을 이해하고 개인적 성장을 추구하는 Z세대는 최근 독서나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한층 성장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탓에 최근 서점가에서는 그간 재미없는 책으로 여겨지던 ‘철학’ 분야의 도서가 인기를 끄는 모습도 포착된다.
실제로 교보문고의 2024년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및 결산 자료에 따르면 철학 분야 도서는 전년 대비 43.1%의 성장세를 보였으며, 특히 서양철학 관련 도서는 무려 125.8%나 성장했다고 한다. 마음이 힘든 상황을 마주하거나 어려운 고민이 생겼을 때 철학책에서 해답을 찾아내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처럼 자기성장의 도구로 독서를 택한 Z세대가 등장하며 텍스트힙 트렌드는 지속되고 있다.
(출처 : 셔터스톡)
텍스트힙 트렌드를 반영한 마케팅
계속되는 텍스트힙 트렌드에 시장에서도 이를 활용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출판업계에서는 Z세대의 문화코드를 반영한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다. 문학동네에서는 특정 번호로 전화를 연결하면 무작위로 한 편의 시를 낭독해 주는 이벤트를 선보여 큰 화제가 되기도 했고, 예스24에서는 유튜브에 독서할 때 듣기 좋은 음악을 선별해 독서 플레이리스트 콘텐츠를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한편 독립 서점 ‘유어마인드’는 인쇄 제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파본을 키링 굿즈로 제작해 판매하여 주목을 받았다. 상품가치가 떨어진 파본을 키링으로 만드는 전에 없던 시도를 선보임으로써, 꾸미기 열풍의 선두주자인 Z세대에게 매력을 어필한 것이다.
심지어 이 업종에서도 텍스트힙 트렌드를 적극 반영하고 있다. 일례로 모나미 스토어에서는 필사의 인기에 힘입어 여러 색의 잉크를 조합해 커스텀 잉크를 만들 수 있는 체험 코너를 제공해 주목을 받았다. 런던의 러쉬 매장에서는 시를 판매하는 독립 서점이 입점했는데, 방문객들의 마음 상태에 맞는 시를 처방해주는 마케팅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금융업계에서는 ‘토스’가 현명한 금융생활안내서라는 컨셉의 브랜드서 ‘더 머니북’을 출간했다. 텍스트힙 트렌드에 발맞추어 브랜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일맥상통하는 콘텐츠를 책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 독서는 단순한 지적 활동을 넘어 트렌디한 취미로 변모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텍스트힙 트렌드가 과시 행위라며 우려를 표하기도 하지만, 이 트렌드로 인해 독서를 즐기는 젊은 세대가 늘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최근 Z세대는 독서 문화를 자신의 소비방식대로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흐름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새로워진 독서 패러다임으로 완전히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한다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 서울대 심리학 학사, 서울대 소비자학 석·박사.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와 <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 vol.1>, <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 vol.2> 집필에 참여했으며, 삼성·SK·LG 등 기업을 대상으로 소비트렌드 기반 미래전략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 KBS1 라디오 성공예감 트렌드 팔로우 코너에 출연하며 다양한 기업에서 트렌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