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만다 핑보디파키야 일러스트 출처: 뉴욕시홈페이지
이번 호부터 해외 크리에이티브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사실 이 코너를 어떤 색깔로 채워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최신 트렌드나 기발하고 독특한 크리에이티브는 광고 관련 사이트가 아니더라도 클릭 몇 번으로 쉽게, 더군다나 실시간으로 찾아볼 수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해외 광고제나 미국 슈퍼볼 같은 이벤트나 글로벌 브랜드들의 큰 캠페인을 단순 소개하는 것은 어제의 뉴스를 보는 기분이 들 테지요. 게다가 크리에이티브라는 것이 마지막 순간에는 개인 취향으로 호불호가 갈리는데 지면이 제 개인 취향을 드러내는 공간이 되는 것도 낭비고요. 이런저런 생각 끝에 오늘 여기에 사는 우리에게도 생각해볼 만한 의미가 있는 크리에이티브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보기로 했습니다.오늘의 주제는 최근 미국에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애틀랜타 총격을 비롯한 아시아계 증오와 #STOPASIANHATE 캠페인입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이후에 중국계뿐 아니라 미국 내 다양한 아시아계 시민들에 대한 폭행과 테러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내 증오와 극단주의 연구센터에 따르면, 2020년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149% 증가할*정도로 심각한 수준입니다. 비영리 기구인 ‘STOP AAPI’ 조사에서 최근 1년 사이에 아시아인 혐오 범죄가 3,800건**이라고 합니다. 급기야 3월에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연쇄 총격 사건까지 이어지기에 이르렀습니다. 샌드라오, 대니얼 대 김, 해리셤 주니어 등 미국 내 아시아계 배우뿐 아니라 K-POP 스타들도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습니다.
아시아인 혐오에 대한 반대 캠페인 역시 팬데믹 초기부터 있었는데요. 그중 뉴욕시 인권위원회는 STOP ASIAN HATE 툴 키트를 만들어 온라인에서 배포하는 노력도 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뉴욕에 거주하는 아티스트 아만다 핑보디파키야(Amanda Phingbodhipakkiya)와 협업해서 ‘I Still Believe in our city’라는 주제로 다양한 아시아계 인물화를 제작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자유롭게 배포한 것은 물론이고 지하철 플랫폼, 버스 정류장 등에서 공공 캠페인을 했습니다. 지금도 캠페인 사이트에서 일러스트를 다운로드받을 수 있습니다.아만다 핑보디파키야는 1992년생 애틀란타에서 태국과 인도네시아계 가정에서 태어나 알츠하이머 연구원으로 일하다 현재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입니다. 그의 일러스트 속 아시아계 여인들은 ‘우리는 이곳에 속해 있다’, ‘나는 아직 우리 사회를 믿는다’, ‘여기도 우리의 고향이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보여집니다. 다양한 나이대의 그들은 정면을 응시하기도 하고 미소를 머금은 듯 보이기도 하고 단호한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불러서 뒤를 돌아보는 느낌도 들고요. 그 표정과 몸짓에서 막연한 분노보다는 그들도 미국의 일원이라는 메시지가 더욱 강력하게 다가왔습니다. 팝 아트적인 배경과 색감 속에서 인종적인 특징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습니다. 보통의 미국인들이 매일의 일상에서 만나는 이웃인데 그들이 우연히 아시아계일 뿐인 것이죠.영어뿐 아니라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타갈로그어, 베트남어 등 다국어 버전도 있는데요. 특히 한국어로 ‘저는 당신을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보는데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한국계를 표현했다고 생각하니 다른 인물들보다 왠지 눈에 서글픔이 느껴지기도 하는 건 기분 탓일까요?아만다 핑보디파키야같은 아티스트, 정치인, 공공기관, 비영리 기구, 유명인들이 온·오프라인 상에서 자신들의 방법으로 #STOPASIANHATE 캠페인을 지속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혐오 범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무지로 인한 공포가 더 무서운 바이러스일지도 모릅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측과 동조하지는 않지만 방관하는 사람들이 아시아인들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모르니까 두렵고 이해하지 못하니까 여자와 노인들에 대한 폭력으로 분노를 잘못 풀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영화 ‘미나리’처럼 아시아인의 삶을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를 미국인을 포함한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80년대 미국에 정착하려고 노력하는 한국계 가정의 다큐멘터리 같은 삶을 보게 되면 그들 역시 본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일 뿐이라고 느끼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물론 혐오범죄자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대다수의 정상적인 사고방식의 미국인들의 마음 속에 이해의 문 하나를 열어 둘 수는 있겠지요.제가 멀리 서울에서 무책임하게 낭만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마음 아픈 뉴스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낭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저 같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희망을 걸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