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원고에 이어서 ‘잘 먹고 잘 사는 광고인’이 애정 하는 글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최근 물밀 듯 밀려오는 경쟁 PT로 책 읽을 시간이 부족했는데요, PT를 마치고 보는 책 한 권이 얼마나 달콤한 지 모릅니다. 특히 잘 쓰인 글은 하루 만에 다 읽을 정도로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제 입에는 달콤했던 책 몇 권이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도 느껴진다면 좋겠습니다.
01_에세이: 아무튼, 노래
#아무튼노래 #아무튼시리즈 #이슬아 #노래에관한사색 #노래방역사 #노래의의미
첫 번째로 소개해드릴 책은 이슬아 작가의 ‘아무튼, 노래’입니다. 개인적으로 에세이라는 장르를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읽었던 대다수의 에세이들은 사람을 위로해주는 내용을 중심으로 합니다. 물론 책을 보며 공감하고, 위로를 받는 것도 좋지만 진정한 위로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럼에도 이 에세이를 소개해드리는 이유는 주류의 메시지와는 다소 다른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괜찮아”, “잘 될 거야”, “잘 해왔어”, “못해도 괜찮아”의 내용이 아니라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사실을 얘기해주기도 하고, 주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슬아 작가의 글에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내 이야기인 마냥 풀어주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노래와 관련된 역사나 과거 사건에서 시작해서, 노래에 대한 작가의 여러 경험에 대해 서술합니다. 노래로 풀어낼 이야기가 많다는 것. 그만큼 노래는 좋던, 싫던 우리네 삶에서 떨어질 수 없는 무엇인 것 같습니다.
여러 단편의 글 중에서도 감명 깊었던 부분을 소개합니다.
[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 너의 벗 되리라]
“(중략)
삶을 구석구석 살고 싶어.
이렇게도 덧붙였다.
대충 살지 않고 창틀까지 닦듯이 살고 싶어.
허전하고 쓸쓸한 날에 그렇게 다짐하는 하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죽음 곁에서 다져지는 생의 의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와 함께 구석구석 사는 벗이 되고 싶었다.” (*출처: 책 일부 발췌)
위 구절은 소중한 친구의 할아버지가 삶을 마감하고, 장례식장에서 친구와 나눈 대화의 일부입니다. 소중한 누군가가 곁을 떠났을 때, 오히려 삶의 의지를 다지는 친구의 말이 마음에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태어났기 때문에, 이왕 태어난 거 행복하게 살아보자 정도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말보다 ‘구석구석 살고 싶다’는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삶을 살고 싶다는 말이 이렇게 멋있을 수 있는지 처음 느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 가요? 때로는 삶의 방향성을 잃고, 그저 물 흐르는 대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놀랍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은 무난한 삶. 저는 그저 그 뿐이라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구석구석 살겠다는 그 말 한마디에 내게도 내 삶을 더 열심히 살아볼 의무가 있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여러분은 어떠신 가요? 때로는 삶의 방향성을 잃고, 그저 물 흐르는 대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놀랍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은 무난한 삶. 저는 그저 그 뿐이라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구석구석 살겠다는 그 말 한마디에 내게도 내 삶을 더 열심히 살아볼 의무가 있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소개해드린 구절 외에도 농인 분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던 경험, 그들에게 노래란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감각이기 때문에 손과 표정으로 어떻게 노래를 잘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내용도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 면에서 노래라는 건 귀라는 신체 기관이 아니어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아닐까요? 이 글을 통해 자신에게 노래란 어떤 의미인지, 노래와 함께 보내왔던 삶은 어떠 한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02_소설: 지구 끝의 온실
#지구끝의온실 #SF소설 #김초엽 #미래의지구 #로봇과인류 #드라마화
다음으로 소개해드릴 책은 소설 ‘지구 끝의 온실’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김 초엽 작가로 2019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발간한 이후, 나온 소설마다 히트를 치고 있습니다. SF 장르는 상상 속의 세계이기 때문에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으면 읽기 쉽지 않은데요, 이 작가는 머리 속에 찬찬히 장면을 그릴 수 있게 설명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특히 오늘 소개해드리는 <지구 끝의 온실>, 가장 최근에 발간한 <므레모사> 등 작가가 전공한 생물과 관련된 스토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식물, 사람, 세계’ 3가지를 바탕으로 여러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제 뇌리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지구 끝의 온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지구 끝의 온실>은 현재와 공상의 세계가 이어지면서, 단순히 공상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에 언젠가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스토리가 매혹적입니다.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연구소에서 실험 오류가 발생해 ‘더스트’라는 먼지가 세상을 덮고, 지구를 멸망으로 몰아갑니다. 사람들은 살아 남기 위해 작은 규모의 여러 돔 시티를 구성해 생존하지만, 돔 시티에 들어가기 위해 약탈, 전쟁이 계속되는 혼란의 사회가 됩니다. 이때 사이보그 로봇인 ‘레이철’은 더스트를 정화시키는 ‘모스바나’라는 식물을 만들고, 해당 식물로 뒤덮인 ‘프림 빌리지’라는 온실 공간을 만듭니다. 그곳에서 로봇 수리공인 ‘지수’와 만나게 되고, 지수와 레이첼에 의해 프림 빌리지도 일종의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하지만 외부의 침입을 받아 점차 무너지게 되고, 프림 빌리지에 있던 사람들은 더스트를 없애 줄 희망인 ‘모스바나’를 들고 여러 곳으로 흩어집니다. 이 이야기는 더스트 시대를 과거로 2129년에 살고 있는 화자 ‘아영’에 의해서 더스트 시대 종말의 비밀이 ‘모스바나’와 ‘프림 빌리지’에 있던 사람들이었던 것을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소설 내용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3장. 지구 끝의 온실]
(중략)
“그런데도 사람들은 약속하고 있었다. 이 숲을 나가도 레이첼의 식물들을 심겠다고. 숲 바깥 세계에서 가능성을 찾아보겠다고. 프림 빌리지를 만들겠다고. 그러니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지수는 그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면서, 손을 잡고 안으면서,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바라 왔는지를 알았다. 지수야말로 프림 빌리지를 끝까지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이 세계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랐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중략)
시간이 흐를수록, 모스바나가 무엇인지가 제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에요. 저는 그냥 그곳에서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던 거예요. 프림 빌리지를 다시 만들 수 없다는 것도, 그런 곳은 오직 프림 빌리지뿐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식물들을 심었어요. 오직 그것 만이 저를 살아가게 했으니까요.” (*출처: 책 일부 발췌)
프림 빌리지는 더스트 시대에도 주인공들을 지켜주었던 소중한 삶의 공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삶의 공간이 파괴된다면 어떨까요? 상상만 해도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책 속의 주인공들은 모스바나를 쉬지 않고 심겠다고 약속하며 삶을 영위해갑니다. 그들은 어쩌면 서로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프림 빌리지는 단 하나뿐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삶을 견디고 살아가기 위해서 약속을 지키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요?
소개해드린 구절 외에도 로봇인 레이첼과 주인공 지수의 이야기도 눈 여겨 볼만 합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제목인 ‘지구 끝의 온실’이 어떤 공간이었는지,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 글은 ‘스튜디오 드래곤’에서 드라마로 영상화가 확정되었다고 합니다. 과연 책 속에 담긴 지구와 온실 속 신비로운 식물,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감히 기대가 됩니다.
03_시집: 문학동네시인선 145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이별이오늘만나자고한다 #문학동네 #문학동네포에지 #문학동네시인선 #이병률
이어서 소개해드릴 책은 이병률 작가의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입니다. 이병률 작가의 글을 처음 접한 건 여행 에세이 <끌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가가 시 쓰는데도 능통하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사내 도서관에서도 빌릴 수 있는데요, 가끔은 문학동네시인전의 알록달록한 색깔과 제목을 보면서 어떤 걸 고를까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그때 웬일로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던 작가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끌림>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서 망설임 없이 골랐던 것 같습니다.
이 시집은 제목이 일러주듯 ‘이별’과 관련된 여러 시집으로 묶여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별이 헤어짐, 단절, 죽음 등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바다로 돌아가자는,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읽다 보면 간혹 웃프기도 하고, 어머니가 떠올라 마음이 아픈 시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함께 공유하면 좋을 만한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얼굴]
“하루 한 번 삶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당신 얼굴 때문입니다
당신 얼굴에는 당신의 아버지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갑니다 / 어머니도 유전적으로 앉아 있지만 얼굴을 자세히 보면 / 누구나 그렇듯 얼굴만으로는 고아입니다
당신이 본 풍경과 당신이 지나온 일들이 얼굴 위에서 아래로 차곡차곡 빛납니다 / 눈 밑으로 유년의 빗금들이 차분하게 지나가고 / 빗금을 타고 표정은 파도처럼 매번 다르게 흐릅니다
얼굴은 거북한 역할은 할 수 없습니다 / 안간힘 정도는 괜찮지만 계산된 얼굴은 안 됩니다 /바다의 얼굴을 보여주세요
당신 얼굴에 나의 얼굴을 닿게 한 적 있습니다 / 표정한 포기도 있는 데다 누군가와 축축하게 헤어진 얼굴이어서 그럴 수 있었습니다
당신 앞에서 이유 없이 웃는 사이 / 나는 당신 얼굴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얼굴에 얼굴을 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나는 하루 한 번 당신과 겹쳐지는 삶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책 일부 발췌)
이 시는 발문의 다른 저자에 의해서도 언급되었습니다. 그 저자는 이 글이 아마도 작가와 함께 여행하면서 작가가 아무 말없이 사람들을 관찰할 때 나온 글이 아닐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시점이 언제든 누군가의 얼굴에서 그 사람이 경험한 이별과 삶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 본인의 삶까지도 비추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그려진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손까지 가지 않아도, 얼굴만 보아도 그 사람이 경험한 이별과 삶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한 작가가 자주 언급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다’입니다. 바다의 얼굴을 보여 달라는 말. 바다는 삶이 시작된, 겉으로 포장하지 않은, 본인 그대로를 보여 달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아주 적극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제 감정을 드러내는데 자유롭고 솔직한 편입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인의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누군가는 무심코 그 사람은 한 번도 이별을 겪지 않은 것 마냥 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한 번 더 그 사람의 얼굴을, 마음을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요? 위 시처럼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과 겹쳐지는 삶을 생각하게 될지도 모를 테니까요.
오늘의 독서 미식 탐방 어떠셨나요? 어느덧 실외 마스크 착용이 해지되고, 해외여행이 활기를 띄면서 우리가 잃어버렸던 과거가 회복되는 듯합니다. 아주 무더워지기 전에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골라 보세요. 그리고 잔디 위에 누워 시원한 바람과 함께 글을 맛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