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준수 / 경향게임스 기자
517만 명, 국내 e스포츠 리그인 <2022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스프링 결승전의 최고 동시 시청자 수치다.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은 e스포츠는 전통 스포츠의 지위를 위협하며 급성장 중이다. 최근 연기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며 과거와 달라진 위상을 뽐내고 있다.
타 산업에서도 이를 주목하고 있다. 이유는 향유층과 글로벌 영향력에 있다. e스포츠는 전 세계 MZ세대가 가장 열광하며 즐기는 컨텐츠 중 하나다. 아울러 한국은 종주국이자 최강국으로 전 세계 팬들의 관심을 받는다. 이러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e스포츠는 마케팅 시장에서 급부상 중이다.
e스포츠 종주국의 위엄
e스포츠는 Electronic Sports의 준말로 전자 스포츠를 의미한다. 「이스포츠진흥에관한법률」 제2조 제1호는 ‘게임물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 간에 기록 또는 승부를 겨루는 경기 및 부대활동’이라고 정의한다. 게임을 종목으로 정해 경쟁하는 스포츠라는 뜻이다.
한국은 e스포츠 종주국으로 평가받는다. 산업으로서 e스포츠의 형태를 처음으로 확립시킨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게임사들이 팬서비스 차원에서 대회를 개최한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기업이 참가해 게임단을 만들고 후원사를 유치해 장기적인 리그가 구축된 것은 한국이 최초다. e스포츠는 압도적인 접근성과 유연성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e스포츠 종목인 게임은 컴퓨터만 있으면 즐기기 쉬워 MZ세대의 주요 놀이문화로 자리매김했다. 또 게임 자체가 하나의 가상 세계로 다양한 컨텐츠 제작이 가능하며 이를 전파할 수 있는 방송과 친화적이라는 점도 급격한 성장에 영향을 끼쳤다.
보수적인 금융권에게는 미래 고객 확보 시장
마케팅 시장에서도 e스포츠는 환영받는다.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이미지의 금융권은 e스포츠의 주요 팬층인 MZ세대에게 어필하기 위해 흥미로운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은행은 2019년 국내 대표 e스포츠 리그인 LCK와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단순 후원을 넘어 리그와 연계한 마케팅 이벤트로 많은 화제를 낳았다. 응원하는 LCK 게임단의 성적 및 가입 인원에 따라 우대금리를 적용하는 ‘우리 LCK 적금’, 경기에서 가장 많은 골드를 획득한 선수를 맞추면 고급 게임 아이템을 증정하는 ‘골드킹을 찾아라’ 등이 대표적이다.
신한은행은 넥슨과 손잡고 2021년부터 ‘신한은행 헤이영 카트라이더 리그’의 공식 후원을 시작했다. ‘헤이영’은 MZ세대에 특화된 서비스와 상품을 제공하는 금융 브랜드로 카트라이더 IP를 활용한 체크카드를 출시하는 등 젊은층에 어필할 수 있는 다양한 컬래버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게임단을 후원하거나 창단한 금융사도 있다. SBXG(구 샌드박스게이밍)는 KB국민은행과 네이밍 스폰서십을 체결하고 팀명을 ‘리브 샌드박스’로 변경했다. 이는 KB국민은행의 모바일 플랫폼 브랜드인 ‘리브’와 샌드박스게이밍을 결합한 것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대회 현장 관람이 제한됐을 당시 KB국민은행은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리브 샌드박스 아레나’를 오픈하는 등 언택트 e스포츠 마케팅으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화생명은 2018년 보험업계 최초로 게임단 ‘한화생명e스포츠’를 창단했다. 이들은 지난 4월 24일 한화이글스와 협업, 대전 이글스파크에서 e스포츠와 야구의 조인트 행사인 ‘한화생명e스포츠 데이’를 진행해 큰 호응을 얻었다.
글로벌 MZ세대를 아우르는 존재감으로
e스포츠의 글로벌 영향력 또한 마케팅 협업 대상으로 삼기에 매력적인 요소다. 산업을 불문하고 자신의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고 싶은 기업들이 e스포츠에 손을 내밀고 있다. 독일의 자동차 기업 메르세데스-벤츠(이하 벤츠)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LoL e스포츠의 주관사인 라이엇 게임즈의 글로벌 파트너다. 매년 가을 개최되는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에는 벤츠의 세단이 선수들과 함께 등장해 수천만 명의 시청자에게 노출된다. 벤츠는 롤드컵 우승팀에게 주어지는 우승 반지를 라이엇 게임즈와 함께 제작하는 등 마케팅의 범위를 더욱 넓혀가고 있다.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 스포티파이도 LoL e스포츠의 파트너 중 하나다. 최근 스포티파이는 LoL 국제 대회이자 5월 10일부터 부산에서 개최된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 참가팀의 주제곡을 글로벌 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이벤트를 진행해 호평받았다.
국내 e스포츠 업계도 주목받고 있다. e스포츠 종주국으로 뛰어난 인프라와 경쟁력 있는 게임단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e스포츠 리그인 LCK는 해외 시청자 비율이 60% 이상일 정도로 전 세계 팬들의 높은 관심 속 글로벌 진출을 원하는 기업들의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농심은 게임단 ‘팀다이나믹스’를 인수해 ‘농심 레드포스’를 창단했다. 2021년 LCK에서 프랜차이즈 제도를 도입할 때 100억원 규모의 가입비를 내고 e스포츠 업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농심을 대표하는 신라면의 해외 매출은 2021년 국내 매출을 추월했고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 e스포츠 마케팅을 선택한 대표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기아는 2020년 롤드컵 우승팀 ‘담원 게이밍’과 네이밍 스폰서십을 체결하고 팀명을 ‘담원 기아’로 변경했다. 이 팀이 2021년도 롤드컵 결승전에 진출하며 기아는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라이엇 게임즈에 의하면 이 당시 결승전의 최고 동시 시청자 수는 약 7,38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포브스는 5월 초 ‘2022년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e스포츠 게임단’ 10개를 선정해 발표했다. 이중 국내에 기반을 둔 젠지(8위)와 T1(10위)의 몸값은 각각 2억 5,000만 달러(한화 약 3,200억 원), 2억 2,000만 달러(한화 약 2,800억 원)로 책정됐다. 야구단 SK 와이번스의 인수 비용이 약 1,353억 원인 것을 고려하면 결코 낮지 않은 금액이다. 이처럼 글로벌 MZ세대를 아우르는 e스포츠는 기존 산업을 뛰어넘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수많은 산업·마케팅 전문가들이 e스포츠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