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참! 동혁 님은 휴가 때 어디 가셨어요?
"집이요."
"네?"
"집.이.요! "
무릇 직장인이라면 때를 틈타 '여름휴가'라는 것을 가게 되어 있는데, '휴가 간다'는 말이 정말 특별한 어딘가를 '간다'는 것인 줄은 몰랐다. 나의 고질적인 딕션 이슈 때문에 못 알아들으셨구나, 해서 또박또박 다시 말해 보지만. 분위기는 아까보다 더 싸늘하다. 버려진 무주공산의 메아리마냥 "네? 집이요...?"만 되돌아올 뿐.
왜 그랬을까.
시간을 거슬러 되돌릴 수 있다면,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쓸 수 있다면, 내 휴가에 대해 상냥하게 물어봐 주신 그분에게 '이.렇.게.' 답변드리고 싶다.
"앗! 네! 저는 휴가 때 말이죠! 아제로스 통곡의 동굴 쭈욱 돌고서! 알렉산드리아에서 피라미드를 타닥타닥 짓다가! 움직이는 푸드트럭에서 햄버거 알바를 슝슝 한 뒤에! 하이랄왕국 인근 야산에서 방패 스키를 촤아아악 타다가! 올드트래포트에서 맨체스터 더비를 우아아악 즐긴 뒤! 무인도에 갇혀 너구리 사채꾼의 대출금을 마아아악 갚다가! 지금 막 휴가 복귀 했습니다!"
라고. (뿌-듯)
"네...?"
엄마가 섬으로 보내온 편지
"겨울 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에게 소원을 빌었단다. 너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엄마가 편지를 부치셨다. 주소도 없는 이 무인도를 어찌 아셨을까. 지구에 사는 모두가 서로서로 거리를 두기 위해, 각자의 섬으로 이사를 가야 했던 2020년. 그 몹시 추운 겨울날에 따스한 편지를 보내셨다.
'나만의 작은 섬', 동물의 숲으로.
출처: 나의 첫 닌텐도 스위치
엄마도 친구도 사실 모두 가짜야
사실 저 편지는 우리 엄마 이윤화 씨가 쓴 편지가 아니다. '과연 카피라이터의 엄마는 다르구나' 놀라실 필요도 없다. 그저 '엄마'라는 이름의 NPC가 보내온 편지일 뿐. 나 하나만 보고 이사 온 10인의 주민들도. 담 너머 밥 짓는 냄새가 날 것 같은 그들의 보금자리들도. 모두 닌텐도가 정성스럽게 짜 놓은 2진법 데이터들이다.
닌텐도 담당 직원의 털 수북한 손에서 쓰인 '엄마의 편지'가 어째서 이윤화 여사의 잔소리보다 더 따스하게 느껴졌던 걸까. (괄호 치고 '피싱 메일'이라고 읽는다) 우리가 그토록 그 섬을 사랑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출처: 나의 첫 닌텐도 스위치
마음의 마스크까지 벗어도 되는 곳
2020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인기는 가히 범지구적이었고, 흔히 팬데믹과 연관 지어 설명하곤 했다. 현실 사회의 대체와 소통의 욕구, 뭐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러나 정말일까. 소통을 원했다면 SNS나 메신저를 했지, 잡초만 무성한 이 섬에 발 딛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 사회가 그리웠다면, 심즈나 팀즈를 했지, 동물의 탈을 쓴 동물친구들과 벌레 잡는 삶을 선택하진 않았을 것이다.
출처: 나의 첫 닌텐도 스위치
이 섬 주민들은 각자의 성격대로 각자의 삶을 산다. 아무 짓이나 하다가, 아무 짓도 안 하기도 하고. 때론 느긋하게 때론 멍청하게. 나라고 뭐 별 일은 없다. 기껏해야 전갱이를 낚아다 팔 거나, 나무토막 몇 개로 가구를 만들어 보는 것, 그 정도다.
괜스레 그루터기에 앉아본다. 별똥별을 보고 기도도 해본다. 찌르찌르 풀벌레 소리를 감상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밤늦게까지 하릴없이 뒹굴다 보면, 조금씩 느끼게 된다.
그동안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현실'의 대체제가 아니라 '동심'의 대체제였구나,라고.
출처: 나의 첫 닌텐도 스위치
나의 각별했던 주민, 부케와 바닐라에게
부케는 귀여운 아기 고양이였는데, 놀랍게도 꿈은 아이돌 지망생이었다. 그때가 4년이 전이니까 데뷔를 해도 벌써 했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뉴진스 멤버에 그녀의 이름은 없었다.
가는 사람 안 붙잡는 이 섬에서 처음부터 두 손 꼭 붙잡고 가던, 가장 친한 친구였다. 낮엔 보이지도 않다가 밤에 보컬연습을 하던, 생활이 매우 불규칙적인 아이였는데 (미라클 이브닝 뭐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같이 찍은 사진이 몇 없다. 닌텐도 스위치를 신형으로 교체하다 사고가 나서 헤어졌다.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여전히 너의 꿈을 응원한다고, 난 여전히 너의 첫 번째 팬이라고, 그렇게 꼭 말해주고 싶다.
출처: 나의 첫 닌텐도 스위치
바닐라는 바닐라색 강아지였다. 양친께서 '비글'은 아니셨는지, 보기 드물게 참 침착하고 차분한 친구였다.
새 입주민을 찾다가 만났다. '쭈니'나 '잭슨' 같은 인기 주민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귀엽게 처진 두 눈을 본 순간 망설임 없이 도장을 찍었다. 날 항상 걱정해 주고, 그 걱정이 누가 될까 걱정하는, 바닐라 향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친구였다. 이 친구 역시 신형으로 교체할 때 사고가 나서 헤어졌다.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마지막 인사를 못해서 미안하다고, 지금 있는 곳에서도 상냥한 이웃으로 사랑받길 바란다고. 그렇게 꼭 말해주고 싶다.
소원이라 말하기엔 웃기지만. 언젠간 꼭 이 글이 가닿았으면 좋겠다.
출처: 나의 첫 닌텐도 스위치
출처: 나의 첫 닌텐도 스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