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OpenAI)가 개발한 ‘챗GPT(ChatGPT)’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챗GPT는 사람과 채팅하는 대화형 AI 형식을 하고 있지만, 기존의 채팅 AI와는 사용 목적이 다르다. 기존 채팅 AI가 사용자와 즐거운 대화를 이어나가는 오락 기능에 그쳤지만, 챗GPT는 미리 학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사용자의 요청을 수행하는 등 유용한 기능을 제공한다.
우리가 흔히 생성형 AI라고 부르는 것은 영상이나 이미지, 사운드 등 특정 분야에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AI를 말한다. 과거엔 무언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전문가들만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넣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AI모델 즉 거대언어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이 등장하며 이제 누구나 AI를 활용하기 쉬워졌다.
LLM이 발전하며 일반인도 활용할 수 있는 각종 AI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는데, 가장 유망한 분야 중 하나가 바로 회사 업무 영역이다. 내 업무를 10%라도 줄일 수 있다면, 비용을 내고라도 쓰겠다는 것이 직장인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이제 평범한 직장인도 AI를 활용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질문을 하지 말고 명령을 하세요
그럼에도 우리 곁을 보면 여전히 AI를 활용하길 꺼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신기하긴 한데, 실제로 일을 할 때 어떤 점에서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또 할루시네이션(환각이라는 뜻. AI가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을 여러 차례 겪다 보니, 시스템 자체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다면 수많은 사람이 ‘LLM의 등장으로 새로운 AI 시대가 열렸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LLM은 그 특성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게 지시해야 더 나은 답변을 준다.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은, LLM은 언어를 ‘생성’하는 AI이지, ‘만능 응답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LLM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한 결과로 언어를 생성하는 AI이기에, 어떻게 생각하고 지시를 하느냐에 따라 답변의 품질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LLM에게 ‘A라는 작가에 대해 알려 줘’라고 단순히 질문하면 어떻게 될까? LLM은 지시를 최대한 수행하려고 든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사전에 학습시켜 둔) 정보가 있다면 최대한 활용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정보를 취득한 후, 이를 보기 좋게 문장으로 생성하여 정리해 보여준다. 이렇게 만들어낸 문장에 오류가 포함되어 있거나, 뻔하고 그럴듯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네이버의 모든 서비스를 아울러 사용자를 도와줄 AI 서비스, 네이버 하이퍼클로바X (출처 : 하이퍼클로바X 홈페이지)
똑똑하게 AI에게 일 시키는 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에게 일을 시킨다고 생각하고, 명령을 꼼꼼하고 자세히 해주면 된다. 명령할 때는 LLM의 특기인 ‘문장 생성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사람이 할 일을 대신하게 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할루시네이션의 경우, 필요한 데이터를 모두 제공해 주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하고, 그 데이터를 가공하여 언어로 표현하는 부분에 집중하도록 일을 시키는 것이다.
가장 접근이 쉽고 업무에 큰 도움이 되는 기능은 ‘번역 기능’이다. LLM은 기존의 어떤 번역 소프트웨어보다 성능이 뛰어나다.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과 언어를 생성하는 능력이 모두 뛰어나기 때문에 번역된 문장 역시 상대적으로 미려하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면 대단히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영문으로 된 논문이 있을 경우, 그 논문의 PDF 파일을 통째로 업로드한 다음, “이 논문을 한국어로 짧게 한 페이지 정도로 요약해 줘. “ 라고 명령을 내리면 실제로 알아듣고 요약문을 만들어 준다.
웬만한 뉴스 기사 정도는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해주는 챗GPT
개발자 대부분은 LLM을 활용 중
이공계에 속하긴 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경우는 최근 LLM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더 적을 것이다. 언어 생성 능력이 뛰어나다는 말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생성도 능숙하게 해낼 수 있다는 의미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여러 가지 자잘한 기능을 하나하나 개발해 쌓아 나가는 일의 반복이다. 전체 시스템 기능 구상을 하고, 거기에 필요한 기능을 한 가지씩 개발해 붙여 나가는 식이다.
이때 인간 연구자는 전체 시스템 구상을 하고, 한 가지 단순한 기능을 구현하는 일은 조건을 일일이 적어 준 다음 ‘이 기능을 구현하도록 무슨무슨 프로그래밍 언어로 짜주세요’라는 명령을 내리면 수초 이내에 실제로 소스코드를 짜서 내놓는다. 사용자는 이 소스가 정상 작동하는 지만 확인하면 된다.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LLM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LLM의 원리를 이해하고, 일상 사무 곳곳에서 LLM을 활용하려고 노력해 보자. 작은 일 하나를 ‘명령한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맞게 상세한 업무 지시를 내리는 감각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씩 시행하다 보면 자신에게 꼭 맞는 AI 활용법을 금방 익힐 수 있을 것이다.
LLM을 ‘비서’로 활용해 다양한 작업에 도전하자
LLM과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며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면, 이다음부터는 단순히 언어생성 서비스를 넘어선 더 다양한 일을 AI에게 시켜 보자. 업무에 LLM을 적용하기 어려운 것은, 실제 업무가 텍스트 기반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파워포인트로 발표 자료 서식을 만드는 일은 LLM의 특기인 ‘언어생성’과 동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발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사람의 언어를 알아듣는 LLM와 다양한 업무용 AI, 혹은 또 다른 생성형 AI와 연동해서 사용할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즉 말을 알아듣는 LLM을 내 컴퓨터 속 ‘비서’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사람은 명령을 내리는 것만으로도 서식이나 도표를 그리고, 문서를 작성하는 등 다양한 ‘업무 활동’을 키보드나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만으로도 할 수 있게 된다.
오피스 프로그램과 연결돼 직장인의 업무를 도와줄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서비스 코파일럿 (출처 : 마이크로소프트 공식 블로그)
그런 일이 최근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AI가 LLM에 업무용 ‘오피스’ 프로그램을 접목한 ‘코파일럿(Copilot)’이다. 코파일럿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했는데, 대표적 업무용 프로그램인 파워포인트, 엑셀 등에 AI를 결합해 이용자를 돕는다. 텍스트, 코드, 이미지, 음성 등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AI를 일정 관리, 회의록 작성 등 기본적인 업무에 두루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업무용 프로그램 중 일정 관리 기능을 갖춘 것은 ‘아웃룩’ 등이, 회의록 작성 기능을 갖춘 프로그램으로는 ‘팀즈’ 등이 있는데, 모두 코파일럿과 연동된다.
직장에서 AI에게 어떤 일을 시킬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명령이 가능할까? 마이크로소프트의 한 임원이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코파일럿 활용 사례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참고할 겸 소개한다.
△어제 오전 11시에 있었던 회의를 빠르게 요약하라.
△어떤 결정이 내려졌나?
△다음 단계가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알려달라.
△그 요약본을 직원 A에게 이메일로 보내고, 다음 주 우리 둘 다 참석이 가능한 논의할 미팅 시간을 제안하라.
또 다른 임원은 주로 직장 내 자료를 찾을 때 활용한다며 “A라는 회사가 이번 주 회의에서 공유한 2분기 뉴스 자료를 찾아라” “2021년 우리가 만든 업무 플레이북을 찾아라” 등의 명령을 소개했다. 실제로 이는 대단히 유용해 보인다. 우리는 직장에서 무언가 찾느라고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이를 AI로 대체하면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앞으로 코파일럿과 같은 업무 통제용 LLM이 속속 등장할 것이다. 앞으로 사무공간에도 다양한 혁신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AI를 통해 창작활동도 LLM과 만나면서 막강해졌다.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을 하거나, 영상편집을 하는 등 다양한 창의적 활동 분야에서도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흔히 LLM을 ‘생성형 AI’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거의 채팅 AI처럼 미리 저장시켜 둔 많은 답변 중 하나를 선택해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글을 문법과 전후 맥락에 맞게 생성하는 기능을 갖췄기 때문이다.
LLM과 생성형 AI가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LLM이 생성형 AI의 한 종류인 것은 많지만, 그 이외에도 대단히 많은 생성형 AI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작곡을 하는 AI, 그림을 그리는 AI 등이 모두 생성형 AI에 속한다. 그런데 기존의 생성형 AI는 사람이 복잡한 조작프로그램을 이용해 하나하나 명령을 내려줘야 했다. 이 점은 컴퓨터에 상당히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강력한 AI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도 활용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LLM과 다른 생성형 AI가 연동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례로 그림을 그려주는 생성형 AI는 ‘달리(DALL·E)’가 유명한데, 2023년 하반기부터 실제로 챗GPT(4.0 버전)와 연동이 된다. 챗GPT를 통해 어떤 그림을 그려달라고 ‘명령’을 하기만 하면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물론 코파일럿은 처음부터 이런 연동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명령은 앞서 이야기 한 대로 철저하고 자세하게 내려져야 한다. 단순히 ‘자동차를 그려줘’라고 이야기하면 원하는 이미지가 생성되지 않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예를 들어 코파일럿에게 △붉은색 스포츠카를 그려줘. 페라리 스타일.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리고 있는 모습으로- 라고 명령하면, 아래와 같은 이미지를 생성해 준다. 명령어를 상세하게, 치밀하게 제안할수록 원하는 그림을 생성할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LLM이 주도하는 AI 혁신은 이미 현실에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사용하기 어렵지 않고, 조금만 익숙해지면 우리 일상에 커다란 도움을 준다. AI를 활용해 이런 다양한 작업을 자유자재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과, ‘귀찮다’고 여기며 애써 이 혁신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하는 사람의 경쟁력 차이는 극단적으로 벌어질 수 있다.
전승민 과학 전문 저술가
‘현실 세계에 도움 되는 기술이 진짜 과학’이라는 모토로 20여년 간 다양한 과학기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전문 저술가. 과학기술 전문 미디어 기업 ‘동아사이언스’에서 11년간 일하며 월간 <과학동아> 기자, <동아일보> 과학팀장, <동아사이언스> 온라인뉴스 편집장 및 수석기자를 지냈다. 이후 세계적 과학기술 매체 <와이어드(Wired)>의 한국판(Korean Edition) 정보과학부장을 지냈다. 현재는 프리랜서 기자 및 과학저술가로 <국민일보>, <아시아경제> 등 여러 매체에 고정 필진을 맡고 있다. ‘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의 미래’, ‘AI시대 직장인 생존법’, ‘소설로 알아보는 바이오 사이언스’ 등 많은 저서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