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store)이란 말 그대로 ‘물건의 판매’와 ‘재화의 교환’을 위한 장소다. 통화(돈)가 탄생하고, 시장(market)이 생기며 매장이란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상식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온라인 커머스의 성장과 팬데믹 사태를 겪으며 물건을 사고 판다는 전통적인 오프라인 매장의 가치가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매장의 목적이 제품 판매를 넘어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 연계를 위한 O2O 매장부터 마케팅 관점의 팝업스토어, 로봇이나 AI 기반의 자동화(혹은 비대면) 매장, 그리고 고객의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테크 기반의 매장에 이르기까지. 리테일 테크를 기본으로 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먼저 리테일 테크란 소매점을 뜻하는 리테일(Retail)과 기술(Technology)을 합한 말로, 편의점이나 마트, 햄버거 가게 등 우리가 이용하는 소매점에 첨단 ICT(정보통신기술)를 접목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키오스크, 드론 배달, 무인 편의점 등이 이에 해당된다. 초기의 리테일 테크가 물류 입고 및 출하 같이 비교적 단순한 업무에 적용되었다면, 최근에는 고객 안내, 결제 등 소비자와 상호작용이 필요한 부분까지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리테일 현장에서 기술 기반의 어떤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지 사례와 함께 살펴보자.
궁금한 물건 사용만 해보세요, 베타
물건 판매가 아닌 해당 물건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나 반응 정보를 모으기 위한 리테일 공간이 존재한다. 바로 베타(B8TA)라는 가게 이야기다. 베타는 2015년에 창업한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으로 매장에서 물건을 판매하지 않는다.
최신 기기들이 전시되어 있고, 손님은 방문하여 자유롭게 구경하고 사용해 보고 가는 곳이다. 심지어 이 매장은 물건이 팔려도 판매수수료 및 운영비를 받지 않고 제조사에 매출 금액 100%를 제공한다. 대신 제품 한 가지를 베타 매장 내에 진열할 때 서비스 이용료를 받는다. 재미있는 점은 미국 내에선 이 서비스가 실패했지만, 도시 기반으로 리테일 환경이 발전한 일본에서 성공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베타 매장에선 천장 등 여러 장소에 설치된 카메라들이 고객의 동선을 체크한다. 이를 통해 진열된 특정 상품을 그냥 통과한 고객의 수와 한 상품에 5초 이상 멈춰 선 고객(이를 베타에선 ‘디스커버리’라고 부른다) 수, 점원이 고객 앞에서 상품 설명이나 시연을 보인 횟수 등 각종 데이터가 상품별로 수집된다. 베타는 소비자가 아닌 ‘소비자가 궁금한 기업’을 위해 소비자의 정보를 판매하는 매장인 셈이다.
대신 장을 보고 배달해 드립니다, 인스타카트(Instacart)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인 인스타카트(Instacart)는 앱을 통해 식료품들을 주문하면, 고객을 대신해 1~2시간 내 인근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배송까지 해주는 서비스다. 배송 직원들은 대부분 인근 주민이거나 프리랜서로, 이들은 부업 삼아 원하는 시간에 서비스에 참여한다. 보통은 자전거나, 스쿠터를 이용하며 국내의 대리운전 서비스와 같이 실시간으로 어플을 통해 콜을 받는 형식이다.
인스타카트의 기술을 동원해 만든 오프라인 서비스, 커넥티드 스토어 (출처 : 인스타카트)
2022년부터는 오프라인 매장에 인스타카트의 전자상거래 기술 6가지를 적용한 ‘커넥티드 스토어’를 오픈하고 비즈니스화 하고 있다. 이제는 카트에 제품을 넣는 것만으로도 어떤 제품을 구매했는지가 기록되고 또한 바로 결제할 수 있는 스캔 앤 페이(Scan & Pay) 기능을 도입해 계산대에 직접 들르지 않고 결제 완료 상태에서 매장을 나갈 수 있다. 매장에서 구매한 상품 목록은 추후에 손쉽게 재구매할 수 있도록 온라인 쇼핑 계정과 연동된다.
이를 기반으로 사람들이 어떤 제품에 관심을 가졌고, 오늘 사지 않더라도 내일이나 다음 주 이맘때에는 어떤 상품이 필요한지 개인화된 정보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인스타카트는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새로운 세일즈와 마케팅의 기회를 찾고 있다.
대신 주문받고 결제해 드려요, 버추얼 캐셔
얼마 전엔 미국의 최저시급 상승과 더불어 뉴욕에서는 화상채팅기반의 결제시스템이 새롭게 등장했다. 해피 캐셔(Happy Cashier)라는 업체에서 운영하는 버추얼 캐셔(Virtual Cashier) 서비스다. 이 서비스에서는 급여가 싼 해외 노동자들이 화상으로 접속해 대신 주문을 받는다. 주문이 뜸한 시간엔 SNS 관리 등 온라인 상으로 필요한 업무를 처리한다. 이 업체에서 근무하는 필리핀 근로자와 미국 근로자의 급여 차이는 5배(3달러, 뉴욕은 16달러)로 개발도상국과 뉴욕의 급여차를 이용한 사업 모델이다.
맥킨지 앤 컴퍼니에서 만든 리테일 테크 기반 컨셉숍 모던 리테일 콜렉티브(Modern Retail Collective) (출처 : 맥킨지 앤 컴퍼니 홈페이지)
당신의 선택이 궁금합니다, 리테일 테크
매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비즈니스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중 특히 고객의 정보는 가치 있는 ‘제품’으로, 매장에 센서를 설치해 고객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서비스는 점점 일반화되고 있다. 방문객 통행량과 체류 정도를 열지도 형태로 보여줘 매장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도록 돕는 ‘리테일히트맵(RetailHeatmap)’, 특정 매대나 구역에 진입하는 유입객수와 체류 시간을 분석해 주는 ‘리테일트래픽(RetailTraffic)’ 등 방문객 행동 분석을 도와주는 서비스들이 인기다. 맥킨지 같은 업체는 고객 데이터의 활용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자체 테스트 매장을 만들기도 하고, 고객 분석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리테일 분석솔루션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매장 내 고객의 동선 및 트래픽을 파악해 분석하는 서비스, 리테일트래픽 (출처 : 리테일트래픽 홈페이지)
과거 리테일이란 고도의 인력집약적 사업이었다. 인력의 교육과 투입이 중요했지 신기술이 핵심인 분야는 아니었다. 하지만 선진국들의 높아진 인건비, 온라인 커머스의 오프라인 진출, 디지털 기반의 시스템화된 리테일 기업(아마존, 월마트, 쿠팡 등)이 나타나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각종 기술이 리테일 현장에 접목되며, 매장 내의 각종 정보가 비즈니스의 무기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소비자의 관심과 체류 시간조차 비즈니스가 되는 세상, 마케터들 역시 리테일 테크에 관심을 가져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길 바란다.
최원석 프로젝트 렌트 대표
오프라인 마케팅 플랫폼 프로젝트 렌트의 대표이자, 브랜드 커뮤니케이터, 공간 프로듀서.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와 현대카드 디자인팀에서 일했으며. 브랜드 컨설팅 기업 필라멘트앤코를 창업해 수많은 F&B 브랜드와 제품을 컨설팅했다. 오프라인 마케팅 플랫폼 ‘프로젝트 렌트’의 문을 열어 다양한 브랜드를 소개하고, 팝업 특구가 된 성수동의 선도자로 활약했다. 300여 개의 팝업을 기획, 운영하며 한국 최초로 RaaS(Retail as a Service) 기반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현대 자동차, 삼성, 롯데 등 국내 기업 대상 브랜드 컨설팅과 공간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콘텐츠 기반 공간 프로듀싱을 주제로 대중 강연도 꾸준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