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신영 / 한국경제신문 기자, 뉴욕특파원
“김밥 찾아요? 내가 가져올 테니까 잠시 기다려보세요. 친구 것도 필요하면 4~5개 정도 가져올 수 있어요.”
“그 쇼핑백 지금 사지 마세요. 다음 주 목요일에 다른 디자인이 들어오니 함께 보고 골라보세요.”
7월 초 미국 뉴저지주 엣지워터 인근에 있는 미국의 식료품 중심 유통업체인 ‘트레이더 조(Trader Joe's)’는 휴일인 탓에 손님들로 북적였다. 고객들로 북새통인 상황에서 인기 상품인 김밥을 찾으니 한 종업원이 직접 창고에 가서 제품을 찾아왔다. 또 다른 인기 상품인 토트백도 진열대에 하나밖에 남지 않아 급하게 담으려고 하니 다른 직원이 말렸다. 다음 주에 더 많은 제품이 들어오니 좀 더 기다려 보라는 설명이었다.
1967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해 미국 내 42개 주에 500개 이상의 매장으로 확장한 마트 트레이더 조 / 출처 ⓒHarrison Keely
친근하게 직원과 소통하는 동네 마트
트레이더 조는 얼핏 보면 여느 유통업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과일과 냉동식품 육류와 생선 등을 고루 팔고 일부 진열대에 핸드크림과 손 세정제를 올려놨다. 하지만 이곳 직원들은 다른 유통업체와는 차별화된다. 월마트와 타깃, 코스트코 등 여타 유통업체에서는 직원들의 안내를 받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곳은 직원들이 먼저 고객에게 다가와 질문을 하고 상품 안내를 책임진다.
길게 늘어선 계산대에서 고객이 빠뜨린 물건이 있으면 계산대 직원이 종을 울린다. 그럼 다른 직원이 다가와 고객이 잊은 물건을 직접 확인한 후 찾아서 가져다준다. 다른 한 직원은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제품 5개를 꼽아서 소개해주기도 했다. 김밥을 비롯해 한국식 양념의 LA갈비, 만다린 오렌지 치킨, 팬케이크, 베이글에 뿌려 먹는 참깨 시즈닝 제품이었다.
매출로 이어지는 탁월한 제품 기획력
트레이더 조의 이 같은 식료품은 주로 데우거나 굽기만 하면 되는 간편식 부분에서 경쟁력이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뉴머레이터(Numerator)의 데이터에 따르면 트레이더 조를 자주 찾는 고객은 25~44세 사이의 백인과 아시아인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학사학위 이상의 고학력자이면서 연간 수입이 8만 달러(약 1억원)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에 다니면서 간단하게 집에서 준비할 수 있는 요리를 찾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동시에 간편식이라도 그 안에서 다른 유통업체에서 산 것과는 다른 제품 경험으로 차별화하고 싶다는 니즈도 확인할 수 있다. 트레이더 조가 와인과 치즈 제품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것 또한 이러한 고학력 직장인들을 의식한 결과로 분석된다.
업계에서는 트레이더 조의 단위면적 당 매출이 홀푸드와 같은 대형 유통업체보다도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인터넷 매체인 24/7 Wall St.에 따르면 트레이더 조의 전체 매출 규모는 미국에서 23위에 해당한다. 또 트레이더 조의 매장 규모는 다른 대형 유통업체의 1/3 수준이지만 평방 피트 당 매출은 홀푸드의 두 배, 매장 당 평균 매출은 약 3,100만 달러로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를 만족시키고 있다.
김밥의 인기는 틱톡을 타고
최근 가장 핫한 플랫폼인 틱톡. 트레이더 조는 또 다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틱톡 등에 올라오는 콘텐츠에 즉각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틱톡에서 인기 있는 음식을 홍보하는 ‘틱톡에서 본 것처럼’이라는 코너를 매장 내에 마련하기도 했다. 틱톡 덕을 본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미국 전역에서 인기를 얻었던 김밥이 대표적이다.
한국계 음식 콘텐츠 크리에이터 세라 안 씨는 미국에서 냉동 김밥 제품을 데워 시식하는 영상이 담긴 틱톡을 올려 1,0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안 씨는 NBC 인터뷰에서 “5살 때 어머니가 학교 점심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주셨는데,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었다”며 “지금 미국에서 김밥이 인기를 끄는 건 우리 문화가 다른 사람들에게 수용되고 소비되는 데 얼마나 많은 진전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미국) 사람들이 한국 음악, 한국 음식, 한국 문화, 한국 엄마 등 모든 것에 집착한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입소문을 탄 트레이더 조의 김밥은 미국 내 매장에서 연이어 품절돼 두 달 후 추가 입고까지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제품을 개발하고 이러한 인기를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이어가며 상호작용하려는 트레이더 조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중간 유통업체 최소화로 더 낮은 가격을
1967년 트레이더 조를 창립한 조 쿨롱은 같은 매장 면적 안에서도 높은 가치, 많은 소비를 이룰 수 있는(접근하기 쉬운) 제품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올해 봄, 트레이더 조가 20년간 1개당 19센트를 유지해 온 바나나 가격을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인상했고, 미국 전 언론에 보도되는 일이 있었다. 트레이더 조의 19센트 바나나는 매장 방문 고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농산물로 선정될 정도로 잘 알려진 제품이다.
트레이더 조는 비상장 회사인 탓에 실적을 포함한 재무구조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업계 추정으로 연간 매출이 약 130억 달러에서 160억 달러 수준이며 매장은 530여 개다. 고용 근로자만 1만 7000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레이더 조의 미디어 담당인 나키아 로데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트레이더 조의 제품 개발팀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으며 고객들에게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되는 약 4,000개의 제품을 선별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중개인, 유통업체, 판매 대리점, 기타 중개인이 아니라 생산자 또는 재배자와 직접 거래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덧붙였다. 중간 유통업체를 최소화해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는 또한 레시피나 제품 콘셉트를 구매하지 않는다고도 밝혔다.
트레이더 조는 기부를 통해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공유, 나눔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로데는 “트레이더 조의 진열대에 자리를 잡기 위해 각각의 후보 제품은 시식 전문가들인 패널들을 통과해야 한다”며 “어떤 제품이 패널로부터 널리 사랑받고 뛰어난 가치를 나타낸다면, 그 제품은 우리 진열대에 자리를 잡게 되고 트레이더 조에서 경험할 수 있는 쇼핑 모험의 일부가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트레이더 조는 이전부터 업계보다 먼저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거나 기존의 제품에 그들만의 재료나 성분을 가감해 트레이더 조만의 PB 제품으로 변신시키는 등 발 빠른 시도를 놓치지 않는다. 그들의 타깃을 명확히 분석하고 브랜드만의 독창성을 만들어가려는 노력, 소비자에게 가장 중요한 가격을 놓치지 않는 꾸준함, 여기에 온오프라인을 아울러 소비자와 소통하려는 모습이 고객의 신뢰를 얻어내 이들의 발걸음을 트레이더 조로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