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의 행복
처음 뵙겠습니다. 개구리입니다. 거리에서 그림을 그립니다. 이 거리 저 거리 오가는 사람들에게 작품을 팔기도 합니다. 잘 되냐고요? 파리만 날립니다. 아니, 파리라도 날리면 낼름 먹고 굶지는 않을 텐데(개구리니까…) 한 입 거리 날파리 한 마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을 그려야 될까요? 무엇을 그려야 천하장사 소시지 하나라도 사 먹을 돈이 날까요?
옛날 생각이 납니다. 그때도 다름없이 가난했었지요. 판잣집에 세 들어 살던 판잣집. 뒷골목 단칸단칸방 친구와 팽이를 치고 술래잡기를 했죠. 다리에 힘이 다 빠지면 집에 가서 놀았습니다. 아들 혼자 두고 일 나가신 부모님이 미안함에 사주신 선물. 게임기가 있었거든요. 어머니 오실 때까지 밤이 다 될 때까지 뿅뿅 거리며 놀았습니다.
또렷이 생각납니다. 주인집과 골목길 사이에서, 언제라도 날아가버릴 것 같던 우리 이부자리를 지켜주던 작은 문. 그 녹슬고 기울어진 녹색 철문. 그래요. 그걸 그릴게요. 다 그렸습니다. 제목은 <안드레 찌들의 '쫍은 문'>. 어때요? 저 이제 천하장사 소시지 먹을 수 있을까요?
직접 그린 그림을 판매하고 생계를 꾸려 나가는 게임이다. (이하 모든 출처 본인)
개구리의 낭만
죄송합니다. 오늘부로 접게 됐습니다. 망한 건 아니고요.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습니다만 애호가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면서 거액의 투자를 받게 됐습니다. 내일부터는 따땃한 실내에서 모실 수 있겠네요. 게임으로 치면 part 2, stage 2 뭐 그런 겁니다.
끝내 화가가 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저는 꿈을 잃고 방황을 거듭하다 느지막이 재수를 결심했습니다. 그때쯤 문학의 재미에 눈뜨게 됐고요. 재수학원 야간자습을 째고 밤 산책을 하며 오디오북을 들었고 시구절을 흥얼거리며 동네 뒷산 약수터를 오르내렸습니다. 국문학과에 진학하고 교내 백일장에서 2년 연속 상을 받으며 어쩌면 문학의 길이 내 길이다 싶었죠. 하지만 익숙한 느낌은 또다시 찾아옵니다. 딱 그 정도가 저의 한계였던 거예요.
왜 항상 저는 남들이 시키지도 않은 낭만에 매료되었다가, 왜 또 저 혼자 낭패감을 느끼고 도망치는 걸까요? 영원히 그 낭만 속에 들어가 살 수는 없는 건가요?
~라고 할 뻔했지만! 이제 쓸데없는 질문이죠. 저는 이 바닥, 이 업계 최고의 화가니까요. 우하하하.
유명 화가의 꿈을 이뤘지만, 그곳엔 온통 3D 폴리곤뿐이었다.
인간의 출근길
이 게임의 이름은 <파스파투: 배고픈 예술가>. 공항철도를 타고 공덕역으로 달리는 그 30분 안에 엔딩을 볼 수 있는 매우 가벼운 게임이다. 진행 또한 매우 순탄해서 그냥 쓱쓱 낙서를 그리듯 한 스무 점의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고 어디 어디의 초청을 받고 흉상이 세워지는 둥 꽃밭 가득한 해피엔딩을 보게 된다. 다만 흔들리는 공항철도 안에서 태블릿 PC와 펜슬을 꾹 쥐어 가며 시뻘게진 두 눈으로 뚫어져라 보는 그 일련의 과정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경험이었다.
저 개구리는 어째서 화가의 길을 걷게 된 걸까. 아니 그보다 왜 주인공이 개구리여야만 했을까. 그건 우리의 삶이 양서류의 삶과 기본적으로 같기 때문 아닐까. 물과 뭍(땅)을 수시로 오가며 살 수밖에 없는 양서류처럼, 꿈과 현실을 수시로 오가며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서가 아닐까.
물에 닿지 않고 뭍(땅)에만 머물면 머지않아 말라죽듯이, 꿈에 닿지 않고 현실에만 머물면 결국 말라죽는 것이 인간의 삶일까. 뭍(땅)에 발 딛지 않고 물에만 머물면 서서히 잠겨 죽듯이, 현실에 발 딛지 않고 낭만에만 푹 젖으면 그대로 잠겨 죽는 것이 인간의 삶인 걸까? 지옥철에 낑겨 출근하는 현실이 내 몸을 졸라도 그 잠깐 30분의 행복이 지금의 나를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삶이긴 하겠다. 적어도 나의 삶이긴 하겠다.
태블릿 PC로도 출시가 된 만큼, 평소 놀리고 있는 태블릿 PC가 많은 우리 광고인들에게 쉽게 추천할 수 있는 게임이다. (← 아마 편집해 주시는 분은 이 부분을 볼드 처리 해주실 것 같다.) 입력취소나 되돌리기 기능이 없어서 당혹스럽겠지만, 그것은 포토샵이라는 초거대 자본의 기술집약적 상품을 아무렇지 않게 이용하는 우리 광고인들의 일상일 뿐이고, 이것은 또 이것대로 가난한 화가의 리얼 라이프라고 생각하면 되기에, 단점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가격은 커피 한 잔 값. 오늘은 커피라는 우물 대신 화가가 되는 시간으로 퐁당 빠져보는 게 어떨까.
흠뻑이라 쓸까 하다가 어감이 좀 더 귀엽고 라이트 한 '퐁당'으로 고쳐 적으며, 이만 개구리는 물러가겠다.
파스파투: 배고픈 예술가 (Passpartout: The Starving Art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