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는 전 세계를 술렁이게 만든 한 통의 편지를 부쳤다. “지구야말로 우리의 유일한 주주”라는 제목으로 환경 보호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4조 원이 넘는 파타고니아 주식 100%를 통째로 기부한 것이다.
앞으로 50년 동안 사업을 성장시키기보다는 지구를 위해 힘쓰겠다며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 형성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그의 편지에 전 세계 사람들은 열광했다. 지구를 대주주로 임명한 것은 진심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전례 없는 행보였기 때문. 오랜 시간 파타고니아가 꾸준히 사랑받는 비결은 단지 ‘친환경 마케팅’에 그치지 않고 지구를 위한다는 브랜드의 철학이 모든 운영 방식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데에 있다. 파타고니아의 제품을 구매할 때는 나의 소비가 최대한 지구를 위한 방식으로 연결될 거라는 안도감을 바탕으로 지갑을 열게 된다. 마음 놓고 브랜드의 행보를 ‘소비’를 통해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이 메시지인 시대
SNS를 통해 개인이 매체화되고, 일상이 중계화되며 우리의 돈과 시간을 쓰기로 선택한 곳이 곧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마인드 마이너 송길영 부사장이 그의 저서인 <그냥 하지 말라>에서 표현했듯, 내가 사용하는 브랜드가 나의 정체성을 보여주며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인 시대에 ‘소비’를 통해 브랜드를 응원하는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SG가 점점 중요해지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에서 발표한 <2021 MZ세대 친환경 실천 및 소비자 트렌드>에 따르면 MZ세대 10명 중 7명이 가격과 조건이 같다면 친환경 활동 브랜드를 고를 것이라고 답했다. MZ 세대는 친환경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자신의 채널에 자발적으로 홍보한다.
기후 변화와 친환경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며 ESG와 친환경 마케팅을 펼치는 브랜드가 많아지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반갑지만, 친환경 마케팅을 한답시고 보이는 면에만 치중한 ‘그린 워싱(Green Washing)’으로 빠지게 되면 오히려 소비자들의 반감을 사고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온오프라인에서 경험하는 것이 많아진 만큼 소비자들이 곧 노련한 브랜딩 전문가가 되어 진심인 브랜드와 척하는 브랜드를 알아보고,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며 빠르게 브랜드의 여론을 형성한다. 그렇다면 그린 워싱이 아닌 진정으로 환경에 도움이 되는 리얼 그린(Real Green) 마케팅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다양한 브랜드의 최신 사례와 함께 마케팅에 참고할 만한 몇 가지 포인트를 살펴보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며 본질적인 패러다임을 바꾸다
‘뉴 제로웨이스트’를 선언하며 플라스틱 분해를 시작, 소비재 혁신으로 주목받은 화장품 브랜드 ‘시타’ (출처: 시타 공식 홈페이지)
리얼 그린 마케팅을 펼치는 브랜드는 사업의 운영 과정에서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형태로 본질적인 구조를 바꾼다. 제로 웨이스트 뷰티 브랜드 ‘시타’는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을 분해한 기업으로 블룸버그와 UN에서도 주목한 바 있다. 시타는 친환경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모든 제품을 만들고, 공병을 수거해 친환경 퇴비로 분해한다. 자연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사이클을 개발해 버려지는 것이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진정으로 다음 세대를 위한 제품은 다음 세대에 존재하지 않아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자신감 뒤에는 1년을 투자해 시타의 독자적 생분해 및 퇴비화 기술을 만든 노력과 진정성이 있다. 시타는 완전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할 뿐만 아니라 비건 성분을 고집하고, 업사이클링 향료로 바디케어 제품을 만들고, 수익금의 일부는 해양 생태계 복원, 미혼모와 재난민 지원 등 선한 영향을 주는 소셜 프로젝트에 쓰고 있다.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에서 플라스틱 처리 과정부터 지구와 사회를 위해 기울이는 노력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공유하며, MZ 세대의 두터운 지지를 받고 있다.
적절한 판로가 없어 헐값에 처분되는 못난이 채소를 구출해 소비자에 전달하는 ‘어글리어스’
(출처: 어글리어스 공식 홈페이지)
운영 방식을 통해 패러다임을 바꾼 또 다른 사례로는 ‘어글리어스’가 있다. 어글리어스는 외형이 시장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버려질 뻔한 못난이 농산물을 구출해 종류별로 박스에 담아 보내주는 구독 서비스다. 못난이 농산물이 유통되면 폐기 비용을 줄여 환경에도 좋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유기농, 무농약 채소를 저렴한 가격에 받아 볼 수 있고, 농부 입장에서는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어 일석사조의 효과가 있다. 못난이 농산물의 스토리텔링만으로 어글리어스는 큰 마케팅 캠페인이나 광고 없이 유저들의 자발적 홍보와 입소문을 통해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시타와 어글리어스 두 브랜드 모두 소비가 늘어날수록 환경에 악영향을 주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어차피 써야 한다면 이렇게 쓰세요, 라이프스타일 안에 녹아들다
일회용품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시스템을 바꾸고, 문화를 만드는 ‘트래쉬버스터즈’
(출처: 트래쉬버스터즈 공식 홈페이지)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시타가 플라스틱을 생분해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면, 같은 목적으로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침투해 친환경적인 방향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브랜드도 있다. ‘트래쉬버스터즈’는 축제나 사내 카페처럼 일회용품이 쓰일 수 있는 환경에서 다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대신 제공한다. 2019년 서울인기 페스티벌에서 베타 서비스로 처음 다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대여해 주었고, 놀랍게도 쓰레기의 양을 98%나 줄이는 데 성공했다. 관객 반응도 뜨거웠다. 자발적으로 SNS에 홍보하며 축제 자체보다도 트래쉬버스터즈의 언급량이 많을 정도였다고 한다. 코로나 규제가 완화되면서 2022년부터는 에어하우스와 DMZ 피스트레인 등의 페스티벌과 함께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일회용품 쓰레기를 줄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
트래쉬버스터즈는 고스트버스터즈를 오마주한 귀여운 캐릭터와 강렬한 오렌지색의 브랜딩으로 관객들에게 유쾌하게 다가간다. 브랜드 자체의 매력으로 먼저 접근한 뒤, 일회용품을 대체하는 과정을 최대한 친근하고 편리하게 만들어 행동을 유발한다. ESG 메시지를 억지로 교육하지 않아도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친환경적인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다.
부족한 내용도 있는 그대로, 투명하고 친절한 정보 공유
표면적으로만 친환경이란 의미를 담은 그린 워싱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고객의 신뢰를 저버린다는 데 있다. 친환경이라고 믿고 구매했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을 때의 배신감에 괘씸죄까지 더해지면 SNS를 통해 부정적 여론이 형성될 리스크가 크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부족한 부분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고 친절하게 정보를 공유할 때 브랜드의 신뢰도와 고객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
‘GREEN-ER’라는 카테고리로 사용하는 원단, 소재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비건 잡화 브랜드 ‘무음’
(출처: 무음 공식 홈페이지)
‘Spread Green Vibes’라는 모토로 불필요한 오염 및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비건 가방 브랜드, ‘무음’의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는 ‘GREEN-ER’라는 탭이 있다. 이 탭을 누르면 별도의 노션 페이지에 무음이 사용하는 원단 및 소재가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다. 식물성 가죽과 재활용 원단을 봐도 신뢰가 가지만, ‘타이벡’을 설명하는 문구에서 더욱 믿음이 간다. “아직 타이벡을 환경친화적인 소재로 분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라고 타이벡이 환경에 야기하는 문제와 한계를 있는 그대로 설명한 뒤, 다른 합성섬유 대비 환경오염 요소가 적어 활용하게 되었다고 솔직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유한락스의 증정품 지급 방식이 트위터에서 화제가 된 적 있다.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별도 용기의 증정품을 본품에 더 담는 방식으로 변경했다는 안내 문구 때문이었다. 별도 용기에 넣으면 추가 증정이 된다는 점이 눈으로 보여 유리하지만, 티가 덜 나더라도 환경을 위해 선택한 유한락스의 행보는 7천 번이 넘게 리트윗되며 바이럴 되었고, 캐릿의 기사를 통해 한 번 더 알려지게 되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내세우고 싶지 않은 정보일지라도 투명하게 공개할 때, 도리어 그 사실을 발견한 누군가로부터 자발적 홍보가 시작된다. 브랜드가 앞장서지 않아도 고객들이 대신 나서주는 이상적인 마케팅이 펼쳐진다.
결국 리얼 그린 마케팅은 친환경을 트렌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철학으로 도입했을 때 가능해진다. 브랜드가 진정으로 환경을 생각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일관된 운영을 할 때, 마케팅에 애쓰지 않아도 진심을 알아본 사람들을 통해 자발적으로 알려진다. “소수의 부자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난한 사람으로 귀결되는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 형성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이본 쉬나드의 말처럼, 요점은 무조건적인 판매와 이윤 창출보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지는 데에 있다. 우리 브랜드가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지구를 위한다는 신념을 지키며 브랜드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정혜윤
10년 동안 국내외 에이전시 및 스타트업에서 기획자이자 마케터로 일했다. 2020년에 회사 생활을 졸업하고 독립 마케터이자 작가로 일하며 다능인을 위한 커뮤니티 사이드 프로젝트(sideproject.co.kr)를 운영하고 있다. 프로젝트마다 기획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프리워커 및 크리에이터들과 연합해 팀을 이뤄 일하는 사이드 콜렉티브의 대표이자 유튜브 알로하융 채널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퇴사는 여행>, <독립은 여행>, <오늘도 리추얼: 음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