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서 생존하기 위한 조건으로 많은 학자들과 기업인들은 ‘창의성’을 언급한다. 국내의 많은 대학교에서는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한다고 하고, 기업에서는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 시대의 흐름이 창의성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창의성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떠한 기업이 조직구성원들로 하여금 창의성을 발휘하게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이러한 물음에 간략하게나마 답할 것이다.
창의성은 ‘새롭고 가치 있는 아이디어 또는 작품을 생산하는 능력’이다. 창의성의 산출은 문화에 따라 다르다. 사모아 사람들의 문화는 무용에서의 창의성을 고무시키고, 발리 섬 사람들의 문화는 음악에서 창의성을 고무시킨다. 각 문화에서 창의성은 친숙한 주제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근거해 보면,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창의성은 그들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문화가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창의성에 관한 많은 개념들 중에서 중요한 요소는 ‘확산적 사고’이다. 확산적 사고는 여러 가지 다른 아이디어나 해결책을 제안하는 능력이다. 이에 반해 ‘수렴적 사고’는 한 가지 해결책만을 생각해내는, 좀 더 보편적인 능력이다. 이와 관련, 다음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어느 비오는 날 아침, 한 변호사가 자신의 아들을 차에 태워 학교에 내려주고 자신의 사무실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 때 전화가 오고 전화를 받은 변호사는 매우 놀란다. 전화내용은 변호사의 아들이 사고가 나서 병원 응급실에 있으니 빨리 오라는 것이었다. 변호사가 응급실에 도착하자 간호사가 먼저 변호사에게 묻는다. “당신 아들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간호사가 뒤이어 아들에게 묻는다. “당신 아버지가 맞습니까?” “아니오, 제 아버지가 아닙니다.”
그럼 변호사는 누구인가? 만일 이 문제의 답을 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답을 내지 못하는 사람은 수렴적 사고를 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관점에서 보는 확산적 사고’를 해야 한다. 답은 어머니이다.
확산적 사고의 세 가지 차원은 독창성·유창성·융통성이다. ‘독창성’이란 다른 무언가와 구분되는 새로운 반응이며, ‘유창성’은 한 범주 내에서 각각 다른 반응을 산출하는 것이고, ‘융통성’은 한 범주에서 다른 범주들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벽돌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을 말하라고 했을 때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반응을 보이면 이것이 독창성이고, 벽돌을 갖고 집을 지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하면 이것이 유창성이며, 집짓기 이외의 다른 영역들에 관해서도 제시하면 이것이 융통성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도 유창성이 확산적 사고를 가장 잘 예측해 준다.
아울러 창의성과 관련해 다섯 가지 요소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첫 번째 요소는 ‘전문성’으로, ‘잘 발달된 지식’을 말한다. 사람은 축적된 지식을 통해서 더 많은 정신적 도구를 사용할 수 있고, 이를 새로운 방식으로 통합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지식이 발달할수록 그 지식을 이용해 새로운 정보를 수용하거나 이해하는 것이 더 용이해지며 나아가서 이를 통합해 새로운 무언가를 산출할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두 번째 요소는 ‘상상적 사고력’이다. 이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보고 패턴을 인식하며 연결하려는 능력을 말한다. 창의적이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의 기본요소들을 숙지하고 나서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재정의하거나 탐색해야 한다. 일례로 코페르니쿠스는 먼저 태양계의 해와 행성들에 대한 전문성을 발전시켰고, 그 다음에 태양계를 지구가 아니라 태양의 주위를 회전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이는 사물을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보는 것과 직결된다.
세 번째 요소는 ‘모험적 성격’이다. 모험적 성격은 애매함과 위험을 인내하고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집단에 따르기보다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많은 발명가들처럼 많은 실패를 견뎌내는 기술을 갖고 있다.
네 번째 요소는 ‘내재 동기’이다. 사람들은 외부 압력보다 흥미·즐거움·만족 및 일 자체의 도전에 의해 주로 동기화될 때 창의성을 가장 많이 발휘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거나 돈을 버는 것과 같은 외재 동기보다, 자신의 일의 내적 즐거움과 도전에 초점을 맞춘다.
마지막 요소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촉진하고 지원하며 정교화하는 ‘창의적 환경’이다. 과학자와 발명가의 경력에 관한 연구들은 가장 창의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동료들로부터 조언을 구하고 도전을 받으며 지원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창의적 환경은 사람들을 외부 인정에 대한 근심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기업에서 창의성을 촉진하고자 하는 경영자는 내재 동기를 촉진하는 환경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경영자는 조직구성원들에게 자연적으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활동을 그들이 수행하게끔 만드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경영자는 조직구성원들에게 설정된 목표를 달성시키기 위해서 시간, 자유 및 자원을 제공해 줌으로써 성공적으로 창의성을 육성시켜 온 경영자를 모방할 수 있다.
3M 기업은 자사의 연구자들에게 즉각적 보상이 없는 창의적 과제들을 추진하는 데에 자신의 근무시간 중 15%를 사용할 수 있도록 고무시켰다. 이 기업의 11번째의 계율은 ‘새로운 제품 아이디어를 죽이지 마시오!’이다. 이처럼 창의성을 육성시키는 환경 속에서 오늘날 대부분의 사무실에서 사용되고 있는 포스트잇과 같은 창의적 혁신제품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3M은 다음에 소개할 기업들에 비하면 창의성을 발휘하게 하는 혁신적인 조직문화를 덜 갖고 있는 셈이다.
최고급 등산복에 쓰이는 특수 원단인 고어텍스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잘 알려진 고어텍스(Gore-tex)는 상사나 부하가 없는 수평조직을 갖고 있다. 조직구성원 모두가 동료로 불린다. 업무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자신이 스스로 일을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표준화된 고정 업무가 없다. 모든 직원들은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하여 그때그때 팀을 만들어 일한다.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린 직원이 그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이에 동조하는 직원들이 모여 팀을 구성해 그 아이디어를 갖고 작업을 한다. 또한 승진과 연봉은 동료들의 평가에 의해 결정된다. 이 기업은 1주일 중 반나절은 직원들이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장난 시간’을 만들었다. 고어텍스는 괴상한 기업이지만,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고 가장 효율적인 조직시스템을 구축했다.
인터넷 정보검색 기업인 구글(Google) 역시 관료주의를 과감히 없애고 어떤 직원이든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수 있게 검토·지원하는 제도를 갖고 있다. 구글의 조직은 ‘대학원 같은 기업’, ‘분권화된 수평조직’, ‘작고 자율적인 팀’, ‘직원들의 자율 보장’, ‘급여 차등화’ 등을 핵심으로 한다. 구글은 젊은 기업으로서 아직 커다란 시련을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기업보다도 적응력을 중시하는 경영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구글에 관해서는 좀 더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구글이 인터넷 검색 선발주자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든지 안다. 그 당시 검색업계 대표주자는 야후(Yahoo)였고, 인터넷 검색은 비즈니스 수익모델이 아니었다. 야후는 검색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수많은 방문자를 끌어들일 수 있었지만, 이를 활용해 경제수익을 창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인터넷 정보는 기하급수적으로 계속 증가하는 데 비해 정보검색은 어렵고 정확하지 않다는 사용자의 불만이 쌓여갔고, 이를 구글이 해결한 것이다. 즉 사용자(소비자) 관점에서 필요한 정보만 정확하고 빠르게 찾아주는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왜 야후와 같은 기업들은 인터넷 정보검색을 비즈니스 수익모델로 보지 못했는가? 이들은 사용자(소비자)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했다. 또한 정보검색이 다양한 서비스와 연계될 수 있음을 간과했다. 이들은 검색만을 보았지, 다른 서비스와의 연관성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구글의 성공 원인은 한마디로 ‘변화의 본질’을 꿰뚫어 본 것이다.
1980년대 IBM은 컴퓨터 내부의 운영체제가 하드웨어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해 MS에게 주도권을 뺏겼고, MS 역시 훗날 소프트웨어에만 과도하게 집중한 나머지 다가오는 인터넷 혁명에 대해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결과 넷스케이프(Netscape)에게 웹브라우저 개발 주도권을 뺏겼다. 2003년 MS는 구글을 보면서 검색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였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홀푸드마켓(Whole Foods Market)은 미국의 유기농 식품점 체인 기업으로, 대규모 소매상 중에서 직원의 열정과 참여의식이 가장 높은 기업 중의 하나이다. 홀푸드마켓에서는 모든 직원이 팀 단위로 고용과 해고, 물품 구매와 같은 재량권을 갖는다. 보통 한 매장은 수산물·농산물·계산대 등 평균 8개 팀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어떤 물건을 들여 놓을 것인가부터 가격책정, 직원 인사까지 결정할 수 있다. 월급도 팀 단위의 실적에 연동된다. 기업의 목표는 ‘완벽한 음식, 완벽한 직원, 완벽한 지구’로, 조직구성원들에게 재량권과 정보를 충분히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열정을 끌어내어 이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브라질의 제조업체 셈코(Semco)는 본사의 본부 조직을 해체했고, 직원들이 스스로 근로시간을 결정하며, 심지어 월급도 직원 스스로 결정한다. 아울러 동료들을 납득시킬 수만 있으면 직원들이 여행도 마음대로 갈 수 있다. 이러한 경영혁신을 통해 2007년까지 연평균 40%의 성장을 이룩했다. 아마도 지구상에서 셈코가 가장 괴상한 기업일 것 같다.
지금까지 언급한 기업들과는 달리, 이제부터 언급할 기업들은 화려한 과거를 가졌지만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에는 혁신적이며 창의적이라는 칭송이 자자했지만, 현재의 상황은 좋은 편이 아닌 것이다. 왜 그럴까?
델(Dell)컴퓨터의 사업모델은 직접 생산하지 않고 범용 부품을 사용한 제품을 설계해서 인터넷을 통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세계 최대 PC 메이커가 되고, 창업자는 억만장자가 될 정도로 극찬을 받았던 델의 사업모델은 그러나 유통기한이 끝나가고 있다. HP에서 델과의 가격 차이를 이미 줄였고, 애플의 멋진 디자인이나 새로운 발상의 음악 매장이 소비자의 매력을 끌고 있다. 현재는 HP에게 업계의 리더 자리를 내주고, 주가는 하락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제까지는 ‘이단’이었던 것이, 일단 받아들여져서 햇빛을 보고나면 그 다음에는 안주하고 독선적으로 되고 만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기업혁신은 정체되고 성장곡선은 평평해진다.
포드나 GM도 한때는 위대한 경영관리의 혁신, 그 자체였다. 포드의 Moving Assembly Line과 수직통합, GM의 사업부제 등은 그야말로 대단했었다. 그러나 이 두 기업이 진정한 창의적인 경영관리 혁신을 주도한 이래 거의 100년 가까운 시간이 혁신적인 변화 없이 지나갔다. 소니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과정이 다른 기업들보다 몇 년이 뒤졌다.
경영 결정을 해야 하는 소니의 최고 경영진이 거의 대부분 50대 이상의 아날로그 세대였다. 이들이 디지털과 소프트웨어로의 변화를 감지하고 수용하며 대처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은 너무 당연하다. 만일 소니가 최고 경영진만이 아니라 그 기업의 모든 구성원들의 아이디어를 구하고 결정에 참여시켰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들과는 달리, 앞에서 언급한 고어텍스·구글·홀푸드마켓·셈코 등과 같은 기업들의 공통점은 조직을 최대한 수평적으로 만들어서 조직구성원 누구든지 기업의 경영 결정에 참여하게 하여 마지막 직원 한 명의 아이디어까지 최대한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영혁신을 통한 창의적 조직문화를 형성해 조직구성원으로 하여금 창의성을 충분히 발휘하게 만든 것이다. 한편 이러한 기업들은 ‘자기관리(Self-Direction) 작업집단’으로 알려진 관리기법의 기본 틀을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기관리 작업집단의 구성원들은 신입사원의 선발, 고용, 훈련에서부터 휴가까지 직무의 모든 측면을 관리, 통제, 감독할 수 있다. 즉 작업집단에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아울러 자기관리 작업집단은 상사에 의해 관리되는 작업집단과는 달리 근로자들의 분별력과 책임감을 요구한다. 또한 조직으로부터 생산목표와 전문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적절한 물질적 자원에 대한 뚜렷한 방향과 기술지원팀을 필요로 한다.
결론적으로 구글 등의 기업들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경영혁신을 통해 창의성을 발휘하게 하는 조직문화의 선구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들 기업에서 현재 진행 중인 경영관리 혁신의 실험을 통해서 우리는 교훈(본받을 교훈과 주의해야할 교훈)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경영관리 이론에 반기를 들어도 정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하며 반신반의하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의 변화에 맞춰 실시간으로 창의적인 혁신을 쏟아내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조직구성원들의 창의성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조직문화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양 윤 |이화여대 심리학전공 교수/ yyang@ewha.ac.kr 성균관대 산업심리학과 및 동 대학원 심리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Kansas State University에서 소비자심리학을 전공,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소비 자광고심리학회장을 역임하는 등 소비자광고심리 분야의 연구활동도 활발히 펼치 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