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박윤진 (cr5팀 대리)
내 아이는 영재임에 틀림없다는 부모의 착각 아래 우리 모두는 길러졌고, 대학 문에 들어서자마자 멋진 이성 친구가 생길 거라는 착각이 학습의 동력이었다. 거울 앞에선 남자들은 ‘이 정도면 나도 꽤 괜찮은 얼굴’이라 착각하고, 어쩌다 잘 나온 사진 한 장에 여자들은 자신의 미를 착각한다.
착각과 현실의 경계가 분명치 않은 이상, 착각은 즐거움의 다른 말이 된다. 쉽게 착각에 빠지는 사람일수록 쉽게 즐거움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난 우월한 DNa라고, 현존하는 엄친아가 여기 있노라고, 왜 다들 나만 쳐다보는 거냐고’. 오늘도 허우적대는 착각의 늪이야말로 인생이 제공한 즐거운 판타지다. 절묘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기막힌 광고, 오늘은 그 즐거운 아이디어를 살펴보자.
광고 1 : ‘무도회장인가’하는 착각 _ T-mobile : Life’s for sharing
출근길 지하철역,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 누군가 춤추기 시작한다, 누군가 또 누군가…. 수백 명의 사람이 같은 춤을 춘다. 내가 아직 잠이 덜 깬 걸까? 길을 잘못 든 걸까? 1월 15일 오전, 당신이 리버풀 스트리트역에 있었다면 실제로 이런 착각에 빠졌을지 모른다. Saatchi & Saatchi UK는 런던의 한 지하철역에 350명의 댄서를 배치했다. 행인인 척하던 댄서들은 갑작스레 흘러나온 음악에 맞춰 춤추기 시작했고, 숨겨진 카메라는 행인의 반응을 담았다. 3분짜리 게릴라 형식의 이 광고는 삶 속에서 마주치는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함께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광고 2 : ‘시계가 물고기’라는 착각 _ IWC Watch : Fish
수심 2,000m에서도 끄떡없는 방수 시계 광고를 의뢰 받은 독일의 한 크리에이터. 시계를 찼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새로운 아이디어 찾기에 골몰했다. 그리고 잠깐의 커피 브레이크. 자리로 돌아온 그는 책상 위에 물고기 한 마리가 놓여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물고기 형상을 한 시계 디자인에서 싱싱한 아이디어를 건져 올린 대행사는 Jung von Matt, Germany.
광고 3 : ‘구두가 드레스’라는 착각 _ STRADA : Like a black dress
패션 전도서 <보그> 3장 1절 말씀에 따르면, 여자에게는 반드시 갖춰야 할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두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핏이 좋은 블랙 드레스 한 벌(패션 용어는 꼭 영단어를 써야 맛이 산다), 또 하나는 제대로 디자인된 블랙 하이힐 한 켤레라고 했다. 이탈리아의 신발 브랜드인 SRTADA도 두 가지가 여성에게 얼마나 중요한 교집합이 되는지 알고 있었던 걸까? 몸에 잘 되는 드레스만큼이나 발에 착 붙는 슈즈 광고.
광고 4 : 법의 매니큐어’라는 착각 _ Rimmel Quick Dry Nail Polish : Fast
인간이라도 서 있는 걸까 착각하게 하는 이 광고는 JWT London의 아이디어다.
Rimmel은 길에 부어진 채 삽시간에 굳어버린 듯한 제품 설치물을 미끼로, 호기심 가득한 젊은 여성들의 눈길을 잡는 데 성공했다. 순식간에 마른다는 제품의 베네핏을 강렬한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다.
광고 5 : 마지막 페이지’라는 착각 _ WWF : THE END
책을 읽는 도중 갑자기 마지막 페이지가 나온다면? WWF/A d e n a는 마드리드 서점의 책 속에 한 장의 종이를 삽입했다. 같은 재질, 같은 무게, 같은 폰트로 정교하게 만든 이 페이지에 쓰인 문구는 ‘THE END’. Contrapunto, Spain이 만든 이 캠페인은 인류가 환경 파괴를 멈추지 않으면 한 권의 책도, 지구도 모두 끝날 수 있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았다.
흥미로운 설문 조사 결과 하나. 절반 정도의 직장인은 자신을 회사의 핵심 인재라고 생각한다. 기업 인사 담당자와 CEO가 전체의 10~20%만이 핵심 인재라고 생각한다는 결과와 다르게 말이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자기 봉사적 성향’이라고 진단한다.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만 왜곡해서 받아들이며, 자신을 과대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자신을 핵심 인재라고 착각하면 어떻고, 자신에게 좀 봉사적이면 어떠랴. 세상을 불편하게 하는 악의적 착각만 아니라면, ‘을’의 삶에 지친 광고인은 선의의 착각을 좀 해도 되지 않을까? 오늘 나의 아이디어가 바람과 함께 사라질지라도 내일은 내일의 아이디어가 떠오를 거라고, 그 아이디어가 세상을 움직일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