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두ㅣ영국법인 국장
우연(優然)과 필연(必然)은 한 단어만 다르지만 그 한단어의 차이가 결과적으로 전체 의미를 달라지게 하듯이, 광고업게의 해묵은 쟁점 중의 하나인 컨셉트 모방(Copycat)도 애초에 모방할 의도가 있었느냐가 중요한 잣대라 할 수 있다. 그러한 현실에서는 흑과 백으로 판가름하기 어려운 상황이 너무나 많듯 이 광고 업계에서도 개연성을 의심해 볼 수는 있다. 길을 걷다가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과 전혀 연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연치고는 너무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보았을 때처럼,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따지기보다는 그 우연성 자체가 재미있고 흥미로운 광고들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디테일로 승부하는 광고
디테일(Detail)은 식품과 같은 저관여 상품보다는 자동차와 같이 소비자의 상품 관여도가 높고 내구재 분야에서 타사 제품 대비 차별적 경쟁력을 강조하기 위한 개념으로 종종 애용되는 컨셉트중의 하나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8월호에서 선보인 바 있는 영궁의 국민차 포츠포커스(Ford Focus)이다. 마치 오케스트라 단원처럼 보이는 여러 사람들이 분해된 자동차의 여러 파트(법포, 문짝, 배기통, 타이어휠 등)를 활용해 함께 음악을 연주하고 그 중간중간 품질제고에 공을 들이는 과정을 보여준 포드포커드광고는 "Beautifully Arranged (아름답고 조화롭게 잘 만들어진)'란 슬로건으로 마무리 되면서 그들의 차별점이 디테일에 꼼꼼하게 신경 쓴 것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도록 해준다.
피아트는 1899년 창립되어 '올해의 유럽 자동차(The European Car of The Year)' 및 '유럽 최고의 자동차(Europe`s Premier Trophy Award)'를 12번이나 수상한 이태리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다. 보유한 자동차로서는 회사이름을 딴 피아트 시리즈(124,127,128에서 2008년 피아트 500까지)외에 Fiat Uno, Fiat Punto, Fiat Bravo와 같은 소형차 시리즈, 그리고 역삼각형의 독특한 라지에이터 그릴이 특징인 알파 로메오(Alfo Romeo)등이 대표적이다.
이중 피아트 브라보(Fiat Bravo)는 디테일이란 컨셉트를 좀 더 직접적으로 광고에 활용하고 있다. 주차장에 조용히 있던 자동차가 마치 마술처럼 스스로 분해된다. 바퀴에서 부품까지 모든 디테일한 부품들이 분해되어 공중에 나란히 정렬되과, 주인인 듯 보이는 사람이 다가오자 마술처럼 그 모든 부품들이 다시 조립된다. 그리고 흐르는 메인 메시지 'Everypart works beautifully(모든 부품들이 멋지게 작동된다)'를 통해 디테일이란 컨셉트를 담아내는 또 다른 크리에이티브의 맛을 보여준다.
건축물을 의인화(擬人化)한 광고
2008년 9월호에서 선보였던 닛산(Nissan)의 콰시콰이(Qashiqai)는 아예 더 나아가 도심의 빌딩들을 의인화시킨 만화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광고이다.
'Urban Proof(도심에 강한)'란 컨셉트의 주인공은 분명 도심의 인공 장애물(?)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는 콰시콰이 자동차가 분명하지만, 콰시콰이의 주행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기 위해 빌딩의 계단, 옥상의 자동차 그리고 고층 크레인 등을 질투심과 의지를 가진 사람처럼 표정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빌딩들은 놀랍고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주연 못지않은 조연임에 틀림없다.
빌딩이 기본적인 구조로 갖고 있는 창문과 문을 사람의 눈과 입과 같이 연상되도록 유도하는 또 다른 광고로서 영국의 대표적인 통신사업자인 O2브로드밴드(O2 Broadband)의 광고를 들 수 있다. O2는 2007년까지 유지했던 자사의 브랜드 슬로건 (See, What you can do)을 2008년 전격적으로 교체(We`re better connected)했는데, 그 배경은 무선망(Wireless) 사업에서의 시장 리더십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2007년부터 시장점유율 1위 유지)이자, 그러한 자신감을 차세대 사업인 인터넷(Broadband)에까지 확장하려는 야심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행복한 집(Happy Home)'이란 제목으로 선보인 O2의 브로드밴드 광고는 인터넷 서비스가 형편없는 집과 O2의 브로드밴드가 있어 행복한 집이란 비교적 단순한 대칭구조로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울하고 불행해 하는 집과 반대로 밝고 즐거운 집의 모습을 마치 사람의 얼굴처럼 빛(Lighting)과 배경(Miseen scene)연출로 잘 보여주고 있다.
추억 속의 장면들을 재활용한 인형 애니메이션(Puppet Animation) 광고
스펙세이버스(Specsavers)는 세계 최대의 광학, 안경 소며유통기업(Optical Retailer)으로 영국에서의 시장점유율이 35%(안경과 콘텍트렌즈의 경우 70%의 점유율)로 영국에만 1000개의 유통점을 보유하고 있는 4대 메이저 업체 중 하나이다.
이 기업은 업계의 선두라는 위상과 소매유통(B2C)이라는 특성에 걸맞게 타 경쟁사 대비 압도적인 물량의 광고
커뮤니케이션을 전개하는 것으로도 명성이 자자한데, 2002년에 이미 2000만 파운드 (한화 약 400억 원, 이중 62%가 TV로 집행) 를 광고비로 집행했고 2006년에는 2700만 파운드 (한화 약 540억 원)를 집행, 영국 내 100대 광고주(광고비 집행기준)중 당당히 46위에 이름을 올렸다.
물량에서뿐만 아니라 광고의 '화제성'이란 측명에서 스펙세이버스는 성공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2007년 선보인 TV광고는 1960년대 유명했던 '썬더버드(Thunderbirds)'라는 SF TV시리즈를 인형 애니메이션 기법(Puppet Animation) 그대로 재현(Parody)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옛 추억(마치 한국에서 7080음악이 다시 유행하듯)을 불러 일으킴과 동시에 제품의 소구점'Free Reactions'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멋진 기교를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광학,안경 소매유통 기업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으로 D&A가 있다. D&A는 창업자인 '돌런드(Dollond)'와 돌런드가 창립(1750년)한 기업을 합병(1927년)한 주인공인 '애치슨(Aitchison)'의 이름에서 두 사람의 이니셜을 딴 것으로 영국 내 380개 지점과 2500명의 직원, 그리고 안경과 콘텍트렌즈(Spectacles & Contact Lenses) 시장 점유율이 70%에 달하는 등 규모 면에서도 스펙세이버스와 쌍벽을 이루는 4대 메이저 중의 하나이다.
두 기업은 분명 비즈니스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경쟁자이고 대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에서 차별화를 위해 경쟁하는 관계임에 틀림없지만 흥미롭게도 두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에는 묘한 유사점이 많다는 것이다.
첫째는 두 기업 모두 인형 애니메이션(Puppet or Clay Animation)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두 기업 모두 과거 유명했던 TV시리즈를 패로디하고 있다는 점이다.(이미 언급했듯 스펙세이버스는 "썬더버드"라는 1960년대 SF시리즈를 패로디했고, D&A는 1989부터 2001년까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베이와치(Bay watch)'-한국에서는 키트라는 인공지능 자동차를 몰던 주인공인 데이비드 핫셀호프(David Hasselhoff)가 주연한 드라마로 더 유명한)를 패로디했다.
물론 패로디를 하더라도 자신들만의 브랜드 메시지(D&A의 브랜드 슬로건은 'We see eyecare differently'를 재치있게 스토리 속에 버무리는 재능도 세 번째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