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꿈’과‘사회’ . 정보화에 지쳐서, 영혼의 꿈을 찾아서…
요즘 ‘하이 컨셉트(High Concept)’를 활용한 마케팅이 늘어나고 있다. 하이 컨셉트란 트렌드와 기회를 감지하고 서로 무관해 보이는 아이디어를 결합해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 내는 것을 말한다. 이제 지식 근로자가 주도하는 정보화시대는 일반화되어 더 이상 의미를 상실한다는 것이며, 드림 소사이어티 개념과 흡사하다.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라는 말은 덴마크 코펜하겐 미래학연구소 소장이며 유럽미래학회 자문위원인 롤프 옌센(Rolf Jensen)이 1999년에 발간한 저서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처음 만든 말이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정보통신혁명이 폭발적으로 전개되고 있었고, 급속도로 발전하는 각종 기술이 세상을 집어삼킬 만한 기세였다.
이런 상황에서 롤프 옌센은 엉뚱하게도 “정보사회의 태양이 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앞으로의 시대는 기술과 이성의 시대가 아니라 오히려 감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용감하게 주장했다. 그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돈키호테 같은 발상이었지만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그의 당돌한 의견에 동조했고, 1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그의 주장은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주장하는 드림 소사이어티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 ‘꿈과 감성을 파는 사회’를 말한다. 즉 ‘감성시장(Emotional Market)’이다. ‘감성’하면 어떤 키워드가 연상되는가? ‘이성의 반대말, 심리, 마음, 우뇌, 오감, IQ와 대조되는 EQ(Emotional Quotient), 그리고 상상력, 창의력, 이야기, 행복’ 같은 것이 생각나는가? 감성을 마케팅에 연결한 감성 마케팅 관점에서 보자면 ‘컬러·디자인·아트·조명·잠재의식·스토리텔링·체험’이 생각날지 모른다.
또 감성을 자기계발과 연결한다면 ‘설득·이미지·열정·자기암시’ 같은 키워드가 생각날 수 있다. 심리학을 잘 아시는 분들은 감성지능(EQ)을 강조하는 심리학자인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과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가 곧장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감성이 화두에 자주 오르는 것일까? 우선 과도한 이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작용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그동안 정보통신기술을 필두로 바이오기술, 환경기술, 우주항공기술, 에너지기술, 나노기술, 뉴로기술 등 온갖 기술이 현기증 나는 속도로 발전해왔다. 그리고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성과 논리로 중무장하여 똑똑한 사람들이 양산되었다. 예전에는 전반적으로 과학기술이 낮은 수준이었고 똑똑한 사람들이 적었기 때문에 이성과 논리가 중시되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 반대인 감성이 부족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감성이 이처럼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둘째, 감성의 상대적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사람들이 감성을 풍부하게 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더욱이 심리학과 인지학, 의학의 발달로 인해 감성도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또 성공의 중요요건으로 ‘꼴꾀끼끈꿈깡’이 보통 거론되는데, 사실 알고 보면 이 모두가 감성과 관련성이 많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 ‘꼴’은 성형수술에 의해 순식간에 달라질 수도 있고, ‘끼’도 댄스교육을 받아 몸에 체화시킬 수 있다. ‘꿈’ 역시 비전을 설정하고 욕망을 부풀리면 비전의 실현에 발동을 걸 수 있다. 사람간의 끈끈한 네트워크도 감성적인 요인에 의해서 얼마든지 강화될 수 있다. 이처럼 논리만 학습 대상이 아니라 감성도 얼마든지 학습 대상이 되고 있다.
셋째, 이제는 감성 자체가 우리에게 중요한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상상력이 풍부하면 기존의 여러 가지를 적절히 섞어 새로운 컨셉트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 과거와는 달리 기업은 돈·인력·기술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기술이 없어서 무엇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회사를 혁신으로 이끌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신제품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감성에 올인하고 있는데 기업들이 감성을 마케팅에 활용하지 않을 리가 없다. 어떤 형태로 감성마케팅을 하고 있을까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기업들은 자사 브랜드의 감성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미국 브랜드인 아베크롬비(Abercrombie)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섹시한 이미지를 풍기려 노력한다. 아베크롬비 매장에 가면 여기저기에 남녀들의 섹시한 사진, 마네킹들이 눈에 많이 띈다. 섹시함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아트마케팅도 격조 있는 감성마케팅의 한 방법이다. 최근 (주)LG는 명화를 활용해 자사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명화 속에 자사 브랜드를 적절하게 노출시켜 생활 속의 노블한 전자제품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모토롤라· 샤넬· 리바이스 같은 브랜드들도 아트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전개했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구사하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자사 브랜드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비자에게 알리기 위해 스토리를 활용하는 것이다. 회사와 브랜드에 얽힌 이야기를 문자·책·이미지·만화·동영상·영화 같은 다양한 포맷으로 만들어 적절한 채널을 통해 알리는 것이다. 각국에서 ‘이야기산업’이 매우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특히 관광과 많이 연계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현대문학의 태두인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는 영어권 국가에서 인기가 매우 많다. 아일랜드 출신인 그는 자신의 소설 <더블린 사람들>이나 <율리시즈>에서 더블린을 포함한 아일랜드 지역에 대해 많이 묘사했고, 관광객들은 이 소설에서 묘사한 지역을 많이 방문하는데, 이 관광시장의 규모가 상당히 크다. 그래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를 아예 ‘제임스 조이스 산업’이라고도 부른다. ‘이야기의 파워’다.
요즘 ‘하이 컨셉트(High Concept)’를 활용한 마케팅이 늘어나고 있다. 하이 컨셉트란 트렌드와 기회를 감지하고 서로 무관해 보이는 아이디어를 결합해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 내는 것을 말한다. 이 개념은 2006년 다니엘 핑크의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처음 제시된 개념으로, 농경시대, 산업화시대, 정보화시대에 이어 하이 컨셉트 시대가 다가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지식 근로자가 주도하는 정보화시대는 일반화되어 더 이상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즉 드림 소사이어티 개념과 흡사하다. 오늘날의 소비자들이 경험·디자인·스타일·스토리 등 감성적, 무형적 가치를 중시하게 됨에 따라 창의적, 독창적, 전뇌적 사고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조 근로자’가 갈수록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맞추어 기업들도 하이 컨셉트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토크, 플레이, 러브(Talk, Play, Love)’라는 하이 컨셉트를 내건 휴대폰이 그렇고,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 <트랜스포머>도 하이 컨셉트의 결과물이다. <트랜스포머>는 로봇시대의 개막이라는 시대적 트렌드와 만화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영화산업의 트렌드 속에서 아직 거대 로봇을 테마로 한 SF영화가 없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이 점을 잘 활용해 1980년대 어린이용 만화영화와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결합시켜 거대 로봇 영화를 만들어 대박을 낸 것이다.
최근 들어 잠재의식을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는 기업들이 점차 늘고 있다. 어느 소비자든 그 나라의 역사나 가치관의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면 크라이슬러의 SUV 지프 랭글러(Wrangler)는 미국에서 판매할 때에는 ‘말(Horse)’과 동일시하고, 유럽에서 판매할 때에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시 유럽을 해방시킨 미국 같은 해방자(Liberator)와 동일시하는 전략으로 판매를 크게 늘린 바 있다. 이른바 ‘컬처코드(Cluture Code)’식 접근방법이다. 우리는 인도에서 IT산업이 매우 발달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IT 교육의 최고 메카인 IIT(인도공과대학; India Institute of Thech-nology)가 대표적인 기수다. 하지만 뭄바이를 중심으로 한 영화산업인 ‘발리우드(Bollywood)’의 파워는 대단하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뮤지컬 스타일의 영화만 많이 만들었지만 이제는 훨씬 다양한 영화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인도 사람들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처럼 전 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들이다. 영화야말로 스토리텔링 비즈니스이다. 사람들에게 꿈을 주고 감성을 북돋우고, 흥분케 하는 원천이다. 정보화시대 이후에 드림 소사이어티가 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이 세상에는 ‘설득산업’이라는 것이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매클로스키(David McCloskey)는 미국 국민 총생산 중의 28%가 상업적 목적의 설득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업종이 설득산업에 들어갈까? 우선 광고회사, PR회사, 마케팅 회사가 여기에 해당된다. 광고주 대신에 광고와 이벤트, 홍보물을 만들어 소비자가 광고주 상품을 구매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회사의 목적이 관철되도록 관련 업계와 정부기관에 로비를 하는 로비스트들도 설득산업 종사자이다.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FP(재무설계사), 홈쇼핑TV에서 상품을 소개하는 쇼호스트, 아웃바운드 콜을 하는 콜센터직원도 설득 업종에 근무하고 있다. 의뢰인으로부터 소송 의뢰를 맡아 대신 변론을 하는 변호사도 그렇고, 다른 사람에게 호감 가는 외모와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성형외과의, 이미지 컨설턴트도 예외가 아니다.
이처럼 설득 업종의 예를 보다보면 우리 주위의 상당 직업들이 설득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컨설팅업, 카운슬링업, 자선을 위한 모금업도 당연히 설득업에 속한다. 그러면 설득을 잘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논리를 의미하는 로고스(Logos), 감성을 의미하는 파토스(Pathos), 신뢰를 의미하는 에토스(Ethos)가 필요하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논리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상대편의 수준이나 분위기에 따라 나의 메시지 전달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상대편으로부터 얼마나 신뢰를 받고 있는가에 따라 설득의 정도가 달라진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에게 어느 신문기자가 물어보았다. “노벨상을 받으시니 어떤 점이 달라졌습니까?” 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두 가지가 변했다고 말했다. “하나는 내 강연료가 예전에 비해 크게 뛰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변화는 예전에 비해 나의 말에 대해 사람들이 훨씬 열심히 듣더군요. 내가 틀리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노벨상을 받으면 앞서 말한 설득의 세 가지 요소 중에 신뢰도가 훨씬 올라가기 때문이다.
신성장 이론가로 유명한 경제학자 폴 로머(Paul Romer)는 ‘무엇을 만드는 것’을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것’에 비유했다. 음식 재료는 원료이고, 프라이팬은 물적 자본이며, 요리를 하는 사람은 인적 자본이고, 요리 레시피는 바로 지식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음식을 맛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요리하는 사람의 손끝에서 나오는 맛이 그것이다. 남미의 어떤 영화를 보면 사람의 손끝에서 얼마나 놀라운 것들이 나오는지 실감할 수 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상대편에 대해 사랑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모두 사랑에 빠진다. 반면에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상대편을 증오하면서 음식을 만들면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은 모두 배탈이 난다. 놀라운 결과가 아닌가. 이처럼 우리가 품고 있는 감성은 사람과 세상을 바꾼다.
정보통신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콘텐츠로 나누어 본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웨트웨어(Wetware)’다. 웨트웨어는 우리의 말랑말랑한 뇌, 유연한 손동작, 그리고 손끝에서 나오는 약간의 땀을 말한다. 이런 땀이 바로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강조하고 있는 감성이다.
김민주 |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 / mjkim8966@hanmail.net 서울대 경제학과 및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은행, SK그룹을 거쳐 더컨텐츠컴퍼니, 유달리커뮤니케이션즈 대표를 역임하고 현재 리드앤리더 대표(www.emars.co.kr)로 활동하고 있다. <마케팅 어드벤처 1, 2> <성공하는 기업에는 스토리가 있다> <3년 후 대한민국 트렌드> 등의 저서를 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