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전문가인 W-insights 김미경 대표는 “오피스 아이돌은 최근 화두로 떠오르는 '펀 경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조직원들이 신나고 즐겁지 않으면 창의적 생각이 나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경기침체의 긴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연봉 동결과 보너스 삭감 탓에 지갑은 얇아지고. 뉴스에서도 어두운 소식만 전해지는 듯한 요즘. 잦은 야근과 과도한 업무량, 불안한 앞날은 직장인들의 마음까지 무겁게 한다. 자주 무기력감을 느끼고 신경이 예민하며 삶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면 '직장인 사춘기'에 접어들었다는 증거. 그렇다고 ‘이 놈의 회사 때려치우고 말지’라는 말을 달고 산다면 사내 ‘비호감’으로 찍힐 수밖에 없다.
이와 반대로 주변에 활력을 불어넣고 직장 내 스타로 사랑받는 사람은 누구일까? 각종 모임에 빠져서는 안 되는 사람, 무대에 오르면 아이돌 그룹 부럽지 않은 노래와 춤 솜씨를 자랑하는 사람, 소위 ‘오피스 아이돌(Office Idol; 사무실을 뜻하는 Office와 우상을 뜻하는 Idol을 합친 신조어)’이라 불리는 분위기 메이커들이다.
그들은 ‘일이나 잘하지 굳이 저렇게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핀잔에 “음악으로 스트레스 날리고, 일할 때 신바람 나고, 동료들과의 사이는 돈독해진다”고 입을 모은다.
‘업무 방해’ 우려 씻고 능률도 up!
지난해에는 ‘오피스 아이돌’을 뽑는 무대도 열렸다. 청계천광장에 준비된 300여 객석에는 빈 곳이 없었다. 서서 구경하는 관객만 해도 100명은 족히 넘었다. 이 대회에 참가한 삼양그룹 사내밴드 락슈가(Rock Sugar)의 멤버들은 “밴드 활동이 회사생활을 즐겁게 만든다”고 말했다.
드럼을 맡고 있는 리더 최성곤(34) 씨는 “처음 결성할 때만 해도 음악 때문에 일은 뒷전이 될까봐 회사 측에서 걱정했었다”면서, “음악을 하면서도 업무실적으로 인정받겠다는 각오로 노력한 결과 밴드 결성 전보다 더 높은 실적을 올렸다”고 말했다. 최씨는 “지금은 신입사원 환영회에서 40분 동안 공연할 정도로 사내에서 인기”라면서, “회사 홍보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맡고 있는 공식 사내밴드”라고 설명했다. 보컬인 유현석(29) 씨는 사내밴드 활동을 “일상을 벗어나 도전하는 기회”라고 했고, 기타를 맡고 있는 정혁재(30) 씨는 “지루한 회사생활이 재미있어졌다”고 전했다. 또 입사 10개월 차인 김선정(여•22) 씨는 “입사하자마자 밴드 활동을 시작해서 회사 적응이 빨랐다”고 돌이켰다.
오피스 아이돌 행사를 기획한 tvN채널의 정성훈 PD는 “오피스 아이돌 선발대회에 한 달 동안 500팀 넘게 참가신청을 했다”면서, “아나운서•논술학원 원장•초등학교 교사•공사 직원 등 다양한 직종이 참여했다”고 전했다. 정 PD는 “바쁘게 생활하면서도 음악을 즐기는 직장인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면서, “사내에서 ‘명물’로 꼽히는 직장인들이 대거 참여해 아마추어 공연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오피스 아이돌은 봉사활동에도 앞장선다. 음악을 즐기는 동시에 이웃사랑도 실천하는 것이다. 현대모비스가 자랑하는 사내 밴드 ‘모비션’은 지난 연말 홍대 앞 클럽에서 정기공연을 펼치고 수익금 전액을 불우이웃돕기에 쾌척했다. 금호석유화학의 사내밴드인 ‘Entheos’,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밴드 ‘VFR’ 등 금호아시아나 그룹 내 4개 밴드도 불우이웃돕기를 위한 자선콘서트를 열었다. 마찬가지로 수익금 전액은 사회복지관에 기부했다.
사무실 밖으로 자유롭게, ‘직밴’활동
건물 지하마다 연습실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악인들의 사랑을 받는 홍대 주변. 토요일 오후가 되면 이 일대에서 기타를 매거나 드럼 스틱을 든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띈다.염색과 피어싱으로 자유로운 영혼을 나타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직딩 스타일’은 오히려 튈 수밖에. 까만 가죽 재킷을 입고 지하연습실로 향하던 남성 역시 직장인이었다.
직장인 밴드로 활동을 한 지 2년이 넘었다는 김진우(35) 씨는 “연습이 있는 토요일만 기다려진다”면서 “우리 팀은 5명인데 모두 다른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멤버들이 모두 모이기가 쉽지 않아서 각자 부족한 부분은 평일에 따로 연습하고, 토요일 날 4시간 정도 모여서 맞춰 봐요. 아마추어라고 대충하진 않지요. 1년에 한 번 정기공연도 하고, 틈틈이 찬조공연도 하니까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준비해야죠. 회사에도 밴드가 있긴 한데, 아무래도 불편하더라고요. 상사 눈치 안 보고 음악하려면 직밴(직장인 밴드)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사무실 밖으로 나온 ‘직밴’은 정기공연도 하고 찬조출연도 하면서 준 프로급 실력을 자랑한다. 자기만족에 그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시민참여 무대를 적극 활용하는 직밴들도 있다.
지난해 SBS FM 라디오 ‘김창렬의 올드스쿨’에서는 실력 좋은 직장인 밴드를 소개해 청취자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직밴에 대한 관심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뮤지션 커뮤니티 사이트인 ‘뮬(www.mule.co.kr)’에는 직장인 밴드 멤버를 구하는 게시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올 여름 클럽공연을 목표로 달리실 분 전화주세요”와 같은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업무협조 잘되고 동료애도 돈독해져”
실제로 직장 내 분위기를 책임지는 오피스 아이돌 같은 분위기 메이커들이 필요할까? 직장인 10명 중 9명은 회사에서 이 같은 분위기 메이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인(www.saramin.co.kr)에서 직장인 842명을 대상으로 “회사 내에 분위기 메이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설문을 진행한 결과, 무려 93.1%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분위기 메이커가 필요한 이유로는 ‘회사 분위기가 좋아지기 때문에’가 44.1%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는 ‘업무협조가 잘되기 때문에(20.5%)’,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해소되기 때문에(20%)’, ‘동료애가 돈독해지기 때문에(14.3%)’ 순이었다.
최근 <직장생활에서 놓쳐서는 안 될 33가지의 기회>를 쓴 신인철 씨는 수천 명에 달하는 직장인의 연수•교육을 담당하며 쌓은 실전경험을 통해 ‘21세기 신(新) 프로페셔널의 조건 33가지’를 제안했다. 그 중 맨 처음 한 충고는 ‘분위기 메이커가 되고 싶다면 18번을 만들라’는 것.
저자는 고속 승진한 모 증권사 Y지점장의 일화를 소개했다. Y지점장이 신입사원이었을 당시 회식자리에서 노래를 못해 기합 받은 일이 있었는데, 다음날 상사가 수첩에 디스코 5곡, 가곡 5곡, 발라드 5곡, 젓가락을 두드리며 부를 수 있는 노래 5곡을 적어오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이후 Y지점장은 수첩에 메모해 둔 노래 덕분에 참석한 자리에서 좌중을 주도하는 분위기 메이커가 될 수 있었다”고 적었다. 성공하기 위해 어떤 순간이 와도 분위기 띄울 준비를 철저히 하라는 뜻이다.
저자는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故) 정주영 회장 역시 같은 노래를 수십 번 들으면서 연습했다는 일화도 공개했다. 고 정주영 회장이 지방출장 때 차를 타고 다니면서 똑같은 노래만 반복해서 들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디오가 고장 났다고 생각했다는 것. 사실 정 회장은 “원래 노래 잘 못한다”고 말하기보다는 각종 행사나 식사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수십, 수백 번씩 연습했던 것이라고 한다.
마케팅 전문가인 W-insights 김미경 대표는 “오피스 아이돌은 최근 화두로 떠오르는 ‘펀 경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일터의 분위기에 따라 업무 성과가 달라진다는 것은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검증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단순히 노래를 부르거나 춤추는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말고 즐거운 회사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면서, “조직원들이 신나고 즐겁지 않으면 창의적 생각이 나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심선혜 | 주간조선 기자 / fresh@chosun.com ‘화려한 말발’을 ‘초라한 글발’ 속에 묻어두고 사는 기자~ 살아서 파닥거리는 이야기를 좋아해서 ‘fresh’, 심선혜라고 하면 ‘신선해’라고 듣는 탓에 ‘fresh’라는 아이디를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