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은 크게는 윤리적인 소비운동 방법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윤리적 소비운동’은 소비자들이 구매를 할 때 자기 자신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뿐만 아니라, 좀 더 거시적이며 윤리적인 관점으로 환경보전, 인권보호 등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지난 4월 2일, 전 세계는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담에 주목했다. 대공황에 비견되는 최악의 글로벌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 속에 전 세계는 우려 반 기대 반으로 G20 정상회담을 지켜보았다.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듯, G20 정상회담은 ‘경기부양책 확대’와 ‘금융규제 강화’ 같은 경제 관련 의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런던에서는 환경, 빈곤퇴치, 반전, 반세계화, 무정부주의를 표방한 여러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 많은 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영국의 한 광고회사가 흥미로운 온라인 프로모션을 런칭해 주목을 받았다.
St. Luke’s라는 런던의 독립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는 영국의 초콜릿 회사 디바인(Divine)과 함께 무료 온라인 게임을 선보였다. Eggapoliticial.com이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해 ‘공정무역(Fair Trade)’이 G20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에서 빠지면 안 된다'라는 카피를 올려놓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해, 프랑스 대통령, 중국 총리, 인도 총리, 영국 총리들의 얼굴에 디바인 사의 계란 모양 초콜릿을 던질 수 있게 하는 온라인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해놓은 것이다.
디바인 사는 100% 공정무역을 통한 원료만을 사용하는 회사로, 이 같은 프로모션을 통해 G7 정상회담 등 기존의 굵직한 주요회담에서 그 동안 꾸준히 논의되었던 이산화탄소 배출량 제한, 국제 인권문제 등 환경과 인권에 관련된 주요 사항들이 경제위기라는 단일 논제에 가려 논의되지 못함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는 동시에, 자사의 제품은 공정무역을 통한 원료만을 사용한다는 마케팅 전략을 담아냈다.
공정무역과 윤리 마케팅의 현황
공정무역은 미국이나 EU 등 선진국이 통상 압박을 할 때 사용하는, 덤핑과 보조금이 없는 무역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 말하는 ‘공정무역(Fair Trade, 혹은 대안무역)’은 기본적으로 유럽에서 시작된 윤리적 소비운동의 일환으로 생산자-소비자 직거래, 다국적 기업의 횡포가 없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격, 아동 노동착취 금지, 환경 유지, 건강한 노동환경 제공 등을 보장한 조건에서만 무역이나 거래를 하는 포괄적인 개념을 말한다. 공정무역은 크게는 윤리적인 소비운동 방법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윤리적 소비운동’은 소비자들이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자기 자신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만을 고려할 뿐 아니라, 좀 더 거시적이며 윤리적인 관점으로 동물보호, 환경보전, 인권보호 등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공정무역은 아동 노동착취, 정당한 생산가격 보장 등 인권보호 차원의 개념으로, 영국에서는 가장 큰 이슈(Main Stream)로 떠오르고 있다.
소비자들의 이러한 관심이 실제 구매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따라서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소비경향을 간과할 수 없게 되고 나아가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가난한 제 3세계 노동자들이 만든 환경친화적인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하자는 이 소비운동은 국제기구 혹은 NGO를 중심으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으며, 국제기구 옥스팸(www.oxfam.org)과 미국 글로벌 익스체인지(www.globalexchange.org) 등이 유명하다.
소비자들의 윤리적인 소비욕구가 지속적으로 증대하자 기업들은 이러한 소비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사의 윤리적 활동을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기업들의 이러한 활동을 올바르게 검증하기 위해 세계적인 친환경 비영리기구인 ‘열대우림동맹(The Rainforest Alliance)’과 같은 인증마크(Certificate) 제공 NGO 그룹들도 생겨났다.
영국에서도 개발도상국 혹은 후진국의 윤리적인 생산구조를 정립하고 영국 기업과 소비자들의 공정무역에 대한 지원을 독려하기 위해 1992년 ‘공정무역재단(The Fairtrade Found-ation)’이 설립되었다.
이들 단체들은 ‘Fairtrade’라는 공식 인증마크를 복잡하고 까다로운 심사를 통해 기업들에게 발급하고 있으며, 심사를 통과한 기업들은 이 인증마크를 자사 제품에 표기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윤리적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어필하고, 소비자들 역시 그 제품들을 믿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원리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공정무역 인증마크를 받는다는 것은 신뢰성 높은 기관의 인증을 통해 기업의 윤리적 책임(CSR)을 올바르고 효과적으로 실행하고 있다는 것을 공인받는 것과 동시에 최근 윤리적 소비경향이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는 시장에서 훌륭한 마케팅 효과도 누릴 수 있게 된다.
대형 기업에서 동네 커피숍까지 공정무역 열풍
윤리적 소비를 위한 캠페인은 다양한 방법으로 전개되어 왔지만, 최근 영국에서는 특히 공정무역에 관련한 활동이 주 이슈로 급부상하면서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정무역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2년 동안 전체 공정무역인증을 받은 기업들의 제품 판매규모가 약 2억 파운드(한화 약 3,800억 원, 5월 환율 기준, 이하 동)에서 4억 9천500만 파운드(한화 약 9,405억 원)로 두 배 이상 크게 증가했는데, 특히 커피•차•초콜릿•열대과일 등 식용작물 관련 산업에서 큰 상승 폭을 보였다.
영국의 유명 마케팅 전문지인 <마케팅(Marketing)>지가 지난 3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환경 혹은 윤리적 소비 마케팅이 여러 가지 다양한 비즈니스 환경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전체 61%의 응답자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또한 전체 영국인의 85% 이상은 품질이나 가격의 차이가 크지 않다면 윤리적인 과정을 통해 생산 혹은 거래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영국의 유명 제과업체인 캐드버리(Cadbury)는 올해 여름이 끝나기 전까지 그들의 주력 제품인 다이어리 밀크 초콜릿(Dairy Milk Chocolate)을 포함한 모든 생산 및 거래 공정을 공정무역 시스템을 기반으로 추진하겠다는 공식 발표를 내놓았고, 결국 공정무역재단으로부터 다이어리 밀크 초콜릿 부문의 인증마크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더욱 놀라운 것은, 캐드버리는 이미 영국 초콜릿 산업계의 독보적인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는 1위 판매 기업이었다는 점에 있다. 굳이 비용과 시간을 소비해 공정무역이라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아도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시장을 점유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보를 보인다는 점에서 큰 이슈가 된 것이다.
캐드버리의 이러한 움직임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분석된다. 우선 공정무역 시스템을 통해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윤리적인 이슈에 관계되기 때문에 소비자가 이를 이해하기 쉽고 브랜드 충성도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150만 파운드(한화 약 28억 5천만 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하지만, 이는 약간의 제품 가격 인상으로 흡수될 수 있다는 게 캐드버리의 계산이다.
더욱이 부동의 1위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이미지가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예상도 내놓았다. 영국 기업들 가운데 첫 번째 시도라는 점에서의 차별성, 공정무역 마케팅을 통한 후발주자와의 차별화, 여론의 관심을 끄는 PR 효과, 현저하게 증가하는 윤리적 소비행동 반영 등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Co-operate group과 아스다•테스코•막스앤스펜서 등과 같은 대형유통 소매회사들도 이러한 움직임을 실현하고 있기도 하다. 더 나아가 영국에서는 위와 같은 대형 기업들의 마케팅 활동에서 뿐만 아니라, 펍(Pub)이라 불리는 선술집, 박물관의 기념품점, 도서관 내 문구점, 학교 구내식당, 동네 커피숍 같은 일반 개별 소매점 하나하나에도 공정무역 마크를 내세워 제품 판매를 하는 등 공정무역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공정무역은 피할 수 없는 숙명
사실 공정무역 역시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업들이 공정무역 인증마크나 자사의 공정무역 프로세스를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고 소비자들에게 윤리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실제로 공정무역이 윤리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점이 제기된 것이다.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한다는 시스템 자체는 훌륭해 보이지만, 정작 가난한 농부보다는 상업적으로 영리한 농부가 이익을 독점하기 쉽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인한 생산비용 증가는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공정무역의 붐은 부담스럽다. 실제로 공정무역재단 인증마크를 가장 먼저 인가 받아 자사의 커피에 부착해 판매한 카페다이렉트(Cafedirect)라는 회사는 2008년도 연차보고서를 통해 2008년 총 판매액은 1,620만 파운드(한화 약 308억 원)로 전년 대비 5% 감소로 위기를 맞았다고 발표했다. 앞서 언급한 G20 정상회담에 관련해 재미있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던 디바인 사 역시 지속적인 USP 저하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은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을 제시한다. 카페다이렉트는 공정무역에 대해 좀 더 효과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기 위해 이번에 새로 Albion이라는 광고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공격적인 행보를 준비 중이다. 디바인 사 역시 단기적인 기업운영에 차질이 있어 보이지만, 이는 공정무역 프로세스와는 거의 관련이 없으며 공정무역을 포함한 기업의 모든 윤리적 활동을 환영하고 지속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많은 기업들은 당장 수익이 보이지 않는 활동에는 관심을 멀리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영국 기업들의 최근 행보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공정무역 같은 인권적인 측면 뿐 아니라, 동물보호나 환경문제에 관심을 보이면서 이를 적극 지원하는 등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앞으로는 결코 피해갈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마케팅 관점에서도 단기적인 수익계산을 떠나 거시적인 안목으로 꾸준히 투자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선진국 내 윤리적 소비행동 패턴 경향을 파악한 기업들의 ‘윤리 마케팅(Ethical Marketing)’이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한 치사하고 교묘한 상업적인 활동이라는 비난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히려 영국 공정무역재단과 같은 검증된 기관의 철저한 심사과정을 통해 인증마크가 발급되는 시스템이 많은 곳에 정착된다면 생산자에 대한 합리적 대우, 인권보호, 환경보전, 기업의 마케팅 수단 및 수익증대, 소비자의 윤리적 소비욕구 충족 등과 같이 다양한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김계현 | Manchester Business School(영국 Manchester대학교), Management and Marketing 전공 / rlarpgus@hotmail.com Management and Marketing을 전공하며, <캠페인>지의 아티클 한글 번역 프리랜서도 활동하고 있다. ‘스포츠 스폰서십의 실질 광고효과 측정: 영국 프리미어 리그 축구 스폰서 기업들을 대상으로’ 등의 논문을 준비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