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김상진(기획6팀국장)
이 소설은 일본 작가 오가와 요코의 작품이다. 그녀는 에쿠니 가오리나 요시모토 바나나보다 국내에서는 덜 유명하지만, 1991년 『임신캘린더』로 일본 최고권위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고, 2004년에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요미우리 문학상 소설상, 제1회 서점대상 등을 수상한 일본의 대표 작가다.
일본에서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특유의 쓸쓸하지만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체와 기이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에 빠져 시간이 날 때마다 그녀의 작품을 읽는다.
이런 걸 필 받았다고 해야 하나?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오가와 요코를 말할 정도로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작품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그녀의 작품 중 가장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가학과 피학, 폭력…. 포르노를 연상케 하는 외설적 이야기도 나온다. 혹자는 과연 이 작가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쓴 작가와 동일 인물인지 의심하며 놀라기도 한다.
그만큼 내용이 파격적이며 스타일 역시 이전과 전혀 다르다. 이 소설은 ‘호텔 아이리스’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초로의 번역가와 17세 소녀가 벌이는 파멸의 사랑 이야기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존경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따뜻한 사랑 이야기라면, 이 소설 속 사랑은 인간성과 인격을 뿌리째 흔들어 파멸로 이끄는 사랑이다. 외설적이고 폭력적인 소설은 오래도록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 역시 오가와 그녀의 소설임이 분명하다.
이 소설을 단순히 외설적이고 파괴적인 소설이라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늘 천착하는 주제인 상실과 부재, 고통,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차마 말로 꺼내기 어려운 인간의 어두운 단면을, 그녀는 소설이라는 수단을 통해 제기하고, 공감하고, 해소하는 감동의 구조로 전달한다.
이 소설은 『약지의 표본』과 더불어 프랑스에서 영화화되기도 했다. 기승전결의 친숙한 스토리 구조보다 불친절한 이미지 의 향연이나 모호한 다이알로그가 난무하는 프랑스 예술 영화를 떠올려보면 그녀의 작품 중 유독 이 작품이 프랑스에서 사랑 받는 이유를 이해할 만도 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관념적이고 현학적인 내용으로 독자를 괴롭히는 소설이 결코 아니다. 소설의 기능을 오락과 감정 이입을 통한 카타르시스라 정의한다면, 무료한 휴일 오후 동네 커피숍에서 술술 잘 읽히면서도 바쁜 일상생활로 무뎌진 감성이 스르르 기지개 펴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다만 오가와의 소설을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소설부터 읽는 건 비추다. 잘못된 고정관념 때문에 그녀의 주옥같은 다른 소설을 영영 읽어보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