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장 선 중앙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seralpha@cau.ac.kr
불과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제약업은 가장 광고를 많이 하는 업종이었다. 90년대초 이후 전자업종, 90년대 말부터는 이동통신 및 건설업 등에 그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우리나라 광고의 역사를 논할 때 제약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의 변화와 계속되는 불황은 제약광고 집행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하고 있다. 이번 기간 동안 집행된 제약광고들을 중심으로 여타 제품 광고들과는 성격이 다소 다른 제약광고의 메시지 전략을 살펴본다.
‘약간의 과장’과 ‘광고적 표현’
제약분야는 광고주의 수로 보면 아직도 가장 광고를 많이 하는 업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이동통신 등 제약업보다 많은 광고를 집행하는 업종들은 대개 몇몇 기업에 의한 대규모 광고가 집행되는 상황인 반면, 제약업은 절대적인 2~3개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과점적 시장이 아닌 다수의 기업들이 저마다의 차별적 제품으로 경쟁하는 독점적 경쟁시장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때‘ 약 광고’라는 말이 흔하게 회자되던 때가 있었고, 제약광고는 광고에 대한 사회적 비판의 중심에 서 있기도 했다. 특히 과장광고의 전형으로 자주 거론되기도 했는데, 이러한 비판은 제약품이 갖고 있는 제품으로서의 특성과 광고의 본질 사이에서 나타나는 충돌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광고의 본질은 자사 제품에 대한 칭찬이며, 소비자들에 대한 설득적 커뮤니케이션이나 마찬가지다. 즉, 어떻게든 해당 제품이 좋게 인식되게 하고, 광고를 보는 소비자들이 그 제품을 선호하고 궁극적으로 구매하도록 하는 것이 광고의 주된 목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광고의 본질에 충실하다 보면 약간은 과장된 메시지가 표출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성인들은‘ 약간의 과장’에 대해‘ 광고적 표현’이라는 관점에서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실제로도 그러하다. 그러나 제약광고를 실제보다 더 약효가 뛰어난 것으로,‘ 광고적 표현’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할 경우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해질 수 있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건강에 심대한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인데, 바로 여기에 제약광고의 차별적 특성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제약광고는 여타 제품의 광고들처럼 멋있게 감정적 소구를 발휘해 만들어내기 힘들게 된다.
일반적으로 제약광고의 크리에이티브가 다른 제품군의 그것보다 더‘ 촌스럽고 시끄럽게만’ 인식되는 것은 제약광고에 대한 이러한 자율적 규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제약협회에서 주관하는 자율심의는 매주 많은 신규 제약 광고물들에 대해 약사법에 근거해 심의를 하는데, 여기서 통과된 광고물들은 심의필 마크를 달고 비로소 집행될 수 있다.
이 심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약물 오용 및 남용에 대한 조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술한 바와 같이 광고의 본질상 해당 제품을 더 많이 구매하게 하려는 의도가 조금은 포함될 수밖에 없어서 늘 오/남용과 관련되어 수정 의견이 많이 도출되곤 한다.
예컨대 판촉성 이벤트를 광고할 수 없으며, CM송을 만들어 제품명을 포함할 수 없다는 것, 과도한 위협소구 금지 등은 오/남용 방지와 관련된 수많은 예들 중 하나일 뿐이다.
‘다양한 정보 전달’ 가능해 신문광고 단골
이러한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제약으로 인해 제약광고들은 브랜드명 고지의 목적을 가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번 기간 동안 많은 물량의 광고가 집행된 제품들 중에는 일동제약의 캐롤에프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 두통, 생리통,관절통에 캐롤을 부르세요~’라는 헤드라인과 산타 모자를 쓴 모델은 크리스마스 시즌과 맞물려 해당 브랜드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다.
많은 광고를 집행하고 있는 삼진제약의 게보린의 경우에도‘ 맞다! 게보린’이라는 카피를 지속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제품명을 잊지 않게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두통약이라는 사실을 크게 강조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가 되었다.
‘질병 해결’ 소구하는 ‘부정적 동기 고려’ 기법
이처럼 인지도가 높은 극소수의 브랜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제약광고에 등장하는 것은 해당 제품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증상, 즉 약의 효능과 용법에 관련된 정보일 것이다. 이를 포함하는 과정에서 제약광고는 주로 ‘부정적 동기(negative motivation)’에 의한 구매를 고려한 메시지를 구성하게 된다.
‘부정적 동기를 고려한 광고’란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는 데에 해당 브랜드의 제품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을 내세우는 광고를 말한다. 제약광고의 대부분은 문제, 즉 질병을 보여주고 이것을 해결하는 데에 해당 제약품이 효과가 있다는 점을 주장하게 된다.
‘피로에 지친 간을 위하여!’라는 헤드라인을 줄곧 내세워 온 동화약품의 헬민 광고는 간의 건강을 위한 약이며, 피로를 경험하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한 방안으로서의 해당 제약품을 권장하고 있다.
‘눈이 바쁜 현대인!’이라는 헤드라인과 컴퓨터를 보면서 미간을 찌그리고 눈을 만지고 있는 직장인 비주얼을 내세운 아로나민 아이 광고는 해당 브랜드가 어떤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매우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제약 브랜드 중 오랜 세월 동안 인지도가 높아진 경우 브랜드 확장을 통해 부수적인 마케팅 효과를 노리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상처 치료라는 부문에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는 마데카솔이‘ 붙이는 마데카솔’의 발매 광고를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치료성분이 없었던 습윤밴드에 마데카솔을 더한 마데카솔 밴드’라는 서브 헤드라인까지 읽게 되면 독자들은 금세 기존의 마데카솔의 기능이 밴드로 확장된 것임을 잘 알게 된다.
광고 순기능 발취하여 새로운 도약
인지도가 높은 제품 중 제약 광고의 전형에서 탈피한 또 다른 사례로는 두통약의 대표 브랜드라 할 수 있는 두 브랜드, 게보린과 펜잘의 광고들이 있다.‘ 두통·치통·생리통에’라는 슬로건까지 거의 유사할 정도로 게보린과 경쟁관계에 있는 펜잘은 이번 기간 동안 여러 가지 마케팅 요소들 중 패키지(package)에 집중하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명작과 두통약의 만남 / 펜잘큐 탄생!’이라는 헤드라인의 1면 하단 광고에서 해외 명작 그림을 주요 비주얼로 하여 해당 작품을 제품의 포장에도 그대로 적용한 모습은 한 전자업체의 광고를 연상시킬 정도이지만, 제약업에서는 독특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방식이라 하겠다.
물론 성분이 다르고 이에 따른 효과도 다르다는 메시지를 통해 기존의 제품에 포장만 바꾼 것이 아니라 제품 자체의 차이도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앞서 말한‘ 브랜드 확장’의 사례를 이 광고에서도 관찰할 수 있는데, 광고물 우측 하단에 작게‘ 펜잘 내복약’ 광고를 추가한 것이 그것이다.
게보린은‘ 대한민국 파이팅을 위해!’라는 헤드라인으로 내세운 광고를 기존의 전형적인 두통약으로서의 광고와 병행해 집행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 호에 살펴본 바 있는 경제불황기에 볼 수 있는 광고라 할 수 있다.‘ 요즘처럼 세계 곳곳에서 힘이 들고 머리 아픈 일이 많을 때…’라는 카피를 읽어보면 단순히 두통을 완화시키는 제품으로서의 광고를 넘어 브랜드 이미지의 강화를 추구하는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제약광고는 늘 찬반양론이 존재해 온 광고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과장에 의한 사회적 역기능 우려가 반대 측의 주요 논리라면,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제약 제품의 난립 방지와 질병에 대한 교육 기능 등은 찬성 측의 중요한 무기일 것이다.
다만 분명한 점은 일정한 선을 준수하는 제약광고는 소비자와 제약업체 모두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것이며, 앞으로 과거의 화려했던 제약광고의 부상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