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모 (한국소비자연맹 회장)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서는 8월 26일부터 27일까지 1박 2일 동안 ‘공정한 시장과 기후변화 그리고 소비자 역할’이라는 주제아래 전국소비자운동가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번 전국소비자운동가대회에서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소속 10개 단체의 300명의 소비자운동가들이 모여 소비자운동가의 역량 및 연대를 강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월간 소비자 9월호에서는 이번 전국소비자운동가대회 특집으로 한국소비자연맹 정광모 회장, 한국교육방송공사 곽덕훈 사장, 한국표준협회 최갑홍 회장의 특강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 편집자 주 -
금년에 소비자운동이 한국에서 40년이 되었다. 소비자연맹이 소비자운동을 시작한지가 40년인데, 사실 소비자운동은 그보다 1년 전에 서울YWCA가 소비자위원회를 만들어서 고발을 받고 회의를 하면서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고발을 받고 회의를 하다 보니까 서울YWCA는 종교단체고, 소비자운동을 전문적으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1970년 2월 21일에 한국소비자연맹을 창립하게 되었다.
맨 처음 소비자운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신문기자 시절 1969년에 기자들 15명과 같이 일본에 가서 기자들끼리 회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연락을 받고 기자들이 다 뛰어나갔다가 2~3시간 후에 들어왔다. 놀라서 이유를 물어봤더니 그들이 말하기를 소비자문제가 발생해서 취재를 하고 왔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어떤 소비자문제가 발생했냐고 물었더니 첫째는 어린아이들이 음료수를 담아서 마시는 컵이 있는데, 그 컵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이 뜨거운 것에 녹게 되면 독성이 발생하여 위험하기 때문에 일본 정부차원에서 그림이 있는 어린이용 컵들을 전부 수거하였고, 두 번째는 여성들이 바르는 로션 중에 레몬색이 나는 것을 레몬이 들어간 것처럼 광고를 하고 있었는데 이는 잘못된 광고라고 해서 전부 회수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처음으로 서울에 돌아가면 소비자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본에서는 이미 1960년 초에 소비자운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10년 정도 가 지나면 일본처럼 소비자운동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단 돌아가서 서울YWCA에 소비자위원회를 만들고, 현관 안에서 고발을 접수했다. 그런데 아무리 접수를 해봐도 서울YWCA는 종교단체이기 때문에 문제를 끝까지 해결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심끝에 1970년에 소비자연맹을 창립하여 소비자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많은 소비자운동가들이 모였지만 소비자운동은 우리가 생활하는 광범위한 영역에서의 운동이기 때문에, 어떤 운동가들 중에도 소비자운동가 만큼 광범위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없다.
소비자운동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식품, 그 다음 약품이다. 식품과 약품을 얘기하다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식품의약품안전청일 것이고, 그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전 세계의 소비자운동은 아주 활발하고 잘 되어있다. 하지만 우리가 처음 소비자운동을 시작하던 1970년대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위치가 굉장히 많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여러분에게 몇 가지만 말씀을 드리자면, 지금 인간에게 소비자운동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전문적인 것은 많지만, 소비자운동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전체적인 것이다. 소비자와 기업, 그리고 유통하는 사람 등 모든 것을 잘 보호해 주어서 세상을 편하고 즐겁게 살 수 있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 소비자운동이다.
지금 한국의 소비자운동에서 개인적으로는 1372가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소비자단체 10개 중에서 8개는 1372에 참여하고, 한국소비자연맹과 소비자시민모임은 빠지겠다고 해서 한 6개월을 그렇게 운영했었다. 하지만 김재옥 회장이 소협 회장에 선출되면서, 2단체가 빠지는 것은 공정위나 정부에 대해 체면도 있고 해서 다시 참여를 하긴 했지만 앞으로도 1372에 대한 것을 제대로 발전을 시킬 것인가 아니면 지금처럼 지나치게 비용을 들여가면서 계속 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이다.
소비자운동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소비자고발을 받는 것이다. 고발을 받아서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도록, 그리고 기업에서도 소비자에게 대접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 전부가 다 전문가가 될 수 없으므로, 오늘 모이신 운동가 여러분께서 소비자 전문가로서 소비자들의 모든 기분을 맞춰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각 단체별로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전문가들이 상대가 고령자이든 어리든 간에 기분을 맞춰줘야 하고, 능력이나 효력도 모두 맞춰줘서 앞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소비자들에게 소비자단체가 충분한 서비스를 해줘야 한다.
지금 전 세계에서 처음에 외국과는 많은 차이가 있고, 한국이 소비자운동의 능력이 저하되었었지만 현재는 상위권에 들 만큼 좋아졌다. 1970년 초, 소비자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소비자단체에서는 지금 여러분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많은 물건에 발생한 문제에 대해 테스트를 하였고, 이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정부에 건의를 해서 법을 만들었다.
며칠 후에는 일본의 소비자운동가들이 소비자연맹에 방문을 할 예정이다. 예전에 는 내가 일본의 소비자운동을 배워서 소비자운동을 시작했지만 1980년 이후에는 일본에서 한국의 소비자운동을 보러오기도 하고 상도 수여하고 있다. 이번에도 일본의 변호사들이 십 여명이 와서 한국의 소비자에 관한 법률을 배워서 일본에서 활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대통령이 직접 소비자단체에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주문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학교 학생들의 학용품에 대한 불만이 많은데, 학용품을 제대로 쓸 수 있고 혹시 어린이들이 연필을 입에 대더라도 해롭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청와대 복도에 학용품을 늘어놓고 개선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이처럼 박정희 대통령은 소비자운동을 많이 지원해 주었고,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에도 대통령이 된 후부터 소비자단체를 많이 밀어주고, 여러 가지 일도 많이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우리나라는 현재 원자력 발전소가 전 세계에서 6번째로 많다. 그리고 백 여개 나라 중 우리나라가 12번째이다. 현재는 우리가 외국에서 원자력 발전소를 주문받아서 지어주고 있다. 그만큼 모든 것에 대해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예전에는 우리가 일본의 소비자운동을 보고 배워서 우리도 시작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일본에서 우리나라에 와서 소비자운동을 보고 배울 만큼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의 소비자운동의 그레이드가 굉장히 높아졌다.
운동가 여러분에게 얘기하고 싶은 것은 첫째, 여러분 개개인이 모두 무엇인가 자기의 전문성, 자기의 능력, 자기의 취미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우리나라 것을 외국에도 알려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여러분들은 식품에 대해 작은 것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생각해야 된다. 식품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할 만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비자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소비자단체가 아주 큰일을 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소비자운동은 결과적으로 굉장히 발전을 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운동이고, 특히 여성들이 꼭 해야 하는 것도 소비자운동이다. 소비자운동은 앞으로도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나는 현재 80이 넘었지만 아직도 골프도 잘치고 운전도 잘한다. 지금처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소비자운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30년 동안 기자 생활을 마감할 때, 국회의원이나 장관을 하라는 얘기도 참 많이 들었지만 나는 소비자운동만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이고, 여러분들과 이렇게 즐거운 만남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소비자연맹이 어떠한 일을 했고, 또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그리고 금년에 쓰게 되는 소비자운동 40년사도 오늘 오신 분들에게 모두 직접 보고드릴 것을 약속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