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 김보영 ( <블링> 편집장 )
누가 아는가? 5년 후 대입 논술시험엔 'FTA 협정 후 한국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140자로 논하시오'라는 문제가 나올지.
아직도 길고 장황한 문장으로 이야기하고 있는가? SNS가 만들어 낸 새로운 세상에선 140자 이상은 지루하다. 이제는 단문(短文)이 대세. 누구보다 빠르고 짧게 이야기해야 통하는 세상, 우리는 어떤 대화를 하고 있을까?
140
트위터를 시작한 지 2년. 팔로잉 수가 100을 넘어가고부터는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트위터 타임라인 확인이 됐다. 잠들기 직전 타임라인을 확인했음에도 매일 아침이면 평균 40개, 특정 이슈라도 있는 날엔 100개의 트윗이 아침 인사를 한다.
방콕 홍수도,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 소식도, 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 씨가 땅을 밟는 장면도 모두 트위터를 통해 접했다. 친구의 결혼 소식도, 간밤에 먹은 야식도, 거래처 직원이 기르던 개를 잃어버렸다가 찾은 이야기도 물론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알았다. 특히 소셜네트워킹 기능에 충실한 페이스북과 달리 ‘배포’와‘ 구독’과‘ 네트워킹’이 동시에 가능한 트위터는 새로운 언론의 기능까지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트위터로 소설도 쓰고 정치적 입장을 밝히기도 하며, 일기 대신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기도 한다. 누구보다 빠른 반응을 얻을 수 있고, 팔로우 버튼 한 번이면 누군가의 세상을 엿볼 수도 있다. 가끔 이슈가 될 만한 현장에서 누가 먼저 트위터에 올리느냐로 경쟁하는 장면을 볼 때면 트위터가 기존 언론의 생태와 소통의 방식을 제대로 뒤흔들 듯한 느낌이 절로 든다.
트위터의 가장 큰 특징은 짧고 빠르다는 점이다. 올릴 수 있는 문장의 길이를 140자로 제한한 트위터의 속도는 실시간 채팅이 가능할 정도다. 140자? 언뜻 들으면 충분히 길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특수문자와 여백까지 포함한 140자는 오늘 점심에 먹은 카레 맛을 자세히 묘사하기에도 부족하다. 그래서 짧고 임팩트 있는 글이 각광받는 단문 시대가 온 것이다.
140
트위터를 시작한 지 2년. 팔로잉 수가 100을 넘어가고부터는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트위터 타임라인 확인이 됐다. 잠들기 직전 타임라인을 확인했음에도 매일 아침이면 평균 40개, 특정 이슈라도 있는 날엔 100개의 트윗이 아침 인사를 한다.
방콕 홍수도,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 소식도, 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 씨가 땅을 밟는 장면도 모두 트위터를 통해 접했다. 친구의 결혼 소식도, 간밤에 먹은 야식도, 거래처 직원이 기르던 개를 잃어버렸다가 찾은 이야기도 물론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알았다. 특히 소셜네트워킹 기능에 충실한 페이스북과 달리 ‘배포’와‘ 구독’과‘ 네트워킹’이 동시에 가능한 트위터는 새로운 언론의 기능까지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트위터로 소설도 쓰고 정치적 입장을 밝히기도 하며, 일기 대신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기도 한다. 누구보다 빠른 반응을 얻을 수 있고, 팔로우 버튼 한 번이면 누군가의 세상을 엿볼 수도 있다. 가끔 이슈가 될 만한 현장에서 누가 먼저 트위터에 올리느냐로 경쟁하는 장면을 볼 때면 트위터가 기존 언론의 생태와 소통의 방식을 제대로 뒤흔들 듯한 느낌이 절로 든다.
트위터의 가장 큰 특징은 짧고 빠르다는 점이다. 올릴 수 있는 문장의 길이를 140자로 제한한 트위터의 속도는 실시간 채팅이 가능할 정도다. 140자? 언뜻 들으면 충분히 길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특수문자와 여백까지 포함한 140자는 오늘 점심에 먹은 카레 맛을 자세히 묘사하기에도 부족하다. 그래서 짧고 임팩트 있는 글이 각광받는 단문 시대가 온 것이다.
단숨에 사로잡고 단칼에 베기
트위터에 글을 남기다 보면 화면 위에 남은 글자 수가 표시되는데, 글이 길어지면서 숫자가 10에서 7, 6 그리고 4, 3, 2, 1로 줄어들 때면 마치 영화 <인 타임>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이 10초밖에 남지 않은 사람처럼 초조해진다. "이제 내가 쓸 수 있는 글자 수가 얼마 남지 않았어. 이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표현해야만 해"라고 속삭이는 자가 있는 듯도 하다.
‘트윗롱거(Twitlonger)’ 등 장문을 작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속속 출시되고 있지만, 트위터에서 눈길을 끌기 위해선 누구보다 짧고 강력한 문장으로 승부해야 한다. 그런 특징을 잘 살려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트위터 논객' '파워 트위터리안' 등의 닉네임을 얻으며 명성을 쌓기도 한다.
이효리·김제동·김여진 등은 트위터에 개념차고 소신 있는 발언을 전함으로써 '소셜테이터'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이외수·이적·김갑수 등은 개성을 살린 트윗으로 파워 트위터리안이 된 지 오래다. 20세기엔 명사들의 명언을 읊던 것이 21세기에는 파워 트위터리안의 글을 '리트윗'하는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는 사자성어가 지금처럼 절실했던 시대가 있던가? 트위터에서 각광받는 문장은 짧고 논지가 명확해야 하며, 조금 더 보태자면 유머가 있어야 한다. 유머가 있어야 하는 이유? 초 단위로 오가는 멘션 사이 비방과 비난이 없을 리 만무. 그런 말들을 웃어넘기고 받아칠 수 있는 재치와 유머가 없으면 트위터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상처받기 쉬운 영혼들은 트위터를 소극적으로 즐기길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한 번 말을 뱉으면 엄청난 속도로 리트윗되는 트위터의 속성상 한 번 뱉은 말을 수정하거나 삭제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본인이 후회하고 삭제했다 할지라도 누군가 리트윗해 퍼뜨렸다면 이미 그건 '내 것이되 내 것이지 않은' 문장이 돼버리는 것이다.
‘짧은 문장’ 열풍이 꼭 트위터라는 도구 때문은 아닐 것이다. 신문보다 스마트폰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세대가 터치를 몇 번이나 해야 하는 수고를 감수하며 긴 글을 읽을 리 만무하다. 전자책이 보급될수록 긴 문장은 점점 읽기 피곤한 텍스트로 여겨질 것이며, 카카오톡이나 스마트폰 메신저로 대화수단이 대체된 마당에 눈 빠지게 긴 문장은 구닥다리처럼 느껴질 뿐이다.
'말발'에 치이는 '논리'
단문의 시대는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사회현상을 낳고 있다. 평소 글을 쓰지 않거나 어떤 블로그 활동도 하지 않는 이들도 140자라는 단문이 주는 편리성 때문인지 트위터에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올리게 됐고, 이런 환경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발언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자, 지금 어떤 사안에 대해 서론·본론·결론 갖춰 원고지 10매 내외로 써서 발표하라고 하면 몇 명이나 발언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140자라면 해볼 만하다. 하고자 하는 말만 콕 집어 쉽게 하면 된다. 화두를 던지면 팔로어들이 답할 것이고, 맞는 말이라면 공감을 타고 10분 만에 몇 백 명에게 리트윗될 수도 있다. 어떤 특별한 자격 없이 누구나 오피니언 리더가 될 수 있고, 파워 트위터리안이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단문 세상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한계는 명확하다. 140자에 자신의 뜻을 담기 위해서는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추기 어렵다. 핵심만 간단히 표현하기에도 모자란 글자 수, 줄임말은 기본이고 신조어는 매너다. 그래서일까? 어떤 곳보다 토론과 논쟁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공간임에도 트위터를 통해 이루어지는 토론의 장은 대부분 결론 없는 감정싸움으로 끝나기 일쑤다. 초 단위로 바뀌는 트위터 세상에서 때로는 하루가 넘게 이어지는 논쟁도 있지만, 이런 논쟁의 승리자는 대부분 '말발 센' 이가 된다. 논리는 다음 문제고, 누가 먼저 세게 치고 들어가느냐, 적절한 타이밍에 치고 빠지느냐가 승패의 열쇠가 된다. 단문과 속도전이 가진 태생적 한계로 인해 애초부터 조목조목 논리적인 반박은 어려운 것이다.
트위터 초창기 전문가들은 트위터는 어떤 이를 팔로우해 그의 의견을 듣고 멘션을 주고받는 '구독' 매체임을 강조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인터넷, 특히 스마트폰 속 세상은 원칙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속도감 있는 단문이 주는 쾌감은 너무 달콤한 것. 트위터가 구독매체임과 동시에 자신의 감정 쓰레기를 쏟아낼 수 있는 배설의 장이 되고 있는 현상을 '이건 원래 트위터의 목적이 아니다'고 비판할 자 누구인가?
트위터에 글을 남기다 보면 화면 위에 남은 글자 수가 표시되는데, 글이 길어지면서 숫자가 10에서 7, 6 그리고 4, 3, 2, 1로 줄어들 때면 마치 영화 <인 타임>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이 10초밖에 남지 않은 사람처럼 초조해진다. "이제 내가 쓸 수 있는 글자 수가 얼마 남지 않았어. 이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표현해야만 해"라고 속삭이는 자가 있는 듯도 하다.
‘트윗롱거(Twitlonger)’ 등 장문을 작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속속 출시되고 있지만, 트위터에서 눈길을 끌기 위해선 누구보다 짧고 강력한 문장으로 승부해야 한다. 그런 특징을 잘 살려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트위터 논객' '파워 트위터리안' 등의 닉네임을 얻으며 명성을 쌓기도 한다.
이효리·김제동·김여진 등은 트위터에 개념차고 소신 있는 발언을 전함으로써 '소셜테이터'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이외수·이적·김갑수 등은 개성을 살린 트윗으로 파워 트위터리안이 된 지 오래다. 20세기엔 명사들의 명언을 읊던 것이 21세기에는 파워 트위터리안의 글을 '리트윗'하는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는 사자성어가 지금처럼 절실했던 시대가 있던가? 트위터에서 각광받는 문장은 짧고 논지가 명확해야 하며, 조금 더 보태자면 유머가 있어야 한다. 유머가 있어야 하는 이유? 초 단위로 오가는 멘션 사이 비방과 비난이 없을 리 만무. 그런 말들을 웃어넘기고 받아칠 수 있는 재치와 유머가 없으면 트위터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상처받기 쉬운 영혼들은 트위터를 소극적으로 즐기길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한 번 말을 뱉으면 엄청난 속도로 리트윗되는 트위터의 속성상 한 번 뱉은 말을 수정하거나 삭제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본인이 후회하고 삭제했다 할지라도 누군가 리트윗해 퍼뜨렸다면 이미 그건 '내 것이되 내 것이지 않은' 문장이 돼버리는 것이다.
‘짧은 문장’ 열풍이 꼭 트위터라는 도구 때문은 아닐 것이다. 신문보다 스마트폰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세대가 터치를 몇 번이나 해야 하는 수고를 감수하며 긴 글을 읽을 리 만무하다. 전자책이 보급될수록 긴 문장은 점점 읽기 피곤한 텍스트로 여겨질 것이며, 카카오톡이나 스마트폰 메신저로 대화수단이 대체된 마당에 눈 빠지게 긴 문장은 구닥다리처럼 느껴질 뿐이다.
'말발'에 치이는 '논리'
단문의 시대는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사회현상을 낳고 있다. 평소 글을 쓰지 않거나 어떤 블로그 활동도 하지 않는 이들도 140자라는 단문이 주는 편리성 때문인지 트위터에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올리게 됐고, 이런 환경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발언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자, 지금 어떤 사안에 대해 서론·본론·결론 갖춰 원고지 10매 내외로 써서 발표하라고 하면 몇 명이나 발언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140자라면 해볼 만하다. 하고자 하는 말만 콕 집어 쉽게 하면 된다. 화두를 던지면 팔로어들이 답할 것이고, 맞는 말이라면 공감을 타고 10분 만에 몇 백 명에게 리트윗될 수도 있다. 어떤 특별한 자격 없이 누구나 오피니언 리더가 될 수 있고, 파워 트위터리안이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단문 세상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한계는 명확하다. 140자에 자신의 뜻을 담기 위해서는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추기 어렵다. 핵심만 간단히 표현하기에도 모자란 글자 수, 줄임말은 기본이고 신조어는 매너다. 그래서일까? 어떤 곳보다 토론과 논쟁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공간임에도 트위터를 통해 이루어지는 토론의 장은 대부분 결론 없는 감정싸움으로 끝나기 일쑤다. 초 단위로 바뀌는 트위터 세상에서 때로는 하루가 넘게 이어지는 논쟁도 있지만, 이런 논쟁의 승리자는 대부분 '말발 센' 이가 된다. 논리는 다음 문제고, 누가 먼저 세게 치고 들어가느냐, 적절한 타이밍에 치고 빠지느냐가 승패의 열쇠가 된다. 단문과 속도전이 가진 태생적 한계로 인해 애초부터 조목조목 논리적인 반박은 어려운 것이다.
트위터 초창기 전문가들은 트위터는 어떤 이를 팔로우해 그의 의견을 듣고 멘션을 주고받는 '구독' 매체임을 강조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인터넷, 특히 스마트폰 속 세상은 원칙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속도감 있는 단문이 주는 쾌감은 너무 달콤한 것. 트위터가 구독매체임과 동시에 자신의 감정 쓰레기를 쏟아낼 수 있는 배설의 장이 되고 있는 현상을 '이건 원래 트위터의 목적이 아니다'고 비판할 자 누구인가?
쓸데없는 걱정(?)
점심을 먹고 온 사이, 그러니까 스마트폰을 쳐다보지 않은 1시간 30분 사이 트위터 세상 속에선 이미 '피임약 안전성 논쟁'이 한창 진행중이다. 이 논쟁엔 뉴욕에 사는 지식인 교포 게이도 뛰어들었고, 페미니즘으로 무장한 센 언니들도 뛰어들었다. 관망자도 있고, '뻘소리'만 해 토론자들 김빠지게 하는 자도 있다.
새벽부터 진행된 토론이 아직까지 진행중인 걸 보면 하루 종일 시끄러울 듯하다. 그 짧은 문장으로 어찌나 말들을 잘 하시는지, 100년간 진행된 피임약의 안전성에 대한 여러 입장을 단 반나절 만에 훤히 꿰뚫게 되었다. 물론 이 논쟁 또한 지나가리라. 누군가 역사와 논리로 무장해 정리한 블로그를 링크하거나 지나친 '드립'을 치는 한 명의 미꾸라지로 인해 논쟁이 산으로 가거나. 기존 언론이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이었다면, 인터넷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제공했다. 그리고 지금 트위터로 촉발된 스마트폰 속 커뮤니케이션은 사방팔방 전방향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한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한다. 1년 전에는 없던 '장'이 지금은 여론을 주도하고 뉴스를 도배한다. 트위터가 생기기 전 연예부 기자들은 뭘 보고 기사를 썼으며, 정치부 기자들은 시민의 여론을 어디서 들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단문 시대, 그 어느 시대보다 말(문장)이 빨리 퍼지고 빨리 사라지는 세상. 빠르게 배설되는 말 중에서 일부는 살아남아 여론이 될 것이고, 대부분은 버려져 분해될 것이다.
결국 필요한 건 촌철살인과 '드립'을 구분해낼 수 있는 혜안, 그리고 자신의 논리와 감성을 제대로 전달할 최소한의 맞춤법과 문장력 정도일 것이다. 누가 아는가? 5년 후 대입 논술시험엔 'FTA 협정 후 한국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140자로 논하시오' 라는 문제가 나올지.
점심을 먹고 온 사이, 그러니까 스마트폰을 쳐다보지 않은 1시간 30분 사이 트위터 세상 속에선 이미 '피임약 안전성 논쟁'이 한창 진행중이다. 이 논쟁엔 뉴욕에 사는 지식인 교포 게이도 뛰어들었고, 페미니즘으로 무장한 센 언니들도 뛰어들었다. 관망자도 있고, '뻘소리'만 해 토론자들 김빠지게 하는 자도 있다.
새벽부터 진행된 토론이 아직까지 진행중인 걸 보면 하루 종일 시끄러울 듯하다. 그 짧은 문장으로 어찌나 말들을 잘 하시는지, 100년간 진행된 피임약의 안전성에 대한 여러 입장을 단 반나절 만에 훤히 꿰뚫게 되었다. 물론 이 논쟁 또한 지나가리라. 누군가 역사와 논리로 무장해 정리한 블로그를 링크하거나 지나친 '드립'을 치는 한 명의 미꾸라지로 인해 논쟁이 산으로 가거나. 기존 언론이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이었다면, 인터넷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제공했다. 그리고 지금 트위터로 촉발된 스마트폰 속 커뮤니케이션은 사방팔방 전방향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한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한다. 1년 전에는 없던 '장'이 지금은 여론을 주도하고 뉴스를 도배한다. 트위터가 생기기 전 연예부 기자들은 뭘 보고 기사를 썼으며, 정치부 기자들은 시민의 여론을 어디서 들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단문 시대, 그 어느 시대보다 말(문장)이 빨리 퍼지고 빨리 사라지는 세상. 빠르게 배설되는 말 중에서 일부는 살아남아 여론이 될 것이고, 대부분은 버려져 분해될 것이다.
결국 필요한 건 촌철살인과 '드립'을 구분해낼 수 있는 혜안, 그리고 자신의 논리와 감성을 제대로 전달할 최소한의 맞춤법과 문장력 정도일 것이다. 누가 아는가? 5년 후 대입 논술시험엔 'FTA 협정 후 한국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140자로 논하시오' 라는 문제가 나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