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 김수진(크리에이티브솔루션6팀 팀장)
골목길과 친해지고, 막차와 친해지고, 밤하늘과 친해지는 나이, 스무 살의 배경은 그래서 어둡다고 어느 카메라 광고는 말했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고 젊은 사랑을 그린 유행가에선 노래했다. ‘밤이 없다면 청춘도 없다’는 명제가 당연하게 들릴 만큼 무수한 이야기로가득한 시간. 2011년 칸국제광고제 필름 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한 ‘Puma Social’ 캠페인도 잠들지 않는 20대의 밤을 이야기한다.
삼삼오오 모여 볼링 한 게임 하면서 맥주 한 잔. 내기 당구 한 판 후엔 또 한 잔. 호프집 다트는 3차 술값을 걸고 한판. 들으라고 부르는 노래가 아닌 고성방가로 남은 밤들을 채우고 나면 마침내 하늘은 거짓말처럼 훤하게 밝아오고, 절도 없는 걸음걸이로 휘적휘적 집을 향하는 청춘들.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 아닌가.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별다를 것 없는 청춘 유흥 심야 드라마. 특별한 기법도, 무릎을 탁 칠 만한 반전도, 이렇다 할 영상미도 없을 뿐 아니라 그간의 수상광고들에서 볼 수 있는 스케일 또한 보이지 않는 저예산 필름이 어떻게 대상씩이나 받았을까? 광고의 처음부터 끝까지 흐르는 담담한 목소리를 하나하나 파헤쳐보자.
그들은 어두운 조명 아래 낡은 탁구대 위로 백스핀을 올린다/8번 공을 살짝 스쳐간 공으로 마침내 6번 공의 뱅크 샷을 성공한다/ 오백 세 잔이 걸린 내기 다트라면 단 한 번에 명중!/ 스페어 처리쯤은 마지막 프레임을 위해 남겨둔다/ 노래는 제대로 부르는 것에서 시작해 /차츰 목소리가 갈라지고, 그리고 결국 망가질 때까지 불러준다/ 눈은 풀려도 손놀림만큼은 멀쩡하지만/ 술집과, 당구장, 그리고 노래방을 돌다 지칠 쯤엔/ 정신이 번쩍 나게 매운 베이컨 샌드위치를 먹는다/ 기분 나쁜 건달들, 시시한 놈들, 끼어들기 좋아하는 어른들,/ 이유 없이 빗속을 방황하는 어린 녀석들/ 그렇고 그런 밤의 무리들 사이에서 살아남아/ 마침내 그들은,/ 새벽이라는 결승점에 도착한다/ 이 모든 경기를 해낸 그들이 바로 심야 리그의 선수들/ 낮의 경기 따윈 잊어라/ 밤에도 새로운 리그는 펼쳐지며/ 그리고 그곳에서 진정한 챔피언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푸마 소셜
주 타깃층이 20대인 스포츠 브랜드 푸마.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우리의 건강한 청춘이 푸마를 입고 신고 쓰고, 뜀박질을 하는 모습,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는 모습, 도전하고 실패하지만 좌절하지는 않는 모습, 승자에겐 박수를 패자에겐 격려를 보내주는모습…. 한 편의 휴먼 감동 스토리를 만들어봅시다.’
‘훈훈하기야 하겠지만 너무 뻔하지 않아?’ ‘요즘 한창 뜨고 있는스포츠 스타는 어떨까요? 김연아나 박태환, 아니면 손연재도 괜찮은데.’ ‘영상 기법이나 새로운 툴이 있으면 좋겠어요. 일러스트나 3D 잘하는 업체 많잖아요.’ ‘무조건 달라 보여야 해. 못 보던 그림 어디 없어? 독특한 거.’ ‘요즘은 소셜 시대니까 광고와 소셜 커뮤니케이션을 연동해서 실시간으로다가….’ 여기까지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회의실의 모습이다.
비주얼 세대는 어느새 기성세대가 되고, 장비와 기술의 발달이 4G급 스피드로 새로운 영상을 쏟아내고 있어서인지, 우리의 회의실에선 언제부터인가 ‘다르게 말하기’보다 ‘다르게 보이기’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다. 독특한 그림 한 장에서 카피가 나오고 컨셉트가 나오고 역으로 방향이 정해지는 방법, 그 방법이 꼭 잘못된 건 아니지만, 아이디어 방식의 역발상에 집중하는 사이 다르게 말하기, 즉 ‘What to Say’의 역발상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푸마 소셜은 ‘젊음은 도전이다’라는 스포츠 브랜드다운 이야기 대신 ‘젊음은 유흥이다’라고 말했다. ‘젊은 놈이 한심하게 밤새 술이나 퍼마시고’라는 말 대신 ‘밤의 청춘은 심야 리그의 선수’라고 이야기했다.
누구나 하는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 푸마는 다르게 말하기로 관심을 끌고 공감을 얻어 마침내 소비자의 마음에 와 닿았다.소비자의 마음을 터칭하고 움직이는 기본은 메시지라는, 광고의 정석 1장 1절을 일깨워준 캠페인, 푸마 소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면 쪼르르 자료실로 달려가 광고 책부터 빌려오고 봤던 나에게, 예전에 선배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책 보지 마. 니 머릿속에 다 있어. 훨씬 좋은 게 있어. 일단 연필부터 깎아’라고. 잊고 있던 연필. 뾰족한 끝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콕하고 점을 찍을 수 있는 그 연필을 다시 꺼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