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장훈 / 텀블벅 아웃리치셀 파트 리드. 10년간 다양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근무 및 창업했다. 저서 <크라우드 펀딩으로 돈 벌기>
대중을 의미하는 Crowd와 자금 조달을 뜻하는 Funding의 합성어인 크라우드펀딩. 용어의 뜻 그대로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다. 처음에는 개인 창작자, 스몰브랜드가 주로 이용하다가 최근에는 대기업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용 주체가 보다 다양해지는 만큼 본래의 목적인 자금 조달의 역할을 넘어 신제품을 최초로 선보이는 테스트 베드의 장이 되고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
크라우드펀딩은 크게 보상형, 투자형, 기부형, 대출형의 4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며 펀딩의 대가로 무엇을 보상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국내에서 크라우드펀딩을 지칭할 때 흔히 통용되는 방식이 보상형(Reward)이다. 펀딩의 대가로 제품, 서비스, 콘텐츠 등을 제공한다. 투자형 또는 지분형(Equity)은 펀딩의 대가로 주식이나 채권을 제공한다. 국내에서는 2015년 관련 법 개정으로 2016년부터 시행됐다. 현재는 소수의 업체만 운영하거나 문화, 예술, 콘텐츠 등 특수한 분야에서만 활용된다.
기부형(Donation)은 이름처럼 어떠한 보상도 없다. 그렇기에 해피빈과 같은 공익 플랫폼에서 주로 쓰인다. 대출형(Lending)은 펀딩의 대가로 이자를 받는 방식이다. 흔히 P2P 대출이라고 부르는 비즈니스 모델이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이며 개인, 소상공인, 회사뿐만 아니라 부동산 PF 자금 조달의 목적으로도 사용된다.
웹툰, 게임, 문구, 반려동물, 푸드, 공연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진행되는 크라우드펀딩 / 출처 tumblbug.com
선 주문 후 제작의 차이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하려면 제품 제작에 필요한 자금을 설정한 후 정해진 기간 동안 대중으로부터 펀딩을 받는다. 모집 기간이 완료됐을 때 목표한 금액 이상 펀딩이 됐다면 그 돈으로 제품을 만들어 보내주면 된다. 만약 목표한 금액에 미달됐다면 프로젝트는 무산되고 펀딩된 돈은 참여자에게 다시 돌아간다.
이런 작동 방식을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 ‘선 주문 후 제작’이다. 제품을 만들기 전 주문을 먼저 받고, 제작이 가능한 만큼의 주문이 들어와야 생산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작 자금을 조달하는 동시에 수요가 있는지 시장 검증이 가능하다. 대중의 입장에서는 펀딩에 참여하는 과정이 온라인 구매와 비슷한 경험이기에 커머스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크라우드펀딩은 새로운 시도의 리스크를 줄이는 것에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판매 목적의 유통과 차이가 있다.
새로운 시도의 장
개인이 인공위성을 만들기 위해 은행, 투자자를 찾아간다면 돈을 빌려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가능성이 희박할 것이다. 그럼 이건 어떨까? 회사원이지만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책은 처음 써보고, 아직 샘플 원고도 없다. 이때 출판사를 찾아가면 기꺼이 응해줄까? 역시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크라우드펀딩을 통해서라면 가능하다.
<OSSI 열진공 챔버> 프로젝트는 개인이 인공위성을 만들어 쏘아 올리기 위한 펀딩으로 60여 명으로부터 3백만 원을 조달했다.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꿈을 응원해 줄 60여 명의 사람을 찾을 수 있었고 필요한 자금을 만들었다. 프로젝트가 화제가 돼 뉴스에 등장하고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더 많은 기회도 얻게 됐다.
(좌)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는 크라우드펀딩 1812%를 달성한 후 <달러구트 꿈 백화점>으로 정식 출판됐다. (우) 펀딩 리워드로 제공된 메모지와 머그컵 / 출처 tumblbug.com
<잠들면 나타나는 비밀 상점,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프로젝트는 저자의 정체를 알 수 없고, 완성된 원고도 없었지만 980명으로부터 1천8백만 원을 펀딩받았다. 독자들이 보내주는 의견을 참고해 원고의 방향까지 바꿨고 결국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판할 수 있었다. 이 책이 2020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다.
이처럼 크라우드펀딩은 자금 조달 방식을 다변화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준다. 그렇기에 만들고 싶은 것이 있고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만 있다면 누구든, 어떤 시도든 가능하다. ‘그게 되겠어?’ ‘누가 돈을 빌려주겠어?’라는 질문에 깔끔한 대답을 하자면 ‘되던데?’.
찐팬으로부터 힌트 얻어
국내 단일 프로젝트 중 최고액으로 꼽히는 ‘캠핑 텐트 프로젝트’ 이면에는 고객의 니즈를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다. 담당자 인터뷰에 따르면 텐트 이전에 가방, 캐리어, 그늘막 등 다양한 제품을 시도했었고 시장이 ‘캐빈 텐트’에 반응함을 확인했다. 이전 펀딩 참여자들로부터 ‘크기를 확장해달라’ ‘창문을 더 만들어달라’ 등의 사용 후기, 반응을 전수조사했고 이를 반영한 한정판을 출시한 결과 13분 만에 28억이 모였다.
(좌) 펀딩 참여자들의 후기를 반영해 제작한 한정판 캠핑 텐트 <디 오리지널 캐빈하우스EX> (우) 소음과 바람 세기를 조절해 만든 <뽀소밍 펫드라이기> / 출처 wadiz.kr, tumblbug.com
단순히 의견을 제시하는 시장조사와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시장조사의 차이를 발견한 사례도 있다. 펫드라이어기 제품을 출시하는 ‘뽀소밍 프로젝트’의 당시 소구점은 5가지 정도였다. 펀딩을 시작하기 전에 진행한 사전조사에서는 ‘죽은 털을 뽑아준다’는 소구점에 반응하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펀딩 참여자들은 ‘저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 감소’를 주된 펀딩의 동기로 뽑았다. 단순히 의사를 표현한 것과 실제 지불의사 사이의 간극이 존재한 것이다.
크라우드펀딩은 커머스와 달리 특정 제품을 집중 조명하는 단기 프로젝트다. 펀딩의 당위성을 위해 단순히 스펙을 나열하는 방식을 넘어 공감대 형성을 위한 스토리가 덧입혀진다. 스토리에 몰입된 소비자들은 기획부터 생산까지의 과정을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해당 제품의 팬덤으로 전환되고 다양한 피드백과 의견을 남긴다. 이들의 의견과 일반 판매 후기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찐팬들의 애정 어린 피드백은 시장의 요구에 한층 부합하는 제품 개발로 이어지게 된다.
매출 아닌 리스크 헷징으로 접근
크라우드펀딩과 온라인 쇼핑이 비슷한 부분이 있다 보니 생산자가 매출 극대화의 목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관점으로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하면 실망할 확률이 매우 높다. 느린 배송, 리뷰의 부재, 퀄리티의 불확실함 등 여러 측면에서 커머스와 동일 선상에서 비교해보면 펀딩에 참여할 이유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는 업체 미팅 시 다른 유통채널과 동시에 입점 조건을 비교하는 경우 펀딩을 하지 말라고 권하는 경우도 많다. 서로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에 따른 시장의 불확실함을 해소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브랜딩하고자 한다면 크라우드펀딩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자금, 시간, 기회비용 등의 리소스가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전에 실제로 판매를 해봄으로써 실패의 부담을 덜고, 더 좋은 의사결정을 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시장에 수요가 얼마나 있을까?’ ‘우리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든다면, 지금이 크라우드펀딩 하기 좋은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