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위즈를 위한 우승 축하 광고를 준비하자”
두산베어스 구단주(두산그룹 회장)의 의견이었다.
“네? 아…네!”
4연패라는 일방적인 패배 속에서 상대방을 위한 축하 광고라니…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한국시리즈 4차전을 지켜보던 팀원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구단주의 의도는 심플했다. 준우승팀이 우승팀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진정성 있는 ‘진짜 축하 광고’를 하자는 것이었다. 비록, 승부는 차가웠지만 스포츠맨십의 뜨거움이 느껴지도록!
이내 급하게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걱정은 새로운 시도라는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한국시리즈 패배로 시무룩해진 팀원들(사실 모두 두산베어스의 팬이다)의 표정들도 조금씩 밝아졌다. 모두들 뻔한 격려 광고보단 이런 축하 광고가 훨씬 의미가 크겠다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축하광고도 타이밍이 중요한 법! 한국시리즈가 끝난 건 목요일 밤. 주말을 지내고 월요일 아침신문에 우승팀을 위한 축하광고를 내보내는 것이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금요일 시안 작업 및 확정, 토요일 원고작업. 일요일 출고로 이어지는 숨가쁜 스케줄. 아! 그러다 보니 광고시안을 준비할 시간은 단 하루. 조금은 무리다 싶은 스케줄이었지만, 때늦은 축하를 하는 건 다들 피하고 싶은 마음에 일단 앞만 보고 달리기로 했다. 생일축하도 지나고 하는게 아니라고 하지 않나. 광고를 위해 별도로 촬영할 시간도 없었기에 그 시간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한국시리즈 관련기사들의 사진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때 두산베어스 선수들이 일렬로 도열해서 KT위즈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진이 눈에 띄었다.
“그래. 바로 이거다!”
비주얼이 정해진 후, 다양한 헤드라인에 대한 의견이 오갔지만 최종 확정된 헤드라인은 바로 광고에 실린 그대로다. 어떠한 기교도 없이 정직하게 쓰자! 비록 카피적인 맛(?)이 없을지라도 축하는 가장 축하스럽게 해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올해 유난히 여러 어려움이 많았던 프로야구였지만 마지막 순간만큼은,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다. 또한 승자독식의 스포츠 승부 속에서 패자의 솔직한 인정과 진심 어린 축하가 하나의 작은 문화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람도 솔직히 가졌다. 부디 한 편에 불과한 신문광고이지만 다들 그 작은 바람들이 조금이라도 전해졌으면 했다.
나름 광고인생이 길어질수록 스스로 끊임없이 되뇌이게 되는 고리타분한 질문 하나가 있다. 물론 답도 없는 질문이다.
‘과연 좋은 크리에이티브란 어떤 것인가?’
수없이 화려하고, 수없이 놀라운 크리에이티브도 있겠지만 이번 우승축하광고처럼, 어떤 기교나 스킬 없이 담백하게, 진심으로 패자가 승자를 인정하는 문화를 보여주는 것도 크리에이티브의 한 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패색이 짙은 그 승부의 와중에 오히려 상대를 위한 우승축하광고를 먼저 제안한 구단주의 용기 또한 분명히, 크리에이티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광고는 결국 좋은 광고주가 만든다’는 광고업계의 옛말이 아직까진 옛말이 아닌 것이다.
6G를 향하는 숨가쁜 시대에서도 ‘걷기’라는 느림의 미학이 살아있듯이 자극적이고 현란한 광고 속에서도 담백하고 진솔한 크리에이티브도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내년 가을에는 광고카피에 있는 내용처럼 두산베어스의 더 멋진 경기를 기대해 본다.
[손원혁 IMC크리에이티브 본부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