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지혜 /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서울대학교 소비자학 석·박사, <트렌드 코리아>(2014~2022) 공저. 소비자 심리 이해와 소비 트렌드 분석에 관해 강의하고 연구한다.
코로나의 끝이 보인다. 길고 지루했던 코로나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그간 우리는 새로운 습관과 삶의 방식에 적응해왔고, 다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코로나로 인해 변화된 일상 중 하나는 사회 전반의 자유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제 늦은 시간까지 모든 학생이 학교에 남아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으며,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는 다양한 업무 방식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외부에서 주어지거나 강압적인 계획표가 아니라 어디서 얼마큼 일하고 공부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고 계획하는 시대다.
이러한 배경에서 ‘갓생’이 새로운 방식의 라이프스타일로 떠오르고 있다. 갓생은 신을 의미하는 ‘God’과 인생을 뜻하는 ‘생’의 합성어로 부지런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뜻한다. ‘갓생 살기’는 자유를 무제한으로 누리기보다 스스로 시간을 통제하고 구조화된 일상을 추구한다. 문제는 갓생의 실천이 어렵다는 점이다. 매일의 소소한 계획을 달성하고, 미세행복을 경험하며, 작은 성취감을 쌓아가는 갓생러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구체적인 전략을 추구한다.
첫 번째 전략은 셀프바인딩(Self-binding)이다. 루틴을 실천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하도록 자신을 구속하는 자기 묶기 전략이다. 대표적으로 목표 관리 서비스 앱 ‘챌린저스’가 있다. MZ세대가 많이 이용하는 이 앱은 운동, 독서, 영어공부 등 목표에 이용자 스스로 돈을 건 후 실패하면 차감을, 성공하면 100% 환급에 상금까지 획득하는 루틴형성 앱이다. ‘하루 1시간 공부하기’ ‘매주 5만 원씩 통장에 저금하기’ 등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어 서로 응원하고 경쟁하면서 동기를 부여받는다.
갓생에서 빠질 수 없는 운동루틴 만들기에도 셀프바인딩 전략이 적용된다. 최근 바디프로필은 MZ세대의 SNS에서 필수 컨텐츠다. 바디프로필은 수개월간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해 멋진 몸매를 완성한 후 이를 사진으로 찍어 화보를 만드는 것이다. 때로는 바디프로필을 촬영하겠다고 목표를 정하는 것 자체가 갓생을 실천하기 위한 셀프바인딩 전략이 된다. 촬영에는 헤어, 메이크업, 스튜디오 섭외 등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데, 투자한 돈을 생각해서라도 운동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운동을 해서 완벽한 몸을 만든 후에 바디프로필을 찍는 것이 아니라 바디프로필을 예약하면 그때부터 몸만들기가 시작된다는 후기가 농담은 아닌 셈이다.
갓생 실천을 위해 함께할 조력자도 중요하다. 마치 운동선수들이 함께 훈련하고 뛰는 페이스메이커를 두듯이 같이 갓생을 실천하고 일상력을 회복할 동지를 찾아 나선다. 특히 학생들은 비대면 수업이 확산되면서 온라인 페이스메이커 찾기에 열심이다. 최근 유행하는 ‘스터디윗미(study with me)’가 대표적 사례다. 서로의 모습이 보이는 영상을 켜 두고 화면 속 친구의 열공 장면을 보면서 감시 아닌 감시를 하는 방법이다.
동기부여를 담당하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강조한 어플도 있다. 자아성장 플랫폼 ‘밑미(meet me)’는 회원들이 월 5~8만 원을 내면 출근 전 30분 요가, 달리기, 명상, 매일 15분 청소하기, 비건음식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다른 자기관리 플랫폼과 다른 점은 참여한 프로그램을 매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리추얼 메이커(ritual maker)’가 있다. 리추얼 메이커는 주부부터 직장인, 작가, 기업 임원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자신이 꾸준히 실천해온 경험을 토대로 참가자를 격려하고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회원 개인의 목표달성을 지원함은 물론 회원들 사이의 따뜻한 관계 형성을 독려한다.
경영학의 오랜 동기부여 이론 중 맥그리거(McGregor)의 ‘X이론’이 있다. 인간은 본성이 게으르기 때문에 통제하지 않으면 일을 멀리하고 책임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갓생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등장은 코로나로 인해 주어진 자유도가 항상 일을 멀리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행동을 유발하지는 않음을 방증한다. 역설적이게도 높아진 일상 자유도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높였다. 구조화되지 않은 일상 속에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으며 스스로 시간을 잘 통제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갓생은 꼭 해야 하지만 자유의지로 하기 어려웠던 것들, 혼자서는 꾸준히 실천되지 않던 것들을 조금씩 이뤄나감으로써 코로나로 무너진 일상을 회복하려는 소비자의 바람이 담겨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저자 제임스 클리어는 우리가 하는 작은 행동이나 루틴이 우리의 정체성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작은 습관들이 결국 우리가 원하는 모습을 만드는 방식이다. 지금 실천하고자 하는 작은 루틴들이 모여 당신의 갓생을 완성해 줄 것임을 믿는다. 더불어 희미해진 코로나의 영향력만큼 갓생을 통해 우리의 일상이 회복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