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글 이희정 빅밴드 크리에이티브 솔루션 본부 CD
2020
나의 새로운
만남기
벌써 올해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2020년을 돌아보면 기억나느 거라고는 마스크가 90%이상인데 말이죠. 이번에는 원고 마감을 코앞에 두고도 주제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코로나 이야기를 하기에는 누구나 각자의 에피소드가 있을 것이라 우선 탈락시켰고요. 연말이라 어워드 시즌이니 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파적으로 선정한 저만의 어워드를 해볼까 하다가 일이 커질까 싶어 생각을 멈췄지요. 2021년 광고계 예측도 고민해봤지만, 당장 2분 후의 일도 모르는데 그만 뒀습니다.
고민 끝에 정한 주제는 ‘2020 나의 새로운 만남기’인데요. 늘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고 비교적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빅밴드로 이직한 덕분에 올해는 전에 없던 만남이 더욱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 속에서 CD로서 제가 하고 있던 여러 고민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도 했지요.
새로운 만남 첫번째는 저희 본부의 ‘스튜디오B’ 멤버들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씀드리면 프로덕션과 후반 인력들이 한 팀에 있는 것인데요. 감독, PD, 편집, 2D, 3D가 가능한 멤버들이 사내에 있습니다. 광고주 예산을 고려해서 외부 프로덕션 없이 기획과 촬영, 후반까지 팀 안에서 합니다. 영상 컨텐츠의 수요가 워낙 많고 다양하기 때문에 대행사들이 내부에 팀을 갖춰 경쟁력을 키우는 경우가 있는데 ‘스튜디오B’는 상당히 조직화되어 있습니다. 거의 일주일 내내 촬영이 있기 때문에 저도 얼굴을 보기가 힘들 때도 있습니다. 경쟁PT가 있을 때 시안 촬영을 해 가기도 하고요. 장비와 촬영 스튜디오까지 갖고 있기 때문에 빠르게 대응이 가능합니다.
쓰고 보니 본부 자랑 같은데요. 그보다 제작비 압박이 늘 고민인 CD로서 이 팀의 존재는 저에게도 회사에게도 현실적으로 큰 힘이 됩니다. ‘저예산’의 기준이 점점 내려가고 있다는 건 저만 느끼는 경향은 아닐 텐데요. 대행사 입장에서 어떠한 솔루션을 찾지 않으면 분명 일은 많이 하는데 돈은 누가 벌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는 일이 더 많아지게 되겠지요. 그렇다고 팀원들이 저예산 프로젝트만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촬영이든 편집이든 경험 만한 경쟁력은 없습니다. 많은 경험 속에서 성장해 나가고 있음을 옆에서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새로운 만남 두번째도 저희 본부 안에 있습니다. ‘유튜브채널팀’인데요. 현직 유튜버가 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꽤 알려진 유튜버라 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7월에 빅밴드로 이직을 하고 지인들이 회사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는데요. 저는 “내 옆자리에 유튜버가 있어”라고 답을 했네요. 그만큼 신기했고요. 대행사에도 유튜버들이 있기는 하지만 채널과 컨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죠. 개인적인 활동일 뿐이고요. 팀에서 기업 채널도 운영을 하고 있는데 성과가 좋아서 다른 클라이언트들에게도 요청이 오고 늘고 있습니다.
사실 전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이끌려 영상을 보는 상당히 수동적인 시청자입니다. ‘구독과 좋아요’도 거의 누르지 않고요. 그래서 처음 이 팀을 만났을 때 속으로는 ‘뭘,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본부 안에 있기는 하지만 CD인 제가 이 친구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게 있을지, 솔직히 제가 디렉션이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역인가 싶었거든요.
몇 개월이 지난 지금은 애초에 제 개념이 잘못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팀원들이 하던 것을 더 잘하게 하는 게 제 역할이니 그걸 하면 되었고요. 유튜브 트렌드에 대해 가까운 거리에서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너무나 좋은 기회이니 궁금한 건 물어보고 어설프더라도 나름의 인사이트를 주면 되는 거였어요.
얼마전 다른 대행사에 있는 후배의 고민거리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업무량이 아니라 내부 설득이 제일 큰 이슈였습니다. 흔히 말하는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아이디어를 준비해가면 윗분들이 모르시는 경우가 많아서 공감을 얻으려면 트렌드부터 영향력까지 다 설명해야 한다고요. 미디어의 개인화가 점점 심해지고 트렌드가 워낙 확확 바뀌어서 이기도 할테지요. 그런데 요즘은 광고주가 레퍼런스를 더 잘 찾고 유행 키워드를 잘 알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 옆자리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라면 저도 짧은 다리로 바쁘게 ‘요즘 핫 한 곳, 뜨는 것’을 따라는 갈 수 있겠지요. 만난 지 몇 개월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신기한 존재들입니다.
세번째 새로운 만남은 회사 밖의 인물들과 있었습니다. 빅밴드는 광고대행 뿐 아니라, 커머스 영역까지 아우르고 있기 때문에 인플루언서, 크리에이터들과도 다양한 형태로 일을 하고 있는데요. 덕분에 저도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알던 분들을 오프라인에서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흔히들 ‘나도 인스타 공구해 볼까, 유튜브나 할까’ 이야기하는데요. 뒷광고, 사생활 이슈들이 문제가 되며 적은 노력으로 돈 벌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어느 정도는 그랬고요. 그런데 제가 직접 만나본 분들은 달랐습니다. 업과 팔로어를 대하는 태도에서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팔로어와 구독자를 이용해서 단기간에 상업적 승부를 본다든가, 광고 수익을 얻어보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본인들의 전문성으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 도움을 주는 컨텐츠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댓글에도 하나하나 성실하게 답을 해주는데 관리 차원이 아니라 자신들과 함께 해주는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인플루언서라는 말이 영향력을 준다는 것인데 제가 만드는 광고나 컨텐츠들이 과연 보는 사람들의 삶에 어떠한 선한 영향력을 주고 있는지 반성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모든 인플루언서나 크리에이터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겠지만 팬덤에 가까운 지지와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마지막 만남은 커머스 영역의 동료들입니다. 이직하기 전 저는 광고를 만든다는 일에 지쳐 있었습니다. 전력을 다해 결국 ‘남의 일’을 하고 있다는 노동에서의 소외감이랄까요.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OT, 회의, 실행이라는 진행 패턴에도 염증이 나 있었습니다. 남의 물건이 아니라 내 것을 만들어 팔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쉽사리 도전하지 못하고 왜 한국에는 ‘레드 앤틀러’같은 조직이 없을까 미래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었지요. 그러다 대행업과 커머스를 모두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빅밴드로 옮겨와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클라이언트의 OT와 예산으로 하던 일을 해오던 습성도 있고요. 경쟁PT하는 도중에 우리 제품 브랜드스토리를 써야 한다든지 자체 컨텐츠를 우리 예산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도 그때 그때 스위치가 쉽지 않습니다. 정체성이 왔다 갔다 할 때도 있지요. 무엇보다 제 의견이나 결정이 광고의 성패가 아니라 사업의 성패에 영향을 준다고 하면 압박감이 커집니다. 다행히도 커머스 전문가들이 조직 안에 있어서 저의 판단이 광고에서만큼 크지는 않습니다. 정말 다행이죠. 그리고 그들에게 여러가지를 배우고 있습니다.
2020년 익숙한 듯 새로운 조직에서 저는 이전에 없었던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이 5개월 째이니 앞으로 또 얼마나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운 좋게도 지금까지의 만남에서 자극과 배움이 많았으니까요. 2021년에 저는 섣부른 예측도 계획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저 다가올 또 다른 만남에 대한 설렘을 안고 때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배움을 얻으려고 합니다. 하나 바라는 건 내년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사람들을 만났으면 하는 것인데, 이룰 수 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