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있는 열정은 따뜻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광고계동향, 2009년 03월, 216호 기사입력 2009.03.20 12:00 조회 8920



어떤 인터뷰보다도 만나보고 싶었고 오랜 시간을 빌려 얘기해보고 싶었다. 이노션월드와이드(이하 이노션)를 설립한지 만 3년여 만에 업계 2위로 껑충 뛰어오르게 만든 저력의 주인공. 바로 김영일 이노션 대표를 말이다. 그동안 언론의 노출이 거의 없었던 탓에 그에 대한 자료는 모을 수조차 없었다. 그에 대한 몇 가지 프로필만을 읊조리며, 역삼동에 위치한  이노션을 찾았다. 그는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달리 따뜻한 카리스마를 발산하고 있었다.   글 | 정현영 기자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일에 열의를 가진 대표를 만난 적이 없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너무나 분명하다. 조직의 혁신과 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으며,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직원들을 이끌고 가야할지에 대한 믿음도 확실히 섰다. 광고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남다르다. 그에겐 애초부터 경제에 불어 닥친 불황이나 위기설이 없었을 것이다.

김영일 대표는 침체된 광고 시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광고 시장에 국한시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요?”라고 오히려 되묻는다. 이유인즉슨 광고란 단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CM이나 인쇄물로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더 넓은 의미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업과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소비자와 브랜드 간의 커뮤니케이션, 기업과 기업간의 커뮤니케이션, 소비자와 소비자간의 커뮤니케이션… 광고는 다양한 사회주체간의 광범위한 커뮤니케이션이란 의미다. 즉 광고시장 역시 광고시장에만 국한시키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국한된 개념으로 보면, 경제상황이 안 좋으면 기업들은 광고,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그 파급효과에 따라 광고 시장은 힘들어진다는 논리가 당연하다. 김 대표는 광고의 개념을 확대시키고 광고의 본질적인 의미인 커뮤니케이션을 생각해보면 결코 지금의 상황이 어렵지 않다고 확신한다.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남들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작금의 상황들을 좀 더 다른 시각으로 헤쳐갈 수 있는 간척(干戚)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기회는 언제든지 있고 또 그 기회를 만들 수 있게끔, 다른 전략을 세울 수 있게끔, 광고업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산업에 대한 관점을 또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아마도 이를 트리거(trigger)의 역할이라고 하겠지요?”

이런 트리거야말로 이노션의 성장동력이다. 올해 이노션의 비전 슬로건은 Discover beyond [Tomorrow]이다. 지금의 상황을 넘어 미래를 위한 새로운 발견을 해나가자는 의미일터. 김 대표가 지향하는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압축된 슬로건이다. 우선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내부 경쟁력 강화에 모든 역량을 맞춘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첫 번째가 새해 들어 변화된 본부책임제이다. 본부장 중심으로 권한을 위임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갈 수 있도록 독려하는 구조로의 변화다.   

“저는 개방적인 사람입니다. 조직을 내 생각대로 무조건 끌고 가는 식이 아니라 직원들에게 회사의 상황을 솔직히 설명하고, 함께 가자고 설득합니다. 오픈 마인드가 되는 거지요.  올해 역시 비전을 제시했고, 본부장들이 적극적으로 동의를 했습니다. 오픈 마인드가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라 믿습니다. 같은 마음으로 목표를 정하고 이끌면 직원들이 믿고 적극적으로 따라주는 것, 그것이 경영자로서 가장 큰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고로 저는 행복합니다.”

김대표의 경영스타일은 바로 이런 따뜻한 카리스마다. 날카로워 보이는 첫인상과는 달리 그는 자신이 감성적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감성적’이란 의미는 상대방의 말을 들을 줄 안다는 것과 직결된다.
“광고회사에는 개성 있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 저도 디자이너 출신이지만 대개의 디자이너들이 자신들만의 아집이나 독선적인 면에 갇혀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사람일수록 자신 없는 상황이 오면 솔직해지는 것이 아니라 고집이 세집니다. 직원들에게 오픈하라고 주문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귀를 열어두어야 합니다. 우리네 업이, 크리에이티브를 중요시 여기는 이 일이야말로 쌍방향 협업이 필요한 작업이니까요.”
‘사람의 귀가 둘이고 입이 하나인 이유는 듣는 것을 두 배로 하라는 뜻’이라는 탈무드의 한 구절처럼 ‘들을 줄 아는 저력’이야말로 21세기가 원하는 인재상이 아닐까. 이노션은 본부책임제를 포함해 의사결정 효율화와 업무 프로세스 체계화, 인재양성 및 동기 부여를 통한 적절한 성과 보상, 글로벌 스탠다드화를 통한 내실 강화에 힘쓴다는 계획이다.

김대표는 도전을 즐기는 인물이다.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보다 더 기발한 생각을 많이 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모습에서 그의 지난 발자취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81년 대학졸업 후 독일로 유학을 간 그는 25년 가까이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현대·기아자동차에서 디자인연구소의 연구소장과 상품전략 총괄본부 선행전략실 전무 자리를 거쳤다. 사실 이노션으로 거취를 옮기기 전까지 디자인에만 매달린 것은 아니었다.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도 활동했던 이력이 있다.
“직접 디자인을 했던 산타페가 출시 후 굉장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기를 끌었고, 현대자동차의 이미지 역시 부상했습니다. 그때 경영진에서는 고민했던 부분이 이런 성공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까였습니다. 그것은 브랜드에 대한 지속적인 고찰이었고, 기업의 철학도 녹이면서 제품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브랜드의 개념을 세우고 그 이미지를 일관되게 소비자의 인식에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 당시로는 파격적이었지만 디자이너야말로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을 거란 경영진의 판단이 오늘의 저를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디자인으로 출발했지만 마케팅부서에서도 일을 했고,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도 커리어를 쌓게 된 것입니다.”

그는 디자이너 출신이라는 남다른 이력의 CEO지만 광고업계에서 가장 필요한 삼박자를 모두 갖춘 준비된 CEO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노션에서 제작된 광고를 보면 그 기업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렌저, 투산, 제네시스, 에쿠스 등 현대자동차는 딱딱한 ‘현대’의 이미지를 희석시키면서 타깃의 특성을 고려해 중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위해 이모션하게, 소울, 로체, 모닝 등 기아자동차는 ‘기아’의 젊은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다이내믹하게 광고를 제작해 소비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현재 이노션이 보유하고 있는 클라이언트는 현대·기아자동차 외에 CJ그룹, 오리온, 현대중공업, 국순당, 한국야쿠르트, 만도 위니아, 진에어, 웅진 코웨이, F1 등이다,

이노션의 풀네임은 이노션월드와이드(Innocean Worldwide)이다. 이노션은 Innovation과 Ocean의 합성어로 혁신적인 사고와 전략으로 글로벌 시장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기업의 비전을 담고 있다. 지난해 두드러진 이노션의 움직임을 보면 해외 법인 설립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이노션은 이태리, 유럽, 영국, 북경, 상해, 미국, 인도, 호주, 러시아의 9개 지역에 진출해 있다.
“이노션은 글로벌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형태를 지향합니다. 광고회사는 광고주의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비즈니스가 우선인데,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모든 브랜드들은 ‘Global Branding’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으며, 실제 그들 매출액의 2/3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노션뿐만 아니라 글로벌을 지향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생각하는 회사라면 당연히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할 겁니다. 현재 182개국에 진출해 있는 현대·기아차를 서포트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리저널 헤드 쿼터(RHQ)로 나눠 법인을 세웠고, 법인을 둘러싼 글로벌 로컬 지역에 광고 마케팅 전략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올해 말까지 3개 법인을 추가해 12개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김영일 대표의 관심사는 광고주가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해야 좋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맞춰져 있다. 그의 머릿속에 그려져 있는 맵은 ‘디자인-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시스템적으로 통합시켜 이익창출로 귀결되는 목적지로 이어진다. 그는 “다른 기업들의 사례가 없는 만큼 어려운 작업”이 되겠지만 “이 세 가지가 통합되어 시스템화만 된다면 광고회사로서 새로운 변모를 갖추는 것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앞으로 현지 로컬 브랜드를 영입하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선작업이 준비되고 있음을 내비쳤다. 
“소수이긴 하지만 현재 로컬 법인별로 로컬 광고주를 대행하는 경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대 광고주의 역량에 맞춰 판매 증대를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동시에 이를 통해 향후 있을 미래의 로컬 광고주들을 영입해 대행하려는 노력도 시작되고 있는 겁니다. 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1차 대상이 될 테고, 동시에 로컬 현지 회사들이 잠정적인 미래  광고주가 될 수 있겠습니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는 이제 현실적인 최우선 과제가 된 것 같다. ‘made in korea’를 달고 세계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든 브랜드도 다양하고 많아졌다. 한국의 토종 광고회사들이 해외로 진출해 WPP나 Publicis, Omnicom 같은 거대 광고 그룹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김 대표가 인터뷰 도중 가장 많이 언급했던 ‘통합’이라는 단어가 어쩌면 이를 달성할 비결이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스웨덴의 국립디자인학교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초청을 받고 간 자리에서 한 학생이 그에게 ‘어떻게 디자이너가 됐나’란 질문을 했다. 그때 그는 ‘우연’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앞서 김 대표의 전공이 디자인이라고 언급했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원래 공대 출신이다. 전과나 편입도 아니고 졸업 즈음에 다시 디자인학과를 입학한 케이스다. 그만큼 자신의 재능이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하고 싶었는지를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진로를 탐색한 결과 디자이너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연’이라고 뱉은 그의 심중이 더욱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우연’은 재능이 아니라 신념의 결과라고 덧붙였다. “우연은 결코 쉽게 오는 법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할 때 우연도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도 있듯이 준비되지 못한 자는 그 혜택이 와도 즐기지 못하는 법이지요.” 삶은 우연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그 우연성도 결국은 목표를 가지고 성실하게 노력하면서 준비된 자만이 맞이할 수 있다는 그의 설명을 듣자 그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얼마나 매사에 열정적으로 살았나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열정은 여가시간에도 빛을 발한다. 시간이 나면 운동을 주로 한다는 김 대표는 특히 MTB(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사이클 마니아다. 사이클 선수이기도 한 그는 자전거를 탈 때마다 느끼는 힘든 고비 하나 하나가 도전이고 희열이며 해냈다는 성취욕을 느끼게 하는 카타르시스라고 한다. 솔직히 무슨 생각하면서 자전거를 타냐고 묻자, “아무 생각도 안한다”는 싱거운 대답이 돌아왔다. 흘린 땀을 식혀줄 바람과 언제나 감동을 느끼게 하는 멋진 장관만 있으면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그저 ‘좋구나’란 생각만 든다고. “인생에서 힘들고 어려운 시기는 언제나 한두 번씩은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일에서도 마찬가지지요. 제가 MTB 타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게 정말 힘듭니다. 그런데 그 순간의 고통을 참고 넘어서면 그 다음부터는 천국입니다. 자신감도 생기고 성취욕도 느끼고. 그래서 일상에서도 아무리 힘들어도 뭐 이것쯤이야…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에게 자전거를 타는 시간은 온전히 비움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36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경영자로서 이들을 이끌고 회사를 내·외적으로 한 단계 더 성장시키고 도약해야한다는 부담감의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는 시간 말이다. 비워냄으로써 다시 채울 수 있다. 이제부터 그가 채우는 것은 스트레스나 부담감 따위가 아닌 ‘비전있는 열정’이었으면 한다.  

이노션 월드와이드 ·  김영일 대표 ·  광고시장 ·  광고인 ·  경영자 ·  광고회사 ·  도전 ·  글로벌 광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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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쏨땀
2024 ADFEST를 한 달 남짓 남겨둔 어느 날, OpenAI에서 비디오 생성 AI ‘소라(Sora)’를 발표했다. 지금껏 봐왔던 생성형 AI와는 차원이 다른 결과물에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졌다. 이런 타이밍에 ADFEST 참가자들이 올해 행사에 기대하는 바는 더욱 분명했을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버린 AI 시대, 광고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스포를 하자면, 모든 강연자가 그 우려 섞인 질문에 대해 ‘걱정 없다’는 답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