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현 중앙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 TV-CF / 금성 카오스 세탁기 '팡팡' >
PT도 잘 했고 결혼도 잘 했다
14년이라는 세월동안 수많은 광고를 만들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광고를 꼽으라고 한다면 ‘엘지 카오스 세탁기 팡팡’ 캠페인이다.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금성사는 백색가전, 특히 세탁기 부분에서는 늘 일등이었다. 그런데 이를 위협하는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났다. 90년대 초반으로 기억되는데, 당시 경쟁사였던 대우전자는 배순훈 사장이 취임하면서 ‘탱크주의’라는 막강한(?) 슬로건으로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어서 ‘공기방울 세탁기’를 출시하면서(모델이 유인촌 장관이었다) 새로운 돌풍을 일으켰다. 결과적으로 금성사의 시장점유율은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다. 당시 금성사의 주력 세탁기는 ‘여유만만’이라는 세탁기였는데, 마케팅은 물론이고 광고에서도 계속 공기방울에 밀리고 있었다(여유만만하게도).
금성사의 세탁기 팀이었던 CR2국은 초비상에 돌입했다. 더불어 금성사 광고팀(백명현 부장)은 우리 회사에서 거의 상주하다시피 했고, 새벽 4시에 광고주와 회의를 한 적도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함께 근무하던 박용현 대리(당시 직책)가 이런 말을 했다. “에구? 매일 야근에 새벽까지 회의를 해야 되니 ‘공기방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히트였다.
그렇게 공기방울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어느 날 금성사에서 희소식이 왔다. 극비리에 공기방울을 타도할 만한 신제품을 계획하고 있고, 그 캠페인을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신제품에 대한 PT 일정이 잡혔다. 1993년 6월 4일 오후 2시! 17년이 지난 지금도 이날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다음날이 내 결혼식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레젠터가 나였기 때문에 도저히 결혼식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아무튼 당당히 PT를 했고 결과는 광고주들의 뜨거운 박수세례였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팀장이셨던 윤병훈 국장이 만면에 희색을 띠고 빨리 결혼 준비하러 가라 하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광고가 시작되면서 공기방울에 빼앗겼던 시장을 확실히 빼앗아 오게 된 캠페인!
당시 신혼에다 정신없는 회사생활로 쫓기던 어느 날,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팠다. 하지만 신문 전면광고를 내일까지 납품해야 하는 상황. 그래서 협력업체(당시 충무로에 있었음)에 나가서 (아픈 배를 부여잡고) 원고작업을 마치고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의사가 하는 말, “미쳤군요! 조금만 늦게 왔으면 맹장이 터졌을 거요” 그때 병문안 와주었던 동료들(최홍·장한교·성시준·김기순·신경록 등) 기억도 새록새록 솟아난다.
그랬다. ‘카오스 세탁기 팡팡’ 캠페인은 내 젊은 날의 열정이었다. 이런 열정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이 캠페인을 함께 만들었던 팀원들(조영건·나희정·김재언·김건익·이용민 등)의 열정이 오늘의 HSAd를 만든 것이 아닌가? 감히 한 번 생각해 본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당시 디자이너와 카피라이터는 참 많이도 싸웠다. 나는 특히 나희정 카피와는 엄청 싸웠다. 이 지면을 빌려서 나 카피에게 전하고 싶다. “나희정~ 그때가 그립다.^^;;” 요즘 후배들도 우리 싸우듯이 싸울까?? 궁금해진다.
금성사의 세탁기 팀이었던 CR2국은 초비상에 돌입했다. 더불어 금성사 광고팀(백명현 부장)은 우리 회사에서 거의 상주하다시피 했고, 새벽 4시에 광고주와 회의를 한 적도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함께 근무하던 박용현 대리(당시 직책)가 이런 말을 했다. “에구? 매일 야근에 새벽까지 회의를 해야 되니 ‘공기방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히트였다.
그렇게 공기방울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어느 날 금성사에서 희소식이 왔다. 극비리에 공기방울을 타도할 만한 신제품을 계획하고 있고, 그 캠페인을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신제품에 대한 PT 일정이 잡혔다. 1993년 6월 4일 오후 2시! 17년이 지난 지금도 이날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다음날이 내 결혼식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레젠터가 나였기 때문에 도저히 결혼식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아무튼 당당히 PT를 했고 결과는 광고주들의 뜨거운 박수세례였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팀장이셨던 윤병훈 국장이 만면에 희색을 띠고 빨리 결혼 준비하러 가라 하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광고가 시작되면서 공기방울에 빼앗겼던 시장을 확실히 빼앗아 오게 된 캠페인!
당시 신혼에다 정신없는 회사생활로 쫓기던 어느 날,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팠다. 하지만 신문 전면광고를 내일까지 납품해야 하는 상황. 그래서 협력업체(당시 충무로에 있었음)에 나가서 (아픈 배를 부여잡고) 원고작업을 마치고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의사가 하는 말, “미쳤군요! 조금만 늦게 왔으면 맹장이 터졌을 거요” 그때 병문안 와주었던 동료들(최홍·장한교·성시준·김기순·신경록 등) 기억도 새록새록 솟아난다.
그랬다. ‘카오스 세탁기 팡팡’ 캠페인은 내 젊은 날의 열정이었다. 이런 열정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이 캠페인을 함께 만들었던 팀원들(조영건·나희정·김재언·김건익·이용민 등)의 열정이 오늘의 HSAd를 만든 것이 아닌가? 감히 한 번 생각해 본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당시 디자이너와 카피라이터는 참 많이도 싸웠다. 나는 특히 나희정 카피와는 엄청 싸웠다. 이 지면을 빌려서 나 카피에게 전하고 싶다. “나희정~ 그때가 그립다.^^;;” 요즘 후배들도 우리 싸우듯이 싸울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