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세계 디자인의 심장’이라는 <아이디오>의 CEO ‘팀 브라운’을 취재한 글을 읽다가 훅- 하고 가슴에 다가왔던 말이다.
글 ㅣ 김혜경 (이노션 상무, 광고 1 본부장)
<아이디오>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노키아, 토요타, 나이키, 등 세계적인 기업은 물론이고 삼성, 현대카드 등 국내기업들도 앞 다투어 경영컨설팅을 의뢰하는 회사다. 사실 나는 처음엔 그들이 단순히 특이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집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취재기를 다 읽고 나자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을 하는 집단이라는 내 생각 자체가 얼마나 고리타분한 것인지 반성하게 되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것을 살펴보면 단순히 보기 좋은, 예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애플이 내놓은 최초의 컴퓨터 마우스, PDA열풍의 주역 팜TV, 폴라로이드의 즉석카메라... 그것은 편리하고 유익하며 한편으론 매우 단순하고 철저히 사용자 위주다. 그들이 이런 물건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건 ‘팀 브라운’의 말처럼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손과 귀, 발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림을 잘 그리거나 무언가를 잘 만드는 사람들(흔히 우리가 디자이너라고 부르는)을 잘 살펴보면 단순히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라기보다는 사람이던, 물건이던, 행위든 대상이 되는 것들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집중하고 그것을 비쥬얼화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다. <아이디오>는 브레인스토밍 이후에 프로토타입이라고 부르는 그 과정을 반드시 실천에 옮긴단다.
아무리 조악하더라도 생각해낸 것을 최대한 빨리 실제로 만들어보는 것이다. 그래야 실제화되었을 때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결과적으로 클라이언트들이 원하는 ‘스피드’를 올릴 수 있으니까.
그들이 맥킨지나 BCG같은 마케팅회사들에 비해 경쟁력이 있는 건 혁신에 목말라 있는 CEO들에게 입으로 떠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이 발견해내고 찾아낸 생각들을 구체화해 눈앞에 실물로 턱 꺼내놓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 들어 설치미술이 각광을 받는 것도 그런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이다. 지난 달 다녀온 모리미술관에서 본 <쿠리바야시 다카시>의 작품 또한 그랬다. ‘벌레’의 입장이 되게 하는 특별한 체험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나는 이제 <쿠리바야시 다카시>그의 추종자가 되었다. 브랜드로열티란 그런 것이다.
이제, 소비자들은 이제 더 이상 멋진 이미지에 속지 않는다. 컨텐츠는 물론 미디어조차 그들 스스로 만들어내며 물건은 물론이고 광고 또한 직접 체험해보고 만지고 느끼길 원한다. 때문에 우리 광고인들도 더 이상 모호한 이미지와 멋진 영상으로 그들을 유혹할 수 없다. 그런점에서 최근의 아이패드 광고와 아이폰 4는 멋지다.
시사하는 점 또한 크다. 더구나 삼성의 갤럭시폰과 갤럭시탭 광고와 비교가 되어서 더욱 ‘광고는 저런 건데 말이야’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마치 제품설명서를 연상시키는 스타일의 광고지만 어떤 멋지고 특이한 광고에 지지 않는 임팩트가 있다. 광고쟁이인 나조차도 저게 무슨 소리야 하는 광고가 태반인 터에 어떻게 저렇게 명쾌하고 유쾌할 수 있는지. 너무 심플하고 너무 친절하고 너무 쉬워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아이패드를 사서 그대로 따라하고 싶어진다. 괜한 이미지로 혼란하게 만들지 않고 즉각적으로 체험을 유도한다. ‘역시 애플답다’ 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비지니스의 결과물은 단순해야 한다. 고객, 이용자, 소비자의 입장에서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몰입할 수 없고, 충성할 수 없다. 복잡한 것은 배후로 집어넣고 우아하고 단순하게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것. 이것이 바로 단순해야한다는 것이다. 애플은 이런 점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스티브잡스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우아하고 단순하게. 팀 브라운의 이 말은 26년간 광고쟁이를 해 온 나의 뒤통수를 뻑- 하고 쳤다. 30분 후, 기아자동차 K7의 시안리뷰를 했다. ‘꼭 이렇게 빙빙 돌아서 꾸며야해? 오히려 담담하게 좀 더 심플하게 좀 더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게 더 새롭지않아? 그게 더 자신감이 있어 보이지 않을까...’ 제작팀들의 표정이 젠장-하는 표정으로 확 변한다.
꾸미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걸 그들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용 없고 멋만 부리는 싸구려아이디어를 내는 데 익숙해지면 그걸로 끝이다. 아이패드 광고처럼 손에 잡히는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우리 광고쟁이들은 땅에 단단히 발을 디디고 설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 진짜가 되던지, 아니면 ‘진짜’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