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ㅣ 정상미 객원기자
긴 두 귀의 커다란 앞니, 보송보송 털에 동그란 눈망울을 지닌 토끼는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동물임이 틀림없지만 생긴 것처럼 착하고 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물론 동물의 성격을 단정 짓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지만, 적어도 우리가 듣고 읽고 자란 이야기속의 토끼는 참으로 맹랑하기 그지없었지 아니한가.
별주부전의 토끼는 ‘간을 빼서 집에 두고 왔다’는 명언으로 자라를 속이고 용왕 앞에서 ‘토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여기서 ‘토끼다’는 토끼(兎)+다 로 분석되는 말이다. 토끼가 잘 달리는 특성에 빗대어 ‘도망가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로 만들게 되었단다. 이렇듯 동양에서의 토끼는 순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꾀 많고 영특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바다 건너 서양에서는 더 가관이다. 서양의 토끼는 음란함의 상징이다. 암컷 토끼 한 마리가 1년 간 낳을 수 있는 새끼는 최고 40마리. 수컷은 아마 자신이 연간 몇 마리의 새끼를 낳는지도 모를 것이다. 암컷만 보면 무조건이니. 일정한 발정기 없이 아무 때나 짝짓기를 해 새끼를 잉태할 수 있는 동물은 인간을 제외하고 오직 토끼뿐이라고 한다.
어쨌든 토끼의 이러한 ‘성욕’이 미국의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의 초대 아트디렉터 아트폴 마음의 쏙 든 이유임이 틀림없다. 그는 토끼의 이미지를 이용해 성적 코드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며 플레이보이의 로고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나비넥타이를 목에 맨 토끼인 것이다.
플레이보이의 대표모델이 되고난 후, 서양에서의 토끼는 음탕한 동물로써 더욱 더 그리고 완전히 자리 잡았다. 듀라셀 4컷 만화 광고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아! 하고 어른들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이 광고가 그러한 이미지속의 토끼를 말해주고 있다. 다소 민망하지만 이것만큼 내용전달이 잘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듀라셀의 광고는 늘 이슈가 되고 관심을 받았는데 그중 듀라셀과 에너자이저의 재미있는 마케팅사례가 하나 있다. 듀라셀과 에너자이저 광고, 두 광고에는 똑같이 핑크색 토끼가 등장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에너자이저의 핑크토끼가 낯설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 핑크토끼의 상표권은 듀라셀에 있었다.
듀라셀은 핑크토끼(‘듀라Bunny’)로만 광고를 한다고 할 정도로 꽤나 고집스럽게 그들의 토끼를 앞세웠었다. 그런데 유독 미국에서 에너자이저에게 핑크토끼 상표권을 빼앗겼고 에너자이저는 비슷한 Bunny를 앞세워 엄청난 홍보효과를 거두게 되었다.
그런데 그 엄청난 홍보효과란 무엇이었을까, 광고를 본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Bunny를 보고 에너자이저를 떠올린 게 아니라 오히려 듀라셀을 연관 지어 생각했다고 한다. Bunny가 듀라셀의 차기 모델역을 해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에너자이저 입장에서는 돈을 주고 듀라셀 광고를 해준 격이 되고야 말았다.
듀라셀 입장에선 그저 재미있었을 터이고, 에너자이저 입장에서는 땅을 치고 후회했을 아찔한 실수가 아니었을까 한다. 하지만 역시 우리에게 이 이야기마저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한국을 포함,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 에너자이저의 핑크 Bunny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에너자이저의 백만돌이가 익숙한 이유이다.
다시 눈을 돌려 우리나라의 광고를 살펴보면 우리에게도 듀라셀의 토끼(듀라Bunny)만큼 제품을 대표하고 광고 속 주인공으로 꿰차고 앉아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토끼모델이 있다. 어디선가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산.들~ 애.” 도대체 광고에 어떻게 튀어나왔을까 싶을 정도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토끼가 엄마와 딸과 함께 주방에서 요리를 하지를 않나 밭에 가서 채소도 따오질 않나 심지어 채소를 싣고 트럭에 앉아 운전까지 한다.
깨끗한 자연에서만 사는 산토끼와 산과 들을 사랑한다 라는 의미의 ‘산들애’가 너무 잘 어울리는 광고다. 역시 산들애 광고의 빛나는 주역은 ‘건강한 재료’를 보여주는 배경을 바탕으로 주 타겟층인 주부들 마음속에, 쏙 안착한 토끼님 되시겠다. 토실토실한 건강한 토끼가 간드러지는 목소리와 특유의 사랑스러움으로 대박을 친 것이다.
“아빠 저 임신했대요, 한 6주쯤 됐나봐요.” 시크하고도 무심하게 말하는 딸, 그리고 뒷목 잡는 아빠. 어느 날, 곰 가족에게 생긴 일. 과거, KT 쇼 앤 파트너스, ‘제휴의 선을 넘다’편의 광고 내용이다.
그런데 반전은 광고 마지막에 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하며 나타난 남자친구는 다름 아닌 토끼, 위에 토끼의 생식활동을 쓰고 보니 더 재미있었다. 의도한 내용과 어우러져 유머러스한 광고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
이외에도 의약품 토비콤 광고에는 빨간 눈 토끼가, SM3 자동차 광고에는 피켓을 들고 있던 야생토끼가 종종 출연하곤 했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 중인 토끼광고는 어떤것이 있을까?
요즘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있는 광고가 있다. 바로 온라인쇼핑몰 11번가 광고. 광고의 내용은 2011년, 토끼해이다. 광고를 보고 있으면 11번가가 2011년이 되길 얼마나 손꼽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토끼 머리띠를 착용한 2NE1의 산다라박이 떠오르는 해가 되어 “올해는 11번가의 해~” 라고 외치는 광고야말로 2011년에는 11번가가 온라인쇼핑몰의 1인자로 자리 잡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생기게 만든다. ‘토끼다라해’ 덕분에 광고의 이슈화와 내용 전달에 있어 정말 두 마리 토끼를 잡지 않았나 싶다.
10년 전 쯤, 개인중고품 경매 사이트로 이름을 떨치던 와와컴의 광고 중에 어떤 사람이 나와 ‘토끼 잘 키워주실 분 찾습니다.’ 라고 말하던 광고가 있었다. 그 당시 광고로는 파격적이며 신선한 충격을 줬던 광고였다.
2011년 1월, 신묘년 토끼해가 시작되었다. 토끼의 영특함과 지혜를 본받고 매번 도약하는 토끼처럼 모두들 도약할 수 있는 한해가 되길 바라며, 또, 올해만큼은 광고 속에서 10년 전 광고처럼 신선한 충격을 줄만한 토끼의 무대를 볼 수 있길 기대해 보며… 2011년 광고시장에서, 토끼 잘 키워 주실 분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