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매력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거리를 가득 메운 광고다. 빽빽히 들어찬 시멘트 건물과 늘 극심한 교통 체증을 빚고 있는 홍콩이 결코 질리지 않는 까닭은 도시 전체에 화려하게 뿌려진 상상력의 총체 덕분이다. 크리에이티브의 대향연장, 홍콩의 매력에 취해본다.
글 ㅣ 허한나 (『홍콩에 취하다』 저자)
중국 반환 50주년이 되는 2047년까지 1국가 2체제로 유지될 예정인 홍콩은 중국의 ‘특별행정구’라 불린다. 홍콩의 꽃인 자형화가 그려진 홍콩 특별행정구의 기를 따로 보유하며 화폐 단위 역시 중국의 위안화가 아닌 홍콩 달러를 사용한다. 서울 면적의 2배 정도 크기에 인구 700만의 작은 도시지만 2009년 한 해만도 3,000만 명의 외지인이 찾을 정도로 세계적 관광 도시다. 침체에 빠진 세계 경제와는 무관하게 해마다 관광객 수가 증가하고 있어 사실상 관광객 유치를 위한 특별한 노력이 필요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홍콩만큼 지속적인 관광 홍보를 하는 도시도 드물다.
홍콩관광청은 홍콩이 가진 다양한 관광 자원을 더욱 효율적으로 알리고자 오랜 시간을 두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많은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력적인 관광 상품 개발은 물론 CNN과 같은 해외 방송 채널을 매체로 한 지속적인 광고로 홍콩의 이미지 개선에 심혈을 기울였다. ‘쇼핑, 미식, 야경’이라는 가벼운 키워드로만 기억되고 있는 홍콩 이미지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쇼핑과 음식, 야경의 이미지를 벗어라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홍콩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홍콩 관광청이 내세운 슬로건은 ‘Hong Kong Live it Love it’이다. 국내에는 ‘활기찬 표정과 열정이 넘치는 곳’이라는 슬로건으로 알려졌다. 매 시즌 광고마다 홍콩의 슈퍼스타 성룡이 등장하는가 하면 외국인 관광객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등 스토리텔링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광고에 흐르는 한결같은 주제는 ‘홍콩에서 맛보는 다양성’이다.
동양과 서양이 잘 어우러져서 문화의 다양함을 맛보기에 최적의 장소인 홍콩을 짧은 영상에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홍콩의 유명 건축물과 스카이라인 등 화려한 도심의 모습이 드러나는 한편, 천혜의 자연경관이 아름답게 비친다. 흔히 홍콩 하면 하늘을 찌를 듯한 빌딩숲을 떠올리지만 사실은 면적의 70% 이상이 산이고 수많은 섬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경마장과 테마파크, 용선제(드래곤 보트 페스티벌) 등 홍콩의 대표적인 구경거리가 등장하는데, 가장 화려한 위락 문화를 보여주는 도심과 지극히 동양적인 문화유산이 교차하며 등장해 홍콩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움직이는 광고판’ 트램과 MTR
1904년부터 운행을 시작해 달린 지 100년이 넘는 트램. 홍콩에서는 가장 싼 요금으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냉방 시설이 없어 찜통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에는 외면하고 싶지만 광고매체로는 가히 최고의 수단이라 할 수 있다. 간혹 광고가부착되지 않은 녹색 트램도 있지만 골동품이라고 할 만큼 찾기 어렵고, 트램의 대부분이 온몸을 광고로 단장한 채 천천히 거리를 누빈다.
트램만이 아니다. MTR이라는 홍콩의 지하철에서는 홍콩이 과연 전 세계 최고의 옥외광고 각축전이 열리는 곳임을 실감할 수 있다. 플랫폼의 벽면·바닥·천장·벽·기둥은 물론이고, 에스컬레이터와 지하철 몸체까지도 기막히게 활용한다. MTR Corporation(홍콩 지하철)이 주관하는 ‘The Best of the Best Awards’가 해마다 열릴 정도다. 시민은 온라인 투표로 우수한 광고를 선정하는 데 참여한다.
무엇보다 MTR 광고에 주목해야 할 점은 매체의 특성을 아주 영민하게 이용했다는 점이다. 가령 상당히 빠른 속도의 MTR 에스컬레이터의 특성을 이용해 핸드레일에 자사의 노란색 밴 이미지를 래핑한 DHL광고가 있는가 하면, 계단에 일러스트를 새겨 걷기 운동을 권장하는 보건복지부의 광고, 역무원 사무실 외벽에 절묘한 그림을 입혀 마치 벽이 무너진 듯한 느낌을 연출한 3M의 벽걸이 훅 광고, 역과 역 사이를 잇는 터널에 10만 개의 크리스털을 달아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크리스마스 시즌의 스와로브스키 광고 등 대표적인 것만 열거해도 끝이 없을 지경이다.
에코 라이프를 꿈꾸다
홍콩의 거대하고 번잡한 도시에서 가장 큰 문젯거리는 역시 공해다. 홍콩에서 집행한 그린피스의 ‘Car Free Day’ 광고를 주목해보자. 거대한 해일과 허리케인, 그리고 녹아내리는 빙하까지-깔끔하고 모던한 이미지의 이 인쇄광고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입자가 모두 ‘자동차’임을 알 수 있다. 즉, 공해로 인한 환경 파괴로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대재앙을 시사한다. 복닥복닥한 홍콩의 거리를 걸으면서도 결코 피곤하거나 지루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 후미진 골목길에서조차 발견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한 매력에 있다.
① 동서양의 문화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홍콩의 매력을 어필한 홍콩 관광청의 국가 홍보 전파광고. 광고에는 ‘Feel it, See it, Find it, Taste it, Win it, Rock it, Swing it’이란 카피가 흐르고 각각의 메시지에는 홍콩에서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들이 박진감 넘치게 보인다 . Feel it과 See it에 해당하는 파트에서는 홍콩의 건축물과 아름다운 스카이라인, 천혜의 자연경관이 펼쳐진다.
Win it에서는 경마를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Rock it에서는 홍콩 란타우 섬에 개장한 디즈니랜드와 같은 테마파크를 알리고, 마지막 Swing it에서는 세계적인 축제가 된 용선제(드래곤 보트 페스티벌)와 세계에서 가장 크기가 큰 불상이 있는 포린 사원 같은 문화유산에 초점을 맞추며 홍콩이 가지고 있는 동양적인 색채를 표현한다. 마지막은 언제나 ‘Hong Kong Live it, Love it’이다.
② 홍콩에 본사를 두었으며 홍콩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인 캐세이패시픽 항공사. 2010년 선보인 전파광고는 하늘에서 펼쳐지는 관심과 보살핌(Love and Care in the air)이라는 주제로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6가지 잔잔한 에피소드를 따뜻한 영상으로 만들었다. 불도 켜지 않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며 라면을 먹고 있는 한 남자.
그리고 그런 남자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아내. 이렇게 몰래 야식을 먹어야만 잠드는 남편은 기내에서 맞이하는 밤에도 옆자리에 앉은 아이가 먹는 스낵을 바라보며 침을 삼킨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은 승무원은 온화한 미소와 함께 간단한 음식을 가져다준다. 광고는 “아내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죠. 그러나 앨리스는 나를 이해해줍니다”라는 멘트로 끝난다. 광고는 에피소드마다 승무원을 앨리스나 글로리아 등 특정 이름으로 불러줌으로써 승객과 더욱 친밀한 관계로 느끼게 한다.
③ 트램을 활용한 안경 브랜드 알랭미끌리의 광고. 경극 마스크를 모티브로 꾸민 알랭미끌리의 광고가 하나의 현대 미술품처럼 보인다. 동양의 전통적인 느낌과 깔끔한 현대적인 느낌이 혼재하는 인상적인 광고다.
④ 생수 ‘크리스탈 가이저’의 트램광고. 트램광고의 대부분은 트램 전체를 래핑한다. 도심을 돌며 사람들을 태우는 트램은 어디에서나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최고의 광고매체다.
⑤ 트램 못지않은 광고의 향연장이 바로 홍콩 지하철 MTR이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MTR 개찰구 옆에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광고가 보인다. 3M의 벽걸이 훅 광고다. 지하철 역무원 사무실 외벽에 래핑된 이 광고는 자사의 벽걸이 훅 ‘코맨드’의 광고인데 그 발상이 재미있다. 못을 박기 위해 전동 드릴을 사용하는 순간 벽이 무너져서 깜짝 놀라는 사람과 그 안에서 당황하는 지하철 역무원의 모습이 표현된 것. 실물 크기라 얼핏 보면 실제 상황 같다. 뚫린 벽을 통해 진짜 역무원실이 보이는 착시 현상을 노렸다. 코맨드가 있으면 앞으로 못질 할 일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⑥ 홍콩 여성은 앙상하다 못해 뼈가 드러나는 몸매를 선호하기에 다이어트에 열을 올린다. 문제는 홍콩의 빠른 라이프 사이클에 걸맞은 빠른 다이어트 효과를 원하기에 부작용 많은 약물을 통한 살 빼기에 주력한다는 점이다. 운동을 통한 건강한 몸매 가꾸기를 장려하고 동시에 시민의 심각한 운동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홍콩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묘책은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저비용 고효율 운동인 계단 이용하기 캠페인. 이른바 건강으로 가는 계단, ‘Step your way to health!’ MTR과 손잡고 76개의 역사에 계단마다 컬러풀한 포스터를 부착했는데, 건강으로 가는 계단이라는 카피 아래 오르내려야 할 계단의 수가 친절하게 표기되어 있다.
⑦ MTR의 에스컬레이터 속도는 상당히 빠르다. 속도가 생명인 화물 운송 전문 업체 DHL은 빠른 에스컬레이터의 속도감을 놓치지 않았다. 회전하는 에스컬레이터 핸드레일에 자사의 노란색 밴 이미지를 래핑한 것. 핸드레일이 움직이면서 노란색 밴도 함께 달린다. 물론 고정돼 움직이지 않는 에스컬레이터 사이드는 차들로 꽉 막힌 정체 도로다. DHL은 교통 체증과 무관하게 신속하게 화물을 배송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⑧ 음료수 뚜껑에 자동차 후면을 인쇄했다. 뚜껑에 꽂힐 빨대는 곧 자동차의 배기가스가 된다. 그 빨대를 입으로 물면? 공해는 당신의 생각보다 더 가깝고 심각한 수준에 있다는 것을 표현한 광고다. 자동차가 뿜어내는 가스가 얼마나 인체에 직접적으로 해를 미치는지 강렬하게 표현한다.
⑨ 모래사장을 덮치는 해일, 휘몰아치는 허리케인, 녹아내리는 빙하…. 멀리서 보면 간결한 선, 단순한 색으로 표현한 일러스트 같은 광고다. 환경 오염으로 인한 지구의 대재앙을 묘사한 이 광고는 가까이에서 볼 때 진가를 발휘한다. 이미지를 이루는 ‘점’들이 바로 자동차기 때문이다. 즉, 자동차로 인한 공해가 참담한 자연재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표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