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4월 7일에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을 보면 재미있는 광고들이 있다. 이 신문이 최초의 민간신문이기 때문인지 광고 측면에서도 새로운 것이 나타났는데 그중 하나가 일러스트레이션의 출현이다. 창간 무렵 하루 4페이지 가운데 3개 페이지는 한글, 그리고 셋째 페이지가 광고이며 넷째가 영문이었다. 그런데 이듬해인 1897년 1월 5일부터는 영문판 INDEPENDENT가 따로 나온다. 4페이지이며 한글판에 비해 영문판에는 광고가 많아서 4면은 온통 광고이고 추가 광고료를 내는 1면에도 광고가 실렸다. 영문판 1면 광고의 개시가 독일 상사 세창양행이다.
한국 최초의 신문 광고주이기도 한 세창양행은 광고 크리에이티브 측면에서도 선도자의 구실을 했다. 영문판 첫 호인 1월 5일자 1면에는 조선 세창양행(朝鮮世昌洋行)이 게재한 말라리아 특효약 키니네(Quinine) 광고가 있다. 그리고 그 광고에는 한국 신문 최초의 일러스트레이션이 들어 있다. 더욱 놀랍게도 이 일러스트레이션이 들어간 광고는 ‘현지화’한 광고였다. 십장생(十長生)에 들어 있는 거북과 학이 등장한다. 거북 등에 올라 탄 토끼, 학을 타고 날아가는 사람.
이 사람이 들고 있는 깃발에는 E.M. & Co.라고 쓴 영문 글이 있는데 이것은 독일회사인 세창양행 이름 Eduard Meyer & Company의 머리글자를 딴 줄인 말이다. 말할 것도 없이 오래 오래 번창하는 세창양행이라는 뜻이다.
이 일러스트레이션은 뒤에 한글 독립신문에도 게재되었다. 1897년 2월에는 모자 모양이 나오고 3월 말에는 태극기와 ‘M’(Meyer의 첫 글자) 자가 들어 있는 세창양행의 사기(社旗), 5월에는 서울 진고개에 있는 일본 상사가 왕관(王冠) 일러스트레이션을 사용한 광고를 게재했다.
놀라운 일은 지금으로부터 이미 약 120년 전에 외국(독일) 기업 세창양행이 한국에서 장사를 시작한지 그리 오래지도 않았는데(한독 수교는 1882년) 이처럼 현지화를 했다는 사실이다. 흥미로운 것은 토끼, 거북, 학의 그림이 있는 이 날 광고의 카피이다.
세계에 뎨일 좋은 금계랍을
이 회사에서 또 새로 많이 가져 와서 파니
누구던지 급계랍 장사하고 십흔 이는
이 회샤에 와셔 사거드면
도매금으로 싸게 주리라
지금은 사라진 금계랍은 학질약이다. 그런데 그 약 광고를 누구나 알기 쉽게 읽을 수 있는 이런 순 한글로 쓰게 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선각자 서재필의 한글 독립신문의 영향이다. ‘Think Global, Act Local’ 이란 표현이 생긴 것은 이로부터 1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난 뒤이다. 그런데 1897년에 벌써 다국적 기업인 세창양행의 ‘Gloca’ 일러스트레이션이 한국 광고에 등장한 것이다.
[AD History] 한국 최초의 광고 일러스트레이션은 십장생(十長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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