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골짜기 샘물들이 오랜 가뭄으로 말라가고 있었다. 다행히 지난주, 몇 차례의 폭우가 쏟아지더니 계곡에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며 약숫물 줄기도 다시 굵어졌다. 약수대에 비스듬히 기울여 받쳐 놓은 20ℓ 물통에 차가운 약숫물이 금방 반이나 차올랐다.
뙤약볕이 쏟아지는 한낮의 약숫터는 한산했다. 시원한 약숫물 한 바가지를 들이키며 조금 전 내가 올라 왔던 산비탈 길을 내려다봤다. 한 중년 남자가 목에 수건을 두 른 채 올라오고 있었고 그 뒤로 연로하신 노인이 물통을 양손에 들고 힘겹게 올라오고 계셨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이 약수터는 지역 사람들에게 급수는 물론 산책 코스로도 좋아 평상시 발길이 잦은 곳이다.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이 짐을 풀고 약숫 물로 목을 축인 후 잠시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 길 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렸을까. 문득 광고 한 편이 그 길 위로 오버랩 된다.
바로 박카스 광고 엄마 편, 이 광고는 시리즈의 전편들에 이어 생활의 노고에 지쳐 있는 서민들에게 마음의 위로와 활력을 준다는 콘셉트를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세 쌍의 각기 다른 모녀들이 순차적으로 카메라에 잡히며 그녀들의 중첩된 시간의 고리들 을 기묘하게 잡아내고 있다. 삶의 일련의 과정들 을 동일 인물의 성장을 통해 열거하여 보여 주는 방식이 아닌, 각기 다른 사람들의 모습 들 을 포개어 연결하여 보여줌으로써 보편적인 여성의 삶이 보다 잘 묘사됐다.
특히 광고 후반부,
그들이 Y자형 길 위에서 각기 다른 방향으 로 걸어가 는 장면으 로 마무리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격려와 사랑의 마 음 을 표현하 는 매개체로 제품의 의미를 고착시킨 이 이미지 광고는 한 편의 따뜻한 단편 만화를 본 것과도 같은 감동을 준다. 제한된 시간과 컷 안에서 완결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축약과 상징과 암시와 복선 등의 여러 가지 연출들을 동원해야 하는 30초 CF처럼 20페이지 단편 만화 를 제작할 때도 동일한 고민들 을 해야 한다. 그래선지 짜임새 있게 잘 만들어진 광고를 볼 때면 다양한 연출 기법들을 찾기 위해 밤낮 씨름을 했던 창작 초기 시절, 젊은 날들이 생각난다.
핸드 카트에 물통을 단단히 묶고 돌멩이 박혀 있는 산비탈 길을 탈탈거리며 내려오다 뒤돌아 서서 약숫터를 올려다봤다. 아까 길을 올라오던 노인이 물 을 받고 계셨다. 볕이 환해선지 길이 하얗다.
지친 노객의 고단함을 씻어주는 시원한 샘물 한 바가지같은, 생활의 곤비함에 활력과 위로를 주 는 박카스 한 병 같은 만화 …. 나도 그릴 수 있을까?
[내가 본 광고 이야기] 시원한 샘물 한 바가지처럼
시원한샘물한바가지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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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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