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thingNew
실화엔 3류가 없습니다
2013년 칸국제크리에이티비티페스티벌 수상작을 보면‘ 실화’를 내세운 것들이 많습니다. 가짜는 이야기로 끝나지만, 진짜는 누군가를 ‘변화’시키기에 이르니 그 힘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사람들에게 ‘실화’를 안겨줄 차례입니다.
절대 잡히지 않는 희대의 사기꾼. 그는 부기장 행세를 하며 전 세계 비행기를 무임 탑승하고, 변호사, 때론 의사로 위장하기도 합니다.
주인공답게 늘 경찰을 절묘하게 따돌립니다. 재능은 많으나 가난한 여자. 그녀는 우연히 돈 많은 남자를 만나 그의 마음과 돈을 얻습니다. 그리고 남자의 재력으로 멋진 의상실을 엽니다. 모든 이야기의 엔딩이 그렇듯 마침내 세계 제일의 디자이너가 되지요. 적진에 갇힌 6명의 인질. 그들을 구하기 위해 영화를 찍는 척 잠입하기로 합니다. 가짜 감독을 섭외하고, 가짜 제작자를 동원해 전 세계적으로 영화 제작발표회까지 엽니다. 그리고 인질을 모두 무사히 구해내는 해피엔딩이 이어집니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엔딩.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뻔한 3류가 됩니다. 하지만 이게 모두 진실이라면 어떨까요? 첫 번째 얘기는 <Catch me if you can>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진 실화이며, 두 번째는 코코 샤넬의 이야기, 세 번째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아르고>의 실화입니다. 영화 줄거리는 뻔하거나 터무니없지만,‘ 실화’라는 사실이 가장 큰 반전이 되어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거죠.
이 광고는 모두 실화입니다
요즘 광고 메시지의 미덕은 ‘실화’인 듯합니다. 15초·30초 광고에서 벗어나면서 실제 반응을 얻는 데 더 공을 들이고, 몰래 카메라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찍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 영국의 통신사 오렌지(Orange)는 재미있는 실화를 몇 편 만들었습니다.
장소는 공항. 사람들이 짐을 찾으러 하나둘 씩 모이기 시작합니다. 모두 평온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트레이가 돌아가고 짐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그들의 표정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하나 같이 찌그러지고 부서지고 납작해지고. 멀쩡한 트렁크는 하나 없이, 망가진 가방들만 줄지어 나옵니다. 사람들은 패닉에 빠지죠. 다른 짐들이 저렇게 됐으니 내 가방이 어떨지 걱정부터 앞섭니다. 게다가 “짐들이 망가진 걸 사과드린다”는 내용이 방송으로 나오니, 다들 우왕좌왕합니다. 그때 오렌지의 메시지가 노출됩니다. “여행은 놀라움으로 가득하니, 로밍 요금엔 놀라지 마세요.” 저렴한 로밍비를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사람들을 실제로 놀라게 만들며, 여행 중엔 놀랄 일이 이렇게 많으니 로밍 요금으로는 놀라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 작은 실화들은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해변에선 전화벨이 울리는 소라껍데기가 등장합니다. 벨이 울리자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소라껍데기를 들죠. 그러자 소라 속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립니다. 놀란 이들은 소라를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게다가 어디선가 자신들을 몰래 관찰하고 있는 듯 말을 거는 소라껍데기 속 목소리에 다들 소스라칩니다. 프랑스 식당에선 살아있는 달팽이 요리를 내옵니다. 안 먹겠다며 도로 가져가라는 여자도 있고, 냅킨으로 덮어 버리는 남자도 있습니다. 옆 테이블에선 맛있게 먹는 모습에 경악하기도 합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선 윙크하는 모나리자를 걸어두었습니다. 모나리자를 정성 들여 보던 사람들은, 그녀의 윙크와 미소에 깜짝 놀라지요. 잘못 본 게 아닌가 주위를 둘러보기도 하고요. 오렌지의 메시지는 계속됩니다. 여행은 이렇게 놀라움으로 가득하니 로밍 요금만큼은 놀라지 말라고. 사람들은 속았음에도 웃고 즐거워합니다. 오렌지는 이 모든 게 몰래 카메라에 찍힌 실제 반응이라고 합니다. 브랜드가 ‘실화’임을 강조하며 그 재미를 공유하기를 원합니다.
메이크업이 진실을 보여드립니다
가정폭력이 점점 더 늘어나는 독일. 여성인권단체인 Terre de Femmes는 피해자가 되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가정폭력은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그녀들이 스스로 밝히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돕기 어렵지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메이크오버’입니다.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여자들을 아름답게 변신시켜주는 작전인 메이크오버. 베를린의 쇼핑몰에 메이크업 스탠드를 설치하고 ‘트루스(Truth)’라는 화장품을 진열했습니다. 무료로 메이크업을 해준다고 여자들을 불러 모으는 거죠. 아름다운 메이크업을 기대한 여자들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얼굴을 맡깁니다. 하지만 구경하던 사람들은 하나둘 놀라기 시작합니다. 여자들의 얼굴이 아름답게 변한 게 아니라, 마치 맞은 것처럼 시퍼런 멍이 생긴 겁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그녀들에게 푸른 섀도로 멍을 만들었습니다. 거울을 본 여자들은 자신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관심을 가집니다. Terre de Femmes의 작전은 성공해, 이틀간 웹페이지 방문 수가 193%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이 메이크업이야말로 트루스를 보여주는 메이크업이라고.
그들의 생활을 쇼핑하세요
미국의 종합쇼핑몰, 타깃(Target). 그들은 7월, 대학교를 세웠습니다. 이름 하여 불스아이대학교(Bullseye University).
이 대학은 학기가 시작되는 9월이 채 되기도 전에 가는 대학입니다. 교정이라곤 방 다섯 개와 로비가 있는 기숙사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각 방에는 인터넷으로 함께할 수 있는 룸메이트가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소셜미디어의 유명인이지요.
4일간 각자의 방에서 생활하게 된 이들의 모습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됩니다. 대학생들은 그들과 소셜미디어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으며, 방에 놓인 의자·스탠드·책상을 클릭해 바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장바구니에 담아 원스톱으로 쇼핑할 수도 있습니다. 시간대별로 각종 이벤트에 참여할 수도 있으며, 친구 만들기, 스무디 만들기 같은 정보도 얻을 수 있습니다. 4일간 가상 대학에서 그들의 캠퍼스 생활을 공유하는 거죠. 7, 8월은 대학생들을 겨냥한 가구며 생활용품의 성수기라고 합니다. 이 시즌에 대학생들을 잘 설득해야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합니다. 타깃은 그래서 그들과 실제 생활을 공유하려고 하는 거죠. 대학생 때부터 타깃의 제품을 이용한 사람들은 졸업해서도 이 쇼핑몰의 소비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지니, 놓칠 수 없는 소비자입니다.
실화보다 무서운 얘기는 없습니다
스웨덴에서 열리는 호러영화 페스티벌, Elmsta 3000 Horror Fest. 그들은 페스티벌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이야기는 당신에게 전송돼 온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됩니다. 클릭해서 열어보니, 당신 집의 외관입니다. 누군가 당신 집을 찍은 겁니다.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송돼 온 우리 집 사진. 수상한 사람이 집 밖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정체가 누군지 모르니 공포는 더해집니다. 30분 후 다시 메시지가 전송됩니다. “나는 당신의 집 거실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놀란 사람들은 구글에서 해당 전화번호를 검색해 봅니다. 그러자 ‘우리는 지금 당신 집 부엌에 있다’로 시작하는 사이트가 뜹니다.
클릭해서 들어가면 페스티벌에 대한 초대 메시지임을 알게 됩니다. 참석할 수 있으면 ‘I am dead meat’이라고 답장을 보내라고 합니다. 그대로 문자를 보내면, 행사는 재미있을 거라며 초대하는 답장이 옵니다.
사람들은 그야말로 ‘공포’를 느꼈을 겁니다. 자기가 실제 겪는 거보다 더 무서운 얘기는 없으니 제대로 호러를 맛본 거지요. 페스티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당연한 얘기입니다.
구글 스트리트 뷰로 다이건 앨리를 구경하세요
영화사 워너브라더스는 ‘실화’와는 거리가 먼 회사입니다. 재미있는 가상의 이야기를 잘 지어내야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기업입니다. 그들은 그래서 역으로 작전을 펼칩니다. 가짜 이야기를 진짜처럼 체험하게 하는 거죠.
런던에 지어진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 그곳은 실제 영화 공간들이 있어, 마치 영화 속으로 들어간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워너브라더스는 이 점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360도 둘러볼 수 있는 구글 스트리트 뷰를 제공해 마치 지구 어딘가에 해리포터 세상이 있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하는 거죠. 런던 시내를 보듯, 파리 광장을 보듯, 사람들은 구글 스트리트 뷰로 해리 포터가 지팡이를 사고 마법책을 사던 다이건 앨리를 둘러봅니다. 실제와 같은 이 경험은 사람들에게 해리 포터를 가깝게 느끼게 하고, 스튜디오를 찾게 만들 겁니다. 가상의 이야기를 진짜처럼 신기하게 만드는 거죠.
이야기 같지 않은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야기 같지 않은 이야기를 더 재미있어 합니다. 처음부터 너무 지어낸 듯하거나 가짜 같은 이야기엔 흥미를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실화’처럼 보이느냐, 얼마나 진짜처럼 보이느냐가 관건이 되기도 합니다. 광고를 만들던 많은 광고회사들이 광고 대신 몰래 카메라를 찍으며 실제 상황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가짜 이야기는 1류, 2류… 등급을 나누게 되지만, 실화는 그런 잣대를 들이대지 않기에 다가가기 더 쉽습니다. 그래서인지 2013년 칸국제크리에이티비티페스티벌 수상작을 보면 ‘실화’를 내세운 것들이 많습니다. 이 뮤직비디오로 사고율을 얼마나 줄이고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구했는지, 이 캠페인으로 장기기증을 얼마나 늘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귀한 생명을 얻었는지 앞 다퉈 실제 결과를 얘기합니다. 진짜고 아니고선 이기기 힘든 경쟁이 되었습니다. 가짜는 이야기로 끝나지만, 진짜는 누군가를 ‘변화’시키기에 이르니 그 힘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사람들에게 ‘실화’를 안겨줄 차례입니다.
신숙자
CD l sjshina@hsa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