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촉(觸)] 업사이클은 지구를 위한 Re-Creative
CHEIL WORLDWIDE 기사입력 2014.06.09 03:40 조회 11621




트렌드 촉(觸)은 동시대의 변화를 감지하는 칼럼이다. 이번 호에서는 단순한 재활용이 아닌 가치를 향상시키는 재활용 문화를 뜻하는 업사이클에 대해 살펴본다. ‘Up+Recycle’을 합성한 신조어 업사이클은 쓸모없고 버려진 물건에 창의적인 디자인과 아트워크를 반영해 새로운 물건으로 되살리는 ‘재활용 캠페인’이다.
업사이클을 통해 잠자고 있는 창의성을 깨워 보자.


업사이클, 패션이 되다
가장 알려진 업사이클 패션 브랜드는 멋 좀 안다는 이들이 매고 다니는 스위스의 프라이탁이다. 프라이탁은 트럭 덮개를 재활용해 유니크하면서도 빈티지한 가방을 전문적으로 생산한다. 이들의 손에서 덮개 문양은 새롭게 조합돼 멋진 비주얼 그래픽이 된다. 프라이탁은 업사이클 가방으로 연간 6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프라이탁 정도는 아니지만, 미국의 에코이스트도 코카콜라, M&M 등과 협약을 맺고 사탕 봉지와 과자 봉지를 재활용한 가방으로 연간 1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창출한다. 이들이 디자인한 핸드백은 할리우드 배우들도 즐겨 착용하는데 재활용 소재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같은 미국 브랜드인 홀스티1는 버려진 비닐과 폐지 등을 모아 작은 지갑을 만든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폐지를 구해오는 방식이다.
홀스티는 인도에서 쓰레기를 수입해 온다. 쓰레기를 돈 주고 산다는 게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업사이클을 통한 환경보호는 물론 빈민 구제에도 지향점을 둔다. 그래서 이들은 쓰레기를 수집해 생계를 유지하는 인도의 빈민 계층에게 보다 높은 가격으로 쓰레기를 구입한다. 업사이클의 가치가 인도주의적인 효과까지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대만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콜린 린(Colin Lin)은 독특한 여성용 구두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녀가 제작한 구두의 소재는 신문지인데 비싼 가죽을 사용하지 않아도 멋진 구두가 제작될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핀란드를 대표하는 업사이클 브랜드 글로베 호프2도 주목할 만하다. 글로베 호프는 현수막, 군복, 안전벨트, 병원 이불, 심지어 보트의 돛까지 재활용해 옷에서부터 가방, 핸드백, 파우치 등 다양한 제품을 창조해낸다. 특히 군용품으로 만들어진 가방과 파우치는 색다른 밀리터리 패션을 창조하며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업사이클, 공간을 창출하다
최근에는 건축계에도 업사이클 바람이 불고 있다. 대만의 건축 회사인 미니위즈5,6는 플라스틱 150만 개를 재활용한 전시관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에코아크(ECOARK)로 불리는 이 건물은 2010년 열린 타이페이 국제식물박람회를 위해 전시관 용도로 세워졌다. 비록 플라스틱 병을 재활용했지만 화재뿐 아니라 태풍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에도 견딜 수 있을 만큼 내구성이 높다고 한다.
덴마크의 한 건축사사무소(Lendager Arkitekter)가 완성한 업사이클 하우스는 일반 주택도 얼마든지 재활용 소재로 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집은 지붕과 외관에 알루미늄 캔을 활용했으며, 골격은 버려진 선적용 컨테이너 박스를 사용했다. 외관 패널은 열처리를 통해 재활용된 과립 종이로 만들어졌다. 실내 벽은 재활용 석고, 바닥은 샴페인 코르크 찌꺼기, 화장실 타일은 재활용 유리 등 집 안 구석구석 재활용 자재가 사용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렇다고 누더기를 연상하지는 말라. 이 집은 주변 어느 집보다 모던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건축뿐 아니라 공간을 꾸미는 인테리어 소재로도 업사이클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평범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면 독일의 앤트우프 디렉크트(Entwurf - Direkt)3 같은 빈티지한 가구가 어떨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앤트우프 디렉크트 가구는 서랍의 색깔과 크기가 제각각이다. 버려진 서랍장을 재조합한 것이 독특한 디자인이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 정형화되고 진부한 디자인에 비해 훨씬 멋스럽다.
네덜란드 출신의 디자이너 미에케 메이어(Mieke Meijer)4도 집 안에서 흔히 나오는 신문지를 활용해 가구 디자인을 선보였다. 공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다량의 신문지를 압축해 재활용 원목을 만들고, 그렇게 만든 원목을 하나하나 결합해 테이블, 수납장, 책장 등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겹겹이 압축된 신문지가 마치 나무의 나이테를 연상시킨다.



1. 홀스티는 버려진 비닐과 폐지 등을 모아 지갑을 만드는데, 지폐를 넣고 카드를 사용하기 편리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2. 글로베 호프는 다양한 소재를 재활용해 옷에서부터 가방, 핸드백, 파우치 등 갖가지 제품을 창조해낸다.
3. 서랍의 색깔과 크기가 제각각인 앤트우프 디렉크트 가구는 버려진 서랍장을 재조합해 독특한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4. 네덜란드의 디자이너 미에케 메이어는 다 읽고 버려진 신문지를 활용한 가구 디자인을 선보였다.
5, 6. 대만의 건축 회사 미니위즈는 플라스틱 150만 개를 재활용한 전시관 에코아크(ECOARK)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7. 그린 마케팅을 내세운 영국의 광고 회사 커브 미디어는 자연이 주는 혜택을 그대로 활용해 친환경 광고 회사로 불린다.

업사이클, 예술이 되다
업사이클의 창의적인 가치는 예술 부문에서 절정에 이른다. 일본 오키나와 출신의 페이퍼 아티스트 유켄 테루야(Yuken Teruya)는 화장지 심으로 멋진 페이퍼 아트를 선보인다. 그가 만든 작품은 집 안에 하나 걸어두고 싶은 욕망이 피어오를 정도로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캐나다 출신의 설치미술가 가이 라라미(Guy Laramee)도 뒤지지 않는다. 그는 버려진 책을 활용해 조각을 하는데, 책의 페이지를 활용해 산의 지층 모양까지 세밀하게 구현해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색된 종이의 색감이 작품에 운치를 더한다.
태국 출신의 조형예술가 앤추리 생타이(Anchalee Saengtai)는 업사이클을 통해 영화 <트랜스 포머>의 로봇들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옵티머스 프라임과 수호신 범블비 등 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로봇들을 실제로 볼 수 있게 돼 무척 반갑다. 이 로봇들은 모두 자동차 폐기물 공장에서 버려진 자동차 부품을 재활용한 것. 작가는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실제 영화 속 로봇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연구했다고 한다. 프랑스 출신의 아티스트 엘리스 모랭(Elise Morin)은 무려 폐 CD 6만 5천 개를 활용해 반짝반짝 빛나는 멋진 언덕 조형물을 완성했다.
마치 메탈 소재로 된 미래의 건축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문이 열리며 UFO라도 나올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어떻든 버려지는 소재를 통해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일이 아닌가.

업사이클로 광고하는 사람들
업사이클로 광고를 하는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음악 전문 미디어 그룹인 MTV의 친환경 캠페인이다. 이들은 아주 이색적인 친환경 캠페인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요약하면 이렇다. MTV는 지난 2012년 브라질 행사 시 음악 공연이 열리는 날에 맞추어 이색적인 커팅기를 설치했다. 초록빛의 작고 귀여운 이 커팅기의 이름은 리사이클 머신(Recycle Machine). 사람들이 쓰지 않는 신용카드를 가져와 리사이클 머신에 넣고 우측에 달린 손잡이를 아래로 내리면 신용카드가 어느새 멋진 기타 피크로 변신한다. 이는 기업의 가치와 친환경, 아이디어를 결합시켜 독특하고 창의적인 에코마케팅을 실천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공익 마케팅은 CSV(공유가치 창출, Creating Shared Value) 측면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이 추구하는 시장 가치를 극대화해 공익적 측면으로 활용하는 영리한 전략이다. 그린 마케팅을 내세운 영국의 광고 회사 커브 미디어(Curb media)7의 친환경 광고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이 회사의 작업은 자연이 주는 혜택을 그대로 활용한다. 인위적인 색감을 넣기 위해 화학용품을 사용하지도 않고 광고물을 세우기 위해 자원을 소모하지도 않는다. 그저 길바닥에 쌓인 먼지 위에 멋지게 기업의 로고를 새길 뿐.
아니면 돋보기로 태양열을 모아 나무를 태우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선거 캠페인에 쓸 홍보판을 만들거나 쌓인 눈에 로고를 박아 깜찍한 팝업 광고를 완성한다. 이와 같은 기발한 광고 콘셉트는 홍수처럼 쏟아지는 광고물이 야기하는 자원 소모를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이들의 방식은 이미 있는 것들을 활용해도 충분히 광고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좋은 건 굳이 제거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없어진다는 사실!
이렇게 업사이클은 패션, 건축, 인테리어, 예술, 광고에 이르기까지 크리에이티브한 모든 영역에서 새롭게 시도되고 있다. 업사이클은 유용함에 아름다움을 덧입혀 ‘헌 물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이제 쓰레기도 얼마든지 명품이 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가치의 전복이 아닌가.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김대호는 에코 크리에이티브 및 공익 마케팅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에코 크리에이터>가 있다.
트렌드 촉은 달라지고 있는 소비 패턴과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통해 동시대를 조명하는 칼럼이다.

제일 월드와이드 ·  김대호 ·  업사이클 ·  패션 ·  공간 ·  광고 ·  예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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