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촉]주말 공방에서 디지털 혁신까지
‘현대판 연금술사’라고 불리는 3D 프린팅 기술.
장난감은 물론 인공장기, 항공기, 우주선 부품까지
3D 프린터로 못 만드는 게 없는 세상이 됐다.
향후 시장성을 염두에 두고 각국의 기술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비트뿐 아니라 아톰도
복제가 가능해진 후기 디지털 사회. 과연 3D 프린팅
기술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미래는 무엇일까.
서서히 갖춰지는 대중화 라인업
사람의 관심사가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넘어가는 것은 일종의 본능인 것 같기도 하다. 인간 스스로도 3차원으로 구성된 채 3차원의 풍경 속에 살고 있는 만큼 ‘실감 나는’ 가치 또한 3차원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3D 프린터란 말이 처음 인구에 회자될 때 사람들은 종이접기처럼 종이를 입체적으로 어떻게 해준다는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3D 프린터에서 뽑혀 나오는 것은 훨씬 ‘실감 나는’ 느낌의
덩어리였다. 잉크젯 프린터가 치익치익 좌우를 오가며 잉크를 뿜어내는 반면, 3D 프린터는 플라스틱 수지를 케첩 짜듯이 쭉 짜면서 층을 쌓아가는 적층 조형 공작 기계였다. 출력물은 그림이 아닌, 만질 수 있는 입체, 곧 사물이었다. 정말 3차원이 ‘출력'되어 있었던 것이다. 2013년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서 미국 제조업을 부활시킬 정책 방향의 하나로 3D 프린터의 활용이 언급된 적이 있다. 미국 경제가 목격한 소프트웨어의 혁신 사이클을 제조업에도 적용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에 나온 발언이었다. 미래 기술이 신천지를 열어준다는 믿음은 늘 달콤하다. 그러나 3D 프린터는 이미 30년은 된 기술이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갑자기 3D 프린터가 이렇게 유행하게 되었을까? 우선 특허가 풀리기 시작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 덕에 저가 생산 시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만 원이 넘던 제품이 이제는 30만 원대로 나오기도 한다. 중국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머지않아 잉크젯 프린터처럼 보편적인 것이 될지도 모른다. 2014년과 2015년을 거치면서 주요한 나머지 특허들이 차례차례 해방되게 된다. 3D 프린터의 대중화는 이제 시동이 걸린 셈이다. 현재 대중적인 제품들은 재료를 녹여서 치약 짜듯 쌓아가는 열용해 적층 방식이 주를 이루지만, 분말을 고착시키는 방법도 있다. 금속 가루를 동결시켜, 항공기 부품으로 쓸 만한 강도를 뽑아내기도 한다. 또한 3D 프린터의 분류에는 적층 조형 이외에도 절삭 조형 방식도 있다. 물론 프린터라 부르는 것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파일을
전송하면 무언가를 ‘찍어 내’ 준다는 면에서 프린터라 통칭되기도 한다(이 방식만 별도로 3D 플로터(Plotter)라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대중화의 라인업이 갖춰진다면 주말 캠핑이 식상해질 즈음, 3D 프린터 주말 공방 열풍이 불어 닥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1,2. 3D 프린팅 기술은 디자인 제품 개발에 있어 저렴한 비용으로 다품종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주)현우데이타시스템(3dinus.co.kr)
3. 3D 프린터로 제작된 가볍고 콤팩트한 부품을 장착한 레이싱카. 3D 프린터를 활용해 차량의 바디와 부품을 제작할 수도 있다. ⓒ(주)현우데이타시스템
4. 악기회사 펜더(Fender)가 제작한 앰프. 악기의 외관을 중시하는 펜더의 디자이너들은 정밀한 3D 프린터를 통해 디자인의 디테일을 구현해낸다. ⓒStratasys(stratasys.co.kr)
5. 차세대 디자이너로 언급되고 있는 네리 옥스만(Neri Oxman)의 아트 작품. 3D 프린팅 기술이 어디까지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지 보여준다. ⓒStratasys
6. 아디다스가 3D 프린터로 제작한 축구화 시제품. 아디다스는 Objet Connex500 3D 프린팅 시스템을 설치해 시제품 제작 생산량과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 ⓒStratasys
7. 일본의 디자이너 나가자토 유이마(Yuima Nakazato)가 ‘2014 도쿄 컬렉션’에서 선보인 의상.
미래지향적인 스포츠웨어를 만드는 데 스트라타시스 3D 프린터가 매우 유용하게 활용됐다. ⓒStratasys
8, 9. 2013년 7월 파리 패션위크에서 선보인 네덜란드 디자이너 아이리스 반 헤르펜(Iris van Herpen)과 슈즈디자이너 렘 디 쿨하스(Rem D Koolhaas)의 콜라보레이션 작품.
나무뿌리에서 영감을 얻은 이 구두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3D 프린팅 기술을 사용했다. ⓒStratasys
찍어내라, 상상할 수 있는 무엇이든
모크업(Mockup)의 대명사, 콘셉트카 정도는 이제 쉽게 찍어낸다. 이미 꽤 지난 영화 <아이로봇>에 나오는 미래형 아우디도 그렇게 찍어낸 것이고, <스타워즈>도 다스베이더 마스크를 그렇게 찍어냈다. 층층이 쌓아가며 형태를 만들어 가는 일이 어울리는 곳이 또 있다. 바로 건축이다. 크레인만 한 거대 3D 프린터를 몰고 와 하루 만에 집을 뚝딱 짓는 것이다. 도배 인테리어는 스스로 해야겠지만, 우리 집 설계도만 집어넣으면 집이 하나 찍히는 셈이다. 스스로 물건을 만드는 힘은 지구 밖에서는 더 없이 유용하다. 만약 우주정거장에서 부품이 하나 고장 나면 어떻게 하나? 부품을 주문해 택배를 받을 수도 없는 일이고, 때로 이는 치명적인 일일 수도 있다. 3D 프린터는 이러한 상황에 희망을 준다. 필요하면 찍어 내서 끼우면 되니
말이다. 필요란 절실함이기도 하다. 신체와 관련된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특히 인체를 스캔하는 기술의 발전이 곧 의료의 발전과 동일시되던 시대를 거친 지금, 개개인의 신체를 정확히 파악해 내는 기술은 상당히 진보했고, 이는 곧 3D로 찍어낼 소스가 쉽게 조달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의족 및 보청기 등 각종 보조 기구는 물론 인공 관절과 같은 장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꼭 필요할까 싶지만, 태아를 스캔하여 기념 모형으로 만들어 주는 비즈니스도 등장했다. 의학계의 꿈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고기를 단백질로 프린트한 적이 있는 이들은 이제 살아 있는 조직을 인쇄하고 싶어 한다. 실제로 간 조직을 페트리(Petri) 접시에서 실험용으로 인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쯤 되면 3D 프린터는 혁신을 위한 전략 요소로 여겨질 만도 하다. 실제로 ‘3D 프린터 전략’을 천명한 포드 자동차는 100만 원 이하의
염가형 프린터를 모든 자동차 디자이너들에게 지급하여 수시로 실감하는 디자인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란 부담 없이 손끝으로 느끼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철학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삼라만상이 다운로드 가능한 시대
서방에서 설계를 하고 그 생산은 아시아에 맡기는 방식, 예를 들자면 애플의 제품마다 찍혀 있는 ‘Designed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의 생산 방식이 이제는 재고될 수도 있다. 단순한 제조물 같은 경우 제조란 그저 ‘프린트’하는 것일 테니 생산 공장이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설계 사무소 뒤편의 창고에서 3D 프린터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할 수도 있다. 특히 요즘처럼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에는 대량 발주보다 이편이 유리한 셈이다. 더 나아가 집집마다 생산이 가능해진다면, 물건을 사고파는 일도 달리 생각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규 약정으로 들여 온 빛나는 신상 스마트폰. 커버도 씌우고 케이스도 사러 숍에 가지만, 이 케이스야말로 나만의 디자인으로 찍어내기 적합한 품목이다. 기종별 템플릿을 다운
받아 내 이름을 새겨 케이스를 뚝딱 만들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이러한 일은 애호가 사이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다. 소스 파일만 구할 수 있으면 그 물건을 가질 수 있는 일, 이는 마치 파일만 내려 받으면 뭐든 즐길 수 있던 인터넷과 소프트웨어의 디지털 문화를 떠오르게 한다. 이제 비트뿐만 아니라 아톰도 무한 복제가
가능해진 후기 디지털 사회가 찾아 온 것이다. 데이터를 입수하기 쉬워졌기에 현재 3D 프린터 사용자 중 90% 이상은 캐드와 같은 설계 프로그램을 조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3D 모델 데이터는 인터넷이나 친구로부터 얻으면 그만이다. 이쯤 되면 플라스틱과 관련된 취미의 세계에서는 경천동지할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앞서 소개한 <아이 로봇>의 아우디라든가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마스크를 다운로드할 수 있다면 흥분할 이들은 한둘이 아닐 터이니 말이다. 3D 프린터의 진보에 의해 소재가 다변화됨에 따라 흥분의 대상은 얼마든지 다변화가 가능하다. 티타늄 소재는 안경 등 장신구에서도 알아주는 재료였던 만큼, 티타늄 파우더를 활용한 3D 프린터와 함께라면 홍대 앞에 액세서리 숍을 차려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태리 공방에서 수작업으로 만들던 고가의 자전거 부품도 그냥 찍어 버릴 수 있다.
과도한 환상은 금물, 그럼에도 꿈꾸게 하는 기계
그러나 염가형 제품이 지닌, 층층이 쌓아 가는 조형법이란 것의 한계가 명확하다. 층이 단층처럼 눈에 보이는 것도 문제지만, 블록 쌓기처럼 위에서 누르면 안 무너져도 옆에서 가하는 힘에는 약하다. 그래서 사출 성형 플라스틱 제품과 같은 실용성은 없다. 적층 조형 말고 분말 고착식이면 나을 수 있겠지만, 이쪽은 또 가루가 흩날리기 쉽기에 건강이 신경 쓰인다. 그러나 앞에서 열거한 수많은 제약 조건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3D 프린터는 우리 집 방 한 쪽을 차지하고 있을지 모른다. 컴퓨터도 그렇게 우리 책상 위로 올라왔고, 결국은 손바닥을 차지해 버렸듯이. 그리고 이러한 진취적 모험가를 위한 개발 환경도 속속 갖추어지고 있다. 오토데스크 123D 등 매우 간단히 3D 프린터용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무료 제품도 있고, ‘Cubify Draw’처럼 스마트폰 앱으로도 설계할 수 있다. 최근에는 포토샵도 3D 프린터 모델링을 지원하여 디자인을 손볼 수 있게 되었다. 분명한 것은 하드웨어를 만드는 일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 코딩보다는 쉬워졌다는 점이다. 손재주가 없어도 디지털의 힘을 빌려 창업하는 일이 가능해졌다는 점, 3D 프린터에서 희망을 찾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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