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1]과거를 빌려 현재를 파는 레트로 마케팅
최근 광고 마케팅 현장에서 ‘레트로
마케팅(Retro Marketing)’이 유행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나타난
복고주의는 유통업계에 레트로 마케팅의
열풍으로 이어졌다. 삐삐, 다마고치,
PC통신, 이스트팩, 더플코트 같은
1990년대식 소품이 유통업체의 각종
기획전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당시의
패션 스타일과 놀이문화까지 인기
폭발이다. 도대체 레트로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복고와 현대성의 밸런스
레트로 마케팅은 현재를 팔기 위해 과거를 활용하는 기법이다. 성공적인 레트로 마케팅은 단지 향수(Nostalgia)를 파는 것 이상이며, 오래된 스타일의 제품을 새롭게 추종한다. 과거에 선보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다시 유행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로 회귀한다는 의미에서 레트로 마케팅이라고 하지만 리바이벌(Revival), 또는 컴백(Comeback) 마케팅이라고도 한다. 지난 시절의 향수에 기대 마케팅을 전개한다는 점에서 레트로 마케팅이 겉으로는 전통적인 광고 표현 기법인 향수 소구에 가까워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차이가 많으며 엄밀한 의미에서는 개념이 다르다(Brown, Kozinets & Sherry, 2003). 레트로 마케팅에서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엿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과거를 추억하지만은 않는다. 예를 들어, 자동차 회사에서는 제품에 복고 이미지를 도입하지만 현대적 참신함을 가미한다. 대중문화 차원에서는 왕년의 그룹들이 다시 스타로 떠오르는가 하면, 스포츠 분야에서도 레전드 슈퍼 게임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는 분명 아날로그적 감성을 일깨우는 전략이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스마트한 소비자들의 선택을 숨기고 있는 셈이다. 레트로 마케팅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자. 기업들은 비용 대비 효율성이 높기 때문에 레트로 마케팅을 전개한다. 어떤 브랜드의 인지도나 선호도를 1% 높이려면 막대한 마케팅 비용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소비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과거의 추억이나 향수에 브랜드 이름을 접목시키면 적은 비용으로도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브랜드에 대한 친밀감이 이미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스티븐 브라운(2001) 교수는 레트로가 마케팅 혁명이라고 하면서 한정성, 신비성, 증폭성, 재미, 장난기 같은 레트로 마케팅의 5가지 기본 원리를 제시했다.
레트로 마케팅이 유행하는 이유
레트로 마케팅이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를 빌려 현대의 제품을 파는 레트로 마케팅이 유행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짚어볼 수 있다. 첫째,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에 소구하기 때문이다. 향수 소구에서도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를 자극하지만 레트로 마케팅에서와는 약간 다르다. 레트로 마케팅에서는 과거를 통째로 가져오지 않고 과거의 일부를 가져와 그 이미지를 현재의 트렌드나 제품의 특성에 맞게 접목시킨다는 점에서 향수 소구와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Walker, 2008). 과거의 제품에서 영감을 얻어 재활용하지만 맹목적인 복사판은 아니며 반드시 새로운 느낌을 가미한다는 점도 레트로 마케팅을 돋보이게 하는 포인트이다. 예를 들어, 웬디스(Wendy's) 햄버거의 최근 광고에서는 1984년에 사용한 이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쇠고기 어디 있지(Where’s the beef)?”라는 슬로건을 다시 사용하고 있지만 광고의 전반적인 느낌은 현대성을 가미해 전혀 다르게 탈바꿈했다.
둘째, 심리적 위안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스마트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사람들은 소통의 부재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현대인들은 모두 대중 속의 고독한 산책자이거나 외로운 존재들이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 구조 조정에 따른 고용 불안이 확산되면서 불안 심리도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김광규 시인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시를 보면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현대인의 고독한 내면 풍경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이와 같은 세태에서 과거를 파는 레트로 마케팅은 추억 속에서 위안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달래고 위무해 준다.
셋째, 소비문화의 주체로 7080세대가 부상했기 때문이다. 현재 7080세대는 우리 사회의 중추이자 소비의 주력 세대이다. 1970~80년대에 어려운 대학 시절을 보냈지만 중장년에 접어든 그들은 근검절약하던 기존의 소비행태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해 기꺼이 돈을 쓰고 복고적 취향을 즐긴다. <콘서트 7080>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산도’, ‘모나카’, ‘연양갱’, ‘건빵’ 같은 추억의 과자들이 사랑받고, 7080세대의 추억이 담긴 내복, 문풍지, 이불솜의 판매가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이들 스스로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있는 셈이다.
레트로 브랜드를 성공시키기 위한 요소
1. 1990년대 패션계에 한 획을 그었던 것이 데님 패션. 에잇세컨즈가 선보이는 데님 아이템은
스타일리시한 디자인으로 자유롭고 젊은 느낌을 준다. ⓒ에잇세컨즈 8seconds.co.kr
2. 나뭇잎, 깃털, 치타 무늬 등 복고적 패턴이 가미된 이스트팩의 애미니멀 라인 제품들. 복고풍
감성 디자인에 트렌디한 느낌을 접목시켰다. ⓒ리노스 eastpakkorea.co.kr
3. 1980년대 클래식 러닝을 콘셉트로 한 스니커즈 ‘컨베스트 2 UP'과 빈티지한 디자인에
알파젤을 적용한 러닝화 ‘젤-아테나’. ⓒ아식스코리아 asics.co.kr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레트로 마케팅의 사례를 살펴보자. CJ제일제당의 ‘남산N왕돈까스’는 일부 매장에만 내놨는데도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왜 남산일까? 서울의 남산을 활용해 어릴 적 남산에서 먹던 추억의 왕돈까스 맛을 그대로 재현했기 때문이다. 복고풍의 제품 패키지도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맛, 포장, 카피가 삼박자로 먹혀들며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했다. 동원F&B의 장수 음료 ‘쿨피스’도 레트로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1980년에 출시된 쿨피스는 당시 국민음료로 불릴 만큼 전성기를 구가했다. 동원은 30~40대의 향수에 소구하며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는데, 장수 브랜드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쿨피스의 포장은 과거의 흔적이 엿보이지만 현대적인 감각도 고려해 20대 소비자층도 겨냥했다. 샘표식품도 급증하고 있는 자취생들과 싱글족을 대상으로 레트로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엄마 반찬 통조림’이 대표적인 상품이다. 내용물 위주의포장 디자인을 탈피해 엄마와 함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용기의 핵심 비주얼로 사용했다. 이는 무미건조한 통조림 이미지 대신 엄마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반찬을 떠올리게 한다. 출시 시점이 통조림 비성수기였지만 출시 5개월 만에 5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매출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다. 이밖에도 롯데칠성은 ‘따봉’이라는 광고 카피로 유명한 ‘델몬트 따봉 주스’를 재출시했으며, 광고모델 주윤발이 “사랑해요, 밀키스”라고 해서 1989년의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던 우유탄산음료 밀키스도 새롭게 태어났다. 롯데삼강은 1962년에 출시된 이후 아이스크림의 대명사로 불렸던 ‘삼강하드’를 다시 내놓았다. 그렇다면 레트로 마케팅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레트로 브랜드를 성공시키는 4가지 핵심 요소는 다음과 같다(Cenna, 2012).
첫째, 재발견을 고려해야 한다(Allow for Rediscovery). 성공적인 레트로 브랜드는 거의 모든 집단에 걸쳐 발견과 재발견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세대를 불문하고 해당 브랜드와 연계한다. 어떤 세대에 향수를 유발하는 브랜드는 다른 집단에도 진정성을 가질 수 있다.사람들은 지난날에 대한 향수를 통해 위안을 받는데, 심리학에서는 이를 ‘회고 절정’이라고 한다. 나이 든 사람에게 한평생을 회고하게 하면 대체로 청소년기와 성인 초기의 기억을 가장 많이 떠올린다고 한다. 따라서 레트로 마케팅에서는 과거의 향수를 재발견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고려하는 문제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둘째, 시간을 초월하는 소비자 가치와 연계해야 한다(Connect with Timeless Consumer Values). 소비자와 성공적으로 연계하는 레트로 브랜드는 모든 세대를 초월하는 공통의 가치를 제공한다. 즉, 진실한 그 무엇을 갈망하는 진정성(Authenticity), 시간과 라이프스타일을 간소하게 추구하는 단순성(Simplicity), 개인의 스타일과 철학을 구체화시키는 정체성(Identity), 일상의 관심사와 가치에서 유대감을 느끼는 구성원 일체감(Membership), 자유롭게 선택하는 독립성(Independence), 일상의 즐거운 경험을 추구하는 재미(Fun)가 그것이다. 하나의 브랜드에서 이 모든 가치를 제공하기는 어렵겠지만 대표적인 하나는 가능하다.
셋째, 본질을 유지하되 현대화시켜야 한다(Stay True but Contemporize). 제품에 어떠한 변화도 주지 않은 복고 브랜드는 낡은 수법을 쓴 오래된 브랜드일 뿐이다. 레트로 브랜드는 현재의 기준에 맞게 과거의 것을 개선하고 변화시킨 것이다. 따라서 현대적인 내용을 전통적인 기법으로 소구해야 하며, 오래된 브랜드를 새로운 수법으로 소구해야 한다.
넷째,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Build a Community). 공동체는 사회 구성체나 관심사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그들끼리 만든 관계에 따라 그 공동체에 머무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강력한 레트로 브랜드는 그들의 팬들이 계속 모일 수 있도록 하는 어떠한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는 브랜드가 잘 되도록 집단적으로 몰려들어 도와준다. 이상에서 레트로 마케팅의 개념과 기본 원리, 그리고 핵심 요소에 대하여 살펴봤다. 기존의 마케팅에서는 소비자가 합리적이라고 가정했지만 소비자들은 합리적이지 않을뿐더러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정확히 모를 때가 많다. 모르는 그 지점이 바로 레트로 마케팅이 활성화되는 지점일 것이다. 앞으로 기업들은 옛것과 새것의 혼합(Blend of Old and New)을 통해 침체된 브랜드를 재활성화시키는 데 있어 레트로 마케팅을 적재적소에 활용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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