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재 이사, 네임넷, cmj@namenet.co.kr
매번 브랜드 네이밍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늘 걱정이 앞선다. ‘고객들이 원하는 2, 3음절의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쉬운 표현은 한정되어 있고, 새로운 패턴도 시도해 볼 만큼 해 보았는데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고객들이 원하는 새롭고 기발한 브랜드명을 제시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게다가 하루에도 수백 개씩 쏟아져 나오는 브랜드, 그에 따라 늘어만 가는 상표의 홍수 속에서 법률적으로도 깨끗하고 고객들에게도 매력적인 브랜드를 만들어 내야 하는 일은 네이밍을 하는 사람들의 숙명, 업(業)이라 할 수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지만,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새로운 네이밍의 답을 찾고자 촉각을 세워 브랜드를 둘러싼 변화와 현상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본 컬럼을 통해 최근 브랜드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을 패턴화하고 그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앞으로 브랜드가 보여줄 새로운 모습들을 예측하고 우리가 접근할 방법론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FUNtionALL Brand, 그 기능성의 재발견
불황기,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모두들 허리띠를 졸라매며 절약모드에 돌입한지 오래다. 기업들 역시 브랜드 마케팅에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때문에 광고, 홍보가 아닌 보다 고객들에게 쉽고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고 있다. 브랜드 네이밍 역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경제성을 도모하는 시도들이 늘고 있다. 얼마 전 런칭한 삼성카드의 숫자카드 시리즈가 좋은 예다. 삼성카드는 이전의 복잡 다난한 개별 브랜드 체계를 버리고 고객의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과 혜택 별로 구분해 1부터 7까지 숫자를 부여한 숫자시리즈 카드를 출시했다. 카드에 매겨진 숫자는 대표 혜택의 가짓수이고 카드 앞면에 구체적으로 혜택을 직접 적어 제시하고 있다. 혜택의 종류가 너무 다양하고 많아 언제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던 고객에게 환영 받을 만한 접근이었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삼성카드의 숫자카드가 새롭게 제안한 실용적인 카드라는 컨셉의 본 모습을 제시했다고나 할까?
또 기술의 첨예한 경쟁구도에 있는 전자부분도 이런 현상이 뚜렷하다. 이전 같았으면 한껏 멋을 낸 펫네임(Pet Name)으로 브랜드 경쟁이 불붙었을 스마트폰들은 ‘갤럭시 노트(Galaxy Note)’, ‘옵티머스 뷰(Optimus Vu:)’로 기능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표현한 한편, TV의 경우도 이전의 ‘파브(PAVV)’, ‘엑스캔버스(Xcanvas)’라는 공들여 쌓았던 브랜드들을 다 버리고 ‘삼성스마트TV’, ‘LG시네마3D스마트TV’라는 기능을 전달하는 명칭으로 단순화했다. 펫네임의 남발로 복잡했던 전자업계의 브랜드 시장은 말 그대로 버릴 것은 버릴 줄 아는 선택과 집중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 하나, 브랜드명의 기능성을 극대화한 해외 사례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브랜딩과 광고전문가가 의기투합해 설립한 미국 의약 회사 ‘헬프 레머디(Help Remedies)’는 의약품 브랜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헬프(Help)’라는 단순한 대표브랜드 하에 ‘I’m Tired, I Can’t Sleep, I’ve Cut Myself’등 증상을 쉽게 설명한 제품명을 통해 어려운 이름으로 아픈 머리를 더 아프게 했던 의약품들의 고약한 폐단에 보기 좋게 한방 먹였다. 거기에 깔끔하고 심플한 패키지를 통해 위의 이름들을 명확하게 적어 넣음으로써 패키지가 훌륭한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08년 설립 이후 현재 성공적인 시장진입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소비자의 관점에서 소비자의 눈으로 접근하는 소비자 중심의 브랜드는 결국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앞서 말한 불황기에 따른 브랜드의 기능화 이면에는 소비자들의 변화와 그에 따른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의 변화가 있다. 소비자들은 이제 더 이상 과장되고 장식적인 문구에 현혹되기 보다는 제품과 기본, 본질에 집중하는 똑똑한 소비자로 변화하고 있고 기업 역시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솔직 담백한 브랜드로 고객의 공감을 얻고자 하고 있다. 앞으로 소비자들이 진정성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지속되는 이상 다양한 의미를 함축해 꼬아놓고 ‘내 마음을 맞혀봐’하는 브랜드네임 보다는 제품의 본질, 소비자가 원하는 핵심 니즈를 쉽고 편하게 전달할 수 있는 이름들이 환영받게 될 것이다.
한글 브랜드, 그 매력의 재발견
브랜드 네이밍에 있어 천시되던 한글의 매력과 장점이 새롭고 조명되고 있다. 얼마 전만해도 IT나 패션, 화장품 등 유행의 첨단을 걷는 산업분야에서는 한글 후보안만 제시해도 진부하고 촌스럽다고 평가 받았지만 오히려 지금은 참신한 한글 표현에 대한 요구가 늘어가고 있다. 이전에도 ‘가파치(capacci)’, ‘딤채(dimchae)’, ‘오휘(O Hui)’, ‘푸르지오(Prugio)’ 등이 성공적인 한글 브랜드로 꼽혔지만 대부분 한글의 특징을 내세우기 보다 제2 외국어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고어나 조어화를 꾀했다면 이제는 한글 그 자체의 특징을 그대로 살리는 브랜드들이 더 환영 받고 있다. 영어, 제2 외국어 일색이었던 패션, 화장품 영역에서도 ‘아리따움(Aritaum)’, 더샘(the Saem)’, ‘나무하나(namuhana)’, ‘구김스(googims)’와 같은 한글 브랜드들이 오히려 참신한 이미지로 고객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류 붐과 우리 기술과 품질의 자신감에 힘입어 이제 기업들은 당당히 한글 브랜드들을 그대로 앞세워 해외에 진출하기도 한다. 심지어 한글에 있어 배타적이었던 IT, 전자부문에서 삼성전자의 모바일 플랫폼 OS 글로벌 브랜드 ‘바다(bada)’나, 모뉴엘의 에너지 절감형 PC인 ‘소나무PC(SONAMU PC)’ 등은 글로벌 브랜드 개발에 있어 한글 가치의 새로운 발견 사례라 할 만하다. 글로벌 브랜드 개발을 고려하고 있다면 해외에서 등록 가능성도 높고 한류 이미지를 활용할 수 있어 한글 브랜드 도입을 고려해 볼만하다.
한글 브랜드의 매력은 패턴의 새로운 시도를 통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풀무원의 생라면 ‘자연은 맛있다’와 한식 테이크아웃점 ‘밥이답이다(babidabida)’는 은유적인 서술형 표현을 통해 브랜드의 컨셉을 한글 특유의 감성과 화법을 통해 화제성 있게 담아냈다. 모바일 악세서리 ‘몹시(Mob:C)’, 카페 ‘오가.다(五嘉茶)’는 한글과 영문 또는 한자의 중의적 표현을 통해 한글의 색다른 매력으로 활용가치를 높이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한글 자음 ‘이응’을 멋들어지게 브랜드화한 사례까지 한글 브랜드 네이밍의 새로운 시도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선진 서구의 것이면 무엇이든 세련되고 고급스럽다는 환상과 문화적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 한국적인 것을 재평가하고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한 사회적 현상과 맥락을 같이 하면서 네이밍에 있어서도 우리 한글의 가치와 매력을 재발견하고 발전시키고 있는 현상은 매우 긍정적 현상이다.
너 안에 나 있다_자연어와 도메인 확장자의 재발견
네이밍을 하다 보면 가장 큰 난관에 봉착하는 지점이 바로 법률이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제품이나 사업들이 글로벌 시장 진출을 고려하기 때문에 이제는 국내 상표뿐 아니라 해외 상표의 벽을 넘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더욱 많아져 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가끔 무릎을 치게 만드는 해법을 제시하는 브랜드 사례를 만나곤 한다.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법률적 산을 쉽게 넘게 해주는 해법 말이다. 흔히 버릴 줄 알아야 얻는다고들 하는데, 우리만의 법률적 권리를 확보하겠다는 욕심만 버리면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법률 문제를 쉽게 해소할 수 있다. 얼마 전 런칭한 네이버의 글로벌 메신저 ‘라인(Line)’과 모바일 커뮤니티 ‘밴드(Band)’가 좋은 예다. 두 상표 모두 해당 업의 상표류에서는 말 그대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식별력 없는 상표다. 너무나 쉽고 흔한 단어라 이전 같았으면 후보안 검토 대상에도 오를 수 없었을 만한 표현들이 이제 다시 그 진가를 평가 받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여기에 그러한 쉽고 간결한 영문 자연어에 또 하나의 가치를 녹여 절묘하게 표현해낸 똑똑한 브랜드들이 있다. SK플래닛의 가격비교 사이트 ‘바스켓(Basket)’은 쇼핑이라는 카테고리를 쉽고 명확하게 구체어로 담아내면서 그 안에 ‘ask’라는 키워드를 디자인의 힘을 빌려 BI로 녹여냄으로써 똑똑한 가격비교 사이트로서의 속성을 똑똑하게 표현해냈다. 코오롱FnC의 업사이클링 리디자인 브랜드 ‘레코드(RE:CODE)’는 재생, 재활용의 의미를 담은 ‘RE:’를 찾아낸 시력 좋은 브랜드 사례 중 하나다. 최근 런칭한 KT의 스마트금융 서비스 모카(Moca) 역시 원 단어의 스펠링은 달라졌지만 ‘Mobile Card’라는 카테고리를 그대로 자연어에 가까운 형태로 담아냈다.
상표뿐만 아니라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 또 하나 더 있다. 바로 온라인상에 고객과의 접점이 되는 브랜드사이트의 도메인이다. 앞서 언급한 데로 이제는 브랜드 개발 단계에서 글로벌 시장을 염두하고 브랜드를 개발하기 때문에 대부분 .com 확보가 제1의 미션이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2억 개 이상의 도메인 이름이 등록되어 있어 브랜드 개발 시 닷컴(.com) 확보라는 상표 못지않은 큰 미션이 부여된다. 이처럼 포화상태인 도메인 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매매까지도 고려되는데, 온라인 도메인 업계의 뉴스 미디어인 DN Journal(www.DNJournal.com)이 발표한 최근의 판매 보고서를 보면, ‘CoolGames.org’는 7,500달러에 팔렸고 ‘Gospel.org’는 3,500달러에, 그리고 ‘RunningShoes.com’은 70만 달러에 팔렸다고 한다.(출처. IT World) 이러한 도메인 확보라는 미션 수행을 위해 필자 역시 도메인 구매까지 대행한 경험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TV를 비롯한 다양한 도메인의 확장자의 유효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com’이 아닌 차선의 선택으로 고려할 수 있는 확장자가 있고 그 점을 활용해 브랜드로 승화시킨 사례 역시 적지 않다. CJ E&M의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 ‘인터레스트미(interest.me)’는 확장자 ‘.me’를 유효 적절하게 활용해 상표 뿐만 아니라 도메인 문제까지도 해결한 묘수를 두었다. 이외에도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서구시장에서 열풍이 불고 있는 뮤직 라디오서비스 중 하나인 ‘라스트 FM(Last.fm)’은 .fm을 활용해 기존 ‘판도라 라디오(Pandora Radio)’와 같은 경쟁 서비스와 차별화된 형태로 서비스 카테고리를 쉽게 전달하면서 간결한 도메인을 확보한 성공적 브랜드로 평가되고 있다.
유머, 하위 문화_이야기 거리의 재발견
한자 문화권인 우리나라 클라이언트의 대부분은 브랜드네임에 심오한 의미를 담길 원하는 경향이 강하다. 최근에는 브랜드 스토리텔링(Story Telling)이 마케팅의 화두가 되다 보니 브랜드 네이밍에 이야깃거리가 되는 의미를 담고자 하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는 더욱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전에 단어와 단어를 결합한다거나 각각의 영어 알파벳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이제 진부한 방법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또 브랜드의 스토리라는 것이 실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말 그대로 허구가 되니 역사가 오래지 않거나 확실한 제품의 차별점이 없는 이상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유머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것도, 자신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도 유머인 것처럼 특히 감각적이고 창의적인 것을 추구하는 젊은 디지털 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분야에서 유머는 더욱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온라인, 디지털 IT 분야에서 두드러지고 있는데 그럴듯한 브랜드나 사명을 고민하는 것보다는 직관적으로 쉽게 기억하고 부르기 쉬운 브랜드를 채택하고 있다.
배달 전문 앱 ‘배달의 민족’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우아한 형제들’이나 신생 게임회사 ‘4:33’은 그 네이밍의 배경을 알고 나면 한 번 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름들이다. 모바일게임 회사 ‘네시삼십삼분(4:33)’은 ‘직장인들이 잠시 쉬고 싶은 이 시간에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형제 창업이라는 점에 착안해 사명을 만든 ‘우아한 형제’의 사명은 ‘유머를 넘어 키치적이다’라고 할 만하다. 사명의 ‘우아한’이라는 형용사에는 ‘우와~’라는 감탄사가 나올 수 있는 혁신적인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목표도 담겨 있다고 한다. 사명을 듣기만 해도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라는 이미지를 팍팍 전달해 주고도 남을 것 같다. 최근 제일모직이 런칭한 ‘바이크 리페어 샵(Bike Repair Shop)’의 칼라 네이밍은 젊은 층의 하위문화를 대변하는 발상을 시도하고 있다. 와인 대신 ‘불금 와인’, 베이지 대신 ‘헐 베이지’, 머스타드 대신 ‘멘붕 옐로우’ 등, 예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은어를 패션 브랜드에서 도입했다. 이제 브랜드들이 감각적이고 그러면서도 창의적인 젊은 세대와 함께 하기 위해 어깨의 힘을 빼고 함께 눈높이를 맞추며 이야기를 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도 이제 그럴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가?
맺으며
장기 불황의 터널을 지나다 보니 시장에 선보이는 브랜드들 역시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최근에 선보이고 있는 브랜드들을 살펴보면 장고 끝에 악수가 아닌 오랜 시간을 두고 묵힌 장맛과 같은 브랜드들이 많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자신 즉, 기업이나 제품의 본질에 대해 좀 더 숙고하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것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재발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결과인 것 같다. 앞으로도 브랜드 네이밍에 있어 앞만 보고 새롭고 또 새로운 것을 찾는 유행어를 찾고 쫓기보다는 언어와 본질을 새롭게 재발견하는 시간과 기회를 통해 제대로 그리고 오랫동안 소비자들에게 사랑 받는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있길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