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REPORT] Loving Small Shops, Living the City Life
작은 가게와의 달콤한 연애
Text. Kim Sun Kyung (Writer)
스몰 숍은 작은 단위의 자영업자이자 ‘지역적 취향의 생산자’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특정한 지역으로오는 이유, 그곳을 사랑하게 되는 사람이 생기는 이유는 이들이 내세운 취향에 사람들이 호응하기 때문이다. 독립영화 감독이 운영하는 밥집, 건축소장이 차린 바, 생계형 창업과는 약간 다른, 문화적 취향의 적극적 발현이 드러나는 스몰 숍은 도시의 골목길에 생기를 가져다준다
미국 뉴욕 맨해튼 81번가 주민들에게 작은 화석 전문점 ‘막실라 & 맨더블’은 박물관이자 선물 가게였다. 센트럴파크 서쪽의 뉴욕 자연사박물관을 찾는 관광객들도 신기한 이 가게를 즐겨 찾았다. 27년전 문을 연 ‘막실라 & 맨더블’은 그러나 지난해 8월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았다. 가게 주인 헨리 갈리아노는 블로그 ‘웨스트사이드 레그’에 “체인형 가게들이 밀려들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임대료가 올랐다. 대형 상점들이 손으로 훑듯 작은 가게들을 몰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두 블록 떨어진 이탈리아식 정육점 ‘오토마넬리 브러더스’ 역시 비슷한 이유로 지난해 가게를 접었다. 문구점, 열쇠점, 신발 수선 가게, 안경 가게, 옷가게, 24시간 식당 등 지난 2년 동안 이 정육점과 같은 블록에 있다가 문을 닫은 작은 가게는 최소 7개에 달한다.
‘자가용 없는 도시’ 뉴욕의 보행자들을 즐겁게 했던 작고 특색 있는 가게들이 대형 체인점에 밀려 빠르게 사라지면서 뉴욕시가 이들 가게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뉴욕시의회에 상정된 ‘어퍼웨스트사이드(UWS) 지역 소매점 거리를 위한 특별 상업 지구’ 계획은 센트럴파크 서쪽 UWS 지역에 문을 여는 가게들의 폭을 제한하도록 정해두고 있다. 과거 가난한 학자들이 모여 살았던 UWS는 이들이 즐겨 찾은 작고 친근하고 저렴한 가게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뉴욕의 부동산 개발 붐으로 대형 아파트가 들어서고 임대료가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영세한 이들 작은 가게는 대형 약국 체인, 대형 슈퍼마켓, 은행 지점, 대형 패션 브랜드 매장 등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작은 가게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뉴욕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길은 걷는 사람들이 있어야 생명력을 얻는다. 그 어떤 길에가도 똑같은 프랜차이즈 숍들이 있다면 굳이 자신의 거주지 이외의 곳에 갈 이유가 없다. 서울에서도 트렌디한 장소로 떠올랐던 가로수길이나 부암동, 북촌 등을 살펴보면 그곳에 무명 디자이너, 파격적 발상의 독립 큐레이터, 나만의 요리에 목숨 건 젊은 요리사들이 ‘생애 첫 가게’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 이렇게 대로변이 급변하는 동안 스몰 숍들은 대로에서 한발 더 들어간 작은 골목길 안에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고 있다. 대로의 프랜차이즈 대형 베이커리 상점과 비교되는 골목길 안의 작은 빵집 가게들은 자연 발효를 앞세우면서 ‘동네 빵집’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글로벌 SPA 브랜드 매장이 점령한 곳의 안쪽 길에는 주인의 개인적 안목이 돋보이는 작은 셀렉트 숍들이 자신만의 취향을 발휘하기도 한다. 또한 골목길 안으로 숨어 들어간 스몰 숍들덕분에 도시는 구석구석 행인들을 맞이하고 활기를 되찾는다. 여전히 젊은 예술가들의 ‘놀이터’를 중심으로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홍대, 이제 막 제 이름을 내걸고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이 모여든 신사동 가로수길, 개인의 일상마저 공개하며 자신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이들을 불러 모으는 도산로 뒷길, 서울을 처음 찾는 외국인처럼 관광지도를 들고 다니며 새로운 경험을 하
게 되는 북촌, 동네 주민과 예술가들이 함께 꾸미고 닦은 혜화동 언덕 위 낙산 등 우리에게도 런던의노팅힐, 홍콩의 소호, 도쿄의 키치조지 같은 개성 만점의 길들이 있다. 우리가 이곳에서 기대하는 것은 10평 남짓 협소한 공간이라도 갓 내린 핸드 드립 커피의 깊고 신선한 맛이라든가, 파리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이제 막 세상에 나온 파티시에가 온갖 공을 들인 색색의 사랑스러운 디저트 같은 것들이다.
영화 <노팅힐>의 휴 그랜트가 주인이던 여행 책 서점처럼 세상의 온갖 여행 책만 모아둔 작은 서점이 이태원에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 기분이 상쾌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곳에 들르기 위해서라도 꼭 이태원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빈티지를 가르쳐준 소품 가게도, 벨기에식 와플의 맛을 알려준 곳도, 장 푸르베의 의자가 원래 초등학교에서 사용되었던 것이라는 비밀을 알려준 곳도 모두 작은 가게의 주인장들이었다. 세상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지식이 아니더라도 이 도시를 살아가는 용기와 즐거움을 주는 곳, 작은 가게의 끝없는 생명력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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