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출범한 CT Lab은 테크놀로지로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를
표현하는방법을 모색하는 조직이다. 현재 CT Lab은 마정민 팀장을 필두로
강상모, 강준현, 박상훈, 박승일, 오우섭, 이연주, 한규필 프로가 팀을 이뤄
모두 8명이 이끌어가고 있다.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 사이에서
이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
남들이 7부 스키니진을 입고 다니는데 혼자서 ‘몸빼바지’를 고집한다면 그건 개성으로 봐줄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광고 에이전시 R/GA가 나이키와 손잡고 퓨얼밴드를 만들어내는 마당에 어제의 시각으로 내일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건 개성이 아니라 정체(停滯)고 퇴화다. 업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 시대에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한 법. 지난해 1월 출범한 CT Lab은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를 통해 변화를 모색하려는 제일기획의 의욕적인 한 수(手)였다. CT Lab이 생겨난 지도 어느덧 1년 반이 됐다. 마정민 팀장은 지난 시간을 어떻게 평가할까.
마정민 팀장: 디지털 캠페인은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테크놀로지를 염두에 둬야 해요. 도구가 다르면 아이디어도 달라지기 때문이죠. CT Lab은 그런 통섭적 시도를 위해 존재하는데, 지난해가 잉태의 시간이었다면 올해는 출산의 시기라고 할 수 있어요. 기존 디지털 본부에서 제작 본부로 옮겨오며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해외 광고업계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기반으로 한 크리에이티브 제작 방식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특화된 맨파워로 조직을 구성해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거나 다른 회사와 협업하는 경우가 많다. 더 적극적인 광고회사는 프로토 타입 전문 제작 부서를 두거나 스타트업을 인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제일기획에서는 CT Lab이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가는 최전방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한규필 프로: 해외 광고회사는 깊이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문성 있는 솔루션 업체를 인수하기도 하는데, 반면 국내는 아직까지 다양한 접근이 필요한 구조입니다. 회사 내부에서 팀들 간 협업이 활성화되면 차츰 외부 기업과 협업하는 사례도 생길 겁니다.
박상훈 프로: CT Lab은 주어진 과제 외에도 클라이언트에게 선 제안할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집중합니다. 그게 바로 진짜 크리에이티브한 솔루션이 아닐까요? 삼성 ‘페이퍼 기어’도 그런 맥락에서 해낸 작업입니다.
테크놀로지를 정의하다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테크놀로지가 진보하고 있는 상황. CT Lab은 조직 이름이나 태생부터가 테크놀로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최첨단 기술을 줄줄 꿰고 있을 것 같은 CT Lab 팀원들에게 테크놀로지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마정민 팀장: 테크놀로지 없이도 실행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고, 테크놀로지로써 더 빛나는 아이디어가 있으며, 테크놀로지에서 파생되는 아이디어도 있죠. 그래서 테크놀로지보다 선행돼야 할 게 아이디어 그 자체예요. 우리 팀을 테크놀로지 신봉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오해입니다. 저희는 테크놀로지가 최선이며 최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필요한 ‘곳’에 필요한 ‘것’을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할 뿐이죠.
박승일 프로: 팀장님 말처럼 저희는 테크놀로지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열쇠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테크놀로지를 통해서 상상력의 차원을 좀 더 넓히는 건 가능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저희가 첨단 기술만 추종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저희는 하이테크 기술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기술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안심곰 캠페인’만 해도 최신 기술만이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 사례입니다.
한규필 프로: 매달 한 번씩 직원들에게 랩레터를 발행하고 있는데, 저희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저희만의 관점을 제공하는 데 목적을 둡니다.
강상모 프로: 다른 팀들도 테크놀로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겠지만, CT Lab이 좀 더 앞장서서 움직이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CT Lab을 움직이는 힘, 시너지 CT Lab 팀원들은 출신도 다양하고 경력도 다채롭다. 예술을 전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타트업에 참여했던 사람도 있고, 그런가 하면 아무도 못 말리는 독서광도 있다.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자극에 더듬이를 내밀고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각자 관심 영역과 커리어가 다르다는 사실은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원소가 모일수록 합집합이 풍성해지기 마련이니까. CT Lab이라는 합집합 속 원소들은 당구대 위 구슬처럼 서로 종횡무진 부딪히며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떨궈낸다.
박상훈 프로: 저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 누군가 아이디어의 단초를 던지면 그와 관련된 정보를 잘 뽑아냅니다. 우리 식구들은 출신 성분(?)이 다양한데 그게 더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이연주 프로: 입사 후 줄곧 아트디렉터로 근무했는데 작년 말부터 CT Lab에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아이데이션 방식이 비슷하기 마련인데요, CT Lab은 한 명 한 명이 정말 다릅니다. 그래서 의견을 모으는 데 토론할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기도 하지만, 이런 점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다른 분야에 대한 시야를 확장시켜 주죠. 날 선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새로운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준현 프로: 저는 팀에 조인한 지 이제 3개월밖에 안 됐어요. 다른 광고회사 경험도 있고, 스타트업에서도 일해 봤죠. 경영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남들에 비해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자부하는데, 저희 팀은 그 동안 제가 몸담았던 모든 분야의 장점을 하나로 합쳐놓은 듯한 느낌이 들어요.
오우섭 프로: 제 베이스는 아트예요. 특히 인터랙티브 아트에 관심이 많죠. 평소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보는 편인데, 이게 지금 당장 어떤 아이디어로 구체화되는 건 아니지만 차곡차곡 쌓이면 좋은 자양분이 되는 것 같습니다.
팀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이들의 호기심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동안 사내 다른 팀들과 협업해 굵직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CT Lab. 이들의 경험과 관심사는 제각기 다르지만 꿈만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첫 걸음을 성공적으로 뗐으니, 포부도 더 커졌을 터. 이들이 찍고 싶은 궁극적 ‘화룡점정’은 무엇일까.
마정민 팀장: 저희는 “광고회사가 그런 일도 해?” 하는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런 일들이 사내 여러 조직과 협업을 통해 이뤄진 결과여야겠지요. 광고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들을 같이 만들어 내는 것이 마케팅 솔루션 컴퍼니를 위한 CT Lab의 역할이라 생각해요.
강상모 프로: 저는 ‘CT Lab 방법론’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어요. 궁극적으로, 저희 팀이 아이디어도 내고 실행도 하며 연구도 하는 시너지 집합체로 자리매김 되기를 바랍니다.
CT Lab 팀원들은 협업 코드를 강조한다. 효과적인 협업을 통해 기업 경쟁력의 기반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정민 팀장: 캠페인 성격에 따라 CT Lab에서 진행하는 게 적합한 게 있고, CT Lab이 꼭 필요하지 않은 게 있어요. 후자의 경우 저희 팀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실제 작업은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팀에서 맡는게, 캠페인의 완성도를 위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여 CT Lab이 아이디어만 내고 실행은 안 하는 팀이라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박승일 프로: 네, 맞습니다. 그리고 평소 고민 중이던 과제가 있다면 주저 말고 저희 팀에 귀띔해 주세요. 그럼 저희가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던 아이디어를 적시적지(適時適地)에 접목할 수 있겠죠? 유기적 커뮤니케이션이 좀 더 왕성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한규필 프로: R&D도 저희 역할입니다. 그런데 R&D를 한다고 하면 연구소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CT Lab이 연구소 성격은 아닙니다. 저희가 실행 능력도 겸비한 시너지 조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주셨으면 해요. 올해 저희의 목표는 R&D를 통해 크리에이티브 솔루션을 가능케 하는 역할에 더 충실해지는 것입니다.
CT Lab의 최근 캠페인 사례들
최신 비콘 기술 접목된 G마켓 ‘모바일 G카페’
모바일 G카페는 G마켓에서 발행하는 e쿠폰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기획된 캠페인이다. CT Lab이 미디어플래닝 1팀과 협업한 이 캠페인에는 최신 비콘(Beacon) 기술이 접목됐는데, 이는 국내에서 옥외에 설치된 최초의 사례다. G카페 광고가 부착된 고속터미널역 기둥 앞을 지나가면 스마트폰으로 푸시 링크가 전송되고, 이 푸시 링크를 통해 G카페로 이동한 후 e쿠폰을 다운로드 받는 형태다. 이 캠페인은 큰 호응을 얻었고, 처음 예상과 달리 단 며칠 동안 e쿠폰이 매진될 만큼 성공적이었다. 마정민 팀장은 모바일 G카페가 “콘텐츠와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삼위일체로 맞아떨어진 캠페인”이라고 평가한다.
프로토 타입으로 선제안한 삼성 ‘페이퍼 기어’
“전 세계 크리에이터와 아티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칸 국제광고제. 브랜드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이곳에서 뭔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즐거운 고민에 빠져있던 CT Lab 팀원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평소 진행하고 있던 프로토 타입들이었다. 때마침 삼성 기어2가 론칭되는 시점이라, 종이에 삼성 기어2의 핵심 기능인 미디어 콘트롤러를 구현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페이퍼 기어(Paper GEAR)는 그런 생각 끝에 CT Lab이 광고주에게 선제안한 아이디어. 간단한 센서를 내장해 종이 시계처럼 팔목에 착용할 수 있게 만든 페이퍼 기어2를 통해 삼성 기어2의 특장점을 경험하게 한다는 콘셉트였다. 아쉽게도 일정 등이 맞지 않아 실행되지 못한 페이퍼 기어 아이디어를 통해 CT Lab 팀원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시에 실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준비 기간이 확보돼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공감했다.
아이디어의 쾌거, 삼성 인버터 제습기 ‘안심곰’
안심곰 캠페인은 후발 주자인 삼성 인버터 제습기를 다른 제습기 브랜드와 차별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됐다. 차별화 포인트는 소비자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기. CT Lab 팀원들은 소비자들이 언제 제습기를 틀어야 하는지 타이밍을 잘 모른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보통은 습도가 높아져 불쾌한 기분이 들 때 제습기를 켜곤 하는데, 그런 주관적 감각이 아닌 객관적 수치를 통해 작동 시점을 명확히 알 수 있다면 소비자들이 훨씬 더 스마트하게 제습기를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떠오른 게 습도인지 잉크. 습도인지 잉크는 실내 습도가 60% 이상이 되면 색깔이 변하기 때문에 제습기 사용 시점을 쉽게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안심곰 캠페인은 타깃층을 고려해 귀여운 곰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이는 제품에 대한 호감도를 끌어올렸다. 한편 CT Lab은 다른 팀들과 협업해 TV광고는 물론 버스 쉘터 가상 체험이나 유튜브 동영상 등 다양한 캠페인 루트를 개발해 제품을 알렸다.
인식의 전환이 만들어낸 동서 맥심 ‘커피 업사이클 프로젝트’
믹스커피 시장에서 점유율 80%를 차지하고 있는 동서식품은 기존에도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왔다. 거기에 CT Lab은 제품 자체에 사회적 가치를 더해 소비자에게 새로운 의미로 인식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선제안한 것이 바로 커피 업사이클 프로젝트다. 산업폐기물로 분류되는 커피 찌꺼기를 처리하는 데 상당 비용이 드는데 이런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CT Lab 팀원들은 커피 찌꺼기를 자원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결론은 “제습 탈취제를 만들자!”였다. 탈취제의 프로덕트 디자인부터 마트와 온라인에서의 유통 및 광고 캠페인을 기획하고, 탈취제 판매를 통해 발생한 수익금은 커피 묘목을 구입해 멕시코 치아파스 지역 농가에 기부하기로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복병이 숨어 있었다. 사실 커피 찌꺼기는 화분, 퇴비, 양초 등 다양한 생활용품으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이는 현행 폐기물 관리법에 위반된다. 이제껏 어느 누구도 문제제기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조항이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캠페인을 실행하려면 법안부터 개선해야 했기 때문에 CT Lab 팀원들은 법률적 자문을 구하고 관련 부처와 만나는 등 발로 뛰고 있다. 규제는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상태지만, 이 캠페인을 통해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이런 일들을 통해 ‘마케팅 솔루션 컴퍼니’의 참다운 위상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