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REPORT] 나보고 힙스터래요. 칭찬인가요?
Text. Lim Hyun Jin (iPublics)
힙스터 패션, 즉 ‘유행을 좇지 않는 젊은이들’처럼 보이는 스타일이 유행이다. 무슨 말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문장이다. 유행을 따라 하지 않는 사람들을 따라 한다고? 남들과 다르고 싶다, 멋져 보이고 싶다는 인류의 오랜 욕망이 ‘힙스터’라는 생소한 단어에 응축되어 있다. 힙스터라 불리고 싶지 않은 이들과 힙스터처럼 되고 싶은 이들의 이상한 줄다리기를 들여다본다.
힙스터, 유행을 따르지 않는 것의 유행
“나는 누구와도 같지 않다. 내가 곧 스타일이다.”
패션의 대모 코코 샤넬은 이런 말을 남겼지만 그녀의 스타일은 이내 수많은 여성이 따라 하고 싶어 하는 유행의 표본이 되었다. 힙스터 패션의 유행도 이와 비슷하다. 힙스터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남들과 같아 보이고 싶지 않다. (나와 비슷한 이들을 힙스터라고 부르지만) 나는 힙스터가 아니다. 나는 나일 뿐이다.”
누구와도 같지 않은 특별함을 원한 건 불세출의 디자이너만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아가 강하고 개성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은 자신을 다른 이들과 구분 짓고 싶어 한다. 기성세대의 문화, 주류의 패션을 거부한 미국 중산층 백인 젊은이들은 자신의 개성을 특정한 스타일로 드러냈고, 유행을 거부하는 것을 표방한 그들의 패션이 ‘힙스터 패션’으로 유행하고 있다.
힙스터(Hipster)는 원래 미국 젊은 층의 하위문화를 일컫는 말로 시대마다 다른 함의를 지닌다. ‘hip’은 아편을 뜻하는 속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1940년대에는 재즈광을 뜻했고 1990년대 이후에는 뉴욕을 중심으로 독특한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는 일부 중산층 출신의 백인 젊은이들을 힙스터라 칭한다. 독립영화와 인디음악, 스키니 진과 후드티셔츠 등 그들을 공통 짓는 표상이 뚜렷함에도 그들이 힙스터라 자처하지 않는 이유는 ‘힙스터스러움’에 ‘아는 척하기, 아닌 척하기, 쿨해지기’ 등의 사춘기 소년 같은 허세가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스스로 힙스터임을 인정한다면 다소 부정적으로 보이는 저 속성들도 자신 안에 있음을 시인하는 꼴이 된다. 더군다나 남들과 다른 개성을 표현하고 싶은 젊은이로서는 한데 묶이는 것 자체가 싫을 테니 말이다. ‘유행하는 것을 따르지 않음이 유행한다’는 역설적인 문장에 힙스터의 복잡미묘한 상황이 들어 있다.
히피는 자신을 히피라고 칭하지만 힙스터는 자신을 힙스터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전 세대의 반문화 지향 미국 청년들과 달리 힙스터들은 철학이 아닌 소비성향, 즉 어떤 것을 먹고 마시고 입느냐 등 패션과 스타일에 더 집중한다. 보헤미안이나 히피는 삶을 관통하는 인생철학이었지만 힙스터는 젊은 시절에 국한된 허세적인 소비 취향에 머무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래서 하위문화를 소비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백인 상류 젊은이들은 더 비판받았고, 유행을 따르지 않던 이들을 칭하던 힙스터는 유행을 민감하게 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힙스터에 대한 미국 내의 엇갈리는 평가는 힙스터에 관한 문화비평서 <힙스터에 주의하라>에 나온 다음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최신 유행에 민감하면서도 대중의 흐름과는 거리를 두려는 이들의 문화는 첨단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하위문화라는 긍정적 평가와, 구별 짓기에 예민한 부유한 중산층의 소비문화일 뿐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지구촌은 힙스터 패션으로 대동단결 중
문제는 뉴욕의 유행이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생긴다. <보그>, <바자>, <지큐> 등 전 세계에 라이선스지를 판매하는 패션 잡지의 본사가 뉴욕에 있고, 결국 뉴요커들이 만든 잡지가 패션의 기준이 되는 상황이다 보니 이 힙스터 패션이 ‘세련된 것’으로 수출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뉴욕 젊은이들의 하위문화인 힙스터 스타일은 타국의 젊은이들에게 속칭 ‘뉴요커 스타일’로 불리며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스키니 진에 헐렁한 윗옷을 입고 톰포드 선글라스를 낀 부스스한 머리의 늘씬한 남자’는 전형적인 힙스터의 모습이고, 패셔니스타를 수식하는 관용구가 되어버린 ‘무심한 듯 시크하게’라는 말은 힙스터 패션의 핵심을 표현한다.
힙스터 패션의 구체적인 예를 보고 싶다면 <페이스 헌터>라는 책을 펼쳐보면 된다. 이 책의 저자 이반 로딕은 모스크바, 이스탄불, 바르셀로나, 런던, 파리, 뉴욕, 상파울루 등 전 세계를 다니며 다양한 스트리트 패션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그 결과 책에 수록된 사진은 옮긴이의 표현대로 ‘90% 이상이 힙스터 룩’이다. 세계 어느 도시에서 찍은 사진도 그 고장만의 특색을 보여주지 않는다. 모두 뉴욕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고 패션만 보면 가로수길이나 홍대 앞에 가면 한번쯤 마주칠 법한 스타일이다. 뉴욕이 세계화된 것인지 서울이 뉴욕화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정말로 그렇다. 사진작가는 책의 서두에서 개인의 독창성을 마음껏 표현한 자유로운 젊은이들의 사진을 담았다고 말했지만 옮긴이는 책을 마무리하며 이 책을 관통하는 ‘힙스터 룩’에 대해 ‘빈티지 혹은 낡은 옷, 애쓰지 않는 듯한 태도, 가짜보단 진짜’ 등으로 친절하게 설명해놓았다. 한마디로 지구상에 있는 대도시의 개성 있는 젊은이들은 다들 비슷하다는 뜻이다. 결국 다시 마주하게 되는 힙스터의 패러독스다.
<힙스터 다이어트>라는 책은 힙스터를 자유롭고, 유행을 거부하며 시크하고 대충 입어도 스타일리시하며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살찌지 않는 존재로 규정한다. ‘인생 대부분을 힙스터를 꿈꾸며 살아왔다’는 저자는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등록할 것을 종용하는 여자친구에게 그것은 ‘자기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려고 돈을 내가며 멍청한 그룹에 가입하는 것’이라며 거절한다. 대신 ‘내 방식대로 할 거야. 꽤 멋진 방식으로’라고 말하며 자신이 개발한 다이어트 비법을 ‘힙스터 다이어트’라고 명명한다. 현재 미국 오리건 주에 사는 잡지 편집장인 책의 저자가주장하는 일명 ‘힙스터 다이어트’의 방법은 칼로리를 계산해 음식을 먹고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많이 움직이라는 등의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이다
“쿨하게 살을 빼는 것이라는 걸 기억하자. 그러니까 우리는 멋진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를 하거나 샌드위치 가게에서 동료들과 점심을 먹을 때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사람처럼 주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마른 힙스터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했지만 나 같은 통통족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말하며 힙스터에 대한 동경을 드러낸다. 그에게 힙스터는 특별히 다이어트하지 않아도 살이 찌지 않는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스타일리시한 사람들인 듯하다. 그리고 책을 번역한 출판사는 책의 띠지에서 힙스터를 ‘뉴욕, 런던, 도쿄, 홍대의 패션피플’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서 ‘유행을 거부하는 젊은이들’ 혹은 ‘유행에 민감한 사람’을 뜻하던 이중적인 단어 힙스터는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에 도착해 ‘개성을 추구하는 젊은이’의 긍정적인 뜻으로 변해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힙스터 패션’을 파는 인터넷 쇼핑몰이 넘쳐나고 콧수염과 턱수염이 분리된 모양의 ‘힙스터 수염’은 뭔가 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남자에게 추천하는 패션 아이템이 된 지 오래다.
힙스터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대놓고 ‘힙스터를 지향한다’고 표현하는 연예기사를 통해 드러난다. 최근 앨범을 발표한 B1A4, 보이프렌드 등의 아이돌 그룹은 이번 앨범의 패션 콘셉트를 힙스터로 정했다며 ‘유행 등 대중의 큰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패션과 음악 문화를 좇는 부류’로 힙스터를 규정하고 있다. 그 소식을 접한 한 소녀팬이 “오빠들 이번 앨범 콘셉트가 힙스터래요. 힙합 갱스터 같은 옷은 싫은데. 어떡하죠?” 하며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녀의 오빠들은 힙합 갱스터는 당연히 아니고, 일명 뉴요커 스타일도 아닌 그저 ‘나름의 개성을 살린 옷’을 입고 나왔다. 힙스터에 대한 자기 나름의 정의에 충실한 듯 보인다.
이태원에서 만난 외국인이 당신에게 ‘You are a Hipster’라고 말한다면, 웃을 것인가 화낼 것인가? 결정하기 전에 반문해보시라. 당신, 힙스터를 어떤 의미로 사용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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