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MPORARY ART] Where You Live Is What You Are 집의 전성시대
집의 전성시대
“집이 진화한다!” 이 표현은 인류 역사상 늘 존재한다. 인류가 나무를 자르고 풀을 엮어 오두막을 짓고 자연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시작한 이래로 집은 변신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매시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변하지 않는 목표는 더욱 편안하고, 더욱 기능적이고, 더욱 아름다운 집을 만드는 것이다.
21세기 집의 키워드
지금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집의 트렌드는 무엇일까.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첫 번째 키워드는 의심의 여지 없이 ‘친환경’이다. 20세기는 화석 연료에 기초한 탄소 경제 시대였고, 이산화탄소에 의한 지구 온난화가 뒤따랐다. 오늘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온난화로 인한 피해를 경험하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인류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30퍼센트를 집이 쏟아낸다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집이 지구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떠오른 셈이니 환경을 최우선으로 배려한 집을 짓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다음으로 ‘형식 파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무리 획기적인 기술과 재료가 등장해도 집에 대한 일종의 관념적 기준은 존재한다. 그런데 최근 세계 도처에 짓는 집을 보면 더 이상 기존의 집에 대한 생각이 무의미할 만큼 파격적이다. 이 같은 현상은 집을 점점 더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며 동시에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에 뿌리내린다. 과거에는 형태, 공간, 재료, 색 등에 약간의 변화를 주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이제는 예측이 불가능한 정도로 기상천외한 디자인이 속속 등장하는 추세다.
마지막으로 ‘작고 단순함’이다. 집이 점차 작아지는 현상은 가족 구성원이 줄거나 독신자가 늘어나는 사회적 현상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물론 장기적인 세계 경제의 침체로 말미암아 실속을 추구하는 경향도 한몫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핵가족이나 독신자를 위한 집의 경우 최소한의 면적을 갖거나, 심지어 이동이 가능한 집까지 등장했다. 내부 공간도 필요에 따라 여러 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가변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널리 유행이다. 작고 단순하지만 충분히 풍요로운 집, 형식을 벗어던지고 효율성을 최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산화탄소
제로
주택의 출발
2002년에 런던에 조성된 ‘베드제드’는 영국 최초의 친환경 주거단지로서 이론에만 머물던 친환경 원리를 종합적으로 적용하여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베드제드는 ‘베딩턴 제로 에너지 디벨로트먼트(Beddington Zero Energy Development)’의 줄임말로 화석 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베드제드에는 전체 90여 가구에 250명 전후가 입주할 수 있고, 원룸에서 방 네 개를 가진 복층 형식까지 다양하며, 일반 주거에서 사무 공간까지 갖추었다. 베드제드에 시도한 주요한 친환경 원리는 태양광 패널 및 태양전지 활용,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소규모 열병합 발전소 운영, 자연환기를 통한 실내온도 조절, 최상의 단열기술 사용, 빗물의 재활용, 공용 전기자동차 사용 등이다. 이 정도면 우리 시대에 사용 가능한 친환경 원리를 모두 적용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는다.
한편, 베드제드는 단지 전체를 남향으로 배치하고 전면에는 정원과 유리 온실을 설치해 태양열을 최대한 흡수한다. 베드제드가 공동주택임에도 불구하고 단독주택의 장점을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또한 빛을 내부로 최대한 받아들이기 위해 거실, 침실, 계단실에 다양한 크기의 천창을 설치했다.
단지 한쪽에 마련된 열병합 발전소에서 난방과 조명을 위한 전력을 생산하는데 인근 목재소에서 나오는 찌꺼기와 매립장에서 분리 처리된 바이오 매스를 원료로 사용한다. 이곳에서는 단지 전체의 운영에 필요한 하루 평균 100kw의 전력을 생산하고, 나머지는 지붕에 설치한 태양전지로 충당한다.
또한 발전기를 가동하는 동안 나오는 열을 활용해 물을 데워 난방용으로 사용하니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
외부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빨강, 노랑, 파랑을 칠한 닭 벼슬 모양의 커다란 굴뚝은 바람의 방향을 따라 회전하며 실내로 신선한 공기를 유입한다. 이 장치를 통해 실내 온도를 평균 5℃가량 낮출 수 있으니 자연형 에어컨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냉난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단열이 중요한데 베드제드의 벽에는 30센티미터 두께의 특수 단열재를 사용했고 외벽에는 목재 패널을 붙여 열 손실을 최소화한다.
최근 유럽의 주요 도시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탄소 제로 주거 원칙을 수립해 단계적으로 실행 중이다. 머지않아 유럽에서 새로 짓는 집은 모두 이산화탄소를 전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때가 되면 아마도 인류 역사상 또 한번의 주거 혁명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베드제드가 그 출발점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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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런던의 친환경 주거단지 ‘베드제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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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제드는 단지 전체가 남향으로 설계되어 실내에도 채광이 뛰어나다.
컨테이너의
변신
컨테이너는 집의 형식 파괴를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한다. 화물을 보관하는 컨테이너를 집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네덜란드 유트레흐트 대학의 기숙사라 할 수 있다. 스페이스 박스로 불리는 3층 규모의 컨테이너는 공장에서 제작해 현장에서 크레인으로 간단히 설치했다. 스페이스 박스의 비밀은 배와 항공기의 제작에 사용하는 첨단 경량 구조물을 활용해 무게를 최소화한 것이다. 마치 캡슐과 같은 아기자기한 박스형 공간에 침실, 거실, 부엌, 욕실, 화장실 등 집에 필요한 모든 공간이 완비되어 있다. 전기, 수도를 포함한 기본적인 설비 시스템을 갖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현대 건축의 발전에서 네덜란드는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 따라서 네덜란드에서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작품과 그들이 시도한 전위적 건축을 경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스페이스 박스의 경우는 집이 얼마만큼 단순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진보적 실험이다. 멀리서 보면 화물 야적장에 쌓은 컨테이너처럼 보이지만 나름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다면 지나친 주장일까. 컨테이너 주택의 장점은 당연히 기능에 있다. 물론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길게 잡아도 10일 전 후면 충분히 완성할 수 있다. 당연히 다른 어떤 스타일의 주택과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컨테이너 주택이 최근에는 기능을 넘어 기존 주택과 경쟁할 만큼 편안함과 아름다움까지 갖추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바로 친환경적인 주거의 대안으로 각광받는다는 점이다. 사용하지 않는 컨테이너를 재활용하고, 많은 건축 자재와 쓰레기를 배출하는 공사 과정이 필요치 않으므로 어떤 방식보다 친환경적임에 틀림없다.
런던에서는 ‘컨테이너 시티’라는 이름으로 지난 2000년부터 컨테이너를 이용해 공동주택을 단계적으로 건립하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컨테이너 시티는 마치 어린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블록을 다양하게 쌓아서 만든 것처럼 역동적인 형태로 구성된다. 이 같은 디자인을 통해 박스를 일렬로 쌓은 컨테이너 주택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나름의 독특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한편, 요코하마 해변가에 자리한 ‘마리나 호텔’의 경우 흰색의 조화를 통해 컨테이너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함과 동시에 부정형의 배치를 통해 컨테이너의 경직된 모습에서도 완전히 탈피했다. 어떤 고급 호텔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런가 하면 스코틀랜드의 대자연과 면한 코브 공원 안에 설치한 컨테이너 시티의 경우 단순하지만 나무, 호수와 한껏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잔디를 얹은 지붕은 철재의 차가운 느낌을 완화함으로써 컨테이너 하우스가 가진 한계를 충분히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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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에 가면 꼭 묵어야 할 ‘마리나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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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한 색깔이 인상적인 네덜란드의 ‘스페이스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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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단계적으로 건립되고 있는 런던의 ‘컨테이너 시티’.
더욱
창의적이고,
더욱
혁신적으로
오늘날 지은 집 중에서 전통적인 집의 형식에서 과감히 탈피한 미래 지향적 사례를 꼽는다면 아마도 독일 루드비스버그의 ‘뒤프리 카사’일 듯싶다. 완만한 경사지의 녹색 잔디 위에 지은 백색의 뒤프리 카사는 마치 밀가루 반죽을 부어 만든 것과 같은 유연하면서 역동적인 모습으로 기존의 정형화 된 주택 형식에서 완전히 탈피했다.
마치 우주 정거장을 연상시키는 뒤프리 카사는 콘크리트를 사용해 안과 밖, 위아래를 모두 연결해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은 모습이다. 내부 공간도 아무런 장식 없이 담백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빛에 의한 조각적 느낌을 강조했다. 뒤프리 카사와 같은 혁신적 디자인이 비록 기존의 주택 디자인에서 볼 수 없는 파격적 개념을 담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순수한 형태와 공간 디자인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더욱 파격적이고 미래지향적 개념은 일본의 나가노에 지은 ‘셸 빌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거대한 콘크리트를 부드럽게 말고 그 속에 거주를 위한 기능을 모두 담았다. 달팽이 껍질 등에서 볼 수 있는 셸은 생명체가 지닌 가장 단단하고 안정적인 구조방식으로서 건축 역사에서 끊임없는 연구의 대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되어 접목되어왔다.
셸 빌라는 기둥, 벽, 지붕으로 이루어진다는 통념을 완전히 무시하고 전혀 다른 디자인 개념을 선보였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콘크리트 셸은 집을 위한 매우 안정감 있는 구조라 할 수 있고, 주변의 자연과 이질감 없이 잘 어우러진다. 셸 구조의 앞뒤로 열린 개구부는 벽이자 동시에 창의 역할을 하며 햇빛을 집 안 가득 받아들이는 기능을 한다. 셸 빌라의 독특한 형태는 내부 공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사실상 벽, 천장, 바닥의 구분이 따로 없이 부드러운 곡면을 따라 개별 공간을 구성했는데 순간순간 마치 원시 동굴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집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
한 시대에 유행하는 집을 보면 당시의 사회상을 읽을 수 있다. 지금까지 설명한 우리 시대 집의 트렌드는 과거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혁신적이다. 당연히 첨단 기술과 재료의 발전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각기 다른 개념, 형태, 공간, 구조, 재료 등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파격적 변신을 시도하면서 반대로 더욱 순수한 모습으로 집의 본질에 다가선다는 사실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집은 부와 권위를 상징하고, 화려한 장식의 대상으로 여겨지곤 했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집들은 형식의 껍질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본질적 역할에 충실하다. 집이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지금 우리 시대가 과거의 허식에서 벗어나 진실된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음에 틀림없다.
21세기에 등장한 집에서 그러한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미래지향적 주택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셸 빌라’. 부드럽게 만 콘크리트 외관과 달리 내부는 무척 아늑하다. 셸 빌라는 회색 콘크리트가 자연과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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