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REPORT] 의사는 수술 받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아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의사들은 의료소비에 있어서 일반인들과 다른 선택을 한다. 예를 들면, 건강검진 받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거나, 인공관절이나 척추, 백내장, 스텐트, 임플란트 등 그 흔한 수술 받는 비율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심지어 항암치료 참여율도 떨어진다. 요컨대 검사도 덜 받고, 수술도 덜 받고, 몸을 사린다. 마치 손님에게는 매일 기름진 진수성찬을 차려내는 일급요리사가 정작 자신은 풀만 먹고 산다고나 할까. 왜 그럴까?
TEXT. 김현정 (서울시립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ILLUSTRATION. 류희룡
왜 의사는 다르게 선택하는가?
주위에 가족이나 친한 친구 중에 의사가 있는 사람은 나의 이러한 지적에 공감할 것이다. 어떤 질문이 날아가도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비슷하다. “괜찮아. 그냥 지내봐. 좋아질거야.” 이런 양상은 의사 자신의 전문과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정형외과 의사들이 무릎 수술이나 어깨 수술을 받는 일은 그들 사이에서 특이한 뉴스거리가 될만큼 희귀하다. 왜 의사는 환자에게 권유하는 처방을 자신을 위해서는 선택하지 않을까? 첫 번째 이유는 ‘잘 알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많은 투병과정과 죽음을 이미 지켜봤다. 의료란 양날의 칼과 같은 것이다. 나를 치유하게도 하지만 나를 다치게 하기도 한다. 현대의학에는 혜택뿐 아니라 한계와 허상도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웬만한 검사나 치료에 섣불리 몸을 맡기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는 ‘기다리기’ 때문이다. 요즈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픈 것을 참지 않는다. 되도록 빨리, 가능하다면 당장 낫기를 원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력을 기울여 차근차근 얻는 근본적인 치유책보다, 꼼짝 안 하고 저절로 낫는 방법에 더 솔깃하다. 이쪽 병원에서 신통한 처방이 나오지 않으면 바로 다른 병원으로 가서 약을 타고 수술을 받는다. 그러나 근원적인 치료는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며, 여기에는 반드시 시간이 걸린다.
세 번째 이유는 ‘자유롭기’ 때문이다. 사실 의료에는 콕 짚어 정답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부에서 정해놓은 진료 지침도 있고, 학회에서 권장하는 가이드도 있고, 병원에서 독려하는 경영방침도 있고, 보험회사에서 규정하는 수급 기준도 있다. 평소 이러한 장치와 압력을 벗어나서 진료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의사들은 비로소 자기 자신이 대상이 되어서야 이런 부담에서 훨훨 벗어나 가장 솔직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보수적이고(conservative) 보존적이고 (preservative) 최소한의(minimal) 의료를 신속하고 조용히 선택한다. 우리나라에서 으뜸가는 대학병원의 의료원장이었던 나의 은사는 전립선암에 걸렸음에도 모든 치료를 거절하였다. 마지막에 약간의 통증 치료를 받은 것 외에는 몇 해 동안 끝까지 평소대로 지내다가 돌아가셨다.
‘의과대학생증후군(medical student syndrome)’이라고 의대생들이 농담처럼 겪고 지나가는 병이 있다. 수업시간에 어떤 병의 증세에 대해서 강의를 듣고 나면 마치 그것
이 전부 내 병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피곤해서 눈썹이 실룩이면 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일명 루게릭병)는 아닌지, 입이 마르면 당뇨병은 아닌지, 손가락이 뻑뻑하면 류머티스는 아닌지…. 전 국민이 이런 의과대학생 증후군을 겪고 있다.
기다리면 안 아프다
50대 여성, 기업의 임원인데 어느 날 무릎이 아프다고 찾아왔다. 약간 퇴행변화 초기 현상이 보여 무릎 관리와 운동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환자는 우스갯소리처럼 말했다. “아유, 이러다 늙으면 인공관절 하면 되지요? 요즘 의술이 참 좋잖아요.” 엥? 이게 무슨 얘기? 마치 인공관절 수술이 나이 들면 누구나 거쳐가는 만능 해결사 내지 인생의 종착역쯤에 있는 목표처럼 들린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깍지.
어떻게든 평생 자신의 관절로 사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관절염 질환의 치료에서 인공관절은 최초의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최종상태에서의 선택이다. 피하면 피할수록 좋다.
치아도 마찬가지다. 임플란트 시술에 신중해야 한다. 심장 질환에 흔히 삽입하는 스텐트도 마찬가지다. 내 몸에 들어오는 이물, 더구나 인공삽입물을 장착하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본래의 정상 조직을 깎아내거나 도려내야만 한다. 결코 되돌릴 수 없다. 그러니 좀 뻑뻑하고 쑤셔도 씻고 조이
고 광 내서 끝까지 내 관절로 사는 게 좋다. 아무리 상하고 아무리 못났어도 내 몸보다 좋은 것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내 몸의 세포들은 퇴화하기도 하지만, 변화하고 새로 돋아나기도 하는 ‘적응’이 가능하다. 하지만 인공물에는 이런 작용이 없다. 심는 그날부터 망가지는 일만 남는다. 예를 들어 무릎에 퇴행성관절염이 있다고 하자. ‘연골’이 닳아 없어지는 병이다. 닳는 동안 아프다. 연골이 닳으면 그 아래로 ‘연골하골’이라는 생뼈가 노출된다. 여기엔 신경세포 말단이 분포하고 있으니, 움직일 때마다 서로 마찰하면서 얼마나 아프겠는가. 또한 관절을 둘러싼 활액낭 세포들이 떨어져 나온 연골 부스러기를 없애려고 관절 안으로 물을 뿜고 염증을 일으킨다. 무릎이 붓고 열도 나고 아프고….
그러나 실은 이 모두가 우리 몸의 ‘자기방어 기제’이며 스스로를 고쳐나가는 ‘자정작용’이다. 연골이 벗겨져 나간 자리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주위에 섬유조직이 자라 메우기도 하고, 연골하골에 미네랄이 모여 단단해지면서 연골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러면 엑스레이에서는 설사 심한 퇴행성관절염을 보일지라도, 실제 환자는 별로 아프지도 않고 별다른 증세도 없는 단계에 이른다. 자연은 우리가 다 살아가도록 방법을 마련해놓았다. 그래서 항간의 실없는 소리 중엔 이런 말도 있다. “기다리면 안 아파질 테니. 안 아파지기 전에 얼른 수술 받으세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거다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열한 살 조카가 치과 정기검진을 받던 중, 교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덜컥 걱정이 되어 서둘러 치과로 출동했다. 담당 선생님이 말하길, 조카의 영구치가 나는 과정에 현재 치아들이 방해가 되어 그냥 놔두면 심한 부정교합이 생기게 될 것이라 하였다. 교정은 피할 수 없는 일이겠으나, 교정할 때 흔히 하는 생니를 몇 개 뽑는 것이 더 염려가 되었다. 치과 선생님께 이렇게 부탁했다.
“선생님, 저는 이 아이들 세대에는 사람들이 백 살까지 거뜬히 살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까지 자기 치아로 건강히 살길 원합니다. 좀 삐뚤어지고 튀어나와도 좋아요. 생니를 뽑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최대한 치아를 보존할 수 있다면, 그걸 바랍니다.” 치과 선생님은 무슨 뜻인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인간은 사이보그가 아니다. 인간은 그냥 인간으로 살때가 복되다. 그런데 세상은 인간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자꾸 사이보그로 만들려고 한다. 그 바탕에는 기계가 인간보다 더 능률적이리라는 묵언의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가? 아니, 결코 그렇지 않다.
요즈음 인공 수술이 너무 만연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제발 내 관절로 살자. 내 치아로 살자. 내 혈관으로 살자. 내 디스크로 살자. 내 몸으로 살자. 부족한 듯 보여도 내 몸이 최고라는 걸 제발 잊지 말자. 자연으로부터 받은 내 몸을 보존하자.
본 기사는 <의사는 수술 받지 않는다>(원제 ‘0차 의료 해법과 의료 미니멀리즘’, 김현정, 느리게읽기)에서 발췌, 재구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1 모든 약은 독이다. 다만 그 용량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파라켈수스
2 서너 가지 약을 복용 중인 어느 50대 아주머니가 말한다. “내가 먹고 싶어서 먹나? 병원에서 의사들이 주니까 먹지.” 명답이다. 약은 결코 밥이 아니다. 양약은 결코 보약이 아니다.
3 ‘영(0)차 의료 해법’은 사람을 되찾자는 뜻을 담고 있다. 자본 너머에 간직된 인적요소, 그중에서도 환자들 자신의 힘과 역할을 찾고 키우자는 것이다. 즉, 여기서 ‘0차’란 의료기관을 찾기 전 순서상 영 순위, 우리들 자신을 가리킨다. 인류출현과 함께 언제나 존재해왔고 평소 부지불식 중에 우리가 하고 있는 기초적이고 상식적인 건강행동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화하고 강화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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