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거래는 지난 20년간 계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마존과 같은 일반 전자상거래, 프라이스라인 같은 역경매 전자상거래, 이베이 같은 오픈 마켓, 그루폰 같은 소셜커머스 등 계속적으로 새로운 전자상거래 모델을 내놓으면서 성장해 왔고, 최근에는 큐레이션 커머스라는 새로운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큐레이션 커머스의 등장 배경
미국의 인터넷 신문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2011년에서 2021년 사이 미국의 초대형 서점 업체인 BARNES & NOBLE의 226개 오프라인 매장이 문을 닫을 것이고, Abercrombie & Fitch 역시 2015년까지 180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닫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롯데백화점은 2013년 매출이 8조 5650억 원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2012년의 8조 6430억 원에 비해 0.9% 감소한 수치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2013년 국내 매출 4조 1530억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0.6% 감소했다. 사상 처음으로 백화점 매출액이 전년 대비 감소한 것이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2013년 전체 소매 판매의 약 49.6%가 웹에 영향을 받았으며, 2014년에는 52.4%, 2015년에는 55.6%로 그 비율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렇듯 전자상거래 시장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정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정보 그 자체의 가치만큼이나 정보를 필터링하는 큐레이션의 가치가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큐레이션(Curation)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콘텐츠를 목적에 따라 분류하고 배포하는 일을 뜻한다. 그런가 하면 큐레이션을 인간이 수집하고 구성하는 대상에 질적인 판단을 추가해 가치를 높이는 활동으로 정의하는 학자도 있고, 이미 존재하는 막대한 정보를 분류하고 유용한 정보를 골라내 다른 사람에게 배포하는 행위로 정의하는 학자도 있다.
큐레이션 커머스는 박물관의 큐레이터가 예술 작품을 수집, 엄선해 대중들에게 소개하듯 경제성과 실용성이 높은 제품을 해당 분야의 쇼핑 전문가가 엄선해 소비자에게 추천해 주는 쇼핑 방식을 의미한다. 스마트 폰을 사용하는 모바일 상거래 환경의 경우 작은 화면 때문에 상품의 정보를 알아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큐레이션 커머스가 더욱 각광 받고 있다.
필자는 파리에 가면 꼭 들르는 상점이 있는데, 콜레트(Collette)라는 편집 상점이다. 파리에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골목인 생 오노레 거리에 있는 이 편집 상점에 들르면 시계, 전자기기 등 각종 디자인 제품을 비롯해 남녀 패션 상품, 화장품, 신발, 잡지 등을 구경하면서 최신 트렌드를 빨리 파악할 수 있으며, 제품의 품질을 믿고 구매할 수 있다. 큐레이션 커머스는 이러한 오프라인의 편집 상점 모델을
온라인화한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마크 샤퍼(Mark Schaefer)는 ‘콘텐츠 충격(Content Shock)’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는 웹에 유통하는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으로 인해 정보 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 및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져 생산 비용이 증가한다는 의미다. 즉, 생산 비용이 일정 수준을 넘게 되면(빨간 선과 파란 선의 교차점), 정보 생산이 비경제적으로 바뀌는 현상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차별화를 위해 노력하는 정보 생산업체의 비용이 점점 증가하고 신생업체에게는 진입 장벽이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수천, 수만 가지의 상품을 다 검색하고 비교해 가격 대비 최선의 상품을 선택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문성이 보장된 제품을 노력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큐레이션 커머스 서비스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큐레이션 커머스의 특징
큐레이션 커머스는 소셜 커머스와 달리 최저가 패러다임을 추구하지 않는다. 경쟁력 있는 고품질 제품을 발굴해 소비자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한다(wish.com이나 shoptheorem.com의 경우 소비자들에게 가격을 제시하게 하고, 이를 회사에서 받아줄 것인지를 결정하는 형태로 운영하기도 한다). 소비자층을 세분화해 저렴한 가격에 가장 가치를 두는 집단이 아닌, 더 좋은 품질의 제품과 차원이 다른 색다른 제품에 가치를 두는 고객층을 타깃으로 한다. 대표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1)목록 구성: 사용자가 구매를 희망하거나 이미 구매한 상품을 속성, 가격, 판매량 등의 기준에 따라 분류하고 노출 순서를 정한다.
2)목록 공유: 작성된 상품 목록을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공유할 수 있으며, 지인이나 유명인이 작성한 목록을 공유받을 수 있다.
3)목록 평가: 지인들의 댓글과 공유 수 등을 통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상품이나 목록에 대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4)시각 자료 중심: 큐레이션 커머스에서는 주로 사진과 영상 자료로 상품 정보가 유통된다. 이런 시각 자료가 소비자의 눈에 띈 다음에야 상품 사양 정보가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 큐레이션 쇼핑에 참여하는 소비자들은 디지털 환경에 적응한 세대로 글보다는 사진과 영상에 익숙하므로 감각적인 이미지에 쉽게 끌린다. 상품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감성적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5)사용자의 성격 반영: 많은 상품 가운데 특정한 상품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용자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다. 큐레이션 돼있는 상품들을 보면 그 사용자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선호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6)즉각적인 반응: 큐레이션 커머스 사이트의 특징이 화면에 상품 사진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것들에 대한 호감 정도를 표시하는 버튼과 숫자 등 정보가 노출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용자들은 마음에 드는 상품이 있으면 바로 반응한다. 당장 구매하지는 않더라도 자신만의 라이브러리를 작성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이 상품이 마음에 든다는 의사 표시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작성한 상품 리스트든 다른 사람의 상품 리스트든 상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댓글을 통해 표현한다.
7)소셜 네트워크 활용: 큐레이션 커머스는 관계 지향적이다. 타인의 선택은 나에게 영향을 주고, 나의 선택은 타인에게 영향을 준다. 아직까지 구매로 연결되지 않은 ‘선택’이라는 행위 자체가 비즈니스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소비자의 지지를 받은 사람(큐레이터)은 유명인이 될 수도 있다.
큐레이션 커머스의 사례
큐레이션 커머스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가입형 커머스(Subscription Commerce)이다. 일정 기간마다 정해진 금액을 지불한 온라인 상의 고객에게 특정 제품을 주기적으로 배송하는 것으로, 사업자는 고객들의 취향을 파악하고(Survey) 매월 새로운 제품을 선택한다(Curation). 제품을 특징에 맞는 박스에 담고(Package), 제품을 배송하며(Shipment/Delivery), 고객들의 피드백을 받아 공급자에게 전달한다. 가입자는 서비스에 가입해 매월 일정 금액을 업체에 지불하고, 상품 배송 전에 자신의 선호에 따라 상품을 확정할 수 있기도 하다. JewelMint는 매월 초 액세서리에 대해 고객에게 옵션을 주고, 5일 안에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사진1.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위시닷컴은 관심 상품을 검색, 수집해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는 소셜 플랫폼. 소비자들에게 가격을 제시하게 한 후 이를 검토하는 운영 방식을 선보인다. ⓒwish.com
사진2. 가입형 커머스에 속하는 주얼민트. 매월 초 액세서리에 대해 고객에게 옵션을 주고, 5일 내 선택하도록 한다. ⓒjewelmint.com
사진3. 가입형 커머스의 시초로 알려져 있는 버치박스. 2010년 서브스크립션 커머스 서비스를 통해 미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이후 국내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한 업체들이 속속 등장했다.ⓒbirchbox.com
패션 전문 업체인 Shoedazzle이나 귀금속 전문 업체인 JewelMint 등은 선호하는 스타일이나 브랜드, 의상 스타일, 연령, 신발의 굽 높이 등을 사진을 보고 선택하게 해 고객들의 특성을 파악한다.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함으로써 고객은 많은 옵션을 줄이는 동시에, 최신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고,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으며, 반복 구매의 번거로움을 덜 수 있다.
샘플 화장품을 제공하는 BirchBox와 이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이는 한국의 미미박스의 경우 고객들은 적은 금액으로 미리 제품을 체험해 볼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좀 더 효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고객은 매달 어떤 제품이 배달될지에 대한 기대감, 재미 등을 느낄 수 있다. 공급자는 사업자에게 무료로 샘플을 제공하고 이 업체가 제공한 피드백을 분석하고 대응한다. 미미박스는 제휴 브랜드의 화장품을 무료로 받아오는 대신 구독자의 피드백과 연령, 지역, 피부 타입 등의 데이터가 담긴 보고서를 제휴사에 보내준다.
이 외에도 임산부를 위한 텐박스, 매주 반찬거리를 주 1~2회 배달해 주는 매직테이블, 이러한 방식을 유기농 재료 음식으로 특화한 달팽이 밥상(Dalbab) 등이 있다. 매우 오래된 독일의 가입형 커머스 blacksocks.com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이는 한국의 모삭스(mosocks.com)는 매월 트렌디한 양말을 선별해 박스로 보내준다. 헤이브레드(Heybread)는 몸에 좋은 재료를 쓰는 동네 인기 빵집의 빵들을 소비자에게 배달해 주는 큐레이션 커머스다. 펫츠비는 매월 테마별로 반려동물에게 필요한 물품을 큐레이션해 주는 큐레이션 커머스로, 수의사를 통해 제품을 검증하고 추천받아 상품 박스를 구성하고, 대리점이나 직영점을 거치지 않고 브랜드와 제휴를 통해 저렴하게 판매한다.
사진1. ‘구독 서비스 제공회사’를 표방하는 모삭스. 매달 트렌디한 디자인의 양말을 직접 선별해 박스로 보내준다. ⓒmo-socks.com
사진2. 북맥은 개인의 독서 취향에 맞는 도서를 추천해 주는 중개형 큐레이션 커머스다. ⓒbookmac.co.kr
사진3. ‘동네 빵집 편집숍’인 헤이브레드는 서울에서 가장 맛있고 유명한 빵집의 빵을 엄선해 배달하는 서비스를 선보인다. ⓒheybread.co.kr
상품 중개형 큐레이션 커머스에서는 사용자들이 상품을 큐레이션하는 과정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상품 판매 페이지로 연결된다. 소비자들은 상품을 소개하는 상품 중개인인 동시에 구매하는 최종 소비자가 된다. 예를 들어 북맥(bookmac.co.kr)은 회원끼리 도서를 추천하고 쇼핑까지 연결하는 서비스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관심사와 의견을 공유하고, 해당 도서와 관련된 문서, 영상, 강의, 모임까지 공유한다.
Kickstore는 전문성과 기능이 검증된 디자인 제품을 큐레이션해 판매하고, MrKoon은 SNS공유를 통해 할인받을 수 있는 ‘소셜’ 개념을 접목해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디자인 제품들을 주로 판매한다. 세계 각지에서 제작된 제품들로 한정된 시간 동안에만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며, 해외 각 사이트를 찾아 발품을 팔지 않아도 돼 해외직구 쇼핑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SNS에 이들이 만족한 상품을 공유하면, 적립금을 제공하는 ‘용돈 모으기’라는 자체 소셜 공유 리워드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고품질 농산물을 제안하는 헬로네이처(hellonature.net), 우수 MD들이 추천하는 특가 상품을 판매하는 11번가의 쇼킹딜, 인테리어 및 패션 디자인 제품을 판매하는 dblow와 tiny-big.com, 속옷과 간편 식품을 판매하는 덤앤더머스(dummerce.com) 등이 있고, 해외에는 Fancy, WANELO, ContextLogic사가 만든 wish.com, 디자인 제품 위주의 FAB 등이 있다.
큐레이션 커머스의 시사점
큐레이션 커머스는 조사나 구매 패턴의 분석을 통해 개인의 특성에 맞는 제품을 추천하는 것이 본질이다. 기업은 타깃 소비자가 명확하게 그룹화되기 때문에 마케팅 범위가 축소되고, 별도의 비용 없이 타깃 고객을 대상으로 제품을 홍보할 수 있으며, 고정 고객을 확보함으로써 안정적인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향후 수요 예측이 가능하며, 구매가 끊이지 않도록 계속해서 고객 만족도를 조사하며 피드백을 받아 해당 문제점을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다.
제조 기업은 이렇게 큐레이션 커머스라는 새로운 중개사업자에게 선택돼야 하는 새로운 기회와 도전의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중개사업자에 대한 제조 기업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과제가 생긴다. 큐레이션 커머스 업체는 구매자들에게 브랜드가 강하고 신뢰성이 높은 상품을 제공하려는 인센티브가 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조 기업의 입장에서는 브랜드 가치와 품질 경영의 필요성은 여전히 계속되는 동시에, 타사 제품과의 코디네이션과 매칭 등도 제품과 서비스 개발 시 새롭게 고려해야 한다. 또한 스토리텔링의 중요성도 더욱 커진다고 할 수 있다.
큐레이션 커머스 업체 입장에서는 잠재 경쟁자에 대한 진입 장벽 구축이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으로 본다. 글로벌 전자상거래 업체는 결국 거래 비즈니스 메소드 특허를 가진 업체만이 살아남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경매형 오픈마켓 특허는 이베이가, 역경매 특허는 프라이스라인이, 소셜 커머스 미국 특허는 그루폰이 가지고 있는데, 이들 업체들이 각각의 상거래 부문에서 1등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큐레이션 커머스를 포함한 전자상거래에서 비즈니스 메소드 특허의 확보와 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상거래 모델의 개발이 플랫폼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됨을 보여준다.
이경전은 현재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O2O 서비스 기업 Benple과 전자상거래 기업 Allwin을 창업했다. 카이스트 경영과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CMU, MIT, UC 버클리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박아름은 경희대 경영학과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주로 IoT 기반의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과 결제 서비스 모델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O2O 서비스 기업 Benple에서 일하고 있다.
[Special Ⅱ] 큐레이션 커머스와 소비 플랫폼의 변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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