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개념을 넘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즐거움을 찾는 플리마켓, 한번 시작하면 헤어 나오지 못해 ‘개미지옥’이라 불리는 해외 직구. 모두 스스로 구매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소비자의 노력이다.
쇼핑, 어디까지 가봤니?
“헬로 코리아! 만나서 반가워요. (…) 한국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요? 참 궁금하네요!” 지난 7월, 한 미국 인터넷 쇼핑몰 메인을 장식한 한글 포스팅이다. 국내 최저가 12만원인 스피커독을 1만5천원 정도에 판매한 일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지면서 한국 직구족이 폭주한 것. 깜짝 놀란 운영자가 구글 번역기를 통해 한글로 인사를 건넸고, 한국어에 능통한 직원을 고용하며 적극적으로 직구족을 ‘대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미국의 또 다른 이어폰 판매 사이트는 1+1 행사에 직구족이 몰려 배송이 늦어지자 고객들에게 한글로 쓴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편지에는 “조금한(조그만) 가족 소유 기업이다 보니깐 5일 안에 모든 선적을 처리하기에는 좀 곤란했습니다. 심지어 상자를 접는데 시아버님까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라는 귀여운 투정이 쓰여 있었다고.
직구 시장은 시간이 갈수록 급성장하는 추세다. 작년에 이미 10억 달러(약 1조원)를 돌파했고, 올해 상반기만 두고 봤을 때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3% 급증했다. 품목에도 한계가 없다. 여성복이나 아동복은 물론 시계, 식료품, 영양제, 심지어 대형 가전제품도 포함된다.
작년에는 한 쇼핑몰에서 국내 대기업의 TV를 할인해 판매했는데, 외국 땅을 거쳐온 제품인데도 관세와 해외 배송료를 포함한 가격이 국내 판매가보다 100만원가량 저렴했다고. 널리 알려진 배대지(배송 대행지) 업체 하나에만 매일 300여 고객이 몰릴 만큼 성황을 이루며 대형 가전 직구 업계에 한 획을 그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단 한 번도 쓰지 않은 영어를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직구 덕분에 ‘블프(블랙 프라이데이)’ ‘박싱 데이’ 등 해외의 유서 깊은 소비문화를 알게 되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직구족 가운데 상당수가 국내 판매가의 50% 정도에 달하는 가격으로 최신 제품을 사온 친구에게 자극받아 직구를 시작한다. 몇 번 직구를 하다 보면 똑똑한 소비자
된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고, 거듭되면 국내에서 제값 주고 물건을 사면 ‘호갱 (호구 고객)’이라는 생각도 든다. ‘양덕(서양 덕후)’이라 알려진 필자의 지인은 해외에 가야만 살 수 있던 각종 식료품을 클릭 몇 번으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녀와 같은 소비자들이 적지 않아 대표적 ‘개미지옥’으로 알려진 사이트는 ‘무료 선적’ 행사가 시작함과 동시에 국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영양제가 품절 사태를 빚는다.
한편, 직구가 국내 내수 시장의 경기 침체를 장기화한다는 우려도 있다. 값싸게 만든 모조품을 정품인듯 속여 파는 해외 사이트가 등장하면서 ‘직구 호갱’도 발생했고, 파손에 대한 우려, 느린 배송, 불편한 AS도 단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직구족의 파워를 실감한 몇몇 해외 사이트에서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하고, 국내로 직접 배송하는 업체가 늘어나는 등 조금씩 개선되는 상황. 현명한 소비자가 줄지 않는 한 당분간 직구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Word by 이한(칼럼니스트)
반띵 살롱 플리마켓
플리마켓(Flea Market, 벼룩시장)은 반띵 정신 충만한 사교적 집합체다. 모두 제 보따리 하나씩 가져와 풀고 금세 친해져 수다를 떨다 남의 물건으로 채운 새 보따리 하나 가져가니 그렇지 않겠는가.
나는 20세기에 유럽 배낭여행을 하며 벼룩시장이라는 신문물을 경험했다. 그때 내 직업은 잡지 기자였는데, 귀국하자마자 기획서를 작성해 정동 언덕에 장을 열었다. 당시만 해도 생소하던 플리마켓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집 안에서 뒹굴던 중고품을 가져와서 파는 사람, 손재주가 좋아 액세서리 가게를 차릴까 말까 망설이다 소비자의 반응을 살피고 싶어 찾은 예비 디자이너, 가게 이름도 알리고 재고도 정리하려는 상인, ‘유럽식 벼룩시장’이 열린다는 말을 듣고 그냥 놀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요즘 플리마켓을 보면 편집 매장처럼 전문화되었다는 느낌이다. 플리마켓의 대표 브랜드인 홍대 앞 ‘희망시장’과 ‘프리마켓’은 일찌감치 아티스트 중심의 시장으로 변했다. 연남동의 ‘연남동막켓’은 누구나 참가하기 쉬운데, 초기 플리마켓 냄새가 물씬 풍겨 인기 급상승 중이다. 서래마을의 ‘요디스바자’는 스타일리시한 패션과 잡화가 주를 이뤄 패셔니스타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 홍대 앞 공연장 ‘언플러그드’에서는 비정기적 플리마켓을 연다. 주로 음악인들의 애장품이 등장해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파주 헤이리 논밭예술학교에서 여는 논밭놀장 플리마켓의 주제는 바른 먹거리와 수공예 디자인이다. 참가 셀러(상인)들의 작품을 미리 공개하는 치밀함과 예술 영화 상영, 작가와의 수다 시간 등을 마련해 확실한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그런데…. 차별화? 그렇다. 이제 플리마켓은 일정한 마케팅이 움직이는 자본주의적 형태를 갖추고 있다. 판매 사이트를 받으려면 참가비가 필수가 되었고, ‘내 물건 팔아 남의 물건 사주는’ 반띵 정신도 예전보다 뜸해졌다. 플리마켓 전문 사이트가 생겨 셀러들의 제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그러나 플리마켓은 여전히 살아 있다. 길거리에서 열리니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여전히 예술성 높은 상품이나 작품, 그리고 분위기 띄우는 라이브 음악이 있어서 그렇다. ‘현대판 장돌뱅이 예술가’의 등장도 플리마켓의 미래를 밝게 해주는 변화다. 제주 세화오일장 옆에서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벨롱장’(벨롱=반짝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제주어)에 ‘드림캡쳐’를 걸어놓고 파는 한 부부는 뉴욕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화단이나 갤러리에 얽매이지 않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느림보들이다. 그들뿐 아니라 벨롱장에는 이주 아티스트의 작품, 이주 농부의 농산물, 듣든 말든 열창하는 가수들이 꼭 참여해 셀러와 참가자들을 한눈팔 새 없게 만든다. 오죽하면 지난주 이효리 부부가 다녀간 사실을 참가자 대부분이 몰랐을까.
Word by 이영근(칼럼니스트, 여행작가)
[D-Trend/Critique] 쇼핑, 어디까지 가봤니? vs 반띵 살롱 플리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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