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l] 광고산업, 디지털로 경계를 지우다
CHEIL WORLDWIDE 기사입력 2014.12.22 05:22 조회 8620

요즘 디지털이 무서운 속도로 광고산업의 판세를 바꾸고 있다. 아울러 통합 마케팅이 대세라 매체 간 경계도 지워지고 있다. 디지털이 광고산업 속에 들어온 지금,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볼 몇 가지 이슈가 있다.

다양한 경쟁 상대가 나타나다
우리는 그동안 광고 영역을 디지털과 아날로그로 나눠 왔다. 하지만 이제 머릿속에서 그런 이분법을 지우자. 광고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로 나뉘는 게 아니다. 그런 경계는 원래 없었다. 다만 전통적인 광고에이전시가 먼저 광고산업을 이끌기 시작했고, 그 후 IT 기술이 발전했을 뿐이다. 디지털이 광고산업 속에 들어온 것이다.

과거에는 광고에이전시의 경쟁사가 다른 광고에이전시였다. 이들은 빌링(Billing) 규모를 비교하며 서로 1위 자리를 두고 경쟁해 왔다. 이런 경쟁 방식은 여전하지만, 문제는 경쟁사 종류가 많아졌다는 데 있다. 인터넷 상용화 이후 디지털 회사가 부상했다. 이들은 디지털 무기를 앞세우며 전통 광고에이전시에 도전한다. 그런가 하면 모바일 앱을 만든 회사가 클라이언트가 되고, 소셜미디어와 홍보 기술을 결합한 PR회사가 나타난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도 디지털 회사를 만들어 이 경쟁에 합류한다. 클라이언트도 디지털 회사를 만든다. 그래서 글로벌 광고에이전시들은 디지털 회사와 전략적 제휴를 하거나 아예 사버리는 전략도 쓴다.

디지털은 ‘뉴 노멀(New Normal)’이다
우리 몸에 밴 디지털. 디지털은 단순히 아날로그의 상대어가 아니다. 이제 디지털은 그저 ‘뉴 노멀(New Normal)’이다. 이는 IT 분야의 미래학자인 피터 힌센(Peter Hinssen)의 표현이다. 뉴 노멀, 말 그대로 디지털이 새로운 표준인 것이다. 세상은 디지털화됐다. 마치 공기를 호흡하듯 디지털이 자연스럽게 일상이 된 시대다.

혹시 처음 운전했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운전석 발밑에는 페달이 세 개 있었다. 왼발로 클러치를 밟아가며 기어를 변속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 아무도 그렇게 운전하지 않는다. 요즘의 운전자는 그런 것이 있었는지조차 모른다. 자동차를 살 때부터 기어는 원래 자동으로 달려있으니까.

요즘 시대의 고객은 디지털 키드다. 소비자뿐 아니라 클라이언트도 디지털 키드고, 광고에이전시의 직원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스마트폰을 쓰면 거북목이 된다고 소리쳐 봐야 소용없다. 누가 봐도 편리한 것을 애써 외면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게다가 디지털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낮다. TV광고를 만들어도 필름 값이 들지 않는다. 현상 요금도 없다. 재촬영할 장면도 CG로 고친다. 디자인할 때도 상대적으로 비용이 낮다. 왜 외면하겠는가? 디지털은 생활이다.

디지털,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다
세계적인 디지털 광고에이전시에도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우선 덴츠와 WPP가 주도하고 있는 인수 합병을 들 수 있다. 덴츠는 지난해, 이지스 그룹을 인수해 덴츠 이지스 네트워크(Dentsu Aegis Network)를 설립했다. 퍼블리시스 그룹과 옴니콤 그룹도 합병했다. BBDO와 케첨(Ketchum), 레오버넷, 사치앤사치 같은 250개 이상의 대행사 브랜드가 통합된 것이다.

딜로이트(Deloitte), 액센추어(Accenture) 같은 국제적 컨설팅회사도 디지털 에이전시를 설립했다. 딜로이트는 시애틀의 모바일 대행사를 인수해 딜로이트 디지털(Deloitte Digital)을 만들었고, 다음 해에는 디지털 에이전시도 합병했다. 딜로이트 디지털은 크리에이티브와 IT 기술을 조화시켜 소비자에게 최고의 디지털 경험을 제공하는 데 주력한다. 일례로 대형마트를 타깃으로 모바일 카탈로그를 개발해 인기를 얻었으며, 또한 탐스 슈즈 캠페인에 반응형 디자인(Responsive Design)을 활용해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액센추어는 디지털 프로덕션 에이전시와 디지털 디자인 에이전시를 합병했다. 이후 액센추어는 주로 P&G의 인터랙티브 마케팅을 전담해 성공을 거뒀으며, 최근에는 밀라노에서 시티원탭(CITY 1TAP)이란 이름의 스마트시티 앱을 서비스하고 있다. 자전거 쉐어링, 모바일 광고, 택시 예약 등을 손쉽게 할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가 하면 각종 디지털 기술과 빅 데이터 분석 능력을 갖춘 IBM 같은 기업까지 디지털 에이전시 사업에 뛰어들었다. IBM 인터랙티브 익스피리언스는 재규어랜드로버 대리점에서 3D스크린을 통해 소비자들의 시운전 가상체험 기회를 제공했으며, 여기에서 얻은 소비자 데이터를 수집해 재규어랜드로버의 판매 전략 수립에 큰 도움을 줬다. 이처럼 광고에이전시가 아닌 회사들이 디지털 에이전시로 사업을 확장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흐름을 읽었기 때문이다.


1,2. 딜로이트 디지털은 탐스 슈즈 캠페인에 새로운 플랫폼을 적용해 네덜란드에서 성공을 거뒀다. www2.deloitte.com

클라이언트와 에이전시의 생태계
한편 인터넷 광고비가 모바일로 넘어가고 있다. 미국 인터넷광고협회(IAB)의 조사에 의하면, 모바일 광고 예산은 세 자리 단위로 증가하고 있다. 디지털 비디오 광고, 리치 미디어도 두 자리 성장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클라이언트와 에이전시의 생태계가 복잡해지고 있다. 옴니채널 전략에 따라 클라이언트는 이전보다 더욱 많은 광고에이전시를 기용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것은 기본이다. 소비자 행동, 라이프 사이클, 라이프타임 밸류(Lifetime Value) 발굴 능력도 기본이다.

마케팅 광고 캠페인에 맞는 여러 전문 에이전시를 쓰면서 데이터 수집과 활용, 최적화, 캠페인 관리 등의 협업을 기대한다. 종합 에이전시인 AOR(Agency of Record)을 중심으로 PR, PPC, SEO, 소셜, 크리에이티브, 전략, 매체 구매 등을 분리해서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글(Google)도 다양한 광고에이전시를 전문성에 맞춰 활용하고 있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광고에이전시
그런데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에이전시는 어디일까? 전통 광고에이전시이건 디지털 회사건 크리에이티브 부티크건 컨설팅회사건 상관없을 것이다. 당장 매출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줄 회사면 되지 않겠는가? 당장의 매출은 아니더라도 브랜드 빌딩에 도움을 주는 아이디어를 주면 된다. 흔히들 클라이언트가 광고에이전시를 선정할 때 뛰어난 크리에이티브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광고계 동향>의 조사에 의하면 클라이언트는 광고에이전시의 ‘우수한 광고 전략 및 마케팅 컨설팅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광고에이전시는 ‘광고에이전시의 명성, 규모, 안정성’을 5순위, 클라이언트는 9순위로 꼽아 가장 큰 이견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클라이언트가 광고에이전시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은 디지털 역량뿐만 아니라 본원적인 업무, 즉 우수한 광고 전략을 잘 세우고, 마케팅 컨설팅을 잘 해달라는 것이다. 결국 클라이언트에게 고양이의 색깔은 상관이 없고 흰색이건 검은색이건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얘기다.


1. 액센추어가 밀라노에서 진행하고 있는 ‘시티원탭’ 서비스. 자전거 쉐어링, 모바일 광고, 택시 예약 등을 손쉽게 할 수 있다. ⓒwww.city1tap.it
2. IBM 인터랙티브 익스피리언스는 재규어랜드로버 대리점에서 3D스크린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habrahabr.ru


광고에이전시의 미래
지금만큼 전통적인 광고에이전시의 위상이 흔들린 적은 없었다. 미래가 불안한가? 불안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 당황하지 말고 아이디어에 집중하자. 아이디어가 있는 한 광고에이전시는 생존하고, 존중받는다. 그것이 광고에이전시의 존재 이유다. 아날로그 회사건 디지털 회사건 재미있는 콘텐츠를 먼저 생산하는 자가 평가받는다. 이야기꾼이 돈을 만든다. 재미있는 이야기에 디지털을 입히자. 디지털은 생활이다. 전통 광고에이전시는 지금 흐름에 발맞춰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애당초 ‘아날로그 광고에이전시’는 없었다. 단지 디지털이 우리 생활이 됐을 뿐이다.


3. 광고에이전시가 생각하는 클라이언트의 광고에이전시 선정 기준. 출처: 광고계동향(2014. 3)
4. Increasing Complexity of the Client/Agency Ecosystem. 출처: Third Door Media



정상수는 청주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한국광고PR실학회 회장, 부산국제광고제 부집행위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스매싱: 아이디어가 막힐 때 돌파하는 힘>, <한 단어 프레젠테이션> 등이 있다.
디지털 ·  에이전시 ·  클라이언트 ·  피터힌센 ·  뉴노멀 ·  네트워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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